04편
엑소시스트,
귀신. 혹은 악마를 내쫓는 기이한 집단
" ............... "
" ............... "
" 너 "
" ..... 뭐, "
" 따라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
" 난 순종적이지 못해서, 네 말을 들어주지 못해 "
" 닥쳐. 더이상 따라왔다간 네이섬이고 뭐고 니 머리에 구멍부터 뚫어줄줄 알아 "
" 흥, 해보라지. 난 사라지는게 아니라 죽는것 뿐이니까 "
더 이상의 언쟁이 필요없다고 느낀 애니는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지만
뒤에서 잘도 쫄래쫄래 따라오는 악마놈이 거슬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와 같은 집에서 살게 된지 2 일.
물론 그의 힘을 봉인 한것은 리였지만, 리에게는 엄연히 가족이 있었고
키우는 애완견까지 있었기에 이녀석을 개로 둔갑시켜 키울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힘을 봉인한 탓에 이녀석이 원해도 다른 몸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네이섬이 가지고 있는 특기만 고스란히 가진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래서 데려다 사육해주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하라는것은 죽어도 안하는 청개구리녀석 때문에
상쾌한 일요일을 정신없이 마무리한 그녀였다.
" 그보다 어디가는 거지? "
" 학교 "
" 학교? 아아, 그 답답한곳? "
" 어떻게 알지? "
" 나도 인간계에 꽤 오래 있었거든 , 그보다 거기엔 도데체 왜 가는거야? "
" 나중에 먹고 살려고 "
" 엑소시스트만 해서도 잘 먹고 잘 살것 같은데? "
" ...... 세상물정 모르는군. 잘들어. 인간계에선 악마의 존재는 판타지 소설에 얼굴을 잠깐
비추는 허구의 존재란 말이지. 그런데 엑소시스트가 존재할리 없잖아? "
" ...... 신기하군 "
" 알았으면 빨리 가버려. 학교에 너따위 데리고 갈순 없어 "
" 어째서? "
" 누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잘도 공부도 시키고 밥도 주겠군.
너도 오래 있었다면 알거 아냐. 인간들은 낯익은 존재가 아니면 경계하고 멸시한다는 것을 "
" 그럼 낯익게 만들면 되겠네 "
" 그렇지 "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었음에도 바로아는 제법 재밌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손가락 두개로 딱 하는 소리를 내자 순식간에 ㅡ 물론 보통 사람은 느끼지 못했다 ㅡ
바로아에게서 무언가가 펴져 나가는 듯, 작은 파동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 ...... 무슨짓을 한거지? "
" 힘을 봉인당했어도, 나는 악마야. 이 정도 마법이야 쉽게 쓸수 있지. "
" 내가 묻는건 무슨 마법을 썼냐는 거야. "
" 학교에 가면 알게 되겠지. "
의미심장한 미소를 띈 바로아는 씩씩하게도 애니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고
정말 넌더리 난다는 표정을 띈 애니는 이내 그가 건 마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주변을 지나가던 자신과 같은 교복의 학생들이 바로아에게 친근한듯 인사를 건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애니에게 잠깐 눈총을 준 후, 먼저 총총 학교쪽으로 사라지는게 아닌가.
" ....... 이상한 마법이네 "
" 이제 날 존경하게 됬지? "
" 닥쳐. "
" 애니 ♡ "
학교 교문에 도착할때 즈음이 되면 뒤에서 리가 급습을 하곤 했지만
오늘은 바로아를 경계하는 듯 그저 방긋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주변의 아이들이 바로아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보였지만
애니가 별말없이 교문으로 들어가 버리자, 별 생각하지 않고 애니를 뒤따라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머뭇거리듯, 바로아는 그 자리에 멈춰서 학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텃세가 심하겠군, 별별 악마 녀석들이 득실거리니 "
여전히 무뚝뚝한 애니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든 말든 싹 무시한 체 ㅡ 그것은 일종의
' 저주 극복법 ' 이기도 했다 ㅡ 창문가에 가장 뒷쪽 자리에 걸터앉아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있었다.
장미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계절, 6월. 날씨는 좋았지만 후두둑 떨어지는 꽃잎들처럼
그렇게 성가신 것들이 없었다. 어찌돼었건 허공을 응시하며 초점없는 눈을 부릅뜨고 있는 애니는
이내 자신의 옆에 리 말고 다른 남자아이가 꼬여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한숨을 흘렸다.
" 인간이 이렇게 득실거리는건 여전하군 "
" 가버리랬지, 내가 "
" 어느 반으로 가든 난 상관없거든 "
" 그럼 다른반으로 가. 제발. "
" 그럴 순 없어, 난 너의 주위를 맴돌아야 하거든 "
" 뭐? "
" 네 주위엔 악마들이 많으니까 "
" 무슨 뜻이지? "
" 그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내 봉인도 일찍 풀리거든 "
속셈을 모른체 하고 있었던 것 뿐이지, 모르고 있었던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힘을 이용해 먹을 생각인것 같았지만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봉인이 풀리거든 다른 몸으로 옮기도록 그를 괴롭혀 줄테니까.
" 어머머, 너 리제 맞아? 왜 이렇게 예뻐졌어 !! "
" 방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주일동안 학교 안나왔다고 이렇게 날씬해져? "
소란스러움 때문에 그들의 대화는 잠시 끊겼다.
본래 여자 3명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고, 저기에는 여자 대다수가 몰려 있으니
아마 거울이 산산조각 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언제나 그렇듯 도박중인 리를 흘끗 바라보았다.
신나게 돈을 딴 리는 카드를 얌전히 내려놓고 애니의 시선에 응수해주었다.
" 리제, 응? 말 좀 해봐. 성형수술이라도 받았어? "
그래, 그것은 알 수 없는 이상한 예감이었다.
몰려있던 사람들의 틈으로 보인 여자아이, 리제.
갸름한 턱선위로 덮인 갈색의 긴 머리카락과 흰 목덜미.
깨끗한 피부에 어울리는 크고 푸른빛깔의 눈동자 까지 ㅡ
얼마전까지 그들의 기억하고 있는 여드름이 가득하고 뚱뚱한 그 리제가 아니었다.
" 글쎄 .... 열이 40도를 넘나들다가 좀 괜찮아 지니까 이렇게 되더라구 "
" 우리도 그렇게 되면 살 좀 빠질까? "
" 넌 절대 안빠져 "
아이들의 시끄러운 수다가 계속됨에도, 리제라는 여자아이는 미동도 없었다.
비록 뚱뚱하고 못생겼더라도 그녀는 밝고 활발한 성격탓에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리제는 마치 딴사람이라도 된 양 무뚝뚝, 아니 화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바로아가 옆에서 조용히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악마의 축복일지도 ? "
에에,
이런식으로 나갈거에요 (<-)
05편.
엑소시스트,
귀신. 혹은 악마를 내쫓는 기이한 집단
" 옥상으로 날 불러내다니,
설마 나한테 고백이라도 하려고? "
" 말 장난 하려고 불러낸거 아닌거 알잖아. 리.
이상한 녀석이 꼬였다는 것쯤이야
너도 쉽게 알수 있지 않아? "
간신히 바로아를 때어내는데 성공 했으니
이제 본업으로 돌입할 시간이었다.
주변을 떠도는 음산한 기운 하나만으로
40도가 넘나드는 고열로 1주일동안 학교를 빠진
' 리제 ' 라는 여자아이에게
악마라는 존재가 꼬였다는 것쯤은 잘 알수 있었다.
" 으음 , 좀 아쉽긴 한걸 "
" 장난하지 말랬지 "
" 그보다, 아름다워 지게 하는 악마라니 ?
처음 들어보는 기괴한 녀석인걸. 악취미인가. "
" 몇년전에 사람의 얼굴을 녹여버린 녀석도 있었잖아.
그 녀석과 비슷한 부류겠지. 악마란 놈들은 "
" 하지만 애니보다는 덜 이쁘던걸? "
" 전혀 안기뻐 "
" 흐응 ㅡ 어떻게 하지? "
" 내일 아침에 일찍 불러내는게 좋겠다고 생각해.
그때 알아서 퇴치하면 되겠지. "
" 그냥 아침 말고 밤으로 하는게 어때?
우리 같은 악마들은 밤에 더욱 활개를 친다구 "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마치 두 연인을 엿보는
남자처럼, 정말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바로아가 벽에 얌전히 기대어 서 있었다.
리는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지만, 애니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을 일관하며 바로아를 가만히 응시했다.
" 난 그저 조언을 해준것 뿐인데.
뭐 그리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야? "
" 너, 언제부터 엿들은거야?
게다가 니가 뭘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 ....... "
" 리. 가만히 있어 "
" 애니. 하지만 ...... "
" 너는 인간계에서 꽤 오래 있었다고 했었나?
그럼 밤이 뭔지는 알겠군 "
" 당연하지 "
" 밤은 어둡고 춥고 공포의 상징이지.
그리고 인간들은 밤을 두려워해. 이것도 알겠지? "
" ..............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
" 우린 숙련된 엑소시스트다. 네놈이 인간계에
오기 훨씬 전부터 엑소시스트가 되기로 결정
되어 있었어.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 "
" ................... "
" 밤에 그녀석들이 활개친다는 것쯤은 니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해도, 알고 있었어. "
" 그럼 어째서 아침에, 그것도 악마 녀석이
잠들때에 처리하겠다고 하는거지? "
바로아의 말은 정확히 핵심을 찔렀다.
리는 조금 난감한 듯 애니와 바로아를 번갈아보았고
애니는 여전히 변화없는 표정으로 바로아를
아주 가만히 쳐다볼 뿐 더이상 말이 없었다.
" 니가 날 좀 더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물론 악마에게 바랄 일은 아니겠지만 "
순간 바로아의 눈 앞에는 맹하고 말없는 애니가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을 당할 상황을 수백번 겪어온
참혹하고 잔인한 살인자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그 시간, 리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학교 구석 벤치에
얌전히 앉아 두꺼운 책 한권을 읽고 있었다.
예전의 리제라면 지루하다고 내팽겨칠 책이었지만
고열 때문에 정신마저 돌아버린듯 얌전하게
책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 때. 때늦게 피어 이제야 장미에서 떨어진 꽃잎 하나가
살며시 책의 한 페이지에 발자국을 남기듯 내려앉았다.
책을 읽다 말고 꽃잎을 주시하던 리제가
눈을 한번 번쩍이자 푸른 불꽃이 갑자기 솟아나더니
장미꽃잎을 재도 남지 않게 태우고는 다시 사라졌다.
리제가 그제서야 슬며서 미소지으며 속삭였다.
" 아름다운 건, 나 하나만으로도 족해. "
다시 얌전한 고양이로 돌아간 리제가 책을 넘긴다.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재빨리 넘기던 그녀가
두꺼운 책을 큰소리 나게 턱 덮고는 눈부신 태양을 응시한다.
태양은 밝고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여름하늘의 태양에게 속삭인다.
" 빛나는건 나 뿐이야. 너 따위 필요없어. 태양 따윈 "
그녀의 차갑고도 부드러운 속삭임이 끝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새까만 먹구름이 먼 남쪽에서부터 몰려온다.
리제는 치마를 탁탁 털곤 긴 갈색 머리를 나부끼며 일어섰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빙긋 미소까지 짓고는
천천히, 하지만 곧게 학교 안으로 향했다.
곧 끝나지 않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이거, 심각한 녀석이로군 "
바로아가 나지막히 혀를 끌끌 거렸지만
애니는 개의치 않고 잠을 자는 척 눈을 감았다.
그도 그녀가 잠을 자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별 말은 하지 않고 그녀 옆에 앉아 창밖에서 빗줄기와 일어나는
안개같은 먼지들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말이 없던 애니가 고개를 홱 돌려 리제쪽을 바라보더니
수업시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 악마가 더 강해졌나? "
" 숙련된 엑소시스트는 아실거 아냐?
우리들은 낮에 잘때 에너지를 보충한다고.
흐응 ㅡ 그보다 새벽도 괜찮을 것 같군.
그때는 우리가 힘을 모두 써서 피곤할 때니까 "
" 날 도와주는 건가? "
" 그거야 모르지 "
수업 종이 뎅뎅 울렸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 이었지만
아무도 선뜻 밖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내린 비가 창문을
정말 거세게 두드리고 있었고
가끔 번개와 천둥이 함께 내려쳐 우려는
더더욱 공포로 확장되어 퍼졌다.
그것이 바로아에게는 제법 재미있는 일인듯 싶었다.
" 애니, 어쩔꺼야? 응? "
" 너무 나서지마. 리.
눈치 채면 금방 몸을 떠나버린단 말야 "
" 너는 얼마전에도 악마를 만나서
괜찮겠지만, 나는 얼마동안 그것들이 안알짱거려서
얼마나 몸이 근질근질 한줄 알아?
지금 당장이라도 때려잡을 수 있어. 염주도 있는걸 "
" 엑소시스트 라는걸 자랑하고 다녀.
저번 학교에서 니가 난리쳐서
크리스티나님까지 나서서 처리한거 기억안나? "
" 크리스티나님이 누구지? "
이야기를 끊어놓기엔 정말 달인인듯한 바로아가
불쑥 한창 언쟁을 벌이는 한쌍의 남녀에게 물었다.
그들은 잠깐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애니가 신랄하게 입을 열었다.
" 너한테 가르쳐줄 의무는 없다고 생각해. "
" 호오, 악마한테 가르쳐 주지 못할 사람이라면
너희들 상관정도 되겠지? "
" 멋대로 추측하라고 하진 않았는데 "
그 때, 뜻하지 않게 그녀가 다가왔다.
갈색의 긴 머리카락을 휘갈기며
리를 사모하는 여자들이 리 옆에 있는 애니를 볼때마다
짓는 표정을 똑같이 재현하고서는.
" 안녕, 리. 혹시 시간되니? "
의외로, 해답은 리에게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끝입니다 (<-)
06편
평일은 엑소시스트 (뭐래
엑소시스트,
귀신. 혹은 악마를 내쫓는 기이한 집단
- 리제의 푸른빛이 도는 머리카락은 이상하게도
빗속에서 찾아오는 어둠에 눌리지 않았다.
그저 어둠보다도 더 아름다운 빛을 뿜어낼 뿐.
리제는 머쓱한 표정의 리 앞에 서 있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방긋 웃으며 무슨 일이냐는 듯
둥글둥글한 눈으로 리제를 응시하던 리는
리제의 한마디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 어떻게 할꺼야 ? "
" … 꼭 대답해야 하는거야 ? "
" …… "
" 미안. 나한테는 애니밖에 없어 "
" 뭐 ? "
리제는 오래전부터 익히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리와, 가장 소외된 애니의 관계의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리에게 무심한 애니에 반해 리는 어디를 가던
애니를 옆에 끼고 마치 여자친구처럼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리제도 리에게 고백했던 다른 소녀들 처럼
아주 멋지게, 그것도 혐오하는 ' 애니 ' 때문에 차이게 되었다.
" … 어째서 ? "
" 어째서라니? "
" 내가 그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잖아 ?
친구도 더 많고 ! 그 계집이 공부를 조금 잘한다는
것 때문일텐데, 걱정마 ! ' 그 녀석 ' 한테
부탁하면 공부도 금방 잘하게 될테니까 !! "
" 그 녀석 이라니 ? "
" 나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
그건 너도 잘 알거 아냐, 애니보다 내가 더 .
아니, 어떤 여자들보다 더 내가 아름답다고 !! "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계단에, 그녀의 외침소리가
메아리쳐 울렸다. 흥분한 듯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다듬던 리제의 귀에, 빗소리에 섞여든 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 맞아. 넌 아름다워. 어떤 남자라도 그건 인정할거야 "
" 그렇지 ? 그렇다면 왜 !! "
" 내 눈으로 보기엔 넌 더러워. "
리의 말 소리 탓이었을까, 리제의 숨소리가 멎은 듯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리는 팔에 감아둔 염주를
만지작 거렸다. 이제 곧 나타날 것이다.
" 내가 보기엔 말야, 애니가 훨씬 더 예뻐.
그걸 어쩌겠어? 내 눈에 콩깍지가 씌어 버렸는데 "
" …… "
" 그리고 말이지 "
리가 때가 되었다는 듯이 팔에 감아둔 붉고 긴 염주를
빼들어 휘둘렀다. 리제는 순식간에 계단위로 뛰어올라 갔으며
그는 예상했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이상한데 씌인 녀석하고는 상종하고 싶지도 않아 "
* 그녀, 애니는 여전히 빗줄기가 거세게 내리는
창문을 바라보며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녀의 책상에는 리의 카드와 여러 게임종류들이
가득담긴 가방이 놓여 있었고, 애니는 초조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더욱 심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들릴 듯 말 듯한 숨소리를 내뱉었다.
" 실연당한 여자 같은데 "
" …… "
" 이봐 - 그 촐싹거리던 꼬마녀석은 어디로 갔지 ? "
" 글쎄. 너한테 알려주고 싶진 않은걸 "
" 이러시면 곤란하지. 나한텐 인질이 있단 말야 "
" … 그래서 ? "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문에 서 있는 바로아를 돌아본
애니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아는
미소를 거두고 그녀가 응시하고 있는 창문에 다가간다.
한참동안 그렇게 정적만이 흘렀다.
" … 좀 늦는다고 생각하고 있지 ? "
" 많이 늦어. 너무 …. "
" 못 믿는 거겠지. 네가 "
" 아니, 난 충분히 믿고 있어. 하지만 이건 너무 늦어 "
소름돋는 의자끄는 소리가 적막한 교실을 울렸다.
그녀는 말 없이, 책상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서 있었다.
죽음과도 같은 공포. 그것이 모든것을 엄습하는 듯 했다.
" …… 난 가겠어 "
" 어딜? "
" 뻔한거 아냐 ? "
그녀의 눈동자에 떨림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아는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점점 재밌어 지는 스토리가 아닌가.
* 리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시든 복숭아마냥
푸르러진 리제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녀의 손은
자신의 피와 리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 이봐아 - 왠만하면 그 몸에서 나오지 그래 ?
이대로 죽이면 곤란하다구 - "
" 닥쳐라. 네 마음대로 해줄 생각은 없어 "
리제의 말라붙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것은
본래의 맑고 높은 음색이 아닌 탁하면서도 낮은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이번 악마는 남자였을까,
조금 취향이 독특한 남자였다.
" 그보다 말이지, 평범한 여자를 아름다운 여자로
만들어 주는 악마는 처음 듣는걸. 특히
싸구려 저급 악마가 말야 "
" 하, 날 도발하려는 것이냐 ? "
" 응. 충분히 "
" … 난 그저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이다 "
어지러워진 시멘트 계단은 이곳저곳이 움푹
파여 있었다. 그 곳에 잘못 발을 딛으면 뒤로 넘어지기에
리는 조심조심 안전한 계단을 밟았다.
리제, 아니. 남자 악마는 그 불타오르는 시뻘건 눈동자에
분노를 가득 담으며 다시금 리에게 달려들었다.
" 난 그저 !! 잠을 자고 있었단 말이다 !! "
" 그 분을 왜 나한테 푸는건데 ?! "
" 그런데 말야, 추악하게 생긴 여자가 날
소환하더군. 자신이 인신공양이 되서 말야 ! "
" 웃 !! "
" 하하, 악마가 있다고 믿는 인간 계집도 있더군 !!
그래서 내가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어떤 대가를 받아도 좋으니, 자기를 당당하게
만들어 달라더군. 그래서 내가 아름답게 꾸며줬지 "
" 그래서 넌 대가로 뭐를 받아갔지 ?! "
염주가 절그럭, 위압스러운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악마는 풀쩍 날아올라 옥상에 닿는
계단에 올라 앉았다. 빗줄기가 더더욱 거세졌는지
이젠 문을 뚫겠다는 듯 시끄럽게 문을 두들겼다.
" 인간들에게서 가장 중요하다는 어떤 부분이지.
알고 싶나 ? "
" …… "
" 바로 이 녀석의 심장이다. 시뻘겋게 목숨을 이어가던,
끈질긴 삶을 살아가던 이녀석의 살아있는 심장 말이다 ! "
악마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리제의 왼쪽 가슴을
톡 쳤다. 이내 리의 귓가에선 점점 느려져 가는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핏덩이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 이를 어쩌나, 엑소시스트. 네가 살리고자 한
이 계집은 내가 죽으면 살아갈 수 없어 !! "
빗소리가 거세졌다.
이내, 총성이 울렸다.
++++++++++++++++++++++++++++++++++++++++++++++++
= ㅂ=); 오랜만에 쓰니 여엉 -
작가들은 립흘밥을 먹고 산답니다 ㅠㅠ
저에게 먹이를 주세요 (<-)
첫댓글 앗, 그런데 5편이 맨 마지막으로 간 것 같아ㄷㄷㄷ;
우오우오우오우오!!!!!!! 은랑님 이거 진짜 포스 최고에요ㅠㅠ [감동먹은 제니]
우오우오 악마에게 홀린 자는 일단 없애고 보자<잔인한 새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