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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Eallpo (dbsrud1330@hanmail.net)
출처 : Run counter: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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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아, 미안해요!!! 내 맘 다 알면서 진짜!"
“알긴 뭘 알아? 어휴, 못살아 정말.”
그는 정밀 미안해서 아니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가슴이 시려왔고,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나만 바보가 됐고, 나만 병신이 되어버렸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래!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래! 빌어먹을 여진우, 썩어빠진 여진우.
“그냥 장난친거에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 그랬어. 네 장난이 다른 사람한테는 상처가 될 거란 생각 안 해봤어? 왜 그래 진짜?”
내 말에 여진우는 기가 죽은 듯 침울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축 늘어져 귀를 늘어트린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귀엽진 않다.
“됐어. 나 먼저 갈게.”
“혼자가면 위험해요. 데려다 줄게.”
“됐어. 너랑 같이 가면 화만 더 날 거 같아서 그래.”
“화내도 괜찮아요.”
“내가 싫어.”
그 말과 함께 드라마에서처럼 우리의 앞에 택시가 멈춰 섰고, 나는 그 택시의 문을 벌컥 열고 탔다. 당황한 듯, 여진우는 창문을 계속해서 두드리면 창문 좀 내려 보라고 말하는 거 같았지만 난 기사아저씨에게 그냥 가달라고 말하며 여진우를 깔끔히 무시했다.
나라고 마음이 편한건 아니다. 하지만, 어디라도 풀데가 있어야 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 어쩌면, 내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닐까.
◈
우리는 가끔 그것이 절벽이고, 수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로 걸어가는 경우가 있다. 지금 내 경우가 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쌍하고 또 불쌍한 내 심장. 불쌍하고 또 불쌍한 내 눈물. 불쌍하고 또 불쌍한 민 효정.
“잡채를 조금 했는데, 너무 많이 한 거 같아서. 먹으라고.”
-아, 어엉.. 들어와..
후욱, 후욱. 심호흡을 몇 번 한 뒤 현관문을 열었다. 그와 나는 친구다. 친구니까, 친구끼리 집에 가는 게 뭐 어때. 반찬 주러 가는 건데. 다 같이 서로 서로 돕고 사는 거야. 같은 자취생끼리 뭐.
“갑자기 잡채가 먹고 싶어서 했는데 왠지 많아져서. 너 잡채 좋아하잖아. 그 생각나서 좀 가져와봤어.”
“아, 고마워.”
그는 좀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더더군다나, 헤어진 연인이 그것도 이제 남자친구까지 생긴 전 연인이 (진짜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대뜸 찾아와서 잡채를 주니 뭐니 하고 있으니, 당황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어휴 밥도 없어. 쌀은 있냐?”
“아 맞다..밥.. 쌀은 베란다에 있을걸?”
하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런 관계였기 때문에 그도 차츰 익숙해지는 듯 했다. 조금 기분이 좋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익숙해지는 게 이상하다. 전혀, 익숙해지면 안 되는 상황인데.
“대체 뭐 먹고 사는 거야.”
“그냥 뭐 이것저것.. 밖에서 사먹고 그러지 뭐.”
“잘 좀 챙겨먹구 다녀.”
그렇게 말하며 쌀을 씻었다. 그는 그냥 히죽 웃으면서 옆에서 김치를 썰었다. 딱히 반찬이 없으니, 김치를 썰어 볶을 요량이었다. 항상 그래왔던 일이기 때문에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서 김치를 썰었다. 골고루 씻은 쌀을 밥통에 얹히고, 한숨 돌릴 겸 식탁에 앉아 잡채를 담아온 통을 열었다.
사실, 잡채는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의 집에 무작정 찾아 들어갈 명분이 필요했다. 막 한 따끈따끈한 잡채를 그릇에 담았다. 야채와 면이 옆으로 좀 쏠려 있어서 그걸 골고루 섞어가며 담았더니 제법 먹음직스럽게 담아졌다.
“아, 저기 있잖아.. 효정아.."
“으응?”
“어제..그..”
내심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건 정말 미안해!”
“으, 응?”
“사실 걔 그냥 아는 과 후배야. 장난 좀 친다고 그런 거였어. 그리고 걔가 원래 성격이 까칠해서. 어젠 정말 미안했어.”
내가 대뜸 미안하다고 하자 잠시 놀라는 듯 하다 내 말을 찬찬히 듣고는 싱긋 웃었다. 마음 한 쪽이 진동했다. 싱긋, 웃었다. 싱긋, 웃었다. 싱긋, 싱긋, 싱긋.
“악!”
“어어, 뭐야?”
간도 보지 않고 들고 온 잡채 몇 가닥을 시식해보고 있던 차에, 갑자기 그가 비명을 질러서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김치를 썰다 손이 베였다. 김치 국물이 잔뜩 묻은 그의 울퉁불퉁한 손에 작게 베인 그 틈으로 김치 국물과 분간이 되지 않는 벌건 피사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나는 물을 틀어 그의 손에 묻은 김치 국물들을 씻어내었다. 상처에 물이 들어가자 그는 따가운지 인상을 찌푸렸다.
“구급상자 있지?”
“응.”
그를 거실로 끌고 가, 텔레비전 옆에 있는 서랍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이거, 아직 여기 있구나. 그리고 나는 익숙하게 그의 손을 붙잡고 세세하게 연고를 펴 발랐다.
“신기하다. 데자뷰 현상같애”
그의 말에 나는 그저 멍청히 웃는 수밖에 없었다. 데자뷰 현상. 그래, 오래전에 나는 네가 다칠 때면 널 거실로 끌고 와 항상 이렇게 연고를 펴 발라 주었지. 그렇게 연고를 세세히 펴 바르고 밴드를 붙일 때 즈음이었다.
“어, 문 열려 있길...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