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 폭력미학에 관한 짧은 대화
사회자(혜민) :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영화 속 폭력"에 관한 토론을 하게 됩니다. 참가자는 19기 윤수현 양과 20기 전오미 군입니다. 사회적으로,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폭력이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입장과 그렇지는 않다는 입장이 대립되는 현실입니다. 이런 생각에 대한 윤수현 양의 입장을 먼저 애기해 주시죠.
수 현 : 그런 악영향을 부정할 순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영향들을 걱정해서 예술적 창작의 자유를 제한 할 순 없다고 봅니다. 제 말은 폭력 영화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폭력성향을 심어줄 순 있다고 치더라도 그것은 영화 외적인 면에서의 문제일 뿐이라는 거죠.
오 미 : 그 영향이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면요? 많은 청소년들이 폭력 영화를 보면서 모방하고픈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뉴스 보도들도 수 없이 많습니다. 게다가 지존파가 폭력 영화를 보고 그 범죄의 상상력을 모방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수 현 : 지존파의 문제... 바로 제가 얘기하고자 한 것입니다. 영화에서의 폭력이 모방되는 것은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일부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영화 속 폭력은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는 해방구의 역할을 할 뿐이라고 봅니다.
오 미 : 가까운 예를 들어서, 시골 은행을 털기 위해 천장을 뚫고 침입한 한 회사원의 사건을 말해 보겠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그 사건을 보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 대학생 시절에 개봉했던 무슨 영화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그런데 그 아이디어를 보고 그 범죄에 대한 매력을 느낀 사람들 중에는 우리 아버지와 같은 평범한 대학생들이 많았단 겁니다.
수 현 : 그런 소수의 인물들이 나오는 데에는 별 도리가 없는 것 아닙니까?
오 미 : 하지만 영화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고 전달해야 할 우리의 입장에서, 상대적 소수라고 해서 그 사람들의 입장을 무시하고 대중적 가치들에만 눈을 돌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수 현 :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건 정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회자 : 그 문제는 영화 외적인 것보다 광범위한 문제이니 잠시 접어 두기로 하는 게 어떨까요? 그렇다면 두 토론자께서는 폭력 미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오 미 : 저는 폭력 미학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폭력이라는 소재가 우리 시대 영화 미학의 감수성을 높여준 어떤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미학이라는 것은 그 매체 자체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영화에서의 미학은 화면 구도나 배치 같은, 매체의 기술적 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수 현 : 그렇지만, <첩혈쌍웅>같은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미학적 카타르시스와 그 뒤에 숨겨진 그 무엇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명확하게 말하면, "폭력"에 대한 우리의 예술적 감흥이 아닐까요?
오 미 : <첩혈쌍웅>에서의 미학은 엄밀히 말하면 슬로우 모션과 비장미의 미학입니다.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떠한 소재가 나와도 그런 방식으로 찍으면 "감흥"을 창조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수 현 : 그렇다고 하더라도, 폭력이 주는 죽음에로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다른 소재와는 다른 어떤 미학을 보여주지 않나요?
오 미 : 저는 그것은 미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학이란 느낌과 놀라움이 아니라고 봅니다. 미학적 이데올로기에는 모든 소재 주의적 구체성을 뛰어 넘는, 추상화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술가나 음악가의 예술 창조에서도 나타나듯, 모든 미학은 "매체"의 기술인 듯 싶습니다.
수 현 : 그러나, 예술 작품을 생각할 때, 그 메커니즘적인 요소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예술을 바라볼 때, 우리는 모든 예술적 핵심을 간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관찰할 때만 나타나는 미학적 완성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 미 : 그렇게 생각되는 것은 영화를 우리가 너무 쉽게 문학화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회자 : 그렇다면 태안 군은 <저수지의 개들>에서 나타난 폭력 미학의 정체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오 미 : 그것은 상황의 미학이고, 대사의 미학이라고 봅니다. 우연한 폭력의 "상황"과 "대사"가 미학화 되었다고 봅니다.
수 현 : 다르게 바라봅시다. 어쩌면 그런 순간들이 영상화 될 때, 그것 자체로 폭력에 관한 미학이 되지 않을까요?
오 미 : 그렇게 폭력 미학을 정의한다면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사회자 : 좋습니다. 여기에서 이끌어 낸 결론은 "폭력"이 영화 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폭력 자체가 미학은 아니며, 다만 미학적 소재라는 절충된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시대 폭력 미학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폭력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끌어 낸 미학적 감수성... 또 한 가지, 폭력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도 나왔습니다... 영화에서 우리가 폭력을 표현 할 때 그 소수의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아직 논의되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영화를 공부해 나가는 우리들의 숙제가 될 것입니다. 오늘 수고해 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수 현 : 감사합니다. 영화에 관해 다시 한 번 많은 것들을 공부한 자리였습니다.
오 미 :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회자 : 이상으로 영상틀 [틀]지 쟁점 "폭력"에 관한 토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