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론부분을 못썼는데여...그건 저희가 공부를 쫌 더해서
올리도록하겠습나다!!!그리고 발제문 중간중간에 그림하고 표가 나오는데여...그건 학술제 당일날 그림을 복사해서 나눠드리도록 할께여^^
내용이 어려워서여ㅡㅡ^...공부열심히할께여~~~^^
Ⅰ. 서론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오면서 가장 획기적이고, 뚜렷한 변화는 토기의 발생이
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인류가 흙을 빚어 구운 하나의 조형물(造形物) 차원을 넘어
용기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도구나 식량을 포함한 생산물의 저장과 이동, 그리고 식품의 조
리와 더불어 불의 자유로운 활용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문명의 혁신적인 변혁일 뿐만 아니
라, 인류의 정착생활과 더불어 파생되는 작업의 분업화 등 사회구조의 유기적인 관계 또한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경제적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토기의 발생이라는 점은 신석기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생각되어 진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용어정의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신석기시대 토
기문화에 나타나고 있는 특징은 융기문을 비롯하여 압인문(押引文), 자돌문(刺突文), 지두문
(指頭文), 원공문(圓孔文), 침선문(沈線文), 조흔문(條痕文) 등의 다양한 기법에서 시문적 차
이를 나타내며 여러 문양구성요소(文樣構成要素)가 나타나고 있으므로, 하나의 특징만을 중
심으로 하는 명칭, 예를 들어 빗살무늬토기, 즐문(櫛文)토기, 가하학문(幾何學文)토기 등의
명칭은 전체를 통칭하는 데에 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판단하여 본 발제문에서는 이러한 토
기를 모두 합해, 전체적으로 문양(文樣)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에 근거하여 유문토기(有文
土器)라 하겠다. 또한 신석기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무문토기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無文
土器)와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라 칭한다.
이러한 용어의 사용을 염두해 두고 본 발제문에서는 신석기시대 토기 연구와 발굴이 활발
했던 남해안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토기의 문양과 기형을, 편년 중심으로 분류해보고자 한다.
다소 발제문의 내용을 전부 인지할 수 없을지는 모르나, 토기 편년의 과정을 한번쯤을 검토
해봐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것을 살펴 본 후에 과연 이러한 기존의 편년연구가 정확한 것이
고 타당한 것인지에 관해 우리들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이는 결론부분
에서 밝히기로 한다.
Ⅱ. 본론 - 남부지방 신석기시대 유문토기(有文土器)의 편년(編年)
가. 층위와 유물과의 관계
신석기시대에 주로 토기의 단순 특징을 나타내고 있은 것으로는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
중심의 신암리(新岩里)유적 A지구와 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와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를
나타내고 있는 제주도 고산리(高山里)유적, 그리고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 중심의 부산(釜
山), 영선동(瀛仙洞) 유적,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중심의 부산 암남동(岩南洞)유적들을
들 수 있다.
이들 유적들은 단일시기의 특정유물과 유적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됨과 동시에 특정형식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유물들의 특징에 따라
층위를 나타내고 있는 유적들은 상호비교를 통하여 상대편년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
다.
圖1은 남해안지방에서 지금까지 조사되었던 대표적 유적의 층서도이다. 층위적인 상호관계
를 이해하기 위하여 수가리(水佳里) 第1문화층에서 출토되었던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
土器), 혹은 태선침선문(太線沈線文)을 기준으로 하여 이 토기가 처음 출토되고 있는 층위를
기준으로 상하로 배치하였다. 그 결과 아주 세분되는 층서적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단
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 이전 단계의 특징적 유물로 영선동(瀛仙洞)유적에서 주로 출
토되었던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가 나타나는 층을 기준으로 일점쇄선으로 표시하였다.
이러한 두 개의 특정 토기양식을 기준으로 펼쳐보면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 하층 단계의
유물들과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단계, 그리고 태선침선문토기(太線沈線文土器)와 그 이후의
단계들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이러한 구분에 의하여 각 단계별 유문토기(유문토기)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 이전단계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가 출토되기 이전 단계의 다양한 층위를 나타내는 유적은 연대도패
총(煙臺島貝塚)과 돌산송도(突山松島), 그리고 범방패총(凡方貝塚)을 들 수 있다. 상노대도
(上老大島)와 욕지도(欲知島)유적의 경우는 그 하부에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를 중심으로
하는 단일층과 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 호선문토기(弧線文土器), 침선문토기(沈線文土器)들
이 일부 나타나고 있어 뚜렷한 성격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이
전 단계 유문토기(有文土器)의 층서적 변화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돌산송도(突山松島)유
적과 연대도(煙臺島), 범방(凡方)유적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 이전 단계의 유물들은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와 침선문토기(沈線文
土器), 그리고 무문양토기(무문양토기), 조흔문토기(條痕文土器), 원공문토기(원공문토기), 자
돌문토기(刺突文土器)들이 있다.
이들은 패각층의 하부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데 이중 돌산송도(突山松島)유적의 경우, 최하
층에서는 융기문토기와 무문양토기, 조흔문토기들이 확인되고 침선문토기는 융기문토기에
시문된 격자침선문(格子沈線文)이 있다. 침선문양(沈線文樣) 단독의 토기는 파편중에 있으
나, 이 문양의 구성요소도 격자문으로 융기문토기에 시문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연대도패총(煙臺島貝塚)은 앞에서도 이미 유적에서 검토했던 바와 융기문토기 중심유적이
며, 범방패총(凡方貝塚)의 경우는 무문양토기, 지두문토기(指頭文土器), 조흔문토기들의 층위
적 변천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물론 융기문토기도 많이 출토되었지만 이
미 검토하였던 바와 같이 층위적인 관련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이 유적에서 서로 복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우선 종류별로 구분하고 이를
통하여 각각의 편년적(編年的)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가)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
융기문토기(隆器文土器)는 우리 나라 신석기토기 중에서 가장 다양한 문양종류와 특징을 가
지고 있다. 시문기법(施文技法)에 의하여 구분하면, 융기대문토기(隆起帶文土器)와 융기선문
토기(隆起線文土器), 그리고 융기점렬문토기(隆起點烈文土器) 등으로 구분되며, 대부분 저부
(底部)가 아주 좁은 평저발형(平底鉢形)을 하고 있다.
융기대문토기(隆起帶文土器)에는 융기대(隆起臺)에 대부분 각목문(刻目文), 혹은 자돌문(刺
突文)이 시문되고 있는데 이중에는 별도의 격자침선문이(格子沈線文)이 시문되는 경우가 있
으며, 융기선문토기(隆起線文土器)의 경우, 상단부의 평행선문(平行線文)에만 각목이나 자돌
문이 부가되고 융기선(隆起線)에 침선이 같이 시문되는 경우가 많다.
이 토기는 패총유적(패총유적)의 최하층에서부터 출토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 신석기
문화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일찍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되어왔다.
과거에는 이 토기가 남해안지역의 특징적 문화요소로 보고 중서부지방의 암사동유적을 중심
으로 하는 첨저토기(尖底土器)시기에 병행하는 지역색 짙은 토기 양식으로 보았으며, 이 토
기의 평저기형(平底器形)은 흑룡강지역(黑龍江地域)으로부터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평저토
기(平底土器)의 일파(一派)로 보고, 서해안의 첨저를 특징으로 하는 침선문 요소가 이 문화
에 영향을 주어서 나타난 것이 수가리式토기로 보았다. 때문에 시기적으로는 서해안 침선문
토기 단계와 거의 같이 보았고, 이 년대와 비슷한 절대년대를 가지고 있으면서 시문기법상
비슷한 융기대(隆起帶)를 가진, 일본 구주지방(九州地方)의 승문문화(繩文文化)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굉(轟)B식토기와 관련하여 연구되어 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융기대문토기와 융기선문토기는 같이 나타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문양구성에 있어서는 양자간에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시기적인 차이가 존재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편년적 연구방법은 이 토기의 문양시문부위(文樣施文部位)와 기
법(技法)에 의한 것이며, 이를 통한 형식학적(形式學的)분류에 의하여 편년이 이루어지고 있
었다. 이 중에는 굉식토기(轟式土器)와의 관련성을 제기하기 위하여 이 토기에 주로 시문되
어 있는 평행융기선문을 가장 이른 시기로 보고, 점차 기하학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편
년안(編年案)을 작성하여 일본 승문문화(繩文文化)로부터 융기문토기가 발생한 것으로 본다
든지, 혹은 흑룡강 연안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 융기대문(隆起帶文)을 원류로 보고 융기대
문에서 융기대-융기선문, 그리고 융기선문(隆起線文)으로, 융기문+침선문이 복합되는 단계로
변천하는 편년안도 있다.
또 하나의 편년안으로서는 토기의 기형에 따라 심발형(深鉢形)과 완형(椀形), 호형(壺形)으
로 분류하고 점토대(粘土帶)의 단면형태(斷面形態), 두께, 융기대에 나타나는 각목의 형태를
기준으로 융기선의 형상과 문양형태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문양형태의 변천과 기형간의 편
녀적인 병행관계를 추정하였으며, 단면삼각형(斷面三角形)의 점토대에서 단면 타원형(楕圓
形) 점토대, 세융기선문(細隆起線文)이라는 새로운 요소의 등장과 융기대 각목(刻目)의 현저
(顯著)한 발달, 수평구획선(水平區劃線) 아래의 기하학문의 침선화(沈線化)라는 변천을 추정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던 연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주된 관점은 대체로 문양의 구성과 시문기법
에 의하여 형식학적 편년안들이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융기문토기는 뚜렷한 층위적
특징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분류자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편년적 관점이 변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융기문토기 중심유적인 연대도유적에서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이나 압
인문토기(押引文土器)가 최하층에서 나타나지 않고 순차적인 층서관계를 보여주는 R pit, S
pit, T pit, U pit에서 나타나고 있는 층위적 양상을 살펴보면, 층서간에 공통적인 현상이 나
타나고 있다.
첫째, 융기문의 기형에 있어서 상층부에서는 원저완형토기(圓底椀形土器)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융기문토기는 저부(底部)가 좁은 평저(平底)
를 특징으로 하고, 압인문토기 단계의 기형이 완형(椀形)이 중심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와
같은 기형은 시기적으로 늦은 양식임이 분명하다.
둘째, 상층부에는 완형토기(椀形土器)와 더불어 구순부에 각목문(刻目文)이 시문되고 있는
데, 이 각목문은 일반적으로 영선동식(瀛仙洞式) 압인문토기 단계에 많이 시문되는 양식이
다. 따라서 이러한 특징을 지닌 융기문토기는 시기적으로 늦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셋째, 평행융기대문(平行隆起帶文)이 상부, 혹은 하부에 격자문(格子文)이나 호선상(弧線狀)
의 침선문양(沈線文樣), 거치상문(鋸齒狀文)- 연속N자문양(連續N字文樣)과 같은 침선문양과
복합된 것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요소는 시기적으로 하층식보다는 늦은 양식
임을 알 수 있다.
넷째, 하층에서 나타나고 있는 융기문토기는 구연부하(口緣部下)에 평행으로 문양대의 구획
을 정하고 이 사이에 융기문양을 시문하고 있으며, 어떤 것들은 침선문이 복합되어 있는 것
들도 있다. 그러나 상층부의 경우 융기문양이 구선부 끝에서부터 위에서 아래로 평행으로
긋는 평행종선융기문(平行縱線隆起文)이나 거치상문(鋸齒狀文)-연속N자문(連續N字文)이 나
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하여 기형을 알 수 있는 융기문토기를 중심으로 圖2와 같은 편년안을
작성하였다. 문양의 시문부위와 저부(底部)의 형태변화를 중심으로 한 것인데, 第1단계의 특
징은 대체로 문양의 시문구획이 동체부(胴體部) 중앙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 사이에 융기격
자문(隆起格子文)을 시문한 돌산송도(突山松島)의 경우도 있다.
第2단계의 특징은 저부(底部)의 형태가 아주 좁아지고 문양대(文樣帶)의 구획도 아랫 부분
에서는 거의 사라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침선문양이 복합되는 것들도 나타난다.
第3단계의 특징은 문양이 구선부 끝에서부터 시문되는 것으로 주로 평행종선융기문(平行縱
線隆起文)이 많으며, 격자침선문양(格子沈線文樣)이 구연부 끝에서부터 시문되는 경우도 이
에 해당한다. 저부의 형태는 대체로 들림바닥을 하고 있는데 극히 원저(圓底)에 가깝다.
第4단계는 저부의 형태가 원저로 변하고 문양은 구연부 끝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데 구순
부(口脣部)에는 각목문(刻目文)이 시문되는 경우가 많다.
(나)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와 지두문(指頭文), 원공문토기(圓孔文土器)
이 토기는 지금까지 우리 나라 신석기 문화 연구자들에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토기
양식인데 일본에 있어서도 승문초창기(繩文草創期)에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와 더불어 많
이 나타나고 있다.
돌산송도(突山松島) 최하층(最下層)에서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와 더불어 평저 무문토기
(平底 無文土器).가 출토된바 있고, 상노대도 상리패총(上里貝塚)의 경우에는 第3층 단계에
서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와 더불어 구순각목문(口脣刻木文)을 시문한 채 출토되고 있으며,
욕지도 패총의 H Trench 최하층( 最下層)에서도 침선문토기(沈線文土器)와 더불어 출토되
었다. 제주도 고산리(高山里)유적에서는 평저(平底)에 짚과 같은 것이 섞여 있었던 흔적을
보이며 나타나고 있는데 평저토기(平底土器) 단계(段階)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토기의 일양식(一樣式)으로 판단된다. 제주도 고산리유적의 경우에는 상층부에서 일본 남구
주(南九州) 귀계(鬼界)칼데라에서 6300 B.P 에 폭발한 아카호야 화산회층(火山灰層)이 확인
되어, 이 토기는 그 이전 시기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세석인(細石刃)과
더불어, 아주 다양한 석기들이 나타나고 있다. 석기의 양식으로 보아 일본 초창기 승문토기
(繩文土器)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와 거의 동일하다.
이러한 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들이 층서적(層序的)으로 나타나고 있는 유적으로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범방패총(凡方貝塚)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층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특징들을
요약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층위(層位)는 모두 13개의 층으로 구분되는데 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들은 대체로 원저형
(圓底形)을 하고 있으며 침선문토기(沈線文土器)들과 같이 공반되고 있다. 第11층에서부터
구순각목문토기(口脣刻木文土器)가 나타나고 있는데, 상층부로 갈수록 구순각목문토기(口脣
刻目文土器)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第8層 단계에서 지두문토기(指頭文土器)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동삼동유적에서 융기문토기
(隆起文土器)의 해당하는 목도기(牧島期)의 중심적 유물로 보고된 바 있는데, 범방(凡方)유
적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보아 지두문토기(指頭文土器) 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에서
발전된 하나의 양식임을 알 수 있다. 무문양토기 중에는 어깨가 벌어져 절굴(折屈)된 토기가
있는데, 융기문토기 第 3 단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토기의 기형(器形)과 동일하기 때문에, 이
두 토기 양식간에는 상호 공존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第6층에서는 자돌문(刺突文)과 압인문(押引文), 그리고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가
나타나고 있어 이 단계에 심한 교란현상(攪亂現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第6층과
第5층에서는 압인문(押引文)과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와는 관계없이 무문양토기(無
文樣土器)들의 자체적인 변화과정을 보이며 나타나고 있다. 이 단계에 다양한 양식의 구순
각목문토기(口脣刻目文]土器)가 나타나고 있는데 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와 더불어 지두문토
기(指頭文土器),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에서도 구순각목문토기(口脣刻木文土器)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아 연속적인 관련성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구순부(口脣部)의 변화를 보이는 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들은 전부 B pit 에서만 나타
나고 있어 층위적 판단의 오류 가능성도 있다.
이 토기에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圖3에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구순각목문(口脣刻木
文)의 변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나 단사집선문토기(短
斜集線文土器)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다양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圖4에 나타나고 있는 것
은 범방유적 第5층에서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무문양토기의 구연부(口緣部)와 형식과
동일한 것들을 모은 것이다. 여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종류들은 융기문토기, 자돌문토기(刺突
文土器), 그리고 지두문토기(指頭文土器), 압인문토기들이 있다. 이들 간에는 무문양토기를
중심으로 서로 어느 정도의 시간적인 공유관계가 성립된다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자돌문토기(刺突文土器)
자돌문토기들은 범방유적에서는 第6층 이후 단계부터 압인문토기,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
線文土器)들과 나타나고 있으며 연대도 유적의 경우에는 최하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
서 이러한 문양시문기법은 한 시기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시기폭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圖5에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문양의 특징상 융기문 최후기 단계의 토기 형
식과 관련이 많은데 문양의 시문부위는 구연부(口緣部) 끝에서 시문되는 전통과 후기 단계
의 평행융기대문과 유사 융기문토기의 영향을 받아 융기문의 돌대(突帶)가 퇴화하면서 점차
자돌문(刺突文)만 남게 되어 자돌문 단독 문양이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第1단계는 구순부(口脣部) 가까이로 자돌문이 시문되고 있으며 구순각목문(口脣刻目文)과
융기문에서 퇴화하여 유사(類似) 융기문으로 기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第2단계는 구연부 가까이로 평행자돌문이 시문되고 거치문(鋸齒文)의 경우에는 완전히
자돌문으로 변화한다.
第3단계는 구순부 가까이로 시문되는 자돌문양(刺突文樣)이 사라지고 평행융기문과 거치문
(連續N字文)이 계속되고 있다. 자돌문의 기법도 연속압인(連續押引) 형식에서 점차 간격을
두게 된다.
第4단계는 압인문토기와 결합하는 단계로 자돌문의 기법이 회전상의 압인문토기와 같이 복
잡해지고 연속적인 문양으로 바뀌며, 압인문토기의 영향을 받아 구순부의 형태도 동일해지
고 있다.
(라)침선문토기(沈線文土器)
침선문토기들은 범방패총(凡方貝塚)의 최하층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데 문양의 종류들은
아주 단순한 편이다. 대체로 융기문토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양들인데, 그 중 격자문양이
가장 많고 거치상문(連續N字文樣)과 삼각집선문양(三角集線文樣)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
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양의 종류들은 圖6에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격자문과 삼각집선문
(三角集線文), 거치상문(連續N字文)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구순부(口脣部)의 형태에 의하
여 동일형식(同一型式)들을 종류별로 모은 것이다. 이 구순부(口脣部) 형태(形態)에서 상층
부(上層部)로 갈수록 끝이 뾰족해지는 형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범방유적(凡方遺蹟)
의 검토에서 이미 살펴보았는데, 융기문토기에 있어서 동일형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들은 시
문부위(施文部位)가 구연부(口緣部) 끝에서 시문되는 토기양식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평행
융기선문(平行隆起線文)이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형식들은 침선문(沈線文)으로 변화
과정을 보이고 있다. 즉 융기문토기 후기에는 침선문으로 문양 시문기법이 전이(轉移)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특히 융기문 3期 이전 단계에는 침선문토기 단독문형식(單獨文樣形式)이
같이 공반되지 않음을 감안할 때 이 단계에서 전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단계
압인문토기단계에서 태선침선문토기(太線沈線文土器)단계의 층위적 상관관계를 알 수 있는
것은 상노대도(上老大島)유적과 욕지도(欲知島)유적 H Trench가 있으며, 연대도(煙臺島)유
적과 돌산송도(突山松島)유적, 범방(凡方)유적, 욕지도(欲知島)유적 pit 부분에서는 압인문토
기와 동일층에서 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나타나고 있는 유적들은 대체로 해발(海拔)
5m이하의 지점에 해당하는 저지대(低地帶)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두 종류의 유물에서 교란
현상(攪亂現狀)이 특히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문화기(文化期) 단계
직후에 해수면 상승시기와 관계 있을 가능성이 많다.
상노대도(上老大島)유적의 경우에는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가 나타났던 第Ⅴ층의
탄소연대(炭素年代)가 6,430±180 B.P.로 나타나 남해안지역에서는 가장 이른 절대연대를 나
타내고 있지만 전체적인 유물이 제시되지 않아 각 형식간의 편년관계를 알기 힘든 상황이
다.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던 第2지구와 第3지구의 경우에 있어서는 지대(地帶)가 낮
은 第2지구의 第3층에서 패각층(貝殼層)이 확인되었으며, 第3지구에서는 패각층(貝殼層)이
확인되지 않았다. 第2지구에서는 第Ⅵ층인 융기문토기의 상층에서 비교적 시문구(施文具)가
좁은 압인어골문토기(押引魚骨文土器)들이 출토되었으며 그 상층부로는 변화관계가 나타나
지 않는다. 第3지구의 경우 융기문토기 단일층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최하층인 第Ⅳ층에서
연속호선문토기(連續弧線文土器)와 함께 자돌문(刺突文) 계통의 압인문토기와 나타나고 있
고, 그 상부에는 아주 굵은 시문구(施文具)로 눌린 압인어골문토기와 연속X자상(蓮續X字狀)
의 압인문토기가 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 역시도 상층부로 자체적인 변화과정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두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압인문토기의 형식별 편년관계는 최하층인 H Trench 第Ⅲ
층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 윗 층에 해당하는 조가비層에서는 아주 단순한 압인어골문에
아래 위, 또는 아래와 위에 자돌문(刺突文)을 시문한 형식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
는 그 윗 층인 第Ⅱ층에서도 동일하기 때문에 압인문토기의 각 형식간의 층위에 의한 선후
관계 규명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연대도(煙臺島)유적 출토 유문(有文)토기를 중심으로
圖7과 같은 편년단계를 설정하였다. 대체로 자돌문토기의 발전단계와 동일한 면이 많다.
압인문이 시문된 토기의 형식에는 유사(類似)융기문토기의 하부에 압인문이 시문 된 것이
나타나고 있다. 자돌문토기보다는 조금 늦게 발전한 양식으로 보이는데 이것도 모두 4단계
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第1단계는 유사(類似)융기문토기 계통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들과 평행자돌문(平行刺突文)
이 연속문(連續文)으로 문양이 복잡해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第2단계는 상, 하, 또는 상하단에 자돌문을 시문하고 그 사이나 아래 위로 압인문을 복합시
문(複合施文)하는 것이다. 第3단계는 자돌문의 문양요소가 사라지는 단계와 욕지도유적에서
층서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第4단계는 압인문양이 퇴화하여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과 비슷하게 변하거나 복합되고 있
다. 그리고 압인문양의 요소가 아주 굵어져 어골문의 형태로 변화한다.
(3)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 이후 단계
먼저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와 공반되는 태선침선문토기(太線沈線文土器) 이후
단계를 살펴보면, 기준이 되고 있는 수가리(水佳里)유적과 범방(凡方)유적, 그리고 욕지도(欲
知島)유적이 비교적 세분된 층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수가리유적을 제외하
면 대부분이 교란현상을 입어 수가리1式토기가 상부층까지 중심을 이루고 나타나거나 압인
문토기와 뒤섞여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역시 층위적 관계를 뚜렷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수가리유적을 대표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단계별 유문토기의 특징을 정리하면 표1에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
다.
여기에서 第1문화층과 第2문화층간에서 보이는 문양시문부위가 축소되는 현상은 서해안 침
선문토기에서와 동일한 변화를 보인다 할 수 있다. 그런데 第3문화층 단계에는 돌연 이중구
연토기(二重口緣土器)라는 아주 특징적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이 단계에는 외부적인 새로운 문화의 유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남해안에 있어 과
도기적 단계의 특성을 보이는 유적으로 사천 구평리(泗川 舊坪里)유적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유적의 경우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 직전단계의 토기로
볼 수 있는 것은 남부 내륙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봉계리식(鳳溪里式)토기 라고 명명되
어진 특징적 토기양식이다.
이 토기는 협천(陜川) 봉계리 신석기 유적의 조사과정에서 지금까지 해안지방의 유적에서
볼 수 없었던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주로 수가리 第2문화층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사격자문(斜格子文)이나 능형집선문(菱形集線文), 그리고 삼각집선문토
기(三角集線文土器)들과 함께 압인 자돌문(押引 刺突文),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들
이 나타나고 있다. 문양의 시문부위는 전체가 동체상부(胴體上部)에만 국한하여 시문되고 있
으며, 수가리유적의 경우와 같은 파수부토기(把手部土器)를 공반하고 있다. 이 토기의 특징
은 구연부(口緣部) 끝에서 2∼3㎝ 가량 띄우고 문양을 시문하고 있으며 태토(胎土)는 사질
(砂質)이고 구연부(口緣部)의 형태가 외반하고 있다.
일반적인 남해안패총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가 사질태토(砂質胎
土)의 단사선문(短斜線文)이나 장사선문(長斜線文)의 단순한 문양구성을 보이는데 비하여 봉
계리式토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양구성은 아주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 이 토기가 출토되었
던 第9號 주거지에서 검출된 탄화 도토리의 탄소연대가 4,060±150 B.P.로, 이중구연토기(二
重口緣土器)유적 중 가장 이른 절대연대를 나타내고 있어 남해안 패총유적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탄소연대보다 빠르며, 圖8에서 나타내고 있는 바와 같이 구연부(口緣部) 끝에
서 문양이 시문되는 사이 부분이 점차 말리는 변화과정을 나타내고 있는 봉계리式토기단계
에서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가 자체 발생하였을 것이다.
나. 절대년대의 검토
지금까지 각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의 층위적인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상대적인 선후관
계를 살펴보았다.
남해안 신석기시대 유문토기(有文土器)에 있어서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를 중심
으로 토기의 형식이 크게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지만 지금까지
남해안지방의 전면시문 침선문토기의 절대년대로 간주되었던 수가리유적 第Ⅴ層의 4,500
B.P.는 부분시문을 특징으로 하는 第2式토기단계의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남해안 유적에
있어서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을 특징으로 하고 하부에 어골문(魚骨文)이 붙는 전
면시문토기(全面施文土器)의 명확한 절대년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동일한 기형(器形)
의 것으로 서해안식의 전면시문침선문토기(全面施文沈線文)에서 나타나고 있는 최고(最古)
의 절대년대는 6,230±110 B.P.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연대는 최근의 서해안 일산 신도시
조성에 의한 발굴조사에서도 주엽리의 대화리層과 가와지 토탄층(土炭層)에서 첨저(尖底)의
전면시문토기(全面施文土器)가 출토되었는데, 이 중 대화리層의 탄소연대는 6,210±60 B.P.
로 나타났다. 암사동유적에서 나타났던 전면시문(全面施文)단계의 연대와 거의 일치하고 있
는데 이 토기가 나타난 층위는 보정년대(補正年代)에 의하면 기원전 6,000년기 말기에 해당
하므로 서해안 중서부지역 신석기시대 시기설정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따라서 남해안 대부분의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는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을 특징으로 하는
전면시문토기(全面施文土器)의 절대년대도 이러한 연대치(年代値)에 해당할 가능성이 커졌
다고 할 수 있다.
이 연대와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이 토기의 기원문제에 대하여 우선 검토해 보
고자 한다.
남해안지역에서 이 토기가 나타날 때의 상황은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단계에 돌연히 침저
의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의 전면이문토기(全面施文土器)기 등장하게 되는데, 남해안지역에
서 이러한 토기의 원류로 생각할만한 자체적인 요인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圖9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범방패총(凡方貝塚) H Trench에서 층서적(層序的)으로 나타나
고 있는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이다. 하층에서 나타나고 있는 단사집선문토기(短斜
集線文土器)는 수가리1식단계(水佳里1式段階)의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과는 차이가 있다.
우선 구연부(口緣部)가 뾰족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단사집선문양(短斜集線文樣)도 옆으로
누워있지 않고 바로 서있다.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의 하부에 있는 어골문(魚骨文)도 태선
침선문(太線沈線文)이 아니라 압인문계통(押引文系統)이다. 이러한 양식은 단사집선문토기의
초기양식에 해당한다 할 수 있는데, 이 양식의 원류는 圖10에 나타나고 있는 오산리토기(鰲
山里土器)에서 구할 수 있다.
오산리식토기(鰲山里式土器)는 특히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의 시문구(施文具)가 골각기(骨
角器)와 같은 것이 아니라, 다치구(多齒具)로 이루어져 있고, 문양의 시문방법도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비스듬히 시문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곧 바로 세워져 있다. 특히
문양의 구성에 있어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만 시문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가운데 격자문
(格子門)과 같은 것이 새겨져 구획을 이루고 있다. 남해안의 다대포유적(多大浦遺蹟)과 동삼
동유적(東三洞遺蹟)에서 출토된 의 경우를 보면 가운데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이나 격자문
으로 구획을 정하고 있어 동일기법을 보이고 있다.
또 하나 특기할만한 사실은 파수부호(把手部壺)에 관한 것이다. 파수부(把手部)는 오산리식
토기 단계에 해당하는 형토기( 形土器)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현재까지 이 시기
이전단계에 남해안에서는 파수부토기(把手部土器)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돌연 단사집선문(短
斜集線文)가 등장하면서 파수부호(把手部壺)도 같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호형토기(壺形土
器)는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 단계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 단
계에 가장 성행하는데 이들 토기에 파수부(把手部)는 현재까지 발견된 바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제반(諸般) 사항을 살펴보면 오산리 하층식토기의 영향에 의하여 파수부토
기(把手部土器)와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가 전래된 것이 현대의 자료로 살펴볼 때
그러한 추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절대연대에 있어서도 7,210~5,740 B.P.의 연대가 측정
되어 우리나라 신석기유적에서 가장 오랜 절대연대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서해안 첨저토기(尖底土器)의 기원문제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납득할만한 뚜렷한
견해가 없었음을 감안하면 남해안의 침선문토기(沈線文土器) 문화에서 형식적으로나 층위적
으로 뚜렷이 초기적 양상을 보이는 유물들이 나타나고 있음으로 보아 서해안으로 전파되었
을 가능성이 가장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서해안지역으로는 바로 인근의 청천강(淸川
江)을 경계로 하여 평저토기(平底土器) 중심지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해안지역은 융
기문토기 이래로 원저(圓底) 또는 첨저토기(尖底土器)가 중심을 이루어 왔다. 동해안과 서해
안을 두고보면 남해안지역이 지역적으로도 이러한 토기문화의 가장 중심부분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증거로는 승문압인문양식(繩文押印文樣式)을 보이는 자돌문토기(刺突文土器)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圖11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조도패총출토(朝島貝塚出土) 승문압토기
(繩文押土器)인데 이러한 토기의 기형(器形)은 圖12에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주로 평저
(平底)를 하고 있다.
이 토기들은 대체로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와 구연부(口緣部)의 형태가 공반되어 출토되
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圖13에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휴암리유적(休岩里遺蹟)에 있어
서도 영선동식(瀛仙洞式) 압인어골문토기(押引魚骨文土器)와 같이 출토되고 있다.
이 토기는 남해안에서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 양식보다 선행하는 것임이 명백하
다. 그리고 자돌문토기(刺突文土器)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양구성에는 원권문(圓卷文)이 나타
나고 있는 것이 특색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양식이 서해안의 지탑리유적(智塔里遺蹟)에
서도 나타나고 있고 저부(底部)의 형태에 있어서도 남해안과 동일하게 압인문토기(押引文土
器)와 같은 원저형(圓底形)이거나 평저형(平底形)을 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남해안의 경
우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에 선행하는 요소임이 명확하기 때문에 圖14에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은 변천과정도(變遷過程圖)를 제시하였다. 따라서 서해안식의 첨저토기(尖底土
器)는 남해안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원류에 있어서는 단순히 일방적인
유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남해안에서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남해안 전면시문
(全面施文) 침선문토기(沈線文土器)는 서해안과 거의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남해안 유적의 연대적 접근은 오산리식토기의 성립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
는데, 이 유적의 최상층 단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양요소 중에는 남해안과 밀접한 관련성
을 나타내고 있다. 第1유형의 연대는 오산리유적의 이 단계층위에서 나타났던 7,000년 전의
연대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남해안에서는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가 완전히 소멸되고 침선문토기(沈線文土器)
와 자돌문토기(刺突文土器)가 중심을 이루던 그 어느 시기의 연대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절대연대가 명확한 유적과의 비교를 통하여 남해안유적의 대체적인 연대비교가 가능
하며, 이러한 기초를 토대로 남해안에서 나타났던 절대연대도 새롭게 볼 필요성이 있을 것
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남해안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탄소연대는 연세대학교에서 조사하
였던 상노대도 제5층(上老大島 第5層)에서 나타난 6,430±180 B.P.인데 이 층위에서는 단사
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가 출토되고 있다. 그리고 연대도 제3층(煙臺島 第3層)의 패총에
서 확인된 6,010±160 B.P.의 절대연대도 해수면 상승시기의 연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남해안유적에서 광역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단사집선문토기(短斜集線文土器) 단계
의 심한 교란현상과 남해안과 서해안지역과의 관련성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우리 나라의
신석기시대 유문토기(有文土器)의 연대는 보다 상향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대편년과 절대편년을 참고로 하여 표2과 같은 편년표를 작성하였다.
Ⅲ.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