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1절~25절 말씀
1. 반전(反轉)과 비약(飛躍)을 이루시는 성령 (8:1,2)
(우리는 이미) 로마서 7장에서 율법의 엄중함을 알고 있지만 율법과 죄에서 결코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 사람을 목격했습니다.
로마서 7장에 나오는 사람은 ‘죄의 결과’ (롬 6:23, 롬 1:15) 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제까지 살던 방식대로 계속 살게 되면 하나님께 심판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여전히 죄욕(罪慾)이 시키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과 같이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로마서 7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죄에 팔린 인간’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죄에서 벗어나 보려 해도 ‘바램’대로 되지 않더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 아래 팔려서 죄의 종 된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8장에서 갑자기 전세(戰勢)가 완전히 역전됩니다. 이 세상의 가장 놀라운 반전(反轉)과 비약(飛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로마서 8장 1절과 2절 말씀은 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최종 해방 선언문과도 같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죄와 사망의 법’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우리 모두에게 제기되어야만 합니다.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람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이 부분에 관련해서는 KJV 성경에서 아주 잘 설명되어져 있으므로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For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in Christ Jesus hath made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 곧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본문 말씀에서 가리키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란 곧 성령을 모시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참 기독교는 ‘비약(飛躍)의 종교’입니다.
비약한다는 말은 ‘나는 듯이 뛰어 오른다’라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기독교의 신앙은 ‘한순간에 날아오르는 영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31)
언뜻 보면 로마서 7장과 8장 사이에는 일종의 논리적인 단절(gap)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7장은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를 묘사합니다. 7장만 보자면 그 누구도 이러한 절망적인 상태를 해결해 줄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8장에 이르러서 갑자기 놀라운 반전과 비약이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에 대한 전격적인 ‘해방선언문’이 선포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7장과 8장 사이에 있는 단절(gap)을 이어줄만한 논리적인 중간 지대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이 ‘믿는 자에게 단번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 1:3)
하나님은 우리가 비약 (Jumping up)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힘으로 비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원죄라는 쇠사슬에 단단히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로마서 4장과 5장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믿음으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의 저주로부터 속량해 주시고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성령을 부어주시면 누구든지 갑자기 비약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한순간에 빛이 비추어지면 영안이 단번에 열려져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고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 그러므로 로마서는 논리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에는 4장과 5장, 그리고 그 다음에 곧 바로 8장이 와야 아주 자연스럽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5장과 8장 사이에 6장과 7장이 삽입되어 부연 설명을 하고 있는 형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왜 5장과 8장 사이에 6, 7장의 부연 설명이 꼭 필요했겠습니까? 그것은 앞 서 가르친 이신칭의의 은혜를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6장과 7장을 기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6장을 기록한 목적은 이신칭의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죄에 빠질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믿음에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가(眞假)를 가르는 한 가지 확실한 바로미터가 바로 그 사람이 가지는 ‘죄에 대한 관점과 태도’라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죄에 대하여 죽습니다. 그러나 가짜 믿음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놓고서 죄를 버리지 아니합니다.
7장은 율법 아래 있는 자의 한계와 탄식을 제시함으로서 유일한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나서 위대한 8장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 위대한 비약(飛躍)의 논리로서 말입니다.
1-1. 당신은 본문 말씀 (롬 8:1,2) 의 위력을 얼마나 느끼고 있습니까?
1-2. ‘생명의 성령의 법’이 당신 마음과 영혼에 새겨졌습니까?
☞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11:19,20)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겔 36:24~28)
1-3. 당신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기쁨이 있습니까? 그 기쁨이 항상 떠나지 않고 있습니까?
2.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후사다. (8:3~11)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4)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5~8)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9,10)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
2-1. 로마서 8장 4절에 나오는 ‘율법의 요구’ 는 무엇입니까?
☞ 의인은 영생에, 죄인은 영벌에 처해야 한다.
2-2. 이 ‘율법의 요구’를 누가 어떻게 충족시켜 주셨습니까?
☞ 성육신하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2-3.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를 위하여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셨습니까?
☞ 로마서 8장 3,4절 말씀을 유심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효과는 오직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만 있을 뿐입니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육신을 좇아서 계속 살아가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대속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2-4. ‘육신을 좇는 자’의 특징을 말해 보십시오.
‘육신의 생각’이란 어떤 종류의 생각을 가리킵니까?
그리고 육신의 생각을 좇아 살게 된 최종 대가(代價)는 무엇입니까?
☞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생각’만 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육신의 생각’이란 하나님 말씀에 위배된 모든 탐욕과 정욕들을 가리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세속의 모든 정신과 유행을 좇아갑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깃들어있지 않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요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 결과 영원한 형벌, 즉 죄인들을 위한 둘째 사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5. ‘영을 좇는 자’의 특징을 말해 보십시오.
‘영의 생각’이란 어떤 종류의 생각을 가리킵니까?
그리고 영의 생각을 좇아 살게 되는 최종 대가는 무엇입니까?
☞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영의 일에 대한 생각이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모든 착한 생각들을 가리킵니다.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모든 착한 생각들, 하나님과 깊이 연합되려는 동기로 우러나오는 모든 착한 생각들, 결국 이타적인 동기로 생각하는 모든 착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 14:17)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 5:8~11)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그리고 결국, 영의 생각을 좇아 사는 자가 받게 될 대가는 영생과 평화입니다.
2-6. 당신은 평소에 ‘영의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십니까? 요즈음 주로 하는 영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혹 당신이 버려야 할 ‘육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2-7. ‘그리스도인’ 혹은 ‘크리스챤’이라는 호칭은 본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로마서 8장 9절, 10절 말씀에 의하면 누가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칭함 받을 수 있겠습니까?
☞ 주의 제자들이 일반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 받기 시작한 때가 사도행전에 나와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최초의 이방인 교회였던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를 지도자로 파송하였습니다. 이때에 갓 회심하여 다소에 머물러있던 바울이 바나바의 동역자로 안디옥 교회에 합류하였는데 이렇게 바나바와 바울이 1년간 안디옥 교회에 머물러 있으면서 제자들을 길러내었을 때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행 11:22~26) 안디옥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행 13:1~3)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2~26)
☞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를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라는 말씀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롬 8:10)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6)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완전히 새롭게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걸맞은 마음 상태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는 아직 천국에 들어가기에 알맞은 상태로 완전히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몸은 죄를 인하여 죽은 것이나...’라고 했을 때 이 말씀이 의미하는 정확한 뜻은 ‘거듭난 성도라 할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한 번은 죽을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라는 의미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우리의 육체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늙고 퇴화하고 마침내 죽습니다. 그러나 새로워진 우리의 영혼은 날로 후패되어지는 육체와는 다르게 날로 새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6)
2-8. 우리가 끝까지 성령 안에서 살면 마지막 날에 우리의 죽을 몸도 온전히 변화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것을 얼마나 소망하십니까?
3. 자녀의 증거 (8:12~18)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2,13)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4~17)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3-1. 우리 (성도) 가 왜 빚진 자입니까? 무슨 빚을 졌습니까?
☞ 믿는 자에게 주권적인 은혜 찾아오셔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을 완전히 새롭게 해 주시며 장차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2. 빚진 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창세기 2장과 3장 말씀이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두시고서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그러나 하와는 하나님의 단호하신 명령을 굳세게 붙잡지 않았습니다. 대충 붙잡았을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 3:1~3)
하나님의 명령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와처럼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면 안 됩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으면 확실히 그렇게 알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령의 음성을 듣고 충실하게 좇아가 순종하면 쉽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굳게 믿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3-3. ‘육신대로 사는 사람’이란 곧 ‘육신의 생각을 좇아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롬 8:5~8). 당신은 ‘육신의 생각’을 얼마나 단호히 물리치고 있습니까? ‘육신의 생각’이란 한마디로 표현해서 ‘그 속에 하나님이 없는 생각’, 즉 ‘모든 종류의 나쁜 생각, 몰도덕적인 생각’ 을 가리킵니다.
☞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 15:17~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20~23)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2~14)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 6:9~11)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 3:5~10)
☞ 특히 현대의 대중매체는 ‘육신의 생각’을 훨씬 심각하게 부추기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사실을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문제의 심각성은 대중매체에 익숙해진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일례로 K-pop의 가사들을 조사해 보십시오. 그런 노래를 매일 들으면서 ‘나는 괜찮다, 나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단한 착각에 빠진 사람이든지 굉장한 교만에 사로잡힌 사람이든지 아니면 둘 다에 해당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어떤 문화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일종의 물이 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 4:7,8)
But refuse profane and old wives' fables, and exercise thyself rather unto godliness. For bodily exercise profiteth little: but godliness is profitable unto all things, having promise of the life that now is, and of that which is to come. (KJV)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말씀에 유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경건(근본적 성화)은 단번에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거듭남 이후에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경건은 구체적인 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말씀에 계속 주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딤전 4:9~13)
This is a faithful saying and worthy of all acceptation. For therefore we both labour and suffer reproach, because we trust in the living God, who is the Saviour of all men, specially of those that believe. These things command and teach. Let no man despise thy youth; but be thou an example of the believers, in word, in conversation, in charity, in spirit, in faith, in purity. Till I come, give attendance to reading, to exhortation, to doctrine. (KJV)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고하고 치욕을 감당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함이니, 그 분은 모든 사람들 특히 믿는 사람들의 구주이시기 때문이라. 이런 것들을 명령하고 가르치라. 아무도 너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너는 ‘말’과 ‘교제’와 ‘관용’과 ‘영’과 ‘믿음’과 ‘순결’에 있어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 내가 갈 때까지 읽는 것과 권고하는 것과 교리(원리)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KJV 해석)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딤전 4:14~16)
Neglect not the gift that is in thee, which was given thee by prophecy, with the laying on of the hands of the presbytery. Meditate upon these things; give thyself wholly to them; that thy profiting may appear to all. Take heed unto thyself, and unto the doctrine; continue in them: for in doing this thou shalt both save thyself, and them that hear thee. (KJV)
장로회에서 안수함으로써 예언에 따라 너에게 주어진 네 안에 있는 은사를 방치하지 말라(게을리 하지 말아라). 이 일들을 묵상하고 이 일들에 네 자신의 모든 것을 기울여서 너의 (영적 혹은 경건의) 이익이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하라. 네 자신과 가르침 (교리) 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 일들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써 네 자신과 네 말을 듣는 사람들을 구원하리라. (KJV 해석)
☞ 결론적으로 경건이란 무엇입니까? 각자의 언어로 정의를 내려 보시기 바랍니다.
☞ 당신이 깨닫고 결심한 바를 적어보고 발표해 봅시다.
3-4.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 ↔ 육신의 소욕대로 사는 자
양자의 영을 받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자 ↔ 무서워하는 종의 영에 눌린 자
성령의 내적인 증거가 있는 자 ↔ 내적 증거가 없는 자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자 ↔ 세속의 행복만 추구하는 자
☞ 당신 안에는 성령의 내적인 증거가 있습니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1)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양심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호소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절대로 어떤 사람의 양심을 거스르면서 그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하시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죄에 대한 어떤 양심의 가책이 있는데 성령께서 그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증거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를 생각하기에 앞서 양심의 목소리를 세심히 들어야 합니다.
사실 ‘양심의 증거’는 로마서 8장 16절에 나오는 ‘우리 영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는 증인은
2명입니다. 성령께서는 절대로 혼자 증거하시지 않으십니다. 항상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십니다.
2)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지성(知性)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호소하십니다.
성령께서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인(印)을 치실 때에는 그 사람의 지성(知性)을 더욱 강화하고 확실하게 하는 방법
으로 역사하십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보십시오. 초자연적이고 특기할만한 방식으로 찾아오셨지만 제자들
의 의식은 아주 또렷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세례의 체험이 누구보다 강했던 베드로는 그날 가장
지성적이며 설득력 있는 설교를 하여 한꺼번에 3,000명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2:14~36).
자신이 거듭났는지 객관적으로 따져보십시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찾아 조사해보십시오. 성경을 통해서 내가
거듭났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이성을 가지고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3)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영혼 속에 ‘직접’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부분이 성령의 내적 증거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거룩한 구원 제14장을 반드시 꼭 탐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4) 내적 증거의 결과로서 마음 근저(根底-뿌리나 밑바탕이 되는 기초), 즉 정서(情緖)의 문을 활짝 여십니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이 폭발됩니다.
성령께서는 앞의 3가지의 방법으로 누군가가 하나님의 참된 자녀인 것을 증명해내심으로서 그 사람의 마음
근저(根底)에 있는 샘 근원 (源泉) 을 열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폭발하게 하십니다.
사실 이 감격과 기쁨 자체도 성령의 증거로 말미암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참되고 거룩한 정서는 반드시 거룩한 의지와 순종을 유발시킵니다.
☞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영광’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여기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영광’이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천년왕국의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다스릴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주와
함께 빛날 것입니다(마 13:43).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 20:6)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 13:43)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슥 9:16)
☞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의(義)의 고난’ 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선적으로 우리가 의의 고난을 감수할 수 있는 원동력은 성령의 위로와 소망에 있습니다. 이 소망이란 새 하늘과 새 땅
에서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해 같이 빛나는 것입니다. 이 소망과 위로가 믿는 자에게는 가장 확실한 실제이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이 두렵거나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로마서 8장 17절에 나오는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뒤집어서 풀이해보면 성도란 ‘의(義)의 고난을 통해서’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고
적절한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성도에게 고난은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더욱 성결해
지고 겸손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지금 당신이 받을 수 있는 의(義)의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 고난을 통해서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성도로서 받아야 할 ‘애매한 고난’이란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다가 받는 핍박은 아니라
하더라도, 부조리가 많은 세상의 시스템과 조직 속에서 성도로서 선량하고 정직하게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받아야만
하는 억울한 경우(참고 인내해야만 하는 경우)를 말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사도 시대에는 종의 신분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도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
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18~20)
이런 부조리는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최대한 피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 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고전 7:21)
그러나 도저히 피할 수 없거든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서 참고 인내하며 소망 가운데 즐거워해야 합니다.
있는 그곳에서 죄를 범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위와 양심을 지키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과 경건을 더욱 깊고 굳세게 해야 합니다.
4.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소망하는 성도들 (8:19~25)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19~22)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 8:23~25)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땅도 사람의 죄를 인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 3:17)
그 아름답던 땅이 변하여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세상 만물이 인간의 죄 때문에 모두 다 신음하며 괴로워합니다.
온 세상 만물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된 자도 우리 몸의 구속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고난을 어떻게 끝까지 견딜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능력과 위로로 끝까지 인내하여 견뎌냅니다. 부활에 대한 산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소망으로 세상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4-1. 로마서 8장 1절에서 25절까지를 깊이 묵상하고 깨닫게 된 것을 적어봅시다. 서로 발표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