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고함
- 전라노회 성명서 -
교회가 공인 된 이래로 수많은 이단들이 함께 활동해왔다. 현재도 통일교, 신천지, 여호와의 증인, 구원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기독교를 빙자한 이단들이 공격적으로 하나님의 밭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이단 그 자체는 분명히 뿌리뽑아야할 악한 것이로되 또한 복음의 진리를 올바르게 수호하지 못한 소위 기독교 정통들의 행태가 이단 발호의 빌미가 된 것임도 부인할 수 없다.
몸에 병균이 들어오면 병균처리와 함께 몸 자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노력이 함께 가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자칭 정통이라는 주요 기독 교단의 정치적 인사들은 자신들의 몸을 돌아보아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체질을 개혁시키기보다는, 올바르게 복음의 진리를 실천하려는 하나님의 사람들까지 이단으로 몰아 죽이려는 마녀사냥식의 행태를 서슴지 않아왔다. 교리에 대한 맹종과 성장하는 타교회에 대한 견제심이 엉터리 같은 이단판정을 온존해온 것이다.
이단판정의 근거, 교리인가 진리인가?
위키피이아 백과사전은 교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교리(敎理)는 체계화된 종교의 가르침을 뜻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각자 독자적인 교리를 채택하고 있다. 교리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근거와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공한다. 교의, 교조라고도 한다.”
사전적 정의처럼 교리란 ‘믿음의 근거와 가치판단의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가치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교리는 진리 자체가 아니다. 교리는 역사적 산물이다. 가변적인 것이다. 가변적인 것은 불변적인 것을 규정할 수가 없다. 기독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교리가 불변의 진리 자체라면 이미 역사상 여러 공의회를 통해 많은 교리를 갖고 있었던 로마 카톨릭이 개혁될 필요가 있었겠는가? 기독교리는 영원불변한 성경말씀을 진리의 규준으로 한다. 점진적으로 계시되는 진리의 빛 앞에서 ‘우리가 바라보던 진리의 이해는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으로 계속 수정, 보완되어지고 더욱 완성되어져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변적인 교리를 진리 그 자체로 알 때 진리는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있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교권화 될 때는 교리가 그 권력을 유지시키는 창과 방패역할을 해왔다. 진리수호, 성경중심이라 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진리를 희석시키고, 성경은 교리를 유지시키기 위한 참조 정도로 변질되어 버렸던 역사적인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이단 판정 문제에 있어 최고의 근거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다. 교리로부터 성경이 나온 것이 아니며 교리가 성경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경으로부터 교리가 나오고 성경이 교리의 옳고 그름을 검증한다. 그러므로 가장 본질적인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기준은 누가 더욱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문자적으로 많이 해석되어지고 체계화 되어지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성경의 원저자인 성령의 해석을 따르는가이다.
성령님은 영원하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완성되었지만 성령의 사역은 끝나지 않았다. 진리의 흐름이 끊기고 마를 때마다 성령은 성경을 새롭게 열어주셨고 시대를 살리셨다. 그것이 죽은 문자가 아닌 성경만이 가지는 생명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리를 성경보다 우위에 놓고 신봉하는 것은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세기 카톨릭의 거짓된 교리체계 아래서 종교개혁에 불을 당긴 루터나 장로교 교리의 완성자로 불리는 칼빈의 일정부분의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예수님의 스승이기라도 한 것인가? 천부당만부당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존재일 뿐이다. 그 주님이 그들을 한 시대에 일정한 진리의 빛을 내는 등잔불로 사용하신 것이다. 개혁의 여명에 쓰임 받은 것이지 ‘정오의 빛’은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 빨리 쇠락해가는 한국교회에 필요한 처방 - ‘진리회복’
복음이 전래되고 한국교회는 유례없는 단기간의 부흥, 성장을 경험해왔다. 초기에는 성령의 주도로 이루어진 열매가 있었다. 그런 한국교회의 부흥은 90년대부터 이미 멈추었으며 점점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신약성경이나 기독교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교회를 세우고 부흥케 하신 것은 성령이시다. 한국교회가 복음전래후 설립초기에는 성령을 의지하여 부흥의 열매들을 맛보기도 했으나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자명하다. 교파 중심으로 교리화 되고, 교권화 되며 성령께서 행하실 사역의 주도권을 사람의 가르침으로 대체해버린 결과이다. 진정한 부흥의 동력이신 성령의 일하심을 의지하지 않고 ‘말씀 말씀 하며 성경풀이나 성장이론, 성장프로그램들을 의지한 결과인 것이다. 영혼들의 내면적 성숙을 놓친 교회는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지 않고 뻥튀기처럼 부풀어버린 허약체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동의하듯이 한국교회는 교회사적으로도, 하나님의 세계경영의 역사적 측면에서도 마지막 추수를 위한 중요한 훈련소요, 전진기지요, 세계중보기도센터로의 부르심이 있다. 복음전파는 성령의 주도적인 사역이시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몸이 끝까지 이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 단련시켜야 할 기초체력은 ‘진리의 회복’이다.
모를 심기위해 농부들은 새벽여명에 모를 쪄냈다. 여명의 빛으로도 모판에서 모를 쪄내는 일은 가능하다. 하지만 새벽빛만으로 모든 일을 해낼 수는 없다. 추수 때는 더 밝은 빛을 필요로 한다. 중세기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안겨준 빛은 새벽 여명 같은 것이었다. 정오의 빛 같은 더 밝은 빛이 필요한 지금은 추수의 때이다.
에디슨의 필라멘트 전구가 발명 당시엔 획기적이었지만 이 시대엔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듯이, 교회가 중세 종교개혁이 유산으로 남겨 준 정도의 빛으로 마지막 영적전쟁을 치러내기엔 역부족이다. 세상을 붙잡은 사탄, 마귀가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질 않는다. 간사하고도 극렬하게 하나님의 역사의 완성을 방해한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교회로 진리의 빛이 비쳐 들어오거나 퍼져나가는 것을 차단하려한다. 종교성이라는 집에서 저들이 가장 손쉽게 쓰는 방법이 낡은 교리의 커튼을 2중 3중 쳐두는 것이다.
더 밝은 빛은 더욱 강력한 기름부으심을 필요로 한다. 기름부음은 성령으로부터 임한다. 성령과 성경의 진리가 이 기름부음의 원천이다. 한국교회는 교리의 커튼을 걷고 계시적으로 진리의 빛을 받아야 한다.
큰믿음교회와 새로운 흐름
성령께서는 지금 한국교회가 교리주의, 교권주의, 개교회성장주의의 옷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하나님은 큰 그릇, 작은 그릇, 금그릇, 은그릇, 놋그릇, 심지어 깨진 그릇도 다 쓰시지만 더러운 그릇만은 쓰지 않으신다. 그래서 교회가 거룩을 추구하는 것에 사활을 걸어야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한 세기 종교개혁에 불꽃이 되었던 ‘오직 믿음으로’의 교리는 성경적 진의는 덮여진 채 거룩한 삶을 포기하고도 구원에 쉽게 편승할 수 있는 도피처가 되어버렸다. 성령께서 지난 날 우리 교회사에 ‘믿음의 회복’이란 소중한 유산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 한국교회에 한 새로운 흐름을 주셨음을 믿는다. 때 묻지 않은 성경적 진리를 사모하고 거룩을 갈망하며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살기를 소원하는 흐름이다. 발원지점은 물론 성령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오랜 경륜으로 이 물길에 흘려보낼 새로운 물을 공급하기 위한 보로 큰믿음교회와 변승우 목사를 준비해 오셨음을 믿는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한국교회 전체의 자산이며 세계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시대적 안배요 호의라 생각한다.
반역의 시대마다 하나님은 선지자적 외침을 통해 시대의 죄악상을 고발하고 돌이켜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하셨다. 변승우 목사의 메시지는 ‘교리가 아닌 진리’와 ‘겸손히 배우는 열린 마음’으로 ‘성경대로의 설교’를 견지하고 있다. 믿음의 출발을 ‘회개’로 보고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모실 것’과 ‘행함 있는 산믿음’을 촉구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에 합당하도록 성결, 거룩을 강조한다.
그동안 여러 설교나 책, 강연, 또 국제적인 사역자들을 통해 어느 정통교단의 교리보다 성경적이라는 내적, 외적증거를 얻어왔다. 무엇보다 그 메시지가 성경적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무런 성장 프로그램 없이 ‘진리의 선포’만으로 개척 6년만에 등록성도 1만명을 넘기는 양적 성장과, 기존 교회들이 성경공부나 성장 프로그램으로 이뤄내지 못한 심도의 ‘성도들의 삶의 변화’ 라는 질적 성장이다. 이것은 하나는 철저하게 성령을 으ㅟ지한 것이요, 또 하나는 교리나 전통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성경신학적인 내적 뼈대와 외적 증거들을 가지고 신학에 매이지 않는 메시지의 선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지금 한국교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생히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고객 입맛에 마추는 식의 성장을 위한 달콤한 도구들을 쓸 것이 아니라, 성경을 성경대로 전하고 예수님 입맛에 맞추는 것만이 진정한 부흥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성령이 주시는 결정적 힌트일 것이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안다’ 고 했다. 이런 증거를 통해서도 우리는 변승우 목사가 진리의 회복에 있어 일말의 타협 없이 철저하게 성경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올곧은 목회자이며, 또한 큰믿음교회는 어떠한 이단 사설도 침투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가장 성경적이고 건강한 모델교회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이단이 감히 발을 못 붙이는 교회가 어찌 이단일 수 있는가?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이단이라 하는 자들이 더 이단스러운 것 아닌가?
우리 각자는 그동안 소위 한국 내 정통이라고 하는 교단들에서 목회활동을 해왔으며 섬겼던 교단들이 이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성경의 진리가 진리 되는 데 기존 교단들이 교리와 전통이라는 유전의 옷을 너무 두껍게 입고 있음을 느껴왔고, 우리는 그 외투를 벗어버리고 이런 새로운 흐름을 지지하며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흐름이란 ‘가장 성경적인 흐름’을 말한다.
정통? 그리고 마녀사냥식 이단 만들기의 불의함
우리는 그동안 한국교회의 일부 정통교단들이 지금은 정통교회와 목회자로 인정받는 목회자들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이단정죄의 올무를 씌웠었는지를 보아왔다. 그리고 작금에는 큰믿음교회와 변승우목사에게 똑같이 반복된 행태들을 최하고 있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보았다.
성경적으로 살려는 이런 흐름과 동참을 이단시 하고 성경에 정통하지도 않은 이단감별사들로부터 날조된 이단정죄에 동조하거나 방조하는 것은 불의한 일이다. 종국에는 이 불의함을 바로잡으려는 양심적 판단마저 불법적으로 뒤집어엎으려는, 마치 장바닥 깡패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정통장로교단들이 조상님처럼 우러르는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던 루터나 칼빈,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고 따르던 사람들은 다 이단들인가? 종교개혁자들을 이단시하고 죽이려 했던 사단의 하수인들이 정통교단의 조상님들이 아니라면, 위치가 바뀌었다고 똑같은 우를 범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시도다”{시 105:15]
그동안 진행되었던 큰믿음교회와 변승우목사 이단 만들기에서도 어느 교단도 성경적 변증을 통해 그 이단성을 제시하질 못했다. 끝내 2011년도 한기총 이대위에서는 ‘큰믿음교회와 변승우 목사 이단성 없음’ 판정을 내리고도 일부 힘 있다는 교단들이 그 결정을 뒤엎으려는 불의한 시도가 있었으나 관철되지 못했다. 그러고도 자신들이 만든 최고결정기관의 결정에 끝내 불복하여 이단사냥꾼들을 다시 불러들여 다시 큰믿음교회 이단만들기를 시도하려 하고 있다.
지난 시‘절의 배고픔을 잊고 축복의 과실만을 향유하려는 한국교회는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기보다 초점을 잃고 교세확장에 몰두하거나 무슨 단체 같은 거 만들어 종교놀음 하는 데 헛돈과 정력을 소진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급성장하는 교회가 있을 때마다 이단 올가미를 덧씌워 자신들의 체제 안에 순응시키는 정치적인 행동들을 일삼아왔다.
그간 이런 관행을 정면 돌파하지 못하고 돈으로 인맥을 사서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 사례들이 적지 않다. 유독 큰믿음교회가 계속 이단시비에 오르내리는 것은 이런 관행에 추호도 동의하거나 흔들림 없이 정면 돌파해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이단논쟁을 통해 한국교회는 주요 교단들이 견고한 종교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을 뿐 진리의 토대, 영적 분별력에 있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았다.
일례로, 이단 감별의 주역인양 하는 교회들이 신천지 같은 이단의 침투에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이단들이 마음껏 침투하고 유린하는 교회가 정통이겠는가, 이단들이 감히 들어와서 활동할 생각도 못하는 교회가 정통이겠는가? 말씀, 성경공부는 풍성한데 성령의 일하심은 거의 없는 냉랭한 교회가 정통인가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형제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정통인가? 상식만으로도 어떤 교회가 정통인지가 드러나지 않는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바울 사도는 지체가 아파하면 같이 아파했다(고후 11:29). 그런데 한국교회 연합체는 진입장벽 높은 상인들의 길드조직 같은 것인지, 조합원 아닌 형제는 아무리 불의한 참소를 당해도 ‘난 모르쇠’병에 걸려 있는다. 한국교회는 몸으로써의 유기적 결합이 아니라 어떡하든지 일단 내 목회, 우리교단 성공하고 보자는 성공지상주의의 세속적 영들이 치킨게임을 벌이는 시장인가? 몸의 일부분이 이토록 상하는 데도 전혀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교단 간 감투싸움이나 하고 있는 모습이 한국교회의 내적 실력이다. 어쩌면 한국교회엔 상식적이고도 지극히 원리적 지혜라도 제시할만한 어른 한 분도 안 계시는지 비통할 따름이다. 형제교회가 바르지 않은 마음을 가진 사이비 이단전문가들에게 참소당하여 이토록 찢기며 고통당하고, 권위 있는 대표기관은 저들에게 말려서 교단 전체가 휘둘린다면 이 얼마나 세간의 비웃음거리인가?
교회는 하나님의 정부, 공의로 다스려지는 기관
교회와 유관기관은 하나님의 정부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다스리는 신령한 행정조직이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행하는 것이 공의일 것이다. 우리는 한기총이나 한장총, 국민일보를 위시한 여러 기독교 언론매체 등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길’을 두려운 마음으로 의식하길 촉구한다.
그 필요성은 둘 째 치더라도 한기총은 한국교회를 위해 있다. 한기총은 한국교회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세계교회를 위해, 세계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한다. 이렇게 할 때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을 위하신다. 그러므로 차제에 한기총 내부에서 벌어지거나 은밀히 시도되는 일련의 불법적인 행태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의와 공의가 보좌의 기초”인데 초법과 탈법과 불법이 자행되고서야 어떻게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기관이 권위를 가지고 다스릴 수 있겠는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물러가야” 한다. 예수님 말씀이다. 이 예수님이 기억하신다는 게 있다.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계시록 18:5]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 4:17]
죄는 불의한 일을 하는 것이다. 죄는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만이 선이다. 선을 아는 자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0’이 아니다. ‘-’다. 결과적으로 악에 암묵적 동의를 보내는 것이다. 그것은 악에 속한다. 그 악을 지렛대처럼 사용한다면 적극적인 악이다. 한기총은 어디에 속하고 있는가? 입 다물고 자물쇠 채운 한국의 교회와 리더들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요구와 바램
만약 누군가 통일교나 신천지같이 분명한 이단에 속해있던 사람이 이른 바 정통교회로 적을 옮긴다면 ‘바른 판단을 했다’ 하여 반겨 맞아줄 것이다. 우리는 이른 바 한국의 정통교단 출신들이다. 그러므로 이단 사설에 빠져본 적 없던 우리의 판단은, 스스로 지극히 성경적이라는 정통교단들의 기준으로 봐도 더욱 건강하고 바른 판단임이 스스로 증명된다.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교회는 세속적 정치집단이 아니고 진리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여 ‘그리스도의 온전’에 이르게 하는 이 땅에 세우신 최고의 영적 기관이다. 큰믿음교회와 변승우 목사는 이 부르심에 성경적 모범으로 헌신하고 있음을 성령과 우리는 확실히 보증한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누가 11:23]
우리 부흥교단 전라노회에 속한 교회들은 이상과 같은 연유들로 큰믿음교회를 통해 일어난 성령의 시대적 흐름을 지지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회, 함께 모으는 동역자들임을 밝힌다. 앞으로 우리는 불의하게 자행된 이단시비의 결과가 어떻든 시시비비,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국교회의 대표적 연합기관이 하나님과 깨어있는 성도들 앞에서 성령의 최후의 재판정인 ‘양심’을 지키기를 바라며 다음과 같이 우리의 바람과 방향성을 성명(聲明)하는 바이다.
□ 한기총과 기타 복음적 기관들은 이단, 사이비의 분별을 교리나 전통이라는 안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겸손히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성경의 진리대로 할 것을 촉구한다.
□ 한기총은 그리스도의 몸인 건전한 한 교회를 조직적으로 음해하고 악의적으로 헐뜯는 사이비 이단 감별사들을 교체하고 법치적 권위를 회복하여 공신력 있는 연합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지키기를 바란다.
□ 우리는 사단의 참소로 주님의 몸인 교회가 지리멸렬해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 그 최선의 방책은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의 몸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라 믿으며 우리는 그런 모델교회들이 됨으로써 한국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일을 섬길 것이다.
□ 우리는 교회의 가장 강력한 기초석은 ‘예수님을 주로 믿는 신앙고백’이며 ‘복음의 진리를 회복’하는 것만이 쇠락해가는 한국교회를 다시 건강하게 세우는 첩경이라 믿는다.
□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각양 은사를 사모하며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은사를 개발하여 교회와 영혼들을 섬김으로 하나님나라를 확장해갈 수 있도록 돕는다.
□ 우리는 이단을 미워하지만 이단의 침투경로가 될 수 있는 교회 안의 세속주의, 물질주의, 교단 간에 팽배한 교권욕, 질투심, 거짓과 참소의 영, 불의함도 미워한다.
□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나 공산주의의 영, 동성애, 낙태, 마약복용이나 기타 비도덕적 행위들을 혐오하며, 반기독교적이고 반인륜적인 타락의 문화를 철저히 배격한다.
□ 우리는 가이사적 정치 활동이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어떤 종교적 활동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성령께서 이끄시는 생명의 일에 헌신할 뿐이다.
□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양떼들을 돌보는 종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 이름의 왕국이나 영광을 높이는 일은 결단코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성도들을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하여 예수님 닮은 거룩의 능력을 가진 영적 군사들로 세우는 일에 전심전력할 것이다.
□ 우리는 성도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며 사는 삯꾼 목회, 밥벌이목회를 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 내에 만연한 신자들의 종교적 이기심이나 세속적 요구들은 가차 없이 제거하여 양과 염소, 가라지와 알곡을 분명히 구분하며 양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목양을 할 것이다.
□ 우리는 진리와 지향점이 다른 종교적, 사회적 기관들과 인위적이고 물리적인 연합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타 교단 형제들과 교류하고 섬기는 일에 아무런 장벽을 두지 않으며, 사탄이 못 가진 성령의 사랑으로 연합하고 동거하는 믿음의 큰 공동체가 되기에 힘쓸 것이다.
한기총에 속한 교단들과 우리 교단은 적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다만 집행부가 불의를 방조하거나 불의한 자들을 이용하여 암묵적으로나 적극적으로 큰믿음교회와 부흥교단 총회장 변승우 목사를 음해할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엄위로 이 불의함을 바로잡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 교단 전체 속에서는 작지만 다윗의 군대, 기드온의 군대같이 헌신된 응집력을 갖고 있음을 자부한다.
큰믿음교회나 부흥교단이 결코 절대선이 아니다. 이 세상의 어느 지상교회도, 어떤 기관도 완전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큰믿음교회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것은 이 교회를 통해 흐르는 진리의 회복, 거룩에의 갈망, 정결한 신부에의 소원 등이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주요 교단들끼리도 교리 갖고 파고들면 갈라설 수밖에 없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실제 한기총도 각 교단마다 교리적 차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주님을 향한 동일한 신앙고백을 갖고 있기에 우린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에 함께 부르심 받은 복음어장의 이웃 선단이요 하나님나라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동역자들이라 믿는다. 한국교회가 열린 마음으로 서로 좋은 점을 공유하여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진리와 사랑과 거룩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2011년 6월 17일. 형제가 연합하여 아름답게 동거하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부흥교단 전라노회 회원교회 목회자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