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소유 10

[순진한고양이]

10

담배연기로 인해 공기가 탁하다. 반쯤 타들어간 담배가 들려있는 손끝엔 미처 다 닦지 못한 피가 조금 묻어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 몸을 탐했다는 증거였다. 그것이 보기 싫어 바닥을 내려 보면 피가 묻은 채 버려진 휴지 뭉치가 보였다. 고개를 더 숙이면 그에게 탐해져 더럽혀진 곳이 보였다. 모든 것들이 다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치이익-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타들어가던 담배가 보이지 않았다. 손에 휴지 뭉치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저기다 끈 것 같다. 그가 천천히 거실을 둘러보았다. 시선이 곧 안방에 멈췄고 말릴 세도 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탁- 하는 소리가 안방에서 들렸다. 아마도 불을 켠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방에서 뭘 하는 거지? 궁금하지만 굳이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늘 누워 자는 침대,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더 오래 있는 공간인 방이다. 거실을 더럽힌 것으로도 모자라 잠을 자고 쉬는 침실까진 더럽힐 순 없었다.

나오라고 제발 내 방에서 나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를 건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한테 전혀 득 될 것도 없고, 오히려 해가 되니까. 그냥 묵묵히 신소울이 거실로 나오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잠시 후, 신소울이 방에서 나왔다. 그의 눈은 날 찾았고, 곧 나를 발견하고 거리를 좁혀왔다. 움츠리고 있던 몸을 펴고 일어나 앉아 소파 끝에 등을 기댔다.

“안 찝찝하냐?”

“......”

“씻게 일어나.”

신소울은 두 손가락으로 셔츠 단추를 푸르며 말했다. 단추가 하나 둘씩 풀어지면서 가슴과 복부가 드러나기도 잠시, 비에 젖은 셔츠는 신소울의 몸을 벗어나 바닥에 떨어졌다. 신소울의 살짝 마른 상체를 본 것은 오늘로서 벌써 세 번째였다. 그래서인지 이젠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늘 봐왔던 것처럼 무덤덤했다.

“일어나라니까?”

“왜 일어나라는 건데, 너 먼저 씻을 거 아냐...?”

“내가 언제 먼저 씻는다고 했는데? 나 그런 말 한 적 없어.”

“그럼...”

“같이 씻자고.”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넋이 나가 멍한 얼굴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신소울은 내 이런 표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뜨겁고 강렬한 눈동자 속엔 동정이라곤 절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픈 마음이 강하게 느껴질 뿐이다.

물러설 곳은 없었다. 도망칠 곳 또한 없었다. 싫다고 발버둥을 쳐봤자 결국엔 신소울이 원하는 대로 될 게 뻔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바닥에서 일어나 신소울의 옆을 지나서 욕실로 향했다. 불을 켜고 화장실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닫지 않았다. 어차피 신소울이 들어올 테니까. 벽에 붙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비에 젖은 긴 앞머리에 손을 가져와 쓸어 넘기고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키스로 인해 퉁퉁 부운 입술을 손끝으로 한 번 훑었다. 거울 속에 비추는 내 모습은 비 맞은 생쥐와도 같았다. 불쌍했다.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너무 불쌍해보여서 구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바보 같아,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고개를 가로 저으며 물을 틀었다. 욕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문 앞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신소울은 문 앞에 서있었다.

“같이 씻을 거냐?”

신소울은 의심하듯 물었다.

“싫다고 하면 놔줄 것도 아니잖아.”

“당연하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수도꼭지에 시선을 두었다. 신소울은 욕실로 들어왔고, 나처럼 들어오자마자 거울부터 봤다. 이미 다 망가진 헤어스타일이고 곧 감을 건데 머리를 왜 만지는지 모르겠다.

“정말 자고 갈 거야?”

나지막이 물었다. 자신이 한 말은 무조건 책임지는 신소울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마음에 바뀌지 않았을까하는 작은 희망을 품었는데,

“어.”

짧은 대답 하나에 또 무너져 내린다. 두 번 다신 신소울 앞에서 희망 따윈 갖지 않을 거야.

“진짜 입을 옷 없냐?”

“남자가 입을만한 옷은 없어.”

“그럼 다 벗고 자지 뭐, 너도 벗고 자라.”

“......”

“왜 대답이 없어. 싫어?”

“너 입을 옷 좀 찾아볼게.”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갔다. 다 벗고 자라고? 것도 너랑 같이? 죽는 것보다 싫다. 옷장을 뒤적였다. 마땅한 옷이 있을 거야. 서우빈은 덩치가 좀 있지만 신소울은 말랐으니까 분명히 내 옷 중에 맞는 옷이 있을 거야.

“서우빈..하하! 웃긴다, 유아미.”

서우빈에 이어 신소울까지 내 옷을 입혀야 하다니. 기가 막혀 어이없는 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다시 옷을 찾기 시작했다. 가만, 내가 왜 쟤한테 딱 맞는 옷을 찾아야 하는데? 아무거나 입히면 되지. 손에 잡히는 티셔츠 하나랑 반바지를 집어 들고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있는 옷을 신소울에게 건넸다.

“밖에다 놔.”

“입어봐.”

“됐어.”

“안 맞으면 다른 거 찾아보게 입어봐.”

신소울은 욕조로 고개를 돌렸다.

“물 거의 다 받았네― 좀 씻자, 진짜 찝찝해 죽을 것 같다.”

그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허리띠를 푸르고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같이 내렸다. 곧 나체가 되었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민망함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내가 벗은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러워 얼굴에 홍조를 띠고 심장이 콩닥콩닥 거렸다. 화끈거리는 볼은 손으로 부채질을 함으로써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두근대는 심장을 멈출 방도가 없었다. 심호흡도 크게 해보고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머릿속을 비워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내가 왜 부끄럽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데!

두근대는 심장을 제 속도로 맞추려고 열을 올리고 있는 반면, 신소울은 따뜻한 물에 몸이 풀리는지 조용한 한숨과도 같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며 가슴이 또 두근두근.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의 신음소리는 섹시했다. 내가 드디어 돌았구나, 미쳤어.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리와”

신소울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머리를 쥐어박던 주먹이 제자리에 멈췄다. 차마 고개는 돌리지 못하고 곁눈질로 힐끔 쳐다보았다. 반신욕 하듯 상체는 밖에 두고 앉아서 제 몸을 이곳저곳 훑어보고 있었다. 신소울이 들어가 있는 욕조에 옷을 다 벗고 들어갈 용기도 없고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억지로 끌고 오기 전에 네 발로 알아서 와.”

“.....”

“나 지금 기분 무지 좋거든? 건들이지 말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망설임이 길어지면 질수록 신소울의 화를 돋울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난 망설이고 있었다. 핑계 댈게 없을까? 잔머리를 굴려보지만, 잔머리를 써본지가 오래 되서 그런지 마땅히 떠오르는 핑계거리가 없었다. 그때였을까,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물은 다 받았는데 왜 또 물을 틀었지? 하고 궁금해 하던 그 순간, 샤워기에서나오는 차가운 물이 내 몸을 덮쳤다.

“꺄악! 뭐, 뭐하는 거야!!”

비명을 지르며 좁은 욕실 안을 우왕좌왕했다. 신소울은 욕조에 가만히 앉아서 샤워기를 든 손을 내가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옮겼고 욕조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물의 양만큼 내게 뿌렸다. 이미 비에 젖어있던 원피스는 더욱 젖어서 몸에 착 달라 불어 몸매를 드러냈고, 긴 머리카락은 힘없이 축 쳐지고 엉켜버렸다.

이젠 피하는 것도 지쳤다. 이리가나 저리가나 어차피 맞을 거면 가만히 서있자, 생각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자 내 몸을 덮치던 물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뒤로 넘기고 신소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하는 거야!”

“젖었어, 너.”

“네가 그런 거잖아!”

“비도 쫄딱 맞았고, 찬물도 맞았어. 지금 안 씻으면 감기 걸릴 걸.”

“일부러 그랬지...”

“알면 얼른 벗고 들어와.”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일부러 그랬다 이거야? 들어오게 하려고 일부러?

“슬슬 기분이 다운되고 있거든?”

“욕실이.. 여기 밖에 없는 줄 알아??”

휙. 등을 돌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에서 욕실을 나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뛰었다. 밑에 층에서 새벽에 쿵쾅거린다고 욕을 해도 상관없어. 나중에 두 배로 날 괴롭힌다고 해도 상관없어. 신소울, 너랑은 절대 같은 욕조에서 씻지 않을 거야! 네가 우리 집을 나가고 난 다음 난 절대 저 욕실을 쓰지 않을 거야!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욕실로 들어와 문을 닫고 잠갔다. 손을 등 뒤로 하고 문고리를 꼭 잡고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개새끼..하아, 하아-”

스르르 주저앉았다. 춥다, 여름인데 추워서 몸이 조금씩 떨렸다. 축축한 옷을 벗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지만,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해도 되리라 생각했다. 예상외로 신소울은 내 뒤를 쫓아오지 않았다. 차라리 감기에 걸려서 앓아누웠으면 좋겠다. 그럼 단 하루 만에 낫는 감기는 사양이다. 내가 원하는 건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릴 수 있는 열병이다. 몸이 아픈 건 정말 괴롭고 외롭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를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제발 아팠으면 좋겠다.

젖은 옷을 벗어 바닥에 두고 일부러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당장이라도 따뜻한 물을 틀고 싶을 만큼 차갑고 추웠지만 제발 병이 생기길 간절히 바라며 꾹 참았다. 타월로 물기를 닦아내고 젖은 머리를 두르며 욕실에서 나왔다. 옷장에서 잠옷을 꺼내 입고 화장대 의자에 앉아 거울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움직임이 들렸다. 이미 다 씻고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날 찾고 있는지 발걸음소리가 귓속을 파고 들어와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문 열어.”

착 가라앉은 시린 목소리에 몸이 살짝 떨렸다. 신소울은 문고리를 돌려보지도 않았으면서 잠근 줄 알고 있는 듯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 문을 열면 딱딱하게 굳은 무표정을 보게 되겠지? 또 죽자 살자 내 몸에 달려들겠지? 뒤이어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온 몸을 둘러쌌다.

“안 건드려. 그러니까 문 열어.”

“거, 거짓말 하지 마.”

“지금 안 열면 이 문 부시고 들어가서 당장 덮쳐버린다. 셋 셀 동안 문 열어.”

“......”

“하나.”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믿어, 난 거짓말 안 해. 둘.”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톡 튀어나온 부분이 나오고 문이 열렸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날카로운 눈이 보이고, 긴 타월을 허리에 감아 하체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한 손에는 내가 준 옷이 들려 있었다. 신소울은 내 손에 옷을 쥐어주고 날 살짝 밀어낸 다음, 방안으로 들어왔다.

“쫄티 같아도 티셔츠는 입을 만한데 바지는 안 맞아.”

“......”

“바바리맨처럼 위에만 입을 순 없어서 아예 안 입었다.”

넋이 나간 상태에서 손에 들려있는 옷을 보았다. 덮칠 줄 알았다. 그걸 예상하고 있었으면서도 문을 열어준 나다. 하지만 신소울은 정말로 날 덮치지 않았다. 좀 의외라는 생각에 신소울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신소울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한다면 했고, 안 한다면 안 했다.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면, 생리중인 나를 건드린 것. 지금 당장은 그것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그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진짜 건들이지 않을 거지?”

“네 눈에 내가 뭐로 보이냐? 발정 난 동물처럼 보이지?”

“그런 말 한 적 없어.”

“아님 말고.”

신소울은 침대위로 벌러덩 누웠다. 제집 침대인 마냥 이리 굴렀다가 저리굴렀다가 하더니 곧 이불속으로 들어가 베게에 머리를 대고 편하게 누웠다. 나만 누웠던 침대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신소울이 지금 누워있다. 다시는 저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으리. 다짐하고 뒤돌아서서 문고리를 잡았다.

“어디 가냐.”

“넌 여기서 자. 난 다른 방에서 잘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지껄이지 말고 와서 누워.”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누가 건드린데? 그냥 옆에서 자라고.”

“싫어.”

문고리를 살짝 돌리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 순간,

“아까처럼 도망쳐봐 내가 어떻게 하나.”

“협박하지 마!”

발목을 잡는 그의 말에 쾅- 소리가 크게 날만큼 문을 닫고 뒤돌아서서 신소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는 내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말 같지도 않는 말했다.

“오버는 씨발, 너 일부러 나 건드리는 거지? 제발 좀 덮쳐달라고.”

“내가 미쳤어?”

“아니면 와, 안 오면 그렇게 생각하고 매일 시간 장소 상관없이 덮쳐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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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하는 소리와 동시에 방에 불이 꺼지고 짙은 어둠이 깔렸다. 결국 난 침대에 눕고 말았다. 신소울이 한 협박이 통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은 무조건 하는 사람이니까. 진짜 내가 제 옆에 눕지 않으면 매일 시간 장소 상관없이 날 덮칠 거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불을 끈 신소울은 곧 내 옆에 누웠다. 침대가 아래로 푹 꺼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신소울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 이불을 덮고 있는 그의 몸과 절대 부딪치지 않으려고 침대 끝으로 몸을 조금 조금씩 옮겼다.

“야, 매너 없이. 한 이불 덮고 있는데 네가 계속 끝으로 가면 난 이불 덮지 말라고?”

“그, 그럼 너 혼자 덮어!”

발로 이불을 홱 걷어찼다. 매너? 누가 누구보고 매너가 없대? 기가 막혀 콧방귀를 끼고 머리를 베고 있는 베개를 빼서 꽉 끌어안고 몸을 움츠렸다. 한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나다. 그래서 인지 뭔가 허전하고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데 좀 추웠다. 이 상태로 잠이나 잘 수 있을지 의심된다.

“자냐?”

너 같으면 잠이 오겠어?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따지고 싶지만 참았다. 신소울은 나를 건드리지 않기로 했지만 그를 긁으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조용히 숨만 내쉬었다. 그러자 신소울은 내가 잠에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내 품에 안고 있는 베개를 쏙 뺐다. 그리고 본인 옆으로 날 데려와 머리에 제 팔을 내주고 품에 안은 뒤, 이불을 살포시 덮어주었다.

갑자기 바뀐 포즈에 내 손은 민망하게도 신소울 가슴에 닿아있었다. 아, 떼고 싶다. 떼고 싶은데 손을 떼면 안자고 있다고 생각 할 테고 또 건드릴지도 모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짜 미치겠네.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소리와 동시에 손바닥에 심장 뛰는 속도가 느껴졌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얘가 어디 아픈 건 아닌가? 생각했다.

“싫다고 지랄할 땐 언제고 벌써 자냐,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언제 널 약 올렸어? 속으로 따졌다. 당연히 들릴 리는 없겠지만.

“이걸 확 덮쳐 말아?”

순간, ‘헉’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올 뻔했다. 일어날까? 지금 깼다고 하면서 일어날까? 고민하던 찰나 신소울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계속 자는 척 했다.

“만져도 반응도 못 할 텐데 뭣 하러 덮치나-”

“......”

“근데 이거 기분 참 묘하네- 여자랑 한두 번 자보는 것도 아닌데 씨발, 왜 이렇게 떨려?”

날 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오고 있음을 느꼈다. 곧 그 힘으로 내 몸을 더욱 꽉 안았다. 온 몸이 조이는 아픔과 갑갑함에 벗어나고 싶었다. 오늘 잠자긴 틀렸다.

“오늘 잠 다 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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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들기 전엔 정말 너무 불편하고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언제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빨리 잠들었고 평소보다 깊게 푹 잔 것 같은데 몸이 다른 날보다 좋지 않았다.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하고 덥지도 않고 땀도 흐르지 않는데 몸은 뜨거웠으며 눈꺼풀이 굉장히 무겁고 입 안과 입술이 바싹 말라있었다. 내 몸이 왜 이럴까, 가만히 누워 생각을 하다가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고 힘겹게 눈을 떴다.

하얀 천장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신소울이 내 옆에 누웠었다는 사실을 부정이라도 하듯 시트는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탁상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8시,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혹시 시계가 멈춘 건 아닐까했지만 초 바늘이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놀란 눈을 하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베개에 등을 받치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조용했고 방에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신소울이 나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리면서 스르르- 몸이 저절로 미끄러져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 상태로 오늘 학교 가기엔 틀린 것 같아 핸드폰을 찾아 머리맡을 뒤졌다. 곧 내 손에 뭉툭한 핸드폰이 쥐어졌고, 전화번호부 목록을 뒤져서 담임선생님 번호를 찾아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선생님 저 아미에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감기에 걸려서 오늘 하루 결석해야 할 것 같아요. 네,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불구덩이에 빠졌다가 나온 것처럼 뜨거운 이마에 한 손을 얹고 핸드폰을 다시 머리맡에 두고 옆으로 돌아누워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숨을 쉴 때마다 코와 입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이 이불 속을 뜨겁게 달궈 답답함을 만들어냈지만 몸을 움직이기 귀찮아 가만히 그 상태로 몸을 정지시키고 멍한 눈을 깜빡이다가 잠시 잊고 있던 신소울이 떠올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맞다, 신소울.”

그러고 보니 눈을 떴을 때부터 보이지 않았는데 새벽에 집으로 돌아간 걸까? 아니면 학교에 간 걸까. 확인을 해보지도 않고서 신소울이 집에 없다고 추측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 싶어 침대에서 내려와 아픈 몸을 이끌고 방을 나섰다. 마치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모두 꿈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늘 내가 봐오던 조용한 거실 풍경. 아픈

몸을 이끌고 집안 곳곳을 모두 살펴봤지만 신소울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없구나, 후우-”

신소울이 없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안심되기도 잠시,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어지러운 머리 때문에 몸이 비틀거려 안심된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몸에 중심을 잡고 열이 펄펄 끓고 있는 이마에 손을 얹고 몇 걸음 더 걸어가 Tv 밑 서랍을 열어 구급상자를 꺼내서 감기약을 찾아 뒤적였다.

뒤적거리는 소리가 굉장히 거슬렸지만 이 아픈 몸을 조금이나마 낫게 하기 위해서 참고 약을 뒤적여보지만 감

기약은 보이질 않았다. 분명히 사다 놓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은 결국 구급상자를 뒤집게 만들었고, 바닥에 널브러진 많은 약들을 하나씩 체크하면서 마지막 남은 약까지 구급상자 안에 넣었지만 감기약은 없었다.

순간 짜증이 확 나면서 미간에 주름이 잡힘과 동시에 애꿎은 구급상자를 발로 밀어버리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버렸다. 참을성 좋은 내가 이런 사소한 거 가지고 짜증이 나는 걸 보면 아프긴 정말 아픈가 보다. 뜨거운 몸을 깔고 누운 바닥은 자신의 차가운 기운으로 내 몸을 식혀주고 싶은지 차디 찬 냉기를 온 몸에 퍼지도록 노력해보지만 몸에 열기가 너무 쌨던 탓인지 오히려 바닥이 뜨끈해졌다.

뜨거워진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서서 힘없는 눈으로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약국이나 병원이 문을 열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더 남은 이른 아침. 지금 몸 상태로 한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까? 병원은 갈 수 있을까? 문턱은 넘을 수 있겠지? 걱정이 쌓이다보니 입에선 아프다는 말이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흘러 나왔다. 몸이 아프다는 건 정말 외롭고 싫은 일이다. 옆에서 병간호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덜 외롭겠지만.

불현듯 신소울이 떠올랐다. 만약 신소울이 아직도 집에 있었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아픈 게 싫지 않았을까? 외롭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아마 신소울을 다시 봤겠지? 이럴 때 옆에 있어줬으면 지난 나쁜 일은 모두 잊고 그에게 굉장히 고마워했을 텐데. 별의별 추측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아픈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한 번 떠오른 생각은 말릴 틈도 없이 점점 깊게 빠져 들어 어젯밤 잠에 들기 전까지 들어갔다.

‘근데 이거 기분 참 묘하네- 여자랑 한두 번 자보는 것도 아닌데 씨발, 왜 이렇게 떨려?’

‘떨려, 떨려, 떨려....’

내가 잠에 든 줄 알고 했던 혼잣말과 일정치 않은 속도로 빠르게 뛰던 심장은 분명 내가 기준이다. 설마 하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말이다. 어떤 뜻을 갖고 나를 기분으로 삼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고 깊게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날 두고 혼자 무슨 생각을 하던 난 신소울이란 인간에 대해 전혀 관심 없으니까.

“병원이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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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와 같은 건물에 있는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약국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세 명의 약사들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처방전을 건네기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처방전 이쪽으로 주시겠어요?”

“아, 네.”

망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 약국 직원에게 다가가 처방전을 건넸다. 직원은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제조실 안으로 들어갔다가 곧바로 나와 다른 손님을 맞았다. 서서 기다리기엔 꽤 오래 걸릴 것 같아 앉아서 기다리기 위해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임신 테스트기 하나 주세요.”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안됐을 때 들은 말이었다. 교복차림의 여학생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당당하게 임신 테스트기를 달라고 말했다. 나를 포함해 약국직원과 약국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여학생을 응시했고, 그런 시선이 부담스럽다거나 부끄럽지 않은지 여학생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빨리 달라며 직원을 재촉했다. 가만 보니 저 교복 서우빈이랑 같은 교복이었다. 그래서 일까?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아유- 세상 정말 말세네.”

“애가 애를 가졌으니 쯧쯧...”

“부끄럽지도 않은 가봐.”

여학생을 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사람들은 절대 작게 속삭이지 않았으며 일부러 들으란 듯이 말하고 있었다. 여학생은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쓱 둘러보았고 그 중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에게 눈이 멈췄다.

“아줌마, 내가 임신한 거 아줌마가 봤어?”

교복과 어울리지 않은 짙은 화장과 액세서리, 몸에 딱 맞게 줄여진 교복과 예의라곤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는 말투는 저 여학생이 평범한 여고생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줌마가 임신한 거 봤냐고!”

“어, 어머나 세상에! 저 학생 말하는 것 좀 보게, 학생 존댓말 몰라?”

“그래 나 존댓말 몰라. 그래서 어쩔 건데? 존댓말 안 써줬다고 신고라도 할 거야?”

“이 학생이 정말! 학생 담임선생님 이름 뭐야?!”

“말하면 아줌마가 알아?”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누가 나 보랬어? 웃기네! 이 아줌마?”

조용했던 약국은 금세 소란스러워졌고, 직원이 두 사람에게 휴전을 처하듯 여학생에게 임신 테스트기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오천 원입니다.”

여학생은 고개만 휙 돌려 돈을 지불하고 테스트기를 거의 뺏다시피 받아서 가방에 집어넣고 아줌마 앞으로 다가와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시선을 내려 아줌마를 노려보았다. 여학생 오른쪽 가슴에 달린 명찰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이름이 김민영. 몇 학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추측해보면 내 또래 일 것 같았다.

“나도 학생만한 딸이 있어! 어디 어른한테!”

“그럼 아줌마 딸이나 신경 써! 나한테 신경 끄고!!

”“기가 막혀서 진짜!”

“하! 기가 막힌 건 나거든? 별 꼴 같지도 않은 게 진짜.”

“야 너 말 다했어?!”

“못했다!”

여학생과 아줌마의 말다툼이 커지면 커질수록 목소리 톤도 높아졌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두 사람의 싸움을 먼 산 보듯 했고 어느 누구도 싸움을 말리거나 가로막아선 사람은 없었다. 나라도 말려봐야겠단 생각에 두 사람에게 다가서는 그 순간,

“김민영, 닥치고 나와.”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학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닫았지만 자리를 뜨진 않았다. 반면 아줌마는 여학생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런 아줌마를 끝까지 노려보는 여학생.

“나오라고.”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깔끔한 교복차림에 귀찮은 듯 한쪽 어깨에 살짝 걸친 가방, 무테안경 뚫고도 남을 날카로운 눈빛, 살짝 터진 붉은 입술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서...우빈?”

“누가 내 이름...아미?”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놀란 눈으로 시선을 마주하던 그때, 아줌마를 죽일 듯 노려보던 여학생은 어느새 서우빈 옆으로 다가와 찰싹 달라붙더니 팔짱을 끼고 상대를 바꿔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콧소리를 내며 제 몸을 서우빈 팔에 비볐다.

“우빈이 너 이런 스타일도 만났어?”

“너 나가 있어.”

“왜애- 왜 나보고 나가 있으라는 건데?”

“넌 좀 꺼지라면 꺼져! 짜증나게 말꼬리 잡지 말고.”

서우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팔에 매달려있는 여학생을 멀찌감치 밀어버렸다. 하지만 여학생은 다시 서우빈 곁으로 다가왔고, 그때마다 서우빈은 여학생을 밀어냈다. 지금 여학생에게 하는 행동은 내가 아는 서우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반면 여학생은 그런 행동들이 익숙한 듯 보였다. 이게 진짜 본모습이니?

“나 다 샀어, 그러니까 나가자-”

“다 샀으면 꺼져 좀!”

“같이 밥 먹기로 했잖아, 잊어버린 거야?”

“씹! 뒤질래? 넌 씨발 소울이 없으면 내가 존나 만만하지?”

“우, 우빈아 내가 언제 그랬어... 아냐!”

“기고 아니고 나한텐 중요하지 않아.”

“우빈아....”

“아미 너 교복이 아니네? 학교 안 갔어?”

여학생에게 대하는 태도와 180도 다른 부드러운 말투와 표정은 방금 전, 화내며 욕한 사람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였다. 이중적인 서우빈의 모습에 놀란 나, 여학생은 서우빈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기라도 하듯 나보다 더욱 놀란 표정이었다.

“것보다 약국은 왜 왔어? 어디 아픈 거야? 그래서 학교 빠진 거야?”

“응.”“어디가, 어디가 아픈데! 많이 아픈 거야? 병원은 다녀왔어?”

“하나만 물어봐줄래? 나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

“미안미안. 병원은 다녀온 거야?”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서우빈, 여학생의 눈이 더욱 커다래졌다.

“유아미씨.”

“네.”

약국 직원이 부르는 소리에 두 사람에게 벗어나서 돈을 지불하고 처방된 약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문 앞에 서있는 서우빈과 여학생. 약국을 나가려면 저 두 사람을 지나가야 했다. 이 큰 약국에 어떻게 나가는 문이 하나 밖에 없는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에게 다가섰다.

“먼저 갈게.”

간다는 말과 동시에 문을 열고 약국을 벗어나 걸음을 재촉했다.

“아미야, 유아미!”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서우빈의 목소리에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섰다. 서우빈은 날 놓치기라도 할까봐 얼른 뛰어왔고, 그 뒤를 이어 여학생이 도착했다. 아직도 열이 펄펄 끓고 있는 이마에 손을 대고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새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는 서우빈을 쳐다보았다.

“밥 먹었어?”

“아니.”

“잘됐다! 나도 밥 안 먹었는데 같이 먹자.”

대답하기 전에 서우빈 옆에 서있는 여학생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학생은 날 무섭게 노려보며 ‘서우빈이랑 같이 밥 먹으면 죽어’라는 눈빛으로 말을 대신했다. 저 여학생 혹시 서우빈 여자친구?

“알았지? 먹자. 김민영 넌 학교로 다시 가든 어딜 가던 가버려.”

“뭐? 우빈아, 내가 너랑 같이 밥 먹기로 했잖아- 응?”

“사람은 언제든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야. 좋은 말할 때 가라.”

[씨앗]

우빈이랑 만나는거 걸림안되는데ㅜㅜ

[rjwoo]

괜히 우빈이 만난거 들키면 또 소울이가 화낼텐데ㅜㅜ 제발 마주치지말길ㅜㅜ

[독약이]

소울이가 우빈이랑 만난거알면...으아..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