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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THE BEGINNING
브래드필드/무어의 침대방에 고치를 틀고, 듀란 듀란과 하노이 락스의 화려함에 영감을 받은 이 녀석들은 처음으로 화장을 시도해보기 시작했는데, 이는 동네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서였다. 슬프게도 미용실을 하시던 리치의 부모님은 자유로운 글램 락 헤어스타일을 해주실 수 없었다 (어르신들을 위한 블루 린스 염색이 그들의 강점이었다). 대신 넷은 임시변통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마구 자르고 물비누와 코카 콜라를 이용해 뾰족하게 세워서 시드 비셔스처럼 보이려고 했다.
"우린 특별히 괴롭힘 당한 적은 전혀 없었어." 닉은 이렇게 시인한다. "왜냐면 누구도 우릴 쳐다보지 않았으니까." 그와 리치는 바깥을 탐험할 때면, 자신들의 완전히 블랙우드스럽지 않은 이미지 때문에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저기 저 게이 녀석들 좀 봐! 저쪽 구석에 가서 서로 빨아주라고, 이 호모 자식들아!" 닉은 딱 한 번 얻어맞은 적이 있었는데, 카일리 미노그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에서였다 (10년 쯤 뒤에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카일리는 이렇게 외쳤다. "세상에, 축복이 있기를! 그에게 큰 축복이 있기를! 오 맙소사, 세 번 축복이 있기를!"). 닉은 이런 욕설로부터 몸을 숨기기보다는, 그걸 거의 즐기는 듯해보였다. "난 그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쓸모없는 쓰레기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일주일 내내 공장에서 일했다면 그들에겐 매일 밤 완전히 맛이 가서는 내 머리를 보고 놀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야." 어쨌든, 그는 남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꾸미는 게 궁극적인 탈출구인 셈이지." 그가 Gay Times에 말했다. "주목받는 것만큼 날 흥분시키는 게 없어. 그래서 난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차려입어."
그들이 바깥 세상을 탐험할 때면, 이 사인조는 마을의 괴짜들로 이름이 났다. 닉은 머리를 탈색하고 진한 화장을 했으며, 제임스는 가죽 트렌치코트를 입고 부츠를 신었고, 리치는 80년대의 인디계 유니폼인 긴 오버코트를 입고 부풀린 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그 모습은 에코 앤 더 버니멘의 어린 멤버라고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 밴드는 그와 제임스, 션이 아주 좋아했는데, 그들이 처음으로 공연을 보러 간 밴드이기도 했다). 그들은 당시의 유명한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 중 하나가―컬트The Cult, 개리 뉴먼Gary Numan, 스피어 오브 데스티니Spear of Destiny, 밥 물드Bob Mould, 소닉 유스Sonic Youth, 스미쓰The Smiths (니키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한다), 워터보이즈The Waterboys (언젠가 제임스가 팬클럽 가입을 고려했었던 밴드이다)―카디프 대학교를 방문할 때면 언제고 충실히 무리지어 따라갔다. 그들은 카디프의 스퀘어 클럽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한번은 스톤 로지스가 스물네 명의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제임스는 WOMAD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멀리 서쪽을 탐험하기까지 했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굉장히 우울한 경험을 했다. 비, 학생들, 제임스James, 베지 버거, 버니멘, 더 많은 학생들과 더 많은 비...
하지만 그들의 사회 생활은 대부분 레드 라이언The Red Lion이나 비어켈러The Bierkeller에서 조용히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 혹은 그보다 자주 더 조용히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파리 [센 강] 좌안의 카페 문화라는 매력적인 신화에 열광했던 그들은, 마을 노동자들이 자주 찾는 작고 값싼 식당인 도로시 카페Dorothy's Cafe의 테이블 하나에 둘러앉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드보르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을 한 부 씩 들고선 차 한 잔을 한 시간 동안 마시며 의미 있는 양 자세를 취하곤 했다. 후에 그들이 인정했듯이, 그들이 보통의 십대들처럼 마시고, 춤추고, 진한 키스를 나누는 것을 취미로 삼는 데에 동참하는 것을 편협해보일 정도로 꺼렸던 데에는 약간 슬픈 구석이 있었다. "금요일 밤에 우린 침대에 앉아서 정치와 음악에 대해 토론하곤 했는데," 제임스가 회상한다. "그러다 밖의 길거리에서 하이힐이 또각대는 소리가 들려오면 우린 이렇게 생각했지. '이건 건강하지 못해.'"
그들의 흥미가 전적으로 지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닉, 리치, 패트릭은 소설을 읽는 시간만큼 비디오 게임을 하는 데에도 시간을 쏟았다. 어느 때엔가 그들은 하드코어 포르노 비디오를 입수해서는 3주 동안 매일 점심시간마다 집에서 그걸 질릴 때까지 보다가 불스아이Bullseye와 페블 밀Pebble Mill*로 돌아갔다. 그들은 축구, 골프, 크리켓, 다트의 열성적인 안방팬이기도 했다 (닉은 언젠가 살찐 스코틀랜드 출신 다트 마에스트로 조키 윌슨Jocky Wilson의 싸인을 받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거기에 윌슨이 '꺼지라'고 했던 것은 그의 영원한 자랑거리로 남아있다).
*확실치는 않지만 비비씨의 쇼 프로그램/드라마/라디오 스튜디오 중에 Pebble Mill이라는 이름의 스튜디오가 있는 걸로 봐서 이곳에서 촬영된 프로그램을 봤다는 얘기 같아요.
이 패거리에서 가장 외향적이었던 것은 항상 제임스였다. 일 년 사이, 그는 처음으로 맥주를 마셔보고 (기찻길 아래, 주류 판매점에서 구한 싸구려 맥주 한두 캔은 세지 않는다), 처음으로 싸워보고, 처음으로 키스를 해봤는데, 이것들은 모두 같은 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닉은 이렇게 주장해왔다. "나랑 리치, 제임스는 여자 문제에 있어선 저능아들이었어... 아주 아주 수줍음을 탔지."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를 게이로 생각했기 때문에 신경쓰지도 않았어." 하지만 형 패트릭의 이야기는 다르다. 닉이 스스로 묘사한 것처럼 "사회적 불구자"와는 거리가 멀었고, 대신 항상 청소년 클럽 디스코에서 인기가 좋았다면서, 그가 거기서 여성들에게 인상을 남기기 위해 빌리 조엘Billy Joel의 'Uptown Girl'에 맞춘 특별한 율동까지 고안해냈다는 것이다. 열여섯 살 때 닉은 그의 "첫 번째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레이첼을 만나게 되었는데, 2년 뒤 그는 그녀에게 순결을 잃게 되었다 ("사실 그건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었어. 그런 일이 일어날 걸 알고는 있지만 모르는 척 하면서 벌어진 '우연히 하게 된' 일 중 하나였지. 그리고 난 결국 레이첼이랑 결혼했으니 내가 꽤 깊은 인상을 줬던 거야.") 션 역시 오랜 여자친구 리안이 있었다. 리치만이 이성에게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리치의 골칫거리스러운 면모 때문인지, 그 느낌은 상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릴 때 그는 브라이언 섬머즈Brian Summers라는 한 친구를 통해 포르노 잡지를 접하게 되었는데, 10분 뒤 속이 메스꺼워져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다.
1986년의 어느 금요일 저녁, 펑크 10주년을 맞아 채널 4에서는 안토니 윌슨Anthony Wilson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그것은 촉매 작용을 하는 전환이었다. 제임스에게 이 프로그램은, 특히 클래쉬 콘서트 영상은 인생을 바꿔놓은 계시와도 같았다. 반면 닉은 피스톨즈를 더 마음에 들어했다 ("그들은 더 거만하고 분명한데다 사람들을 겁먹게 만들잖아"). 이 사인조는 이전에 음악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엉성한 데모 테입도 조금 녹음해두기까지 했었지만 이건 정말 한때 반짝하고 떠오른 순간에 불과했다. 다음날 아침, 제임스와 닉은 카디프로 가는 정기 버스를 잡아탔는데 (50마일 반경의 모든 십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토요일은 상대적으로 세계적인 웨일즈 수도로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의례적인 순례를 하러 가는 날을 뜻했다), 이번에는 기타를 챙겼다. 도착하자 그들은 곧장 이 도시의 예스러운 빅토리아 시대 풍 상가로 달려가 펑크 클래식들을 조잡한 어쿠스틱 버전으로 소리쳐 부르기 시작했다 (웃옷을 벗은 빡빡머리의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가 놀란 노부인들 앞에서 'Garageland'를 악쓰며 부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당신은 1980년대 중반 CCTV가 더 흔했길 바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공연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절대, 절대 아니었다. 그들에게 감히 동전을 던지는 이들은 브래드필드/존스의 욕 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이 넷은 자신들의 천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이전에 그들은 자신들의 들썩이는 창조적 에너지를 저작 활동에 사용하기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자신들의 펑크 조상들의 DIY 윤리에 영감을 받고, 그것 덕분에 불이 붙은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표현 수단은 음악이라고 다짐했다. 처음으로 밴드 결성을 두고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 "우리 고향의 전형적인 탈출구는 언제나 팝 아니면 축구였어. 우린 세상에 맞선 네 명의 친구들이었지... 우린 기타를 집어들기 전부터 이미 밴드였던 거야."
이때부터 리치 에드워즈는 웨일즈 대학에서 정치 역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50마일 떨어진 스완지에서 지내게 되었다.
맨 첫학기에 그는 평생 지켜온 금주의 맹세를 깨고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아무것도 타지 않은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는 단지 그가 살고 있던 다층 기숙사에서 학부생들이 흔히 벌이곤 하던 소란 속에서 잠들기 위해서였다. "난 집에 돌아오면서 모든 방문을 두드리고 복도를 미친듯이 오르내리면 웃기겠다는 생각을 하고 새벽 한 시에 주방에서 파티를 벌이기로 결심하는 술에 쩔은 학생들 때문에 계속 잠을 깨곤 했어. 한심한 녀석들이었지!"
리치는 은둔자같은 생활을 했다. 실제로 그는 슬리퍼를 신었으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 "커다란 덥 레게 디스코가 벌어지곤 했는데, 난 마인더Minder*가 끝나면 잠을 잤어." 가장 행렬 주간에 리치가 정액처럼 몸에 칠을 하고 차려입었던 것은 지금은 전설과도 같은 일이 되었다 (몇 년 뒤, 아름다운 대칭으로서 한 이탈리아 패션 잡지에서 그때와 똑같이 하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다).
*영국 ITV의 코미디 드라마
그래도 보통 그는 학생회 생활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그의 학우들이 지닌 향락적인 태도를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NME에 이렇게 말했다. "난 바에 앉아서는, '오, 나 오늘 완전 반항적이었어. 수업을 하나 빠졌다니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혐오했어. 난 대학엔 둘러앉아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가득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지. 둘러앉아서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최대한으로 지미있게 놀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거야. 그치만 난 대학을 재미와 동등시한 적은 절대 없거든. 난 대학은 책을 읽고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섹스를 하는 곳이었지."
반면 리치는, 순결을 지킨 채로 대학에 왔다가 떠났다.
1985년에서 86년, 1986년에서 87년 사이의 겨울 동안 있었던 두 번의 주요한 한바탕 시기에 만들어진 매닉스의 아주 초기 시절 데모들은 최근 한 독일 해적판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제임스는 충격받았다). 그것들은 완곡하게 말해서 팬들만을 위한 것이었지만, 팬이라면 아주 흥미롭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1985년에서 86년 사이에 만들어진 첫 데모 몇 곡은 녹음이 특히나 깡통 찌그러지는 소리가 나며 가사는 불만스러울 정도로 알아듣기 힘들지만, 음악은 당시 지배적이던 작은 씬의 쟁글거리는 인디 팝에 상당히 크게 영향받았다. 그 다음 1986년에서 87년 사이의 세션에는 지금과 더 친숙한 매닉스 사운드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브래드필드의 사랑을 받는 제임슨즈에 대한 찬미가일지도 모르는 'Whiskey Psychosis'는, 'Clash City Rockers'의 복사 버전일 확률이 높아보인다 (마지막에는 제임스가 '괜찮아 닉?(Alright, Nick?)'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감동적인 순간도 있다). 'England Is a Bitch'는 훗날 'Enola/Alone'의 인트로로 부활하게 되는 코드 진행이 특징이다. 이 밴드의 '제대로 된' 커리어가 시작될 때까지 살아남은 가장 초기 곡인 'R.P. McMurphy'의 대략적인 버전이 처음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제임스의 기타 연주는 분명 이미 유능함 그 이상을 보여준다. 현란한 테크닉을 보여주진 않지만 그렇다고 원시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초기 MSP 싱글들보다 더 복잡해서 그들이 음악적으로 미숙한 척 했다는 아주 흥미로운 이론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기량이 시간이 점차 흐르며 더 뛰어나졌다'라는 보편적인 생각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하고 싶었다면 'Bohemian Rhapsody'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대신 그들은 'White Riot'을 만들기로 했다는 말이다.
약간 나중에 만들어진 데모들은 수년간 부틀렉으로 들어볼 수 있었다 (Media Slut Productions에서 만든 'Lipstick Traces'와 Dalmation Records의 'Turning Rebellion into Money'를 찾아보라). 게다가 이 트랙들이 매닉스 트레인스포터들에게 있어 갖는 주요한 가치는 역사적이기도 하다. 이후 노래들에서 등장하게 되는 구절들을 알아채거나, 밴드가 'Go Buzz Baby Go'와 Behave Yourself Baby'의 부분을 떼어내 'Motorcycle Emptiness'를 만들게 된 자취를 따라가고, 나중의 발언과는 반대로 그들이 사랑 노래를 몇 곡 쓰기도 했다는 사실을 ('Just Can't Be Happy'가 그 예다)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들은 피스톨즈를 베끼고 있었다. 'Anti-Love'는 'Holidays In The Sun'을 많이 생각나게 한다.
이 초기 데모들엔 밴드의 커리어 내내 반복해서 등장하게 되는 몇 가지 주제가 포함되어 있기도 한데, 양성성 ('Love in a Make-up Bag'), 자기파괴 ('Eating Myself from Inside'), 반(反)체제적 면모 ('England Is a Bitch', 웨일즈 독립주의 노래는 아니다), 스스로 몸을 파는 것('나는 착취당하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가사)이 그것들이다.
무엇보다도, 'Where Have All Good Things Gone'이나 'Dying a Thousand Deaths'같은 제목들, '난 단지 내 침대에 눕고 싶을 뿐이다' 같은 가사는 매닉스는 그들 인생에서 '최고의' 시기였던 청소년 시절 전성기에조차 일찍이 병적인 생각과 우울감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새롭지 않았을지는 모르겠으나 (클래쉬, 섹스 피스톨즈, 귀염둥이들) 그 어떤 초기 단계의 밴드가 그렇지 않겠는가? 결정적으로, 매닉스는 수많은 그들의 동료들(스톤 로지스, 샬라탄즈)과는 다르게 당황스러운 고스나 모드 혹은 테디보이였던 과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완전히 만들어진 상태로, 잘 정의된 미학과 분명한 지향점을 가진 채로 등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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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뒷편도 기대돼요~>_<
86년에 저 사인조가 봤다는 안토니 윌슨의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혹시 팩토리 레코드와 하시엔다 클럽 오너였던 토니 윌슨의 다큐 아닐까요? 다른 안토니 윌슨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윌슨은 하시엔다를 열기 전부터 그라나다 TV에서 앵커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나오거나 제작에 관여한 프로페셔널 다큐가 제법 많습니다. 80년대 인디음악 씬에서 무진장 중요한 인물인데.. 혹시 영화 24 hour party people 안보셨나요? 엄청 재미있답니다.
'Alright, Nick?' 하니 스미스 곡 중에 '다시 한 번 해야 될까, 스티븐(스트릿)?' 이라는 목소리가 녹음된 곡 생각나요~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올리는 사람이 속도를 좀 내야할텐데 말이죠 ㅠㅠㅋㅋㅋ
댓글 보고 찾아봤는데 안토니 윌슨의 펑크 다큐라고 나오는 게 유투브에는 이것밖에 없더라구요 http://durl.me/549c4z 마지막 크레딧에 1992년이라고 나와서 긴가민가 한데 그거랑 상관없이 그 전에도 방영이 되었던 건지는 모르겠네요.. 매닉스가 본 다큐가 이게 맞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마지막에 그라나다 티비 이름 나오는 거 보면 이건 그 안토니 윌슨 맞는 거겠죠..?! 'ㄱ' 안그래도 영화 얼마 전에 진짜 엄청 재밌게 봤었거든요ㅋㅋㅋ근데 이게 그 안토니 윌슨일줄은 생각도 못해봤네요!
스티븐까지만 보고 흠칫했는데ㅋㅋㅋ 그건 어느 곡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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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재미있어요~ 워터보이스 팬클럽 가입을 고려했던 제임스 ...ㅋㅋ 이거 읽고있으니 4인조 일당이 막 우리 동네 애들같이 정감간다니까요ㅎㅎ 리치의 대학생활도 그렇고.. 그치만 페이스대로 느긋하게 해주세용~
저 필름 맞지 않을까요? 토니윌슨이 그라나다 TV에서 음악쇼프로 진행자로 있을 때 소개했던 라이브푸티지들 모음 같은데요. 70년대말에 했던 쇼프로니까 86년에 채널4에서 모아서 방영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그거 "I Started Something I Couldn't Finish"인데, 노래 끝나고 'OK Stephen? ..Do that again?' 하고 물어보는 걸 그대로 실어놨어요.
그쵸ㅋㅋ 다음 번에 올리게 될 내용은 더 친근하고 정감가니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ㅋㅋㅋㅋ
아크릴릭문님이 그렇다 하시니 왠지 저거 맞을 것 같아요. 맞았음 좋겠기도 하구요ㅋㅋ 그 노래 끝에 그런 대화 부분이 있는지 댓글 보고 처음 알았어요! 꽤 좋아하는 노래인데 +_+!!
아.. 하루에 두 번씩 정독했어요.. 너무 좋아요.. 그리고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정말 훌륭한 번역!! (최고!!)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소소하고도 묵직한 감격이 몰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좋아하는 책을 한 번 더 읽을 때의 짜릿함도 있어요. 기타를 집어들기 전부터 이미 밴드였던 이들의 이야기란 정말!!!!
감사합니다 ;ㅇ; !!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ㅋㅋㅋ 전 이거 번역하느라 몇 번을 읽으면서도 이렇게 올려놓으면 읽을 때마다 새롭더라구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