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중서부의 광역시. 면적 954.53㎢. 인구 259만 4800(2003). 동쪽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김포시·부천시·시흥시·안산시, 서쪽은 황해, 남쪽은 충청남도 서산시, 북쪽은 개성직할시 개풍군·황해도 연백군에 접한다. 시청 소재지는 남동구 구월동.
1 역사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미추홀(彌鄒忽)이었고, 뒤에 고구려가 정복하여 매소홀현(買召忽縣)을 설치하였으며, 삼국통일 뒤 757년(경덕왕 16) 소성현(邵城縣)으로 개칭되어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1018년(현종 9) 소성현이 수주(樹州)에 소속되었고, 숙종 때는 경원군(慶源郡)으로, 인종때 인주(仁州)로 승격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원부(慶源府)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인 92년(태조 1)에는 인주로 강등되어 1413년(태종 13) 인천군으로 개편되었다가 60년(세조 6)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883년(고종 20) 조선의 개항으로 인천이 서양문물수입의 관문역할을 하게 되자 95년 인천부(仁川府)로 개편되었다가 96년 경기도 인천부로 되었다. 그 뒤 1949년 인천시로 개편되었고, 63년 부천군(富川郡) 작약도(芍藥島)를 편입하였다. 68년에는 동구(東區)·중구(中區)·남구·북구의 4개구를 설치하였다. 81년 직할시로 승격하였고, 88년 서구(西區)·남동구가 신설되었으며, 89년 김포군 계양면(桂陽面)과 옹진군 영종면(永宗面)·용유면(龍游面)이 편입되었다. 95년 <직할시>가 <광역시>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경기도 강화군·옹진군과 김포군 검단면을 편입하였다. 2003년 현재 10개 구·군과 1읍 19면 117동으로 되어 있다.
2 자연 잔구형산맥이 해안까지 발달해 있고, 시가지를 중심으로 300m 내외의 잔구들이 발달한 반도형 지괴가 시가지를 이루고 있다. 부평(富平)과 인천을 가로지르는 산기슭을 따라 계양산(桂陽山;395m)·철마산(鐵馬山;227m)·거마산(距馬山;209m) 등이 장벽처럼 둘러싸여 있고, 문학산(文鶴山;213m)·청량산(淸凉山;140m)으로 연결되는 잔구들이 높은 지세를 이루고 있다. 이들 산지 주변에는 넓은 침식 평탄면이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에 동·서·남류하는 작은 하천이 흐르며 그 주변에 낮은 충적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에는 폐쇄된 염전과 해안 매립지가 널리 분포되어 있다. 항구도시이지만 경기만 깊숙이 위치해 있어 기온과 강수량은 내륙과 큰 차이가 없다. 연평균기온은 12.84℃, 1월 평균기온은 -3.8℃, 8월 평균기온은 26.6℃이고, 연강수량은 1144㎜이다.
3 산업·교통 총면적 중 경지면적과 임야·염전 등의 면적은 도시 개발과 함께 계속 감소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감자와 채소 및 배·포도 등이 생산되며, 일부 농가에서는 양계·양돈·축우 등이 행해진다. 경기만 중심의 수산업은 어로·해수면양식·내수면양식 등이 성하고, 조기·갈치·새우 등이 많이 잡히며, 굴·백합·바지락 등이 양식된다. 특히 연중 어장이 형성되며 조기잡이철의 파시(波市)가 유명하다. 공업구조는 석유·정유업, 제 1 차철강재, 일반식료품, 중장비제조업 분야의 생산이 많으며, 자동차공업, 합판·가구제조업, 의복제조업, 전기기계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인천의 공업화는 한국수출산업공단 4·5·6단지, 도화동 기계공단, 주안수출입단지, 인천목재공업재단지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항만시설이 발달하여 공산품수출을 뒷받침하고 있다. 인천항은 내수면적 2.76㎢에 이르는 서해안 최대의 무역항이다. 조선 초기부터 제물포(濟物浦)라 일컬어지면서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1883년(고종 20) 개항되어 근대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외항인 월미도(月尾島) 서쪽 해면에는 항로를 겸한 묘박지(錨泊地) 29기가 있어 대부분의 대형선박은 이곳에서 해상 이중하역을 하고 내항은 제 1 잔교 전면 정박지로서 소형선이 정박한다. 제1∼3 부두는 잡화·원목·양곡, 제 4 부두는 컨테이너, 제 5 부두는 자동차, 제 6 부두는 잡화, 제 7 부두는 양곡, 제 8 부두는 고철·산물(散物), 남항은 시멘트·조선부두 등으로 전용부두화되어 있으며, 석탄 전용부두도 있다. 주요시설로는 접안시설인 안벽(岸壁) 5,910 m, 물량장 1,010 m, 잔교 9기가 있고, 외곽시설로서 방파제 1,073 m, 호안 3,139 m가 있다. 상업은 경인선과 경인국도의 개통으로 서울과의 유통시간이 단축되면서 인천의 독자적인 도매기능이 상실되었다. 교통은 경인선철도가 복선화되고 서울의 지하철이 경인선에 연계됨으로써 서울 도심부지역과의 직접 연계기능을 하고 있다. 연안해상교통의 중심인 연안부두에서는 영종·용두·대부(大阜)·영흥(靈興)·율도(栗島)·백령(白翎)·연평(延坪)·덕적(德積)·이작(伊作) 등지로 연안정기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또한 서해안시대와 국제화시대를 겨냥해 인천국제공항이 영종도·용유도로 유치되었다.
4 사회·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398년(태조 7)에 건립된 인천향교와 1702년(숙종 28)에 건립된 학산서원(鶴山書院) 등이 있다. 근대교육기관은 1892년(고종 29) 인천영화여학당(仁川永化女學堂)과 영화학당이 설립되었으며, 이어 부평공립보통학교·일신학교(日新學校)·인천사립박문소학교(仁川私立博文小學校)·제령학교(濟寧學校)·인명학교(仁明學校) 등이 건립되었다. 고등교육기관은 1954년 인하대학(仁荷大學), 62년 인천교육대학, 79년 인천대학이 설립되었고, 인천전문대학 등 5개의 전문대학이 건립되었다.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71개교, 중학교 90개교, 고등학교 94개교, 특수학교 6개교, 전문대학 6개교, 대학교 3개교가 있다(2001). 또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광역시 지부가 있어 제물포예술제를 개최하는 등 많은 문화예술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인천문화원도 각종 문화예술행사를 주관·지원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인천답동성당(仁川畓洞聖堂, 사적 287)과 무형문화재 남사당(男寺黨)놀이(중요무형문화재 3) 기능보유자 박계순(朴季順), 봉산(鳳山)탈춤(중요무형문화재 17) 기능보유자 양소운(梁蘇云), 강령(康翎)탈춤(중요무형문화재 34) 기능보유자 김실자(金實子)·김정순(金正順) 등 등이 있고, 신현동의 회화나무(천연기념물 315)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