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詩 - 뭉크 展
"질병, 광기, 그리고 죽음은 나의 요람 곁을 지켜준 검은 천사였다"
지금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표현주의 대표화가 에드바르드 뭉크 전이 열리고 있다. 2014.7.3-10.12까지 이미 3개월 이상 장기간에 걸쳐 열리고 있는 뭉크전을 폐막 직전에야 관람할 기회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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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드 뭉크와 영혼의 詩> 전시는 한국에서 뭉크의 작품을 대규모로 선보이는 최초의 회고전이다. '뭉크, 그 자신에 대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삶', '생명력', '밤'의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회는 유화를 비롯한 판화, 드로잉, 사진 등 백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뭉크가 전 생애에 걸쳐 제작한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참으로 귀한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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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대표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1863-1944)는 사랑, 불안, 고독, 슬픔 등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룬 주제를 작품에 담아 상징적으로 그려내었다. 표현주의는 19세기 말에 급진적으로 발달한 산업화와 전쟁의 기운 등으로 인한 세기말의 혼란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지자 작가들이 보여지는 그대로를 담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내적인 감정을 작품에 표현하게 됨에 따라 생긴 예술 사조이다. 표현주의 작가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과 시각을 과장되고 왜곡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작품에 담아 혼란스러운 시대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드 뭉크, 그리고 제임스 앙소르는 표현주의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다.
뭉크는 왜곡된 형태의 다채로운 색감을 통하여 내재된 감정을 표출하고 강렬한 영혼의 풍경을 완성하였다. 그의 독특한 기법은 현대 회화, 연극 및 영화 뿐 아니라 독일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13년에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뭉크미술관과 국립미술관에서 그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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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예술을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는 에로티시즘, 멜랑콜리, 사랑, 슬픔 등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밀도있게 표현해 내는 능력에 있다. 그는 기존의 회화적 관습을 거부함으로써 동시대 부르조아들과 보수적인 미술 평론가들을 도발하였고, 19세기 후반 유럽의 예술과 문학에서 일어난 모더니즘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예술은 강렬하고 역동적이며 연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전시작품들을 통해 전반적으로 드러난다. 이 전시의 포문을 여는 뭉크의 회화 <지옥에서의 자화상>은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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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가 삶과 죽음과 사랑에 관한 詩라고 표현한 <생의 프리즈>는 사랑, 삶의 불안, 죽음, 고독 등 인간이 지닌 여러 단면과 감정을 다룬 연작이다. 1893년 베를린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리즈를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1895년 <사랑> 연작을 중심으로 구성된 첫 번째 전시회를 시작으로 세상 밖에 알려졌다. <생의 프리즈>는 고독한 생을 살았던 그가 바라본 인간 본연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도 현대인의 어둡고 쓸쓸한 영혼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진실성이 깃든 작품들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때때로 위대한 예술가들의 여성 편력은 그들의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면에서 뭉크의 여성 편력은 전 생애에 걸쳐 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여성은 주로 남성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존재로 비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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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그의 여성관이 잘 나타난 <뱀파이어>에서 붉은 머리를 늘어뜨린 여성은 상대방을 포옹으로 감싸 안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는 무방비 상태인 남자의 목덜미를 무는 흡혈귀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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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작품 중 모든 표현주의적 요소가 응집된 작품이라 하면 해골에 가까운 형상을 한 인간이 양 귀를 틀어막은 채 고통스러워 하며 비명을 토하고 있는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불안과 공포의 상징적 아이콘이 되어버린 작품 <절규>일 것이다. 주인공의 얼굴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공포감과 대조적으로 저 멀리 앞서 가고 있는 두 친구는 뭉크의 말처럼 이 고통스러운 절규를 듣지 못하고 있다.
2012년 뉴욕의 소더비 경매장에 나온 뭉크의 <절규, 1895년 작> 파스텔 버전은 1억 1,992만 2,500달러(약 1,358억 원)에 낙찰되었다. 이 작품은 종전의 파블로 피카소 작품이 보유한 경매가를 갱신하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으나, 이듬해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 1969년 작>에 의해 그 기록이 깨졌다. 또한 뭉크의 <절규>는 도난사건으로 인해 그 유명세를 타고 국내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1994년 2월 오슬로 국립미술관의 <절규>가 도난 당한지 3개월 만에 되찾게 된 이후, 2004년 8월에는 뭉크미술관의 <절규>와 <마돈나>가 도난당한지 2년 만에 미술관의 품으로 돌아왔다.
에드바르드 뭉크는 그의 대표작 <절규>에 대해 작가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불현듯 우울함이 엄습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피로감에 멈추어 서서 난간에 기대었다.
검푸른 협만에 마치 화염 같은 핏빛 구름이 걸려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혼자서 불안에 떨며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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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는 종종 인간은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는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힘 없이 늘어트려진 긴 머리 여성의 누드로 보여주기도 하였다. 울고 있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슬퍼하는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고리버들 의자 옆의 모델>에서는 차가워 보이는 여인의 피부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붉은 의자 덮개가 고통스러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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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임박하자 뭉크는 <자화상, 시계와 침대 사이>를 제작하며 곱게 차려 입고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침대는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공간으로, 시계는 현재의 시간을 나타내는 모티프로 사용되어 현세와 죽음의 경계 사이에 서 있는 그가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살아 생전 죽음에 대한 공포로 늘 불안에 떨었던 뭉크는 시기별로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기록하기가 쉽지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마무리할 때까지 명철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들여다보았던 그는 가혹한 운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냈다. 본인의 자아를 잃지않고 오히려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예술혼을 불태우던 뭉크의 모습에서 늙고 힘없는 노인의 모습보다는 삶을 쟁취한 진정성 있는 작가의 모습이 엿보인다.(정리/임윤식)
*뭉크 전시장 내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음. 따라서 위 작품사진들은 전시장 밖 포스터 및 작품 도록에서 필자가 재촬영한 것이므로 사진이 실제작품과 다를 수 있으며, 일부 작품의 경우에는 크롭과정에서 상하좌우변이 약간 잘려나간 경우도 있음. 상기 해설은 <뭉크와 떠나는 미술관 여행> 도록에서 주로 인용,발췌하였음을 밝혀 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