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익(李相益)
1881년~1927년/향년46세
보재 이상설선생의 아우로 자(字)는 순좌(舜佐). 호(號)는 연재(淵齋). 신사(辛巳) 1881년 1월 22일생. 보성. 휘문. 중동중학교 교사
정묘(丁卯) 1927년 8월 11일 졸. 저서로 중등학교 수학교과서 근세대수가 전한다.
▲이상익선생 초상화
▲이상익선생 묘
◇묘역 소재지 :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산94번지(대한성공회 구파발 묘역)
묘역 진입로 : 관음사 좌측 벽을 끼고 대한성공회 묘역으로 약70m 위로 오르다 좌측으로 약 20m위치의 구릉지에 소재함.
●이상익(李相益)
생졸년 : 1881년(고종 18). 1월 22일 ~ 1927년 8월 11일,/향년 46세
자(字)는 순좌(舜佐), 호(號)는 연재(淵齋), 본관은 경주(慶州), 고려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 조선조 문신으로 임진왜란 이후 국방, 군사 분야에 많은 업적을 쌓은 장신형(將臣形) 전략가(戦略家)였던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 선생의 11대손이다.
아버지 선비 행우(行雨)와 어머니 참봉(參奉) 이승(李承)의 딸 벽진이씨(碧珍李氏)의 차남(次男)으로 오늘날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총명하였고, 성인이되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한 동량(棟梁) 들에게 근대 교육을 가르쳐야한다는 신념으로 서울에서 보성(普成), 휘문(徽文), 중동중학교(中東中學校)의 교사(敎師)를 역임하다 안타갑게도 1927년 8월 11일, 향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몸의 병약으로 운명했다. 장례는 대한성공회 서울본당에서 치뤄졌다.
배(配)는 신안주씨(新安朱氏) 영석(永奭)의 딸(1880~1959)이고, 저서로 근세대수(近世代數) 상.하권이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의 아우이기도 하다. 묘(墓)는 오늘날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산94번지의 대한성공회(大韓聖公會) 구파발 묘역내 부부 합폄(合窆)이다.(묘의위치는 관음사 좌측 벽을 끼고 약 70m 산을 오르다 길 좌측으로 약 20m 구릉지에 소재한다).
설하에 아들 관희(觀熙), 양희(亮熙), 완희(完熙)를 두었고 장자(長子) 관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처 총무과장과 오늘날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 초대방송국장을 역임했다.<끝>
執筆者 : 李在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