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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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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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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포면사무소 ☎ (063)582-0330 |
5일장 소개
지명의 포(浦)는 강가와 해안가에 선박이 드나들던 포구다.
동진강 하구 줄포만에 위치한 줄포항은 토사의 급격한 유입으로 항로가 제 기능을 못하자 항구의 역할을 이웃 곰소항으로 넘겼다. 70-80년 전의 줄포는 칠산 바다의 조기잡이 어선과 미곡을 가득 실은 배가 분주하게 드나들던 인구 2만명의 항구도시였다.
지금은 줄어 인구 4천명인 줄포는 중심가 2차선 도로변 좌우 200여m에 빼곡하게 들어서 상가들이 옛 번창의 흔적을 짐작케 하는 등 다른 지역의 면소재지와 다르다는 느낌을 들게한다.
철물점. 옷가게. 음식점. 다방. 농약. 종묘상. 의원. 약국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웬만한 생활 필수품을 구입하려고 부안읍까지 나가야하는 불편은 겪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특히 장날이면 옛 장터 자리에 들어선 장옥 건물 안에 순댓국 집과 국숫집 등이 문을 열어 장꾼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주고 새참 거리로는 장터 갯장어 구이집의 막걸리 한잔이 제격이다.
"골라잡아 단돈 천원"이라고 목청껏 외쳐대는 방물장수, 바지 저고리 한 벌에 1만원씩이라는 노점 옷가게, 좌판 어물전, 화물차 적재함에 펼쳐진 농자재 등 일단 걸음을 멈추고 둘러보면 지갑을 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울어 난다.
다만 푸성귀 몇 다발을 내놓고 쭈그려 앉은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몫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백 리 새벽길을 달려온 젊은 부부의 피곤한 얼굴 등에서 줄포장은 풍성함과 함께 고단한 삶들이 뒤엉켜 있었다.
'줄포는 항구였다'
1875년에 개항된 줄포는 제물포. 군산.목포와 함께 서해안 4대 항이었다. 구 한 말에는 칠산바다의 풍부한 어자원의 영향으로 사 금융을 겸한 객주라 불리는 대상 5-6명이 진을 치고 있어 줄포는 그야말로 성시를 이뤘다. 일제 강점 이후 30여 년 간 줄포는 일본인 업소가 30여 개소, 중국인 포목상 등이 10여 개소에 달했고 유흥업소도 명월관, 달성관, 장춘관 등 5-6개나 돼 가무 음곡이 그치지 않았다.
줄포의 쇠락은 토사 유입으로 인한 항구기능의 저하로부터 시작됐다.
1932년 경찰서의 부안읍 이전과 45년 농산물 검사소와 식산은행 철수, 58년 공소항 개항과 더불어 어업조합. 부두노조 이전 등으로 이어졌다. 물류의 중심이였던 줄포가 항구기능의 쇠잔과 함께 공공기관 이전으로 인구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줄포의 지금은 배가 드나들던 항구 주변이 갈대로 우거져 자연 생태공원으로 거듭났고 면내에 농공단지가 들어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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