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클럽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 총 별점: 4점(5점 만점)
: 한국추리문학상 단편 수상집인 황금펜상 수상 작품집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몇 편의 매력적인 작품들이 반가웠지만, 구시대적인 낡고 혐오적인 상상력을 노출하거나 기시감이 느껴지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작품도 있다.
#표지 및 편집, 디자인: 4.5점
- 깔끔한 색감의 표지디자인과 통일성 있고 감각적인 화이트, 블랙, 그레이의 내지디자인에 눈길이 가는 반면 여유 공간이 꽤 적은 상단의 내지구도가 불안정하고 답답했다.
#내용: 3.5점
- 역사의식과 현실을 적극 반영하여 감동과 패러디가 통쾌한 단편이 있는가하면 여성혐오와 성적유린의 낡은 클리셰나 제노포비아, 기시감을 주는 단편들은 불편했다.
#가격: 4점
-17,000원으로 평론까지 합쳐 330쪽에 달하는 데다 7편의 추리소설을 만나는 기쁨을 생각한다면 적정 가격이다.
2. 작품별 감상
1) 수상작 <해녀의 아들>, 박소해
“아버지, 그냥 들어줍서. 나는 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끝까지 살아주셔서 고맙수다.”
#제주 4.3 민중항쟁 소재
-70년 전 4.3 속으로 시간여행하며 국가권력이 국민을 학살한 전무후무한 비극 반영
-2년여의 자료조사, 실제 해녀 가족 인터뷰, 정방폭포 학살 사건 생존자 및 유족의 증언
-일부 장면의 잔혹성: 실제 사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
-미스터리만이 해낼 수 있는 해원굿으로, 생존자와 유족들이 살아계실 때 억울한 원혼을 풀고 싶었다.
*제주지역어의 맛을 생동감 있게 살렸다
-제주지역어는 외국어라는 편견을 말끔히 걷어냈다
-몇 개 단어만 미주로 썼는데도 문장 해독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는 게 놀랍다
-마지막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가 감동적이다
*제목이 해녀의 아들인데, 해녀의 역할은 부수적인데 비해 아들과 아버지의 서사에 집중되고 남녀 간 치정사건을 주축으로 마무리된 게 많이 아쉽다.
2) 우수작 1. <죽일 생각은 없었어>, 서미애
“그래, 비가 내리는 순간 참을 수가 없었던 거지. 주희는 곧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깨달았다. 운전석에 올라탄 주희는 조용히 차를 몰아 자신만의 숲으로 향했다. 주희는 숲으로 가는 동안 할머니를 떠올렸다. 누구에게나 세상을 살아가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고 했던가?”
#팜파탈의 이미지를 씌운 악녀가 아닌 본투킬 살인마 여성 빌런의 탄생
#주인공을 둘러싼 세상의 폭력성
: 평범한 여성들이 늘 마주하는 현실
-무례한 시선
-애정을 가장한 일방적인 집착
-상습적이고 일상화된 성희롱
-택시를 타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현실
*타고난 스토리텔러로서의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 매력적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을 보듯 명쾌하고 빠른 전개가 돋보인다
*독자를 매혹해서 끝까지 멱살 잡고 끌고 가는 필력이 탁월하다
3) 우수작 2. <40피트 건물 괴사건>, 김영민
“그 건물은 예전에 곡식 창고로 쓰였는데 마을 남자들이 거기에 어린 여자애를 가두었어. 정신이 오락가락했거든. 1년 전쯤.”
#대학부 사진 동아리 ‘난사’ 회원 셋이 기암절벽 사진 실패 후 40피트 건물에 주목
*끼워 맞춘 듯한 추리로 주인공 남성만 천재로 부각시킴
*영화 <이끼>에서 마을 남성들이 불우한 여성을 지속적으로 성적 유린하는 장면이나 올해 1월의 장흥 지적장애소녀에 대해 마을 남성들이 수년간에 걸쳐 집단 성폭행한 사건 등으로도 모자라서 <40피트 건물 괴사건>에서 또 지적 장애 여아를 향한 성적학대를 활용하고 그 사실을 안 다른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하며 술김에 후회한다는 공모자가 죄 값을 받지 않고 자살한다는 결말을 내리고 싶은가.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기술하는 파렴치한 클리셰를 더 이상 보거나 읽고 싶지 않다!!! 제발 창의적인 상상을 하라.
4) 우수작 3. <꽃은 알고 있다>, 여실지
“엄마는 구역 모임 때마다 박씨 할머니가 준 매실차 대신 자히르가 준 꽃차를 내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차를 마시면서도 할머니들은 집 안에 약초 냄새가 난다고 좋아했다. 엄마는 외국 향료 냄새가 난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는데, 나는 어딘가 모르게 매캐한 냄새가 상한 고기 냄새를 덮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변에 만연한 ‘섬뜩함’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된 이야기
#가정과 사회의 불가항력적 몰락
*“작가의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
-불법체류와 마약법 위반 사범인 파키스탄인 자히르 소하일의 존재를 제노포비아로 보지 않으려면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한국 정부의 경직된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고용연장제도의 문제점도 함께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군식구와 집주인 등 관계의 아이러니가 아니다. 표현이 잘못됐다. 군식구란 원래 식구 외에 덧붙어서 얻어먹고 있는 식구라는 의미로, 자히르는 처음에 엄연히 월세를 내는 세입자로 들어왔다. ‘군식구’가 아니라 월세 세입자로 표현해야 한다.
5) 우수작 4. <연모>, 홍선주
“오민우씨. 나, 당신을 갖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9년 동안 당신을 무사히 지켜내면서 당신이 거절할 수 없을 만한 상대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앞으로도 당신에게 나만 한 상대는 다시 없을 거라고 장담해요. 어때요? 이 정도면 내가 당신을 가져도 되지 않아요?
소형이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건지, 단순히 소유하고 싶은 마음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본질이 무엇이든 10년 가까운 시간을 이토록 집요하게 노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
#작가의 변: 보통은 피하려고 하는 여러 요소(사랑, 서술 트릭, 반전에 반전 등)를 결합, 마이너한 장르에 대한 덕질의 소산으로 탄생한 이야기
*진단 기준이 불명확한 반사회성 인격 장애를 소재로 한 서사의 개연성 부족
*남녀가 바뀐 구원서사를 한 번 더 비튼 뜬금없고 억지스런 전개의 연속
*상대의 감정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만을 키우며 사랑으로 밀어붙이는 장기 계획형 스토커를 ‘노력’이라는 미명하에 포장할 위험성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단순 구별로 인한 편견의 위험 및 천직을 버리면서까지 일방적으로 희생한 어머니의 교육과 훈련의 강조가 낳은 아버지 부재라는 양육 편향성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 따르면,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정식 진단명이 아니라서 우울증, 조현병처럼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둘의 구별이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통칭한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반복적 범법 행위 △충동성 △기만(거짓말, 가명 사용) △분노·공격성 △무책임 △죄책감 결여 등이 특징을 보이지만, 지속적인 상담과 관찰을 통해 이러한 성향을 보인다고 조심스런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출처: 동아일보>IT/의학>“평범한 일상 속 ‘사이코패스’가 조직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최고야 기자 2023-12-02)
-정신건강의학과 질병을 분류해놓은 표인 DSM-V에 따르면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다음 7가지 중 3가지 이상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1. 법이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2.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속인다
3. 충동적이고 무계획적이다
4.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다
5. 자신과 상대방에 안전에 대해 무감각하다
6. 무책임하고 경제적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
7.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출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이야기/[정신건강칼럼 3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강사 최병일)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매우 희귀한 종자로 여기면서, 우리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면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다소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통념이다. 사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임상적 진단이 아니라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진단 범주에 속한다. 또한 정신질환과는 결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악마’라고 치부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그들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반사회적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식별할 수 있다. 『우리 속에 숨은 사이코패스』는 범죄학자 이윤호 교수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본질과 그들과 함께 하는 우리들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나 기준으로 사회가 어지럽지 않았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쓴 책이다. 더 이상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하고도 상관있는 사람들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우리조차도 그러한 성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출처: 교보문고>사회일반서><우리 속에 숨은 사이코패스 정상의 가면을 쓴 그들의 이야기>, 이윤호/도도)
6) 우수작 5. <팔각관의 비밀>, 홍정기
“지금부터 추리 타임이다.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봐왔던 추리소설로 습득한 지식을 내 독살사건에 쓰게 될 줄이야. 아이러니하지만 온몸의 피가 들끓었다. 추리소설 마니아였던 만큼 일생의 마지막 추리를 정확하게 맞추고 싶었다. 나는 소거법으로 범인을 찾아내기로 했다. 소거법은 모든 단서를 샅샅이 검토해 그중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가설을 차례로 배제하는 추리 기법이다. 나는 곰곰이 사건 직전의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기로 했다.”
#근래 인기를 끌고 있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 장르 작품
#아야츠지 유키토의 전설적인 명작 《십각관의 살인》에 대한 오마주 작품
#팔각관에서 펼쳐지는 독살사건의 범인을 피해자가 직접 추리해나가는 이야기
#사건의 핵심트릭인 ‘리퀴드해쉬’라는 기술을 참고해 창작
#실존하는 신기술로 트릭을 만들어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허상의 어릿광대》에 감명 받아 도전
*재벌집 막내아들의 설정이 떠오르는 기시감
*몰입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서술
7) 우수작 6.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송시우
“김윤주는 촉법소년 연령을 잘못 알고 있었다.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고 보호처분에만 처할 수 있는 촉법소년의 범위는 만 14세까지인데, 김윤주는 미성년자가 곧 촉법소년인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상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다. 죽여도 처벌받지 않을 테니까. ”치치가 그런 거예요! 형사님!“ 김윤주가 엎드린 채로 소리쳤다.”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201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초등학생 유괴.살인사건을 직접적인 소재로 삼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작품
#창작자의 윤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 초고를 통째 버리고 다시 썼다
#다양하고 극단적인 악인의 내면을 추측했다
*복선을 곳곳에 배치하여 긴장과 몰입감을 높인다
*경찰과 피해자 간 밀고 당기는 심리싸움도 볼 만하다
*트위터 기반의 ‘하드고어 커뮤 마니아’ 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설정도 무리 없이 읽힌다
3. 추천의 변
#이런 사람에게 추천한다
-추리소설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
-이야기 속 반전과 스릴러를 좋아하는 스토리 광인
-다양한 소재의 최근작 추리소설을 찾는 사람
-추리소설 창작자
4. 후루룩 서평
우수작 6편과 수상작 포함, 총 7편의 추리소설을 경험할 수 있는 신나는 기회다. 수상작부터 읽어도 좋고, 제목을 보고 끌리는 취향에 따라 무작위로 읽어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매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주목하지만 다 읽지 못했는데, 서평을 올리라고 출판사가 제공한 책이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한국추리문학상이 황금펜상이라는 것과 단편에 주어지는 상이라는 사실, 그리고 역사의식과 젠더의식을 가진 스토리에 몰입력을 높이는 작가를 만난 기쁨도 컸다. 박소해 작가와 서미애 작가, 송시우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겠다. 특히 서미애 작가의 다음 행보를 즐거이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