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2차 보고서
201712485 성시헌
영월의 생업
영월 5일장 – 덕포 5일장을 중심으로
3. 영월 가옥
4. 영월 축제
영월의 생업
농업
영월군 사업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약 4천 가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총 농가 인구는 7743명이다.(총 인구 3만 7천여명) 경지면적은 논 461 헥타르, 밭 5623헥타르이다. 식량작물 생산량은 미곡이 1837톤인데 반해 잡곡류가 3494톤, 두류와 서류가 각각 1085톤, 1811톤 생산되고 있다. 잡곡의 생산량은 옥수수가 가장 많다.(3060톤) 인구는 영월읍에 대부분 몰려 있으나 작물생산량은 주천면(3천여 명)이 영월읍의 2배 이상 많다. 영월 농업 생산량의 대부분은 주천면에 집중되어 있으나 배추 생산량은 주천면이 8168톤, 남면이 30713톤으로 크게 차이난다. 또한 상동읍은 천명 남짓한 작은 읍이지만 약 7천톤에 가까운 배추가 매년 생산되고 있다. 이는 영월 남쪽에 위치한 고위평탄면을 통한 고랭지 농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광업
농업 이외의 산업으로는 광업, 제조업, 건설업, 숙박 및 음식점업 등이 대표적이다. 광업의 경우 1970년대까지 대표적인 사업이었으나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후 크게 쇠퇴하여 현재 428명 만이 종사하고 있다.
제조업
제조업, 그 중에서도 비금속 광물제품 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비금속 광물제품이란 유리, 요업제품, 시멘트, 석회 및 플라스틱 등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현대시멘트 공장이 영월에 위치하고 인접한 제천에서 석회석 가공을 통한 시멘트 생산공장을 대거 확충해 온 것으로 보아 시멘트공장의 비중이 크게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서비스업
숙박업의 경우 2000년대부터 증가 폭이 가장 큰 것으로 보아 영월군이 관광도시를 표방하며 관광객 유입이 늘어나자 성장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에너지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탄전도시 영월은 1980년대 석탄산업 합리화정책 이후 불황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영월군이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영월 박물관고을특구 육성사업’이다. 영월 박물관고을특구는 박물관고을 조성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특색과 색다른 테마가 어우러진 생태·문화 박물관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이른 바 지붕 없는 박물관을 표방하면서 지자체와 박물관 설립자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장려한 결과, 에코 뮤지엄으로서의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또한 관광객이 피서철인 7월, 8월에 치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강을 필두로 래프팅, 패러글라이딩 같은 레저 스포츠가 관광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2. 영월 5일장 – 덕포 5일장을 중심으로
영월 5일장 개요
오일장(五日場)은 닷새마다 열리는 전통적 방식의 시장을 의미한다. 한국 역사상 근대의 상설 시장이 들어서기 이전까지 가장 중요한 상거래 장소였으며, 문화교류의 주무대였다. 조선 전기 무렵엔 보름이나 열흘, 닷새, 일부지역에선 사흘에 거쳐 열리는 등 지역마다 장이 서는 기간이 판이하게 달랐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 오일장이 일반적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상설시장의 등장과 각종 상업의 발달로 대도시에서 오일장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 각지에서 오일장은 찾아볼 수 있으며 이것은 강원도 영월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영월엔 현재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주천 오일장과 덕포 오일장이 열리고 있다.
인근 지역 오일장과의 관계
덕포 오일장은 4일과 9일에 열리는 장이다. 오일장을 설명할 때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인근 지역의 오일장 날짜이다. 영월과 가장 가까운 제천과 평창의 오일장 날짜가 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먼저 영월과 문화권을 공유한다고 알려진 제천의 오일장은 3일과 8일에 열린다. 한편 평창에선 5일과 10일에 장이 열린다. 제천으로부터 시작해 영월과 평창으로 가는 일종의 상업루트가 생기는 셈인데, 이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가 되었던 평창-영월-제천의 루트와 같은 것이다. 실제로 이 세 지역이 협력하여 장돌뱅이 루트 사업(2013년 시행)을 통해 오일장 활성화를 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오일장이 단순히 지역의 사안이 아니라 그 인근 지역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오일장이 물품의 거래를 넘어서 문화의 왕래나 교류를 포함한다고 생각했을 때 영월-평창-정선이나 영월-제천 간의 동질성을 어느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입지
소재지는 강원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 486-28번지이다. 영월역의 바로 앞에서 열리고 있어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아무래도 영월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장날이라면 누구든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차공간이 여의치 않은 다른 시장들과 다르게 영월역 인근에 넓은 공영 주차장이 있기 때문에 주차 또한 용이한 편이다. 다만 영월읍내 자체가 교통량에 비해 도로가 좁고 골목길이 많기 때문에 지리에 밝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소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덕포 오일장에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뒤편 동강의 존재다. 시장이 강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시원하게 흐르고 있는 동강과 절벽을 볼 수 있다.
판매품
판매되는 품목은 영월의 특산물인 콩, 고추, 감자, 더덕, 묵나물, 도토리묵 등에서부터 옛날 농기구 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을 정도로 여러 물건이 즐비하다. 봄이면 영월 각지에서 채집 된 냉이, 달래, 참나물, 곰취, 중댕가리 등 각종 산나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4~5월이 제철인 두릅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을만큼 흔히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찰강냉이와 감자, 올창묵, 꼴뚜 국수 그리고 동강, 서강, 주천강에서 잡은 민물고기, 다슬기 등이 인기가 높다고 한다. 가을에는 고추, 콩, 팥, 강냉이 등 각종 농산물과 머루, 다래, 산초 등 산열매들이 판매되며 겨울에는 메밀 부치기에 곁들인 강냉이가 판매된다다. 영동의 오일장처럼 해산물 판매대가 많거나 규모가 크진 않지만 해산물을 취급하는 상점도 소수 있다. 어제 잡은 오징어도, 고등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징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기존에 생각하던 전통시장의 ‘저렴함’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 야채(특히 상추)를 제외한 품목들은 대부분 인근 마트 가격과 비슷하거나 높았다. 이미 대다수 생필품과 식료품이 전국적으로 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전통시장 판매자들의 입장에서 그들보다 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긴 힘들어 보인다. 특히 건어물, 해산물 판매량이 낮은 것은, 특출나지 않고서야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해산물을 사는 것이 더 빠르고 신선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해 전통적인 시장(오일장)이 프렌차이즈 마트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제품들이 주로 판매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오일장에 방문한 대다수 사람들이 프렌차이즈 매장에서 판매되지 않는 작물 모종이나 묘목을 찾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인들의 이동
판매품 | 출신 | 이동 경로 | 비고 | |
김OO | 과일 | - | 영월-평창-횡성 | 휴일은 X |
신OO | 돼지고기 | 동해 | 영월-평창 or 정선-동해 | 상황에 따라 유동적 |
최OO | 건어물 | 대구 | 영월-정선 or 삼척-강릉 | 주말X |
상인들 개개인들이 이동하는 장이 판이하게 다르다. 흔히 장돌뱅이라고 부르는 말처럼 상인들이 장날을 골라 지역을 순환하듯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론 개인 사정에 따라 빠지거나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평창에서 만난 김OO씨는 29일 영월에서, 30일 평창에서 뵐 수 있었는데, 평소라면 근처에서 가장 큰 장이 열리는 횡성으로 갔으나 일요일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20년 째 장을 돌며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신OO씨는 본래 동해 출신으로 영월에서 평창, 정선으로 이동한다. 이번엔 정선 임계장으로 이동할 것이며 그 이후는 그 때 상황을 보고 정하고 싶다고 밝혔다. 건어물을 판매하는 최OO씨는 정선으로 이동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그 다음날은 주말이라 쉰다고 밝혔다. 제천-영월-평창이라고 알려진 장돌뱅이루트가 있긴 하지만 실제론 변수에 따라 훨씬 다양한 루트가 있었다. 날씨에 따라(덕포처럼 실내 공간이 없는 곳이라면 우천시 판매량이 급감할 것), 휴일이나 주말에 따라, 장이 서는 규모에 따라 상인들의 이동이 판이하게 달랐다. 더구나 구태여 인접한 지역이 아니더라도 큰 장을 찾아 더 멀리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3. 영월 가옥
영월 북쌍리 고택
영월 북쌍리 고택은 건축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전해지는 말로는 100년 이상 된 집이라고 한다. 1985년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집주인의 이름인 ‘우구정’을 붙여 영월 우구정 가옥이라고 하였다. 그러다 2017년 11월 17일 강원도고시 제2017-47호인 「강원도 지정문화재(전통가옥) 지정명칭 변경고시」에서 강원도 문화재 보호 조례 제15호와 제20조의 규정에 “고택의 내력 등 근거를 잘 알 수 없는 집으로서 ‘소재지, 마을명, 고택’ 사용”에 따라 “영월 우구정 가옥”에서 “영월 북쌍리 고택”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영월 북쌍리 고택의 사랑채는 여러 해 전에 화재로 인해 훼손되었다가 2000년과 2001년 안채의 훼손된 부분과 더불어 보수공사를 진행하여 현재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이다. 현재는 우구정의 아들 내외가 집을 물려받아 한옥 숙박을 하고 있다.
영월 북쌍리 고택은 앞산 아래에 하천이 흐르고 고택 주변에는 논밭이 있는 좋은 입지에 자리하고 있다. ‘ㄱ’자 형식의 안채와 ‘ㅡ’자 형식의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영서 내륙지방 민가의 형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과 부엌이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건넌방이 있어 ’ㄱ‘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건넌방의 경우 채난(採暖)은 안마당 쪽으로 내고, 측면에서 방을 출입하게 한 점이 눈에 띈다. 자연석 기단에 대청 중앙의 기둥만 굵은 원주를 세운 점도 특이하다. 대문과 함께 조성한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된 ’ㅡ‘자형 건물이다. 전면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대문의 왼쪽으로 방과 마루가 나란히 이어져 있다. 대략 80㎝ 정도 높이의 자연석 기단과 덤벙주초 위에 방주가 사용되었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조성되어 있다. 헛간채는 후에 증축된 건물로써 전체적인 가옥의 구성형식 으로 보아 이 가옥은 영서지방의 전형적인 전통민가로 볼 수 있다.
영월 창원리 고택
2017년 11월 17일 강원도고시 제2017-47호인 「강원도 지정문화재(전통가옥) 지정명칭 변경고시」에서 강원도 문화재 보호 조례 제15호와 제20조의 규정에 “고택의 내력 등 근거를 잘 알 수 없는 집으로서 ‘소재지, 마을명, 고택’ 사용”에 따라 이 집은 “영월 고진하 가옥”에서 “영월 창원리 고택”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영월 창원리 고택은 산을 등지고 도로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붙은 ‘ㄷ’자형의 평면과 ‘ㅡ’자로 된 행랑채 등이 조화를 이룬 튼 ‘ㅁ’자 형태의 집이다. 전면에 ‘ㅡ’자로 들어선 헛간채와 사랑채가 판벽으로 연결되어 가옥 전면을 구성하고 있다. 사랑채는 한 단 낮은 기단과 자연석 초석 위에 방주를 세운 오량집이다. 사랑채는 문간방, 사랑, 부엌, 2칸 사랑방, 1칸 큰 마루가 연속적으로 배치된 ‘ㅡ’자형으로 도로와 직교하며 배치되어 있다. 툇마루와 함께 마루를 구성하고 있는데, 전면에 문이 없는 창이 인상적이다.
안채는 자연석 기단과 자연석 초석에 방주를 세운 오량집으로, 홑처마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2칸 규모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건넌방, 그 오른쪽에는 윗방, 안방, 부엌을 직각으로 배치하여 ‘ㄱ’자형의 평면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영서 중부지방의 민가 형식이다. 대청의 후면 벽에는 2짝 여닫이 널문이 있으며 외부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행랑채는 대문간을 중심으로 왼쪽에 문간 사랑방을 배치하고 오른쪽에 헛간과 외양간을 두어 ‘ㅡ’자형 평면 형태를 취하고,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영월 창원리 고택은 1995년에서 2001년에 걸쳐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영월 창원리 고택은 대부분 목재가 튼실하며 이를 자연스럽게 이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 각각의 채를 연결하고 사이에 판자벽을 설치하여 내부 공간의 기밀성과 연결성을 꾀한 점이 시선을 끈다.
조견당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소재지에 있는 김종길 가옥이다. 이 가옥은 구한말 순조 때 처음 지어진 집으로 ‘ㄱ’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되어 있는데 안채만 원래 있던 건물이며 나머지는 최근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 툇간을 달아내어 방, 부엌, 광 등을 배치하였고 오른쪽에 방과 광을 두었다. 영서지방의 ‘ㄱ’자형 가옥배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에 담장을 허물고 문간채와 사랑채 등을 신축하는 등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4. 영월 축제
삼굿 축제
효를 실천하고 예와 전통을 소중하게 이어가는 영월 삼굿 정보화마을은 예부터 버드나무가 많다고 하여서 유전리라 불러온 마을로서 50여 가구에 120여명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태백산자락에 위치한 아담하고 자그마한 마을이다. 마을이 형성된 것은 영월신씨 및 김영김씨 일가가 정착한 시기인 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삼굿 마을은 약 350여 년전에 모셔진 성황당과 부모님께 효를 기본으로 실천하는 마을로서 매년 설날에는 마을 어른들께 모든 출향인과 동네분들이 경노당에서 합동세배를 올리는 등 옛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산촌마을이기도 하다. 산촌사람들의 생활을 도시민들이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매년 9월말 “송이따기 체험 및 삼굿 축제”를 개최하고 있고, 앞으로 전통문화를 발굴 보존하는 마을로 도시민들이 흙과 함께하는 농촌생활 체험과 “삼굿” 재현을 주 테마로 재현하고 있다.삼굿 축제에서는 전통혼례식, 삼굿 시연, 사투리 경연대회, 옥수수 엿 만들기 등 많은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동강뗏목축제
옛날 한강을 따라 한양까지 운반되던 동강뗏목은 철도 등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연료사용이 장작에서 연탄으로 바뀌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월군은 1960년대까지 남한강 상류지역 주민들의 생활수단이자 교통수단이었던 뗏목을 통해 숱한 사람들의 땀과 애환이 배어있는 삶의 모습을 재현하여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취지에서 매년 8월 뗏목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동강 둔치와 동강 일원에서 진행되며 옛날 뗏목이 남한강 상류 지역 주민의 교통, 생활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을 재현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며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함이 목적이다. 축제에 마련된 행사에는 개막행사, 공연행사, 체험행사, 시연행사, 부대 행사 등 가족 단위의 체험관광이 주를 이룬다. 특히 체험행사에는 맨손 송어 잡기, 래프팅 등을 할 수 있다. 또 시연행사에서는 전통뗏목과 삼굿을 만나볼 수 있다. 아름답고 깨끗한 동강과 어울리는 강, 산, 자연을 주제로 가족, 동호인을 위한 체험관광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열리는 영월 동강 축제는 2일간 개막식 행사, 공연행사, 레포츠대회, 체험, 모험행사, 시연행사, 전시행사, 부대 행사로 꾸며져 가족 단위 체험관광 축제로 알려져 있다.
동강국제사진제
동강 국제사진제는 사진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사진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축제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과 동강 사진상 수상작을 비롯해 강원도 영월 태생 사진가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매년 특색있는 작업이 선보인다. 특히 축제 초반, 내로라하는 사진가들의 강의로 진행되는 워크숍은 미리미리 신청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동강 국제사진제는 동강 사진박물관, 학생체육관, 영월문화예술회관 등 영월군 일대에서 펼쳐진다. 영월에서 즐기는 사진 여행은 70여 일간 계속되며 동강에서 사진전을 통해 감성을 적시는 여름을 보낼 수 있다. 동강국제사진제는 지방 소도시에서 열리는 축제의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며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전을 통해 사진예술전시행사의 수준을 넓히고, 동시대 예술인의 철학적 중요성과 작가 및 관람자의 구성적 관점을 폭넓게 탐구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영월 동강 국제사진제는 매년 여름이면 시원한 동강이 흐르고 있는 영월로 휴가를 즐기러 오시는 관광객과 사진작가들로 활기가 넘친다. 사진제는 프로사진작가들의 사진부터 영월의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다양하게 전시를 하고 있어 다양한 감성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단종문화제
단종제(端宗祭)는 조선제 6대 임금인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축제로 승화시킨 영월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제이다. 1967년에 "단종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축제는 1990년 제24회 때부터 "단종문화제"로 명칭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행사시기는 원래 매년 4월5일 한식일을 전후하여 3일동안 계속 되었으나, 한식무렵이면 날씨가 고르지 않아 방문객편의를 위해 2007년부터 매년 4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3일간 행사를 치르고 있다. 단종문화제는 평창, 정선 주민들은 물론 인근 경상북도, 충청북도 군수들까지 참배를 하였고 조선시대 국장재현, 칡줄다리기, 가장행렬, 정순왕후 선발대회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원래 조선조 6대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추방, 다시 서인으로 되어 1457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한 많고 애달픈 일생을 마친 역사와 그 사적을 추모하고 기린다. 숙종 24년(1698년) 이후 270년 동안 제향(祭香)만으로 그치던 것을 1967년 지방 유지들과 관의 뜻을 합쳐 각종 문화행사를 겸한 향토문화제를 거행하기로 하고 날짜는 제향(祭香)을 올리던 한식일로 잡았다. 단종제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 즉 충의를 실천궁행(實踐躬行) 사육신과 생육신의 이상을 실현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실제 객지에 장기간 다녀오면 으레 단종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있어 군민의 충효사상을 고취하는 교육의 지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삿갓문화제
해학과 풍자의 시선(詩仙)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혼을 추모하고,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개최되는 축제이다. 김삿갓은 조부를 욕되게 하는 시를 쓴 자책감으로 평생 전국각지를 떠도는 방랑생활을 하며 서민들의 애환과 양반들의 잘못된 생활상을 시로 옮겼다. 그러한 김삿갓의 문학상을 엿볼 수 있는 김삿갓문화제는 매년 10월 초순 김삿갓 묘역이 있는 영월 김삿갓유적지 일원에서 펼쳐지는데, 이곳은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3년 조성된 유적지로 김삿갓의 묘와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주거지,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를 느껴볼 수 있는 김삿갓문학관과 시비공원 등이 갖추어져 있다. 행사장에서는 개막행사와 각종 공연을 비롯해 추모제, 고유제, 헌다례 등의 추모행사와 김삿갓이 관풍헌에서 과거응시를 재현하는 전국한시백일장과 시화전시, 전국휘호대회 등의 문화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김삿갓문화제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 난고(蘭皐) 김삿갓(본명 병연(炳淵), 1807~1863)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김삿갓유적지 일원에서 개최되며 개막식에서는 추모행사의 하나로 전통예절의 6법공양 헌다의식이 김삿갓묘역에서 진행된다. 축제현장에서는 인절미 떡메치기 및 떡나누기를 비롯해 짚풀공예, 민화판화체험, 대장간체험, 전통혼례복식, 민속놀이 등의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돼 풍성한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리미노이드화
단종문화제와 김삿갓문화제는 본질적으로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한 전통적 의례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리미널한 공간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미널의 공간은 근대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개인적인 여가 활동의 의미가 강한 리미노이드화를 피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리미노이드화로 인해 일상적이고 권위적인 구조들과 의례가 점차 파괴되어 간다는 것이다. 단종문화제가 행해지는 장릉은 조선의 왕으로서도 한양에 묻히지 못하고 저 멀리 영월이란 곳에 매장되어야 했던 단종의 애환을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입구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들, 그 옆에 마련된 관광버스용 주차장들은 장릉을 역사적 장소보다는 관광지로 인식되게 한다. 또한 단종문화제에서는 단종대왕을 위한 제향을 올리는 한 편 행사 전후로 지역 예술인을 초청하여 음악회와 축하공연이 행해진다. 관광자의 입장에서 흥겨운 노래와 음악에 이어서 치러지는 단종제향은 제사의 이미지보다 행사의 한 절차로 인식될 것이다. 실제로 2021년 4월 30일 행해진 단종제향에서는 웃고 떠들고, 술과 먹을거리가 가득한 일종의 콘서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더욱 노골적인 것은 단종문화제의 일시다. 본래 한식일을 전후로 치러졌던 단종제지만 ‘고객의 편의를 위해’ 금요일부터 3일간, 즉 주말에 치러지는 것은 기존의 맥락에서 벗어나는 한이 있어도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겠다는 의지가 옅보인다. 폐광 이후 지역 부흥을 관광으로 이끌어내고자 했던 영월군에서 관광객들에게 소구효과를 자극하는 단종제가 관광과 융합되는 것은 아마도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201712485 성시헌
영월의 생업
영월 5일장 – 덕포 5일장을 중심으로
3. 영월 가옥
4. 영월 축제
영월의 생업
농업
영월군 사업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약 4천 가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총 농가 인구는 7743명이다.(총 인구 3만 7천여명) 경지면적은 논 461 헥타르, 밭 5623헥타르이다. 식량작물 생산량은 미곡이 1837톤인데 반해 잡곡류가 3494톤, 두류와 서류가 각각 1085톤, 1811톤 생산되고 있다. 잡곡의 생산량은 옥수수가 가장 많다.(3060톤) 인구는 영월읍에 대부분 몰려 있으나 작물생산량은 주천면(3천여 명)이 영월읍의 2배 이상 많다. 영월 농업 생산량의 대부분은 주천면에 집중되어 있으나 배추 생산량은 주천면이 8168톤, 남면이 30713톤으로 크게 차이난다. 또한 상동읍은 천명 남짓한 작은 읍이지만 약 7천톤에 가까운 배추가 매년 생산되고 있다. 이는 영월 남쪽에 위치한 고위평탄면을 통한 고랭지 농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광업
농업 이외의 산업으로는 광업, 제조업, 건설업, 숙박 및 음식점업 등이 대표적이다. 광업의 경우 1970년대까지 대표적인 사업이었으나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후 크게 쇠퇴하여 현재 428명 만이 종사하고 있다.
제조업
제조업, 그 중에서도 비금속 광물제품 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비금속 광물제품이란 유리, 요업제품, 시멘트, 석회 및 플라스틱 등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현대시멘트 공장이 영월에 위치하고 인접한 제천에서 석회석 가공을 통한 시멘트 생산공장을 대거 확충해 온 것으로 보아 시멘트공장의 비중이 크게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서비스업
숙박업의 경우 2000년대부터 증가 폭이 가장 큰 것으로 보아 영월군이 관광도시를 표방하며 관광객 유입이 늘어나자 성장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에너지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탄전도시 영월은 1980년대 석탄산업 합리화정책 이후 불황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영월군이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영월 박물관고을특구 육성사업’이다. 영월 박물관고을특구는 박물관고을 조성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특색과 색다른 테마가 어우러진 생태·문화 박물관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이른 바 지붕 없는 박물관을 표방하면서 지자체와 박물관 설립자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장려한 결과, 에코 뮤지엄으로서의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또한 관광객이 피서철인 7월, 8월에 치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강을 필두로 래프팅, 패러글라이딩 같은 레저 스포츠가 관광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2. 영월 5일장 – 덕포 5일장을 중심으로
영월 5일장 개요
오일장(五日場)은 닷새마다 열리는 전통적 방식의 시장을 의미한다. 한국 역사상 근대의 상설 시장이 들어서기 이전까지 가장 중요한 상거래 장소였으며, 문화교류의 주무대였다. 조선 전기 무렵엔 보름이나 열흘, 닷새, 일부지역에선 사흘에 거쳐 열리는 등 지역마다 장이 서는 기간이 판이하게 달랐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 오일장이 일반적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상설시장의 등장과 각종 상업의 발달로 대도시에서 오일장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 각지에서 오일장은 찾아볼 수 있으며 이것은 강원도 영월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영월엔 현재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주천 오일장과 덕포 오일장이 열리고 있다.
인근 지역 오일장과의 관계
덕포 오일장은 4일과 9일에 열리는 장이다. 오일장을 설명할 때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인근 지역의 오일장 날짜이다. 영월과 가장 가까운 제천과 평창의 오일장 날짜가 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먼저 영월과 문화권을 공유한다고 알려진 제천의 오일장은 3일과 8일에 열린다. 한편 평창에선 5일과 10일에 장이 열린다. 제천으로부터 시작해 영월과 평창으로 가는 일종의 상업루트가 생기는 셈인데, 이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가 되었던 평창-영월-제천의 루트와 같은 것이다. 실제로 이 세 지역이 협력하여 장돌뱅이 루트 사업(2013년 시행)을 통해 오일장 활성화를 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오일장이 단순히 지역의 사안이 아니라 그 인근 지역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오일장이 물품의 거래를 넘어서 문화의 왕래나 교류를 포함한다고 생각했을 때 영월-평창-정선이나 영월-제천 간의 동질성을 어느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입지
소재지는 강원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 486-28번지이다. 영월역의 바로 앞에서 열리고 있어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아무래도 영월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장날이라면 누구든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차공간이 여의치 않은 다른 시장들과 다르게 영월역 인근에 넓은 공영 주차장이 있기 때문에 주차 또한 용이한 편이다. 다만 영월읍내 자체가 교통량에 비해 도로가 좁고 골목길이 많기 때문에 지리에 밝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소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덕포 오일장에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뒤편 동강의 존재다. 시장이 강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시원하게 흐르고 있는 동강과 절벽을 볼 수 있다.
판매품
판매되는 품목은 영월의 특산물인 콩, 고추, 감자, 더덕, 묵나물, 도토리묵 등에서부터 옛날 농기구 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을 정도로 여러 물건이 즐비하다. 봄이면 영월 각지에서 채집 된 냉이, 달래, 참나물, 곰취, 중댕가리 등 각종 산나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4~5월이 제철인 두릅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을만큼 흔히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찰강냉이와 감자, 올창묵, 꼴뚜 국수 그리고 동강, 서강, 주천강에서 잡은 민물고기, 다슬기 등이 인기가 높다고 한다. 가을에는 고추, 콩, 팥, 강냉이 등 각종 농산물과 머루, 다래, 산초 등 산열매들이 판매되며 겨울에는 메밀 부치기에 곁들인 강냉이가 판매된다다. 영동의 오일장처럼 해산물 판매대가 많거나 규모가 크진 않지만 해산물을 취급하는 상점도 소수 있다. 어제 잡은 오징어도, 고등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징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기존에 생각하던 전통시장의 ‘저렴함’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 야채(특히 상추)를 제외한 품목들은 대부분 인근 마트 가격과 비슷하거나 높았다. 이미 대다수 생필품과 식료품이 전국적으로 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전통시장 판매자들의 입장에서 그들보다 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긴 힘들어 보인다. 특히 건어물, 해산물 판매량이 낮은 것은, 특출나지 않고서야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해산물을 사는 것이 더 빠르고 신선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해 전통적인 시장(오일장)이 프렌차이즈 마트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제품들이 주로 판매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오일장에 방문한 대다수 사람들이 프렌차이즈 매장에서 판매되지 않는 작물 모종이나 묘목을 찾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인들의 이동
판매품 | 출신 | 이동 경로 | 비고 | |
김OO | 과일 | - | 영월-평창-횡성 | 휴일은 X |
신OO | 돼지고기 | 동해 | 영월-평창 or 정선-동해 | 상황에 따라 유동적 |
최OO | 건어물 | 대구 | 영월-정선 or 삼척-강릉 | 주말X |
상인들 개개인들이 이동하는 장이 판이하게 다르다. 흔히 장돌뱅이라고 부르는 말처럼 상인들이 장날을 골라 지역을 순환하듯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론 개인 사정에 따라 빠지거나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평창에서 만난 김OO씨는 29일 영월에서, 30일 평창에서 뵐 수 있었는데, 평소라면 근처에서 가장 큰 장이 열리는 횡성으로 갔으나 일요일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20년 째 장을 돌며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신OO씨는 본래 동해 출신으로 영월에서 평창, 정선으로 이동한다. 이번엔 정선 임계장으로 이동할 것이며 그 이후는 그 때 상황을 보고 정하고 싶다고 밝혔다. 건어물을 판매하는 최OO씨는 정선으로 이동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그 다음날은 주말이라 쉰다고 밝혔다. 제천-영월-평창이라고 알려진 장돌뱅이루트가 있긴 하지만 실제론 변수에 따라 훨씬 다양한 루트가 있었다. 날씨에 따라(덕포처럼 실내 공간이 없는 곳이라면 우천시 판매량이 급감할 것), 휴일이나 주말에 따라, 장이 서는 규모에 따라 상인들의 이동이 판이하게 달랐다. 더구나 구태여 인접한 지역이 아니더라도 큰 장을 찾아 더 멀리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3. 영월 가옥
영월 북쌍리 고택
영월 북쌍리 고택은 건축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전해지는 말로는 100년 이상 된 집이라고 한다. 1985년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집주인의 이름인 ‘우구정’을 붙여 영월 우구정 가옥이라고 하였다. 그러다 2017년 11월 17일 강원도고시 제2017-47호인 「강원도 지정문화재(전통가옥) 지정명칭 변경고시」에서 강원도 문화재 보호 조례 제15호와 제20조의 규정에 “고택의 내력 등 근거를 잘 알 수 없는 집으로서 ‘소재지, 마을명, 고택’ 사용”에 따라 “영월 우구정 가옥”에서 “영월 북쌍리 고택”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영월 북쌍리 고택의 사랑채는 여러 해 전에 화재로 인해 훼손되었다가 2000년과 2001년 안채의 훼손된 부분과 더불어 보수공사를 진행하여 현재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이다. 현재는 우구정의 아들 내외가 집을 물려받아 한옥 숙박을 하고 있다.
영월 북쌍리 고택은 앞산 아래에 하천이 흐르고 고택 주변에는 논밭이 있는 좋은 입지에 자리하고 있다. ‘ㄱ’자 형식의 안채와 ‘ㅡ’자 형식의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영서 내륙지방 민가의 형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과 부엌이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건넌방이 있어 ’ㄱ‘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건넌방의 경우 채난(採暖)은 안마당 쪽으로 내고, 측면에서 방을 출입하게 한 점이 눈에 띈다. 자연석 기단에 대청 중앙의 기둥만 굵은 원주를 세운 점도 특이하다. 대문과 함께 조성한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된 ’ㅡ‘자형 건물이다. 전면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대문의 왼쪽으로 방과 마루가 나란히 이어져 있다. 대략 80㎝ 정도 높이의 자연석 기단과 덤벙주초 위에 방주가 사용되었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조성되어 있다. 헛간채는 후에 증축된 건물로써 전체적인 가옥의 구성형식 으로 보아 이 가옥은 영서지방의 전형적인 전통민가로 볼 수 있다.
영월 창원리 고택
2017년 11월 17일 강원도고시 제2017-47호인 「강원도 지정문화재(전통가옥) 지정명칭 변경고시」에서 강원도 문화재 보호 조례 제15호와 제20조의 규정에 “고택의 내력 등 근거를 잘 알 수 없는 집으로서 ‘소재지, 마을명, 고택’ 사용”에 따라 이 집은 “영월 고진하 가옥”에서 “영월 창원리 고택”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영월 창원리 고택은 산을 등지고 도로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붙은 ‘ㄷ’자형의 평면과 ‘ㅡ’자로 된 행랑채 등이 조화를 이룬 튼 ‘ㅁ’자 형태의 집이다. 전면에 ‘ㅡ’자로 들어선 헛간채와 사랑채가 판벽으로 연결되어 가옥 전면을 구성하고 있다. 사랑채는 한 단 낮은 기단과 자연석 초석 위에 방주를 세운 오량집이다. 사랑채는 문간방, 사랑, 부엌, 2칸 사랑방, 1칸 큰 마루가 연속적으로 배치된 ‘ㅡ’자형으로 도로와 직교하며 배치되어 있다. 툇마루와 함께 마루를 구성하고 있는데, 전면에 문이 없는 창이 인상적이다.
안채는 자연석 기단과 자연석 초석에 방주를 세운 오량집으로, 홑처마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2칸 규모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건넌방, 그 오른쪽에는 윗방, 안방, 부엌을 직각으로 배치하여 ‘ㄱ’자형의 평면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영서 중부지방의 민가 형식이다. 대청의 후면 벽에는 2짝 여닫이 널문이 있으며 외부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행랑채는 대문간을 중심으로 왼쪽에 문간 사랑방을 배치하고 오른쪽에 헛간과 외양간을 두어 ‘ㅡ’자형 평면 형태를 취하고,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영월 창원리 고택은 1995년에서 2001년에 걸쳐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영월 창원리 고택은 대부분 목재가 튼실하며 이를 자연스럽게 이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 각각의 채를 연결하고 사이에 판자벽을 설치하여 내부 공간의 기밀성과 연결성을 꾀한 점이 시선을 끈다.
조견당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소재지에 있는 김종길 가옥이다. 이 가옥은 구한말 순조 때 처음 지어진 집으로 ‘ㄱ’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되어 있는데 안채만 원래 있던 건물이며 나머지는 최근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 툇간을 달아내어 방, 부엌, 광 등을 배치하였고 오른쪽에 방과 광을 두었다. 영서지방의 ‘ㄱ’자형 가옥배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에 담장을 허물고 문간채와 사랑채 등을 신축하는 등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4. 영월 축제
삼굿 축제
효를 실천하고 예와 전통을 소중하게 이어가는 영월 삼굿 정보화마을은 예부터 버드나무가 많다고 하여서 유전리라 불러온 마을로서 50여 가구에 120여명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태백산자락에 위치한 아담하고 자그마한 마을이다. 마을이 형성된 것은 영월신씨 및 김영김씨 일가가 정착한 시기인 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삼굿 마을은 약 350여 년전에 모셔진 성황당과 부모님께 효를 기본으로 실천하는 마을로서 매년 설날에는 마을 어른들께 모든 출향인과 동네분들이 경노당에서 합동세배를 올리는 등 옛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산촌마을이기도 하다. 산촌사람들의 생활을 도시민들이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매년 9월말 “송이따기 체험 및 삼굿 축제”를 개최하고 있고, 앞으로 전통문화를 발굴 보존하는 마을로 도시민들이 흙과 함께하는 농촌생활 체험과 “삼굿” 재현을 주 테마로 재현하고 있다.삼굿 축제에서는 전통혼례식, 삼굿 시연, 사투리 경연대회, 옥수수 엿 만들기 등 많은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동강뗏목축제
옛날 한강을 따라 한양까지 운반되던 동강뗏목은 철도 등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연료사용이 장작에서 연탄으로 바뀌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월군은 1960년대까지 남한강 상류지역 주민들의 생활수단이자 교통수단이었던 뗏목을 통해 숱한 사람들의 땀과 애환이 배어있는 삶의 모습을 재현하여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취지에서 매년 8월 뗏목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동강 둔치와 동강 일원에서 진행되며 옛날 뗏목이 남한강 상류 지역 주민의 교통, 생활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을 재현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며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함이 목적이다. 축제에 마련된 행사에는 개막행사, 공연행사, 체험행사, 시연행사, 부대 행사 등 가족 단위의 체험관광이 주를 이룬다. 특히 체험행사에는 맨손 송어 잡기, 래프팅 등을 할 수 있다. 또 시연행사에서는 전통뗏목과 삼굿을 만나볼 수 있다. 아름답고 깨끗한 동강과 어울리는 강, 산, 자연을 주제로 가족, 동호인을 위한 체험관광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열리는 영월 동강 축제는 2일간 개막식 행사, 공연행사, 레포츠대회, 체험, 모험행사, 시연행사, 전시행사, 부대 행사로 꾸며져 가족 단위 체험관광 축제로 알려져 있다.
동강국제사진제
동강 국제사진제는 사진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사진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축제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과 동강 사진상 수상작을 비롯해 강원도 영월 태생 사진가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매년 특색있는 작업이 선보인다. 특히 축제 초반, 내로라하는 사진가들의 강의로 진행되는 워크숍은 미리미리 신청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동강 국제사진제는 동강 사진박물관, 학생체육관, 영월문화예술회관 등 영월군 일대에서 펼쳐진다. 영월에서 즐기는 사진 여행은 70여 일간 계속되며 동강에서 사진전을 통해 감성을 적시는 여름을 보낼 수 있다. 동강국제사진제는 지방 소도시에서 열리는 축제의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며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전을 통해 사진예술전시행사의 수준을 넓히고, 동시대 예술인의 철학적 중요성과 작가 및 관람자의 구성적 관점을 폭넓게 탐구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영월 동강 국제사진제는 매년 여름이면 시원한 동강이 흐르고 있는 영월로 휴가를 즐기러 오시는 관광객과 사진작가들로 활기가 넘친다. 사진제는 프로사진작가들의 사진부터 영월의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다양하게 전시를 하고 있어 다양한 감성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단종문화제
단종제(端宗祭)는 조선제 6대 임금인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축제로 승화시킨 영월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제이다. 1967년에 "단종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축제는 1990년 제24회 때부터 "단종문화제"로 명칭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행사시기는 원래 매년 4월5일 한식일을 전후하여 3일동안 계속 되었으나, 한식무렵이면 날씨가 고르지 않아 방문객편의를 위해 2007년부터 매년 4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3일간 행사를 치르고 있다. 단종문화제는 평창, 정선 주민들은 물론 인근 경상북도, 충청북도 군수들까지 참배를 하였고 조선시대 국장재현, 칡줄다리기, 가장행렬, 정순왕후 선발대회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원래 조선조 6대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추방, 다시 서인으로 되어 1457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한 많고 애달픈 일생을 마친 역사와 그 사적을 추모하고 기린다. 숙종 24년(1698년) 이후 270년 동안 제향(祭香)만으로 그치던 것을 1967년 지방 유지들과 관의 뜻을 합쳐 각종 문화행사를 겸한 향토문화제를 거행하기로 하고 날짜는 제향(祭香)을 올리던 한식일로 잡았다. 단종제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 즉 충의를 실천궁행(實踐躬行) 사육신과 생육신의 이상을 실현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실제 객지에 장기간 다녀오면 으레 단종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있어 군민의 충효사상을 고취하는 교육의 지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삿갓문화제
해학과 풍자의 시선(詩仙)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혼을 추모하고,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개최되는 축제이다. 김삿갓은 조부를 욕되게 하는 시를 쓴 자책감으로 평생 전국각지를 떠도는 방랑생활을 하며 서민들의 애환과 양반들의 잘못된 생활상을 시로 옮겼다. 그러한 김삿갓의 문학상을 엿볼 수 있는 김삿갓문화제는 매년 10월 초순 김삿갓 묘역이 있는 영월 김삿갓유적지 일원에서 펼쳐지는데, 이곳은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3년 조성된 유적지로 김삿갓의 묘와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주거지,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를 느껴볼 수 있는 김삿갓문학관과 시비공원 등이 갖추어져 있다. 행사장에서는 개막행사와 각종 공연을 비롯해 추모제, 고유제, 헌다례 등의 추모행사와 김삿갓이 관풍헌에서 과거응시를 재현하는 전국한시백일장과 시화전시, 전국휘호대회 등의 문화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김삿갓문화제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 난고(蘭皐) 김삿갓(본명 병연(炳淵), 1807~1863)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김삿갓유적지 일원에서 개최되며 개막식에서는 추모행사의 하나로 전통예절의 6법공양 헌다의식이 김삿갓묘역에서 진행된다. 축제현장에서는 인절미 떡메치기 및 떡나누기를 비롯해 짚풀공예, 민화판화체험, 대장간체험, 전통혼례복식, 민속놀이 등의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돼 풍성한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리미노이드화
단종문화제와 김삿갓문화제는 본질적으로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한 전통적 의례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리미널한 공간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미널의 공간은 근대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개인적인 여가 활동의 의미가 강한 리미노이드화를 피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리미노이드화로 인해 일상적이고 권위적인 구조들과 의례가 점차 파괴되어 간다는 것이다. 단종문화제가 행해지는 장릉은 조선의 왕으로서도 한양에 묻히지 못하고 저 멀리 영월이란 곳에 매장되어야 했던 단종의 애환을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입구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들, 그 옆에 마련된 관광버스용 주차장들은 장릉을 역사적 장소보다는 관광지로 인식되게 한다. 또한 단종문화제에서는 단종대왕을 위한 제향을 올리는 한 편 행사 전후로 지역 예술인을 초청하여 음악회와 축하공연이 행해진다. 관광자의 입장에서 흥겨운 노래와 음악에 이어서 치러지는 단종제향은 제사의 이미지보다 행사의 한 절차로 인식될 것이다. 실제로 2021년 4월 30일 행해진 단종제향에서는 웃고 떠들고, 술과 먹을거리가 가득한 일종의 콘서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더욱 노골적인 것은 단종문화제의 일시다. 본래 한식일을 전후로 치러졌던 단종제지만 ‘고객의 편의를 위해’ 금요일부터 3일간, 즉 주말에 치러지는 것은 기존의 맥락에서 벗어나는 한이 있어도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겠다는 의지가 옅보인다. 폐광 이후 지역 부흥을 관광으로 이끌어내고자 했던 영월군에서 관광객들에게 소구효과를 자극하는 단종제가 관광과 융합되는 것은 아마도 필연적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