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몽상가’
어제 폈던 두 송이 나팔꽃은 이제 그 흔적만 남기고 얼마 뒤에 떨어질 것이지만, 바로 그 옆에선 또 다른 두 송이가 꽃 문을 열고 있다. 변화가 전혀 없을 것 같은 이 공간에도 날마다 그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꽃이 피고 지고......
이제 며칠 남았나? 몇 밤만 자면 나는 스페인에 가는 것인가?
내가 그곳에 살던 때 늘 꿈꾸었던,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아무런 신경 쓸 것 없이 그대로 한국 땅에 돌아와, 다만 며칠이라도 아무 일 없었던 듯 늘 한국에서 살아온 듯 지내다 돌아갈 수 있으련만 하던, 특히 가을엔 한국이 너무나 그리워서 그런 망상에 젖어있곤 했는데,
그래, 이제 역으로 이번에도 아무 일 없는 듯 스페인 땅에 내 몸이 붕 뜬 상태로 가서, 그저 자고 일어난 것처럼 아무 일도 아닌 듯 산티아고를 향해 걷기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 나이에도 그런 현실성 전혀 없는 생각을 하는 나는 역시 ‘몽상가’임에 분명하다.
6. 10
나팔꽃은 이제 다른 포기에서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건, 아직까진 발육이 늦은 놈들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다. 이파리가 내 손바닥보다 더 넓게 자란 왕성한 놈들은 아직도 꽃필 기색이 전혀 없는데......
오늘도 날은 푹푹 찔 듯 하늘이 맑기만 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독백’ 사이트가 뜨지 않는다. 밖에 나갔다 와서 업로드 시킬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그 사이에 포털 사이트에서 ‘시스템 점검’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무료로 제공되는 포털 사이트의 한 공간을 빌어서 홈페이지로 사용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제법 잦게 예고도 없이 ‘시스템 정비’를 내세우며 이용중단을 시키는 등 문제점이 많다. 그럴 때마다 당황하는 건 물론 화가 치밀기도 하는데, 전에 내가 이용했던 이메일(e-mail) 회사에서도 말썽을 일으켜 한꺼번에 그 전의 메일을 다 날려버린 사건과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걱정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현재는 새로운 포털 사이트의 메일로 옮겨 사용하고 있지만 옛날 메일 자료를 다 잃어버린 상처는 아직까지도 크다.
아무튼, 나는 뭐든 한 번 자리가 잡히면 쉽게 바꾸려 하지 않고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가는 ‘의리파’인데,
이런 식으로 포털 사이트에서 자꾸 귀찮게 굴면 나도 생각을 바꿀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 ‘독백’ 사이트는 지극히 개인적인 홈페이지기 때문에, 내 맘대로 할 수도 있고 하면 되니까. 더구나 방문객들도 거의 없는 사이튼데 뭘 망설이겠는가 말이다. 그러면서는 알지도 못하는 한두 명의 방문자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아무런 의무가 없다는 생각까지도 해둔 상태다. 그리고 이제 난 방문객이 들어오는 것까지는 내 영역이 아니었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건 그것대로 가급적 동요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방문객들이란 어차피 그저 거리를 지나가다 가게에 들른 것처럼, 사고 싶은 물건이 없으면 아무 미련도 없이 그냥 떠나갈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내가 아무 안내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사이트를 옮겨 버리면, 그래서 이 사이트가 사라져 접속이 안 된다면,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은근히 그게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고, 그래서 조금은 고민이다.
어쨌거나, 이 포털 사이트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야 아무 일도 없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취할 거라는 말이다. 물론 이 사이트를 이사한다고 해도 사이버 세상 어딘가엔 지금처럼 여전히 존재할 테지만, 내가 새로운 주소를 공개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인데,
어쩌면 그 문제는 방문자들에겐 조금 중요한 사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게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다.
글쎄, 근데 내가 왜 그런 데까지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내 홈페이지이니 내 맘대로 하면 그만인데.
6. 11
조금 전 독백 글을 업로드시키면서 문득, 내 스스로 타협점을 발견하고는 여기 ‘속마음’ 문서에 기록해두기로 한다.
홈페이지 이사 문제에 있어서, 이런 방법은 있을 수 있겠다.
‘독백 글’ 본문엔 뭐 대단한 것처럼 ‘이사를 해도 새 주소를 공개하지 않겠다’ 고 공언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간적으로 이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서, 여기엔 미리 밝혀두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만약 홈페이지를 이사할 수밖에 없다면, 그런데도 그 때에도 방문객이 들어온다면? 이사하기 며칠 전에 살짝, 그들에게 뭔가 힌트는 줘야 할 것 같았고 그 방법도 연구해 두었다.
만약, 그들이 꼭 나를 따라오고 싶다면, 며칠 동안만이라도 내 개인 메일을 홈페이지에 공개한 뒤 그들이 개인적으로 나에게 요청을 해올 경우에 한해서, 그들의 메일로 새로운 주소를 알려주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난 이 사실을 이사하는 일이 생길 때까지는 홈페이지에 밝히지 않겠다.
6 . 11
이제 나팔꽃의 다른 줄기에서도 꽃봉오리가 맺히는 걸 보면, 나팔꽃도 제 철인 듯하지만, 오늘 아침엔 꽃이 없다.
날더러, 하루 쉬라는 건가? 아니면 자기들도 하루쯤 쉬고 싶다는 건가. 그건 그렇고, 얘들을 어떻게 한다지? 나 떠난 뒤, 그냥 이대로 말려 죽일 수는 없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심지 않았던 게 나았던 걸까?
허긴, 애당초 이런 걱정도 하긴 했었지.
아무튼 오늘도 날은 푹푹 찔 듯 하늘이 맑기만 하다.
오늘 외출을 했고, 결국 비행기 표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이렇게 비행기 표가 연결되어, 나로 하려금 스페인에 가게끔 엮어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비행기 스케줄이 인쇄되어 나오기를 기다리며 항공사 안내원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했다.
“뭘요. 하지만 흔치 않은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항공권을 체크하면서 '이 분은 참으로 재수가 좋은 분이로구나' 라고 생각했었어요."
항공사의 직원은 활짝 웃는 얼굴로 항공스케줄을 프린터에서 꺼내 건네주면서 말했다.
“아무튼,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일이 다 끝났기 때문에, 나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간 내 그림으로 만든 엽서 세트를 꺼냈다.
“저, 이 거, 감사의 뜻으로 제가 준비해온 건데요.”
“ ?”
“제 그림으로 찍어낸 엽선데, 별 건 아니지만 감사의 보답으로......”
“화가세요?”
“예, 유명하진 않지만.”
“아, 그러시군요! 그래서, 느낌이...... 그리고, 아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저는 마땅히 제 일을 했을 뿐인데. 어머! 어머머! 저 이런 것 너무 좋아해요.”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어머, 너무 좋~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소리 없이 웃었던 듯싶다.
오늘 아침에 전화상으로 그 직원은, 흔한 일은 아닌데 마침 티켓 하나가 취소될 듯하다고 날더러 기다려보라고 했었다.
나야 뭐, 밑져봐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그 직원의 전화에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두 시간 쯤 뒤에 전화가 다시 왔는데, 날더러 항공권이 됐으니 바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리나케 달려갔던 길이었다.
“정말, 이런 경우가 쉽지 않거든요? 더구나 고객님의 일정에 딱 맞는 티켓이 걸리다니. 그래서, 이 분은 보통 재수가 좋은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니깐요?” 라고 그 여직원은 환한 얼굴로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또 내 엽서 그림을 두어 번 번갈아 보면서도, 다음에라도 유럽이나 어디 여행할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명함 하나를 주었다.
그렇게 나는 ‘재수 좋은 사람’ 이 돼버렸고, 기분이 좋은 상태로, 제일 싸고 그 것도 바르셀로나까지 직접 갈 수 있는 비행기 표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여전히 준비가 안 돼 불안한 상태이긴 하지만 이렇게 긍정적인 일도 일어나는 걸 보면,
'이번에 꼭 ‘산티아고 가는 길’을 하라는 누군가의 계시가 분명하고 그에 따른 일들도 잘 풀리려나 보다.'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이 잘 풀리려고 그랬는지, 그렇게 아파트에 돌아오다가 거리에서 ‘모두 1,000원’이라 써놓은 트럭 앞을 지나는데, 언뜻 고무호스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바로 저거다!’ 눈이 확 뜨이면서 나에겐, 그걸 수도꼭지에 연결시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게 틀어놓은 상태로 나팔꽃 화분에 연결시켜 놓으면, 여름 내내 나팔꽃이 최소한 말라죽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섰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15m라는 그 뭉치를 샀는데, 5,000원 이었다.
써놓긴, 모두 천원이라더니......
아무튼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호스를 달랑달랑 들고 지하철 입구를 내려가면서도 나는,
'최소한 나팔꽃을 살릴 수는 있겠다......'는 희망에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6 . 11
아파트에 돌아오자마자 고무호스를 가지고 어떤 방법이 좋은지 이것저것 연구를 해보았다.
나름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르긴 했는데 그 중 제일 좋은 방법은, 수도꼭지에 연결시킨 고무호스를 움직이지 않게 스티로폼 화분에 올려놓은 도자기 재떨이에 고정시키고 물을 제일 약하게 틀어 놓으면, 우선 재떨이에 물이 고일 거고, 그 물이 재떨이에 가득 고이게 되면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게 되는데.
그런데 그렇게 되면 화분 하나에만 물을 공급하는 식이라, 천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수분이 잘 스며드는 면천을 돌돌 말아 끈처럼 길게 세 가닥으로 만들어 재떨이에서 각각의 화분으로 늘어뜨려 놓으면, 천에 스며들었던 물기가 그대로 화분의 흙으로 전달되는 방법을 이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면 내가 없는 석 달 동안에도 물은 끊임없이 나와 흙으로 스며들어갈 것이고, 이제 내가 없어도 지들끼리 얽히고 섥혀가며 꽃을 피우고 살아갈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도 매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고, 그것으로 나팔꽃 문제도 말끔히 해결한 것이다.
6 . 11
당신은 이제 곧 스페인으로 떠나시겠네요
그리고 둥근달이 세 번이나 뜰 때까지.
올해 역시 끈질기게 남아있을지 모를 냉장고의 깻잎반찬이 그리울 때가 있을까요
당신의 나팔꽃은 참으로 행복한 꽃입니다.
주인이 그토록 사랑해주니 말입니다.
나는 날마다 산책길에서 천사를 만납니다.
그 분은 가위손에 나오는 에드워드를 만들어준 박사님 같은 인자하고 멋진 외모를 지닌 할아버지입니다.
항상 새벽이면 꽃들에게 물을 주고 풀을 뽑고 벌레도 잡아주는 분이죠. 그 분이 가꾸는 화단은 다른 화단보다 싱그럽고 아름다웠습니다.
이른봄 꽃샘추위가 남아 있을 때 나는 그만 눈물이 난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심은 팬지 등 봄꽃들 위에 모두 덮개가 씌워진 것을 보고요.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어김없이 덮개가 씌워지거든요. 요즘은 날마다 물을 듬뿍 주시더군요.
오늘 당신이 호스를 사고 그 호스를 나팔꽃의 생명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내 눈에 눈물이 나네요.
이제 독백도 볼 수가 없겠군요. 그 베란다에 핀 나팔꽃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당신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싶어요.
6. 11 23;20
‘아니! 당신이라고? 어따 대고 그런 호칭을?’ 메시지를 읽자마자 나는 무엇보다도 그 호칭이 거북하고 싫어서 짜증스러웠고 뭔가 느글대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녀가 나를 부를 마땅한 호칭도 없을 거라는 데에는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호칭 문제까지 싸잡아 그녀를 부정 일색으로 몰아가지는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거야 중요한 게 아니고, 골자는 그 여자가 또 글을 남겼다는 데에 있다.
그러게 미안함을 드러냈던 글을 다시 올리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그 여자에게 허점을 보여주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냉장고의 깻잎 반찬이라고? 그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지?’ 하다가,
‘응?’ 뭔가 스치는 것도 있었다.
‘상당히 오래된 일인데? 아니! 그렇다면 이 여자는 내가 사고로 잃어버렸던 이 사이트의 작년 글도 읽었다는 얘긴가? 그 건, 내 냉장고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겨 있던 깻잎에 대한 내용의 글일 텐데?’ 하면서 나는 또, 바삐 컴퓨터를 뒤지기 시작했다. 조금 남아 있던 작년 스페인 가기 직전의 어수선한 편지 글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기선 찾을 수 없었다.
‘그러게, 그걸 잃어버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새삼스럽게도 사라진 자료까지 들먹이며 안타까워하기까지 했는데, 그런데 그 이후 다시 시작되는 부분의 편지 몇 개를 들추는데,
‘어? 이거 아냐!’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즈음 사고로 초기 편지글을 다 날려 버린 뒤 새롭게 올리기 시작했던 무렵의 편지 글에 바로 그 ‘깻잎 반찬’ 얘기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느라 여기에 복사해다 붙여 본다.
토요일 아침. 조금 이른 시간인데도 오늘도 어김없이 네 명의 알뜰장 상인들은, 서로 도와가며 천막을 치거나 좌판을 펼치느라 각자 몰고 온 트럭에서 물건을 꺼내는 등 쿵쾅대면서도 정신없이 바쁜 모습입니다. 베란다에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나는, 당장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즘, 먹는 게 영 부실하거든요. 식사라는 게 겨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행위일 뿐,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배가 고프면 있는 쌀 씻어 밥을 짓는 것까진 좋은데, 반찬이란 게 생김과 아직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시디 신 김장김치, 그리고 작년부터 끈질기게 남아있어 먹어도먹어도 떨어지지 않는 깻잎이 전부니까요. 그렇게 밥을 지어 후다닥 배를 채우는 일이 며칠 째 계속되다 보니 하도 물리기도 해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영양실조에 걸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랍니다. 아무튼 뭔가 사러나가긴 해야 할 텐데, 저 아래까지 내려가는 것도 나에겐 부담스런 일입니다. 파자마바람에 그냥 나갈 수는 없으니, 세수라도 해야 하고 바지로 갈아입어야 하는 등 번거롭고 귀찮아서였지요. 그런데다, 아, 오늘도 어지간히 더울 듯, 뿌연 날씨는 아침부터 숨 막히게 답답하고 짜증스럽기만 하네요. 결국 미적대다 여름 냄새가 푹푹 나던 오후에야 알뜰장에 내려갔는데, 달걀과 국수 등을 사다 보니 의외로 토마토가 싸서 그것도 한 바구니 사들고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참치와 감자를 넣은 또르띨랴를 해서 먹었습니다. 물론 거기다 냉장고에 넣어 시원해진 토마토를 이용한 샐러드도 푸짐하게 해서 지난번 손님이 왔을 때 마시다 남았던 비노(와인) 반 병 쯤과 곁들여서요. 참고로, 또르띨랴와 토마토 샐러드는 환상궁합이랍니다. 근데요, 내가 생각해도 내 또르띨랴 솜씨는 일품이랍니다. 한 번이라도 그 맛을 본 사람들은 모두 맛있다며 난리거든요. 그런데 그 또르띨랴는 정식 스페인식도 아니랍니다. 물론 스페인에서 배워온 건 맞지만, 내 입맛에 맞게 스스로 개발한 새로운 또르띨랴라는 게 더 맞는 말인데요. 내 음식을 맞본 사람들은 이따금 날더러, 식당을 차리라거나 요리사를 했어도 잘했을 거라고들 합니다. 물론 나도 그 말은 수긍하지요. 왜냐하면, 일단 내가 음식을 맘먹고 했다 하면 썩 맛있게 나오는 편이니까요. 어릴 적부터 집에서 먹어오던 입맛을 살려, 그리고 옛날 어머니나 누나가 음식을 하던 모습을 생각하며 뭔가 만들어내면, 의외로 맛이 좋아 스스로 놀라기까지 하거든요? 그 뿐만 아니라 우리 형들도 다 음식을 잘한다는 말을 듣는 걸로 보면, 음식 하는 것도 집안내력이란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구요. 게다가 나 같은 경우는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음식을 해먹다 보니, 어쨌든 나름대로의 구력이 붙을 만도 할 거구요. 아무튼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내 전공 메뉴도 몇 가지는 되는데, 주로 담백한 맛에 그 조리과정도 의외로 단순한 공통점도 있답니다. 음식을 만드는 데까지 시간을 쏟아 붓기 싫어하는 나는,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빠른 시간에 쉽고 맛도 괜찮은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 쪽으로만 발달과 진화를 해온 것 같습니다. 허긴, 워낙 뭐든 복잡한 것은 싫어하는 체질이라서요. 그러나 어떤 면에선 내가 음식을 잘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를 혼자 살게끔 유도한 또 한 가지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랍니다. 그래서 사실 난, 음식 잘 한다는 게 그다지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6 . 9 |
‘이건 뭐야? 그 많던 옛 편지 중에서 하필이면 혼자 사는 내가 지지리 궁상을 떨며 썼던 이 편지에 나오는 ‘깻잎 반찬’ 얘기를 거론하다니......’ 갑자기 나는 못 보여줄 치부를 보여준 것 같아 몸이 굼실대는 기분까지 드는 것이었다.
‘아이, 참!’
‘어? 그러고 보니, 위 편지가 또 하필이면 요즘과 딱 맞아 떨어지는 작년 6월 9일 것이니, 내가 새로 글을 올리면서부터 이 여자는 내내 소리 없이 여길 들락거렸다는 얘기 아냐? 야, 무서운 여자네! 그런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글을 보석 같다고 했을 리는 없는데, 정말 그럴 리는 만무한데, 왜 구질구질 하게 이런 글을 기억하고 난리람? 참, 취향도 가지가지다.’ 하고 혀를 차기까지 했다.
‘아무튼, 근데 뭐 자랑이라고, 나는 또 요리를 잘한다고 홈페이지에 그렇게 떠들어댔다지?’ 하는 뒤늦은 후회까지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글은 지금 이 사이트에는 없는 내용이라 굳이 자책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어쨌든 그러다가 올 해 ‘사라’라는 여자가 이 방명록에 글을 남기자, 자신도 용기를 내어(?) 그 바로 즉시 글을 남기기 시작했단 말이지? 그런 뒤 봇물 터지듯, 어쩌면 참아왔던 자신의 얘기들을 쏟아내고 있었던 거로구나. 그러니까 내가, 자기가 날 알게 된 게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친근한 표현을 써가며 글을 남기느냐고 콧방귀를 뀌었는데, 사실은 꽤나 오랜 시간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로구나. 그러니까 경솔하게 말을 그렇게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는 교훈일 수도 있는 거로구나! 물론, 그것 역시 이 사이트가 아닌 ‘속마음’ 문서에 했던 말이니, 아무도 모를 일이다만.
그건 그렇고, 그러니까 그 전부터 방명록의 숫자가 내가 들락거릴 때보다 하나나 둘 정도의 수가 늘어있던 게 그저 카운터의 오류쯤으로 짐작하거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으로 카운터 탓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이 여자가 그렇게 들어왔던 거로구나.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6 . 12
“그래, 이게 비가 온다고 내리는 거야?”
“그래도 안 오는 것 보담 낫지.”
“이렇게 내리려면 차라리 안 오는 게 나아!”
“그래도 땅은 적셨잖아. 그리고 식물의 잎들도 시원하게 비를 맞아봤을 거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주민인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탔던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렸었다.
정작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서야 나는 다람쥐 채 바퀴 돌 듯 방과 거실을 서성이며 마음을 태웠다.
그러면서 절감했다. 혼자이기 때문에 지금의 내 고통을 그 누구와도 털어놓거나 공유할 수도 없다는 것을.
그런데,
“누가 혼자 살라고 했어? 그리고 스페인에 가라고 떠미는 사람 있어?” 하는 소리가 자꾸만 들리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전시회를 열었던 00화랑 주인의 친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전시 중에 내 그림 ‘방충망’을 사겠다며 그림 값을 조금 깎아달라고 해서, 거론의 여지도 없다며 거절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라도 좋으니 생각이 있으면 전화를 걸어달라고 건네주었던 명함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고심 끝에 며칠 전에 전화를 걸었었다. 그랬더니 의외로 아직도 자신은 그 그림을 기억하고 있고 또 여전히 관심이 많다며 약속을 하자고 해서 오늘 만났는데, 그는 사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요리조리 나를 살피는 것 같더니 거만하게,
“지금은 그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 불황이기도 하고, 또 여윳돈을 항상 옆에 차고 사는 게 아니니 조금 더 깎아주셔야......” 하며 흥정을 해왔다. 물론, 여기엔 돈의 액수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전화로 했던 약속하고는 다르잖습니까?” 하고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세상이 싫어져서 나는 그대로 일어나 지하철로 돌아온 뒤였다.
사실, 어떻게 아파트까지 돌아왔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다른 사람들의 대화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정말 펑펑 울고 싶은 심정이다.
6 . 12
나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들떠 있거나 즐거운 마음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팔자 좋게 놀러 다니는 사람' 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의 눈초리가 나에겐 여전히 부담스럽다.
굳이 다른 사람들에 의한 내 삶은 아니다. 그러나 내 전반적인 삶이거나 현 상황을 알고 있는 제법 가까운 제자 하나도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은, 뭔가 심통을 부리는 듯했다.
“좋겠네요. 선생님은 참 재주도 좋아요. 돈도 없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국제적으로 훨훨 다니시는 지. 그렇지만 이번 스페인 행도, 영 상황이 안 되면 못 가는 거 아녜요?” 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자신도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투정인지, 그렇게 시큰둥한 표정을 던지는 것을 보고 나는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들었다.
“... 그래, 다 맞는 말이야. 그렇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라고 대답해 주는 식으로만 말을 줄였는데,
“혹시, 옛날 일하셨던 그 예고에 가셔서 일자리라도 알아보실 수는 없으세요? 선생님은 외국에 유학도 다녀오셨기 때문에 그 전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시니까요. 이렇게 힘들게 사시지 마시고.” 하며, 스페인 행 여비조차 마련하기 힘들어 애타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걱정 어린 표정도 지었던 그다.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거다. 한 번 그만 두고 나왔던 자린데, 이제와 아쉽다고 다시 찾아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고, 또 난 그 어떤 군더더기도 원치 않아.” 하고 자신 없는 대답까지는 했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간다는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페인 행을 알게 된 몇 사람정도야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자청해서 알린 건 두어 사람에 불과했다. 아무튼 그들에게 일정 기간, 대략 3개월 가량 있게 될 나의 부재를 알려야 했기 때문에, 그저 인사 정도로 던졌던 말이었는데, 그런 사람들마저도,
“떠나기 전에 한 번은 봐야지? 저녁이라도 함께 먹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럴 생각도 전혀 없는 나는,
“뭐 큰일이라고. 바쁜 사람들 시간 내게 만들어?” 하고 단호하게 거절해왔다.
“그럼, 가서 메일이라도 보내. 엽서라도 한 장 보내주면 고맙고.” 하기도 하지만,
“내가 놀러가나? 편한 여행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상황도 못 될 테니 그런 건 기대하지 마.” 하는 식으로 가능하면 냉랭한 투로 대답해주곤 했다.
어쨌거나 나는 내 형제들에게도 아직 내 스페인 행에 관한 얘긴 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다 보니 그 문제도 마음에 걸린다.
만약 형제들이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취소된 전화번호라는 안내와 핸드폰마저 정지된 것을 알게 되면 난리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아직도 고민 중이다. 예를 들어 떠나기 바로 직전에 전화를 걸어 조용히 알려준다던지, 아니면 스페인에 가자마자 조카 녀석의 메일에 간단하게나마 상황보고를 한다던지.
오늘도 인터넷의 내 창이 뜨질 않는다.
요즘 이런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가뜩이나 답답해 미치겠는데, 그 것마저 날 뒤집어지게 만들고 있다.
아무래도 이 홈페이지 이사 문제도 고려해 봐야겠다.
그리고 스페인에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여기 ‘독백’ 사이트에 내 스페인 행 경비에 대한 얘기도 밝혀야 할 것 같다. 왜냐면, 그동안 그 얘길 죽 해왔기 때문에, 그냥 아무 얘기도 없이 훌쩍 떠났다가는,
‘돈은 어떻게 마련해서 갔을까?’ 방문객 중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므로.
결국 돈은 미술학원 하는 ‘친구(여)’가 융통해 주었다. 그녀는 나름대로 내 최근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던 것으로,
“그러니, 계좌번호 불러 주세요. 바로 부쳐드릴 테니...... 그런데 사실, 난 섭섭했어요. 왜 나한텐 도움 청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거죠?” 하는 식으로 약간의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나에게 불편함이 없게끔 마음까지 써 주면서 그 일을 처리해주었다.
오늘도 돈 마련을 위해 억지스럽게 한 가지 애를 썼는데, 사실 그건 홈페이지 상으론 중요할 것 같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은 발설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다급하고 가라앉은 심정으로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는데(정말,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고, 받았더니 ‘친구(여)’였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단도직입적으로,
“어제 나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혹시나 해서 전활 걸었는데......” 하고 물어왔다. 느닷없는 물음에 나는 말문이 막혀 잠시 뜸을 들여야만 했다. 물론 일주일 전쯤 그녀와 통화 중에 ‘산티아고 비용’에 대해 묻기에, 어제 일을 귀띔하면서, 거의 그림이 팔릴 거로 들뜬 목소리로 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녀는 이미 내 상황을 꿰고 있었던 것이다.
“음... 그 게...” 하고 버벅대는데,
“안 됐다는 말이군요?” 본인도 알았다는 말인지 나에게 묻는지 하기에 결국,
“그렇게 되었어.” 하자,
“근데, 왜 나한텐 아무 말도 안 해요?” 하더니 마치 그 말을 하려고 준비도 다 해 놓았다는 사람처럼, “그럼, 이렇게 하는 걸로 해요.” 하기에,
“무슨 소리야?” 하자,
“지난번에 들어 보니 그리 큰돈이 아닌 것 같으니 내가 융통해 드릴 게요. 혹시 몰라서 조금 더 얹어 보낼 게요. 근데, 물론 그냥 드릴 순 없고, 또 빚이라고 생각하진 말고, 나중에 갔다 와서 힘들면 그림으로 갚아도 되구요.” 단순한 말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나는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군더더기 싫어하잖아요? 더군다나 돈 문제니, 그러니, 그렇게 해요. 내 말대로.”
그렇게 결국, 나는 떠나기 이틀 전인 막바지에 ‘산티아고 가는 길’ 경비를 마련한 것이다. 아니, 내가 마련한 게 아니라 그렇게 마련된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빚을 얻어 스페인에 가게 되었다는 꼴이기도 하다.
그래, 어쨌거나 빚이다. 더구나 내 힘으로 마련한 것도 아닌, 선심성으로 빌려준 거니까.
그렇지만 내 입장에선, 이 일만큼은 정말 빚을 얻어서라도 하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다. 비록 공황증세까지 겹치면서 마음이 타 들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최후의 수단으로 떠나기 하루 전날인 내일 아침, 고향의 누님에게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갈 거라고 마음을 다잡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당연히 펄쩍 뛰기야 하겠지만, 그리고 또 한 보따리 잔소리도 늘어놓겠지만, 그나마 이런 내 성향을 제일 잘 이해주는 게 그 누님인지라.
그리고 내 합리화일지 모르지만, 만약 내가 돈 때문에 끝내 이 일을 포기했다면, 상당기간 정신적으로도 꽤나 큰 타격을 받으며 침체된 생활을 할 건 물론 두고두고 후회도 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어진 결과는 퍽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빚을 냈다는 것에도 자책하지 않으려 한다. 빚은 어떻게든 스페인에 갔다 와서 갚으면 되니까.
그리고 서둘러 행장을 차린 뒤, 남대문 시장 쪽으로 향했다. 어차피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암달러상 환전을 해야만 했고, 몇 가지 물품을 사기 위해 시장의 ‘민예품 상가’에도 들르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나에게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다양한 정보 제공을 해 준 답례와, 또 스페인에 도착한 뒤 다만 며칠이라도 잠자리 신세를 져야 될 바르셀로나의 친구들에게 성의 표현이라도 하기 위한 선물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비싸고 좋은 걸 살 수는 없었지만, 머지않아 재혼한다는 루이스에게 줄 ‘한복 입은 신랑 신부’ 인형 같은 건 제법 부피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가져가야 할 것이라 신경이 써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시장까지 한 바퀴를 돌다 보니, 정말 내가 여행가는 사람 같기는 했다.
나는 '산티아고'에 간다. 어쨌든, 간다......
6 . 13
많이 망설였다.
이 사이트가 이젠 나 혼자만의 독백이 아닌 마당에, 내가 군대 제대한 뒤 복학했을 때 재학생이던, 그러니까 후배이자 친구일 수도 있는 큰 아들내미가 내년에 대학에 간다던 신촌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선애’에게 빚을 낸 얘기까지 까발려야 하는지, 아니면 얼렁뚱땅 넘길 것인지를.
사실 다른 한 친구 G에게 돈을 빌리려고 얘길 꺼내려다가 그 쪽에서 먼저 죽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돈 얘기는커녕 안부도 제대로 묻는 둥 마는 둥 멋쩍게 전화를 끊으면서는, 정말 죽을 맛이었는데.
세상이 노래지면서 갑자기 악을 쓰고 싶기도 했고, 몸에 열불이 나서 밖으로 뛰쳐나기기라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야 돈은, 그것도 엉뚱한 곳에서 풀려줘서, 기쁨인지 허탈감인도 모를 맥이 풀리는 기분으로 멍- 해지기까지 했는데,
그런데 이 얘기도 하필이면 여자인, 대학시절부터 내 그림을 좋아하는 ‘선애’와 연결된 일이라 홈페이지에 함부로 내뱉기가 조심스러워서, 그만큼 더 신경이 써졌던 것이다.
(근데, 여기에다 ‘선애’란 특정한 이름을 내뱉긴 했는데, 이것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한 번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다. 나중에 S라고 바꿀 수도 있으니......)
그렇지만 여태까지도 홈페이지에는 여행 경비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내비쳐왔는데, 그런 마무리거나 결말도 없이 내가 스페인으로 휭 날아가 버린다면, 방문객들이 속은 기분이 들거나 궁금해 할 건 물론 나와 이 홈페이지에 대한 신뢰도마저 금이 갈 것이라, 아니 굳이 그런 걸 들먹일 것도 없이, 무엇보다 내 양심상 그래선 안 될 것 같아서 홈페이지에 그 내막을 밝혔던 것으로, 다만 그냥 '친구'라고 하면 남자로 보여질 수도 있고, 그렇다고 '여자친구'로 하기엔 '애인'으로 인식될 소지도 있어서 나름 고민하다가, ‘친구(여)’라고 '친구'이긴 하지만 '여자'라는 것도 에둘러 까발리긴 했는데......
그러니까 아무리 돈 문제가 창피하고 구차스럽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긴 내 홈페이지이고 내가 주인인데, 이 홈페이지 안에서도 스스로 내 자신을 기만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했던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 경우를 통해서 이 홈페이지에 또 하나의 '선례'를 만든 셈이기도 하다.
6 . 13
자주 떠나면서도 나는 늘 떠나는 일에 낯설어 한다.
가방을 쌀 때도, 물건들을 방 안 가득 늘어놓기만 했지 정리는 잘하지 못한다. 준비와 생각은 오래하는 편인데도, 막상 짐을 챙기다 보면 어설프기 그지없고 시간도 질질 끌다 못해 한숨만 쉬어대거나 짜증까지 내곤 한다.
물론 가방의 지퍼를 닫고 떠날 땐 정리가 끝난 상태지만, 그 상태로도 늘 뭔가 불안하고 아쉬움이 남곤 한다.
“그래도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을 건데, 간다는 소식도 없이 떠날 생각이었냐? 내가 오늘 전화하지 않았더라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말았겠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던 친구 P가 조금은 투정어린 투로 물었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알리고 말고야. 곧 돌아올 텐데 뭐, 별 일이라고.”
“별 일 아니라고? 그렇게나 멀리 여행가는데?”
“여행은 무슨. 즐기고 노는 게 아닌, 고생하러 떠나는 건데.”
“아무튼, 그렇게 가는 거라면 가기 전에, 같이 저녁이라도 먹을 걸.”
“저녁은 무슨. 그런 데 신경 꺼. 그저 생활일 뿐이야.” 내 입에선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여행’이라기보다는 생활일 뿐이다. 나에겐 장소가 바뀔 뿐이지. 그 길을 걷는 동안은 여기서나 마찬가지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상적인 삶이 이어질 뿐이라는 생각이다. 역시 여기처럼, 아니 다른 나라니까 더욱 더, 넉넉하지 못해 바짝 긴장을 해야 할 내 삶의 한 모습이기도 할 테니까.
내일 떠난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뒤, 하루나 이틀 밤을 현지에서 자고 ‘산티아고 가는 길’로 또 떠나면, 며칠 내로,
‘솟대’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나는, 스페인 지도를 들고 이 세상의 또 한 구석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솟대’는 무슨 꿈을 꿀까?
늘, 허공에 아스라이 던져진 모습으로......
6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