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하루 앞둔 상봉시외버스터미널은 고향으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 벌어져 있었다. 그런 속에서도 저마다의 표정들은 밝고 달떠 있었다. 비록 제사를 싸 짊어졌을망정 설 영감의 마음 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명절 분위기 탓일까. 질서는 아랑곳없이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고 서둘러대는 몸짓들이다. 설 영감은 마구 엉킨 사람들 틈에 밀려 대합실에서 삼척 행 출구로 간신히 몸을 빼냈다.
승객을 태운 버스가 빠져나간 자리로 삼척 행 버스가 차 머리를 디밀면서 들어왔다. 승차권만 있으면 각자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차례대로 타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질서를 지켜가며 타면 순조로울 일을 서로 먼저 타겠다고 덤벼드니 전쟁 속 아비규환일 수밖에. 왜들 저럴까. 마음 급한 거야 너나 없이 매한가지인 것,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만 준다면 순조로울 일을. 마음이 안타까운 설 영감은 배낭을 짊어진 채 이리 밀리고 저리 채이면서 떠밀려 버스 안으로 올라와지고 말았다. 버스 안에서도 제대로 걸어서가 아니라 떠밀려서 자리에 처박혀지고 말았다.
“어찌 저 야단들일꼬...... !”
설 영감은 배낭을 벗어 창 쪽으로 밀어놓고 두 다리를 비켜 뻗었다. ‘남아난 게 없겠어. 작년에 보니까 삼척 시장이 좀 비싸서 준비를 해왔더니만...... .’
후회가 된다 싶은데 자그마한 키의 젊은이가 역시 옆 좌석으로 떠밀리면서 퍽 주저앉았다.
“죄송합니다.”
젊은이가 설 영감의 다리를 친 것이 미안했던지 머리를 조아리며 통로 쪽으로 다리를 치웠다.
“배낭이 자리를 차지해서 내가 다리를 이쪽으로 뻗는 바람에 그리 된 거지. 오히려 내가 미안했구먼.”
설 영감은 복잡한 때 자신까지 합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싶어 겸연쩍었다.
“괜찮습니다. 명절 땐 으레 이런 걸요. 전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보기 좋습니다.”
‘요즘 젊은이 같지가 않군 그려.’ 설 영감은 비어져 나오려는 웃음을 머금으며 대꾸하는 젊은이의 인간 됨됨이가 돼먹은 놈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그를 쳐다보았다. 체구는 작아도 얼굴이 야무져 보였다.
차안은 통로까지 빽빽이 들어차면서 혼잡스러웠다. ‘허긴 좌석은 없고, 가야는 되겠고, 저 야단을 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설 영감은 치근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서서 가자면 다리가 아프고 힘들 터인데도 고향으로 달려가는 마음에선지 사람들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설 영감의 마음도 흐뭇했다.
출발시간이 되었는지 차가 움직였다. 상봉터미널을 빠져 나온 버스는 무사히 시내를 벗어났다. 그런데 양평에서부터 승용차, 버스 할 것 없이 밀리면서 체증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강줄기를 따라 줄줄이 늘어선 차량들은 흡사 거대한 용이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머리는 어느 만큼이나 가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고, 길게 늘어진 몸통과 꼬리만이 뒤에서 구불거리고 있었다. 고향으로 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통로에 서있는 사람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고향이 어디십니까?”
“나?”
할아버지라. 서행과 정차를 반복하는 동안 창 밖만 바라보고 있던 설 영감은 젊은이의 느닷없는 물음에 당황했다. 손자가 둘 있기는 하지만 살갑게 지내지를 못하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학교 끝나면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순례하다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니 얼굴도 못 볼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녀석들도 할아비를 좋아할 겨를이 없다. 서글픈 노릇이지만 며느리가 손자와 할아비가 가까워지는 걸 노골적으로 막기도 했고.
“경기도지.”
“그런데 어찌...... ?”
설 영감의 마지못한 대꾸에 젊은이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배낭을 보면 모르는감?”
“그렇군요.”
젊은이는 설 영감이 여행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젊은이의 고향은?”
고향엘 가고 있다는 건 두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겠지만 노인네가 무겁게 입을 다물어버리는 모양새도 보기 좋을 것 같지가 않아 물어보았다.
“삼척입니다.”
“그려. 젊으니께 부모님이 다 계시겠구먼.”
“아닙니다. 어머님만 계신 걸요?.”
“일찍이도 가셨나보구먼. 그럼 아버님 제사를 지내는감.”
“그렇습니다. 아버님말고도 위로 다섯 분이나 계시는 걸요?”
“그럼 그 다섯 분 제사를 다 지낸다는 건가?”
“종가 댁이니까요.”
“복 받을 일이구먼.”
그 많은 제사를 다 지내다니. 설 영감으로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설 영감의 그 말을 흘려듣지 않은 젊은이는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 영감은 괜한 소리를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사는 것이 다르니. 설 영감도 형 내외분이 계실 때는 큰집에서만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 님들의 제사를 꼬박꼬박 지냈다. 지금은 조카들이 지내고 있는 데다, 마누라 제사 하나 지내주지 못하는 처지여서 부모님이나 형 내외분 제사에 참여를 못해오고 있는 처지다. 젊은이의 얘길 듣고 보니 사는 처지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에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어딘지 언짢아하는 것 같은 설 영감의 태도가 겸연쩍었던지 젊은이는 검정 가죽가방에서 책을 꺼내들었다.
“자식놈 공부시킬 때가 그래도 좋았지. 사람 사는 것 같았으니까.”
설 영감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곤 지그시 눈을 감으면서 중얼거렸다. 눈앞에 삼삼하게 떠오르는 엊그제 같은 날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돼버렸지만, 서울 변두리였던 그때상시의 시골풍경은 아직까지도 눈에서 가시지 않고 있다.
설 영감 내외는 외아들 공부시키는 데만 정신을 쏟았지, 노후 같은 것은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었다. 농사로 허리가 휘도록 자식놈 뒷바라지에 젊음을 다 바쳤던 것이다. 다행히 아들이 공부는 잘해서 어렵다는 치과대학을 거뜬히 들어가 주었다. 논과 밭까지 다 팔아 올려가며 졸업을 시키고 나니까 남은 것이란 허름한 농가 한 채 뿐이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모르고 그때는 자식하나 제대로 가르쳐 놓았다는 자부심에 논밭 없어진 것쯤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식놈과 합치지 말고 농가에서 그냥 살았어야 했지.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제사를 싸 짊어지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고. 더욱이 마누라가 5년이란 세월을 교회 공원묘지의 물 속에 잠겨있지 않았을 일 아인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 다 지난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면서도 절로 한숨이 새어나오는 데는 설 영감으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설 영감은 또 괜한 생각이 든다 싶어 감았던 눈을 번쩍 떠버렸다. 젊은이는 그 때까지도 책을 들여다본 채였다. 버스는 하얗게 눈 덮인 한계령 고개를 힘겹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하얀 눈 위로 드러난 앙상한 나뭇가지가 마치 자신의 처지와도 같아 등골이 오싹해졌다. 설 영감은 마음이 편치 않아 차 창 밖에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대학생인 것 같은데 무슨 과인 감?”
“치의예과입니다.”
아들 종화를 생각하며 짐작 가는 대로 물어보았다. 젊은이는 책을 덮으면서 대답했는데, 노인이 치의예과에 대해 알기나 하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려? 졸업해서 치과는 차려야겠고, 차리자면 돈이 많이 들겠구먼. 그렇더라도 처가 신세는 지지 말게.”
설 영감의 그 말에 젊은이는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렸다. 늙으면 주책이지. 괜한 소리를 했구먼.
“치의예과가 뭔지 아시나요?”
말을 잘못했다 싶어 겸언쩍어하는 설 영감에게 젊은이가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 확인해보려는 것 같았다. 말을 해줘야되나, 말아야 되냐를 놓고 망설이던 설 영감은 아들 종화가 실력 있는 의사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었다.
“내 아들놈이 치과의사니께.”
설 영감의 목소리에 자신이 있었다.
“아 ~ 예…….”
젊은이가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 존경한다는 뜻인 것 같아 설 영감도 마음이 흐뭇했다.
“그런데…… 처가 신세는 지지 말게.”
내침 김이었나. 설 영감은 아들이 졸업할 무렵이 되니까 중매가 쏟아져 들어오더라, 그 가운데서 집안이 괜찮고 인물이 좋은 처자를 골라 결혼을 시켰는데 여자 측에서 병원을 차려주더라, 처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보니 처가나 며느리의 기세가 등등해서 그런 식의 결혼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 털어놓았다. 젊은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설 영감은 젊은이의 부모가 자신들처럼 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러준 것이었다. 거기에 대해 젊은이는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젊은이의 생각이 무엇이든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일까 싶은 생각에 설 영감은 시선을 차창 밖으로 던졌다.
삼척에 도착했다. 젊은이는 사양을 하는데도 굳이 시내버스 타는 곳까지 배낭을 들어다 주었다. 젊은이가 고마우면서도 치과의사를 둔 아들 덕분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객이 몇 되지 않은 설악산 행 시내 버스는 영하 7-8도의 날씨만큼이나 썰렁했다. 설 영감처럼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여섯 명이고, 나머지 서너 명은 이곳 토박이인 듯 싶었다. 며칠 전에 내린 폭설로 도로만 뚫렸을 뿐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산악의 설경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었다. 살아있는 그림이었다.
설 영감은 설악산 못 미처 민박촌에서 내렸다. 작년에 들었던 민박집을 향해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맨 안쪽 끝의 파란색 나무대문 집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창문이 열리면서 여자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오신 다기에 긴가 민가 했는데 참으로 오셨네요.”
설 영감의 목소리를 들은 주인 여자가 슬리퍼를 끌고 나오면서 코맹맹이 소리로 맞아 주었다.
“그 동안 잘 지내셨남요?”
“여부가 있습니까. 영감님께서도 잘 지내셨지요?”
주인여자가 반가워하며 활달하게 웃어 주었다. 주인여자는 나이 육십으로 몸집이 통통하고 얼굴이 동글납작했다.
“그 방 있습죠?”
“그럼은 요.”
주인여자의 그 한마디에 설 영감은 마음이 놓였다. 전화로 부탁은 해두었지만 혹시나 했었다. 뒤꼍인 그 방은 바로 옆에 수돗가가 있어 남의 눈에 띄지 않고도 음식물을 다룰 수가 있는 게 좋았다. 그 방이 없다고 하면 다른 집을 알아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추운데 어서 들어가시죠.”
설 영감은 검정 몸뻬 바지와 자주색 스웨터 차림인 주인 여자의 뒤를 따라 뒤꼍으로 갔다. 매몰차게 훑고 지나가는 뒤꼍바람, 갈라지고 패여 나간 시멘트 바닥, 낡은 툇마루 등이 작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일찍부터 보일러를 틀어 놔서 방은 따뜻할 겁니다. 들어가셔서 몸을 좀 녹이세요.”
주인여자는 방문을 열어주며 한마디하고는 돌아갔다.
설 영감은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군청색 벙어리 장갑을 벗고 방바닥에 손을 대보았다. 노란 비닐장판의 방바닥은 따끈했다. 방으로 들어선 설 영감은 배낭을 벗어 구석진 곳에 내려놓았다. 두 평 정도로 두 사람 자기에 알맞은 이 방도 벽지만 더 바래져있을 뿐이었다. 설 영감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네 시였다. 서둘러야했다.
작년에 구두를 신은 바람에 불편을 느꼈던 설 영감은 이번에는 등산화를 준비해 왔다. 며느리가 보는 데서 신고 나올 수가 없어 배낭에 넣어왔다. 설 영감은 그 등산화를 꺼내 신고 밖으로 나갔다. 앞마당으로 나온 설 영감은 자기말고 다른 손님이 들었나 싶어 집안을 둘러보았다. 자기 외엔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럴 테지. 혹시나 해서 전화로 방을 예약해 놓긴 했지만 내일이 어떤 날이라고...... .”
대문을 나선 설 영감은 눈길을 따라 설악산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산화를 신으니 눈길을 걷는 발길이 한결 수월했다. 해는 이미 설악산의 높은 봉우리 뒤로 몸을 숨긴 뒤였다. 눈 덮인 계곡을 핥고 내려온 산바람이 매서웠다. 설 영감은 벙어리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점퍼 깃을 바투 세웠다. 매서운 날씨지만 마누라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눈의 뽀드득거림이 마치 마누라의 응답 같아 듣기에 좋았다.
“할아버지 내일 올라가시지 그러세요.”
입장권을 끊으려는 설 영감에게 매표원 아가씨가 말리고 나섰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금방 내려올 테니까 걱정말고 표나 주구려.”
마누라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아가씨가 말린다고 해서 올라가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설 영감의 확고부동한 태도에 아가씨가 마지못해 표를 쓱 내밀었다.
아가씨의 말처럼 다섯 시가 되어 가는 시각이고 보니 케이블카를 타려는 사람은 설 영감까지 셋 뿐이었다. ‘허기사. 올라가면 곧장 내려와야 되는데 돈 허비해가며 무엇 하러 올라가겠나?’
그나마 젊은 두 남녀가 있어 케이블카 안이 조금은 덜 썰렁했다. 윙윙 소리가 나도록 세찬 바람에 케이블카는 가지 끝에 매달린 조롱박처럼 내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동그라질 것만 같았다. 케이블카는 설 영감의 염려를 말끔히 씻어내듯 산날망 위로 성큼 올라섰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설 영감은 하산을 해서 내려가려는 등산객들을 뒤로하고 바위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두 남녀는 눈바람이 세차게 분탕질을 쳐대고 있는 산 높이까지 올라갔다.
“임자 나 왔소.”
분탕질을 쳐대는 바람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며 설 영감이 바위를 올려다보았다. 마누라가 꼭대기 위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춥지 않은감? 추워도 평생 못한 구경 실컷 하고 있으니까 좋겠지? 경치 좋겠다, 사람 많이 오겠다, 내 생각 날 겨를도 없겠지? 그리 하라고 자네를 여기다 뿌려준 것이었네 만. 자네 여기다 뿌려주고부터 내가 다리를 쭉 뻗고 잘 수가 있었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게 되었어. 그래 당장에 죽었으면 좋겠네 만, 종화 놈이 나를 자네 곁에 있게 해줄라는지 모르겠구먼. 종화 놈이라기보다 며느리가 말여. 그리 안 해 준다면 자네와 나는 영영 이별이 돼버리고 말 것인데 말여.”
설 영감은 노을진 하늘아래 산과 마을과, 저 멀리 펼쳐진 바다를 바라다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웬 바람이...... !”
설 영감이 눈 쌓인 산 비탈길로 기웃뚱 넘어졌다.
“임자, 임자와 함께 바다를 훤히 내려다보면서 오순도순 지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눈 위로 주저앉은 설 영감은 붙박힌듯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래 저래 임자한테 미안한 생각뿐이구먼. 자식 놈 공부시키느라 고생고생 했건만 대접받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살아생전 방에 갇혀서만 지내다시피 하였으니…… 지금의 나도 그렇지. 하루라도 빨리 자네 곁으로 가고만 싶을 뿐이라네.”
설 영감이 일어나면서 눈 묻은 바지를 탈탈 털었다.
“날씨 한번 고약하이. 넋두리하다가 동태 되고 말겠구먼. 내가 여기서 얼어죽어 버리면 되겠는가. 물 속에 잠겨있는 동안 내내 굶고 있었으니 얼마나 허기가 졌을 것인가. 내가 살아있는 한 자네 제사는 지내줌세. 지금까지의 허기가 면해질 때까지는 내가 살아있어야겠지. 내가 살고싶어한다고 살아지는 건 아닐 것이지만 서도…… 이러다가는 내가 동태 되고 말겠구먼. 더는 추워서 못 견디겠으니 내일 아침 내려와 젯상이나 받게.”
설 영감은 쫓기듯 케이블카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올라갈 때는 없던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을 때는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그다지 어둡지가 않은데도 헤드라이트 불빛을 밝힌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가 물려 줄줄이 이어져 들어오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같이 타고 왔던 사람들의 흥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설 영감은 혼자서 타박타박 걸어 내려왔다. 혼자 오기엔 정말 쓸쓸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누라가 이곳에 있으니 설 영감 자신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손님이 들지 않았는지 집안은 안방만 불이 켜진 채 짙은 어둠에 잠겨들어 있었다. 설 영감은 인기척을 내지 않고 모퉁이를 돌아 뒤꼍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천장을 더듬었다. 손에 걸린 30촉 짜리 전등의 스위치를 돌리자 방안이 불그스레하게 밝아졌다.
“어디 보자. 그 난리를 겪고 왔으니, 온전하게 남아있는 게 있기나 할지……?"
설 영감은 차를 타고 오면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 배낭을 풀어 음식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일회용 접시를 포개서 맨 위에 올려놓은 유과가 반은 부셔져 있고, 다음으로 꺼낸 인절미는 눌려서 납작했다. 또 세 개씩 사온 사과와 배, 귤 등은 멍이 들었거나 깨져 있었다. 제사거리들을 일회용 접시에 담아 놓고 맨 밑바닥에 넣어 온 콩나물, 도라지, 고사리가 든 비닐 봉지를 꺼냈다. 나물이야 눌려도 상관없는 것이지만 저녁거리로 사온 라면만 멀쩡한 셈이었다. 설 영감은 조금 비싸더라도 작년처럼 삼척 시장에서 사는 건데, 공연히 사왔구나 싶어 후회가 되었다.
“마누라. 사내가 어디 이게 할 짓인가?”
날씨는 춥고, 음식 장만할 일이 어설프기만 하여 설 영감이 투덜대곤 코펠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쌩 - 하니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소리가 을씨년스러웠다. 밖은 바람소리만이 소란스러울 뿐 움직이는 물체라곤 그림자도 없었다. 누군가가 있더라도 뒤꼍으로 오지 않는 한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는 없게 되어있는 집이다. 설 영감이 이곳을 택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설 영감은 앞마당의 불빛이 대각선으로 비켜들고 있는 수돗가에서 코펠에 라면 끓일 물을 받아왔다.
떡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난 설 영감은 코펠과 일회용 접시에 나물들을 담아들고 수돗가로 나갔다. 수돗가의 불은 일부러 켜지 않았다. 앞마당에서 새어들어 오는 불빛만으로도 아쉬운 대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돗가 시멘트 바닥은 얼음이 살짝 얼어 반질거렸다. 코펠에 지하수 물을 받아 끼얹자 살얼음이 녹아 내렸다.
다음으로 일회용인 은박접시에 세 가지의 나물을 씻어 놓고 조기를 마저 씻은 후 수돗가를 말끔히 치웠다. 민박집에선 사람이 먹는 음식물을 다뤄도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설 영감 자신이 하려는 건 제사음식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재료 마련이 끝나자 방안에서 휴대용 가스에 불을 붙였다. 코펠에 소금과 조미료로 간을 맞춰가며 세 가지의 나물을 차례로 볶아냈다. 깨진 과일은 물수건으로 닦아 놓았다. 조기만 구우면 준비는 다 된 셈이었다. 이번엔 그래도 두 번째라고 작년보다는 준비하는 일이 수월했다. 작년엔 지레 겁을 먹는 바람에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수돗가에서 씻는 일조차 조심스러웠고, 나물은 볶을 줄을 몰라 코펠까지 태웠었다. 새까맣게 탄 코펠을 닦느라 애를 먹던 일을 생각하면 절로 한심스러워진다.
“여보! 웬 걸음이 그렇게 빨라? 혼자만 그렇게 달아나면 어쩌자는 거야? 같이 가자고! 같이! 같이! 같이...... !”
설 영감이 두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눈을 번쩍 떴다.
“후유 - - - ! 별난 꿈도 다 있구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쉰 설 영감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자리를 걷어 개키고 밖으로 나온 설 영감은 앞마당 쪽으로 나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바다 건너편 봉우리로부터 먼동이 트여오고 있었다.
‘제사가 늦는다고 깨운 게로군. 살아생전엔 안 그러더니만 죽으니까 자기밖에 모르게 됐는감. 곤히 자는 사람 깨워대니 말야. 허긴. 그 동안은 제사를 지내주지 않았으니 좀 허기가 졌겠나? 잠시만 기다리게. 내 서둘러 상을 차려 줌세.’
세수를 한 설 영감은 툇마루에 놓인 동태처럼 언 걸레를 빨았다. 방 청소를 해놓고 나서 설악산 권금정산장 쪽을 향해 상을 대신한 하얀 모조지를 펼쳐 놓았다. 그 위에 어젯밤에 만들어 은박지의 접시에 담아 놓은 나물과 조기를 놓았다. 과일과 유과류도 담아 놓았다. 이 정도면 준비해 온 음식은 다 차려진 셈이었다. 음식이 다 차려졌다 치더라도 없어서는 안 될 게 지방이었다. 준비해 온 한지에 붓을 대신한 사인펜으로, 유인 김해 김씨 신위라고 써서 맞은편의 벽에 붙였다.
준비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한 뼘 반정도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설 영감은 서둘러 떡국을 끓여 코펠 채 맨 안쪽으로 들여놓고, 배낭 주머니에서 향과 매실주를 꺼냈다. 종이컵에 향대를 세우고, 불을 붙인 설 영감은 한복 대신 바지와 점퍼 위에 준비해온 두루마기를 걸쳤다.
‘임자. 별 수 있는감? 들어오기가 거북할 테지만 달리 방법이 없네.’ 창문을 열어제치자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쳐 들어왔다. ‘약식으로 한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모조지 위에 차려진 제사 음식들을 보면서 덧붙였다. ‘그래도 썰렁한 기도보다는 음식이 차려진 데서 서방 절 받아가며 먹는 제사가 좋겠지. 그렇다고 종화 놈 나무라지 말고. 그놈이라고 지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뭐 있는 줄 아는감? 요즘 그 애 속도 속이 아닐 게야. 지금에 와서 지 마누라와의 결혼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잘 살도록 도와줘야지. 말 안 해도 내 종화 놈 맘 다 알지. 에미를 물 속에다 오 년 동안 담가두었다는 게 가책이 돼서 한동안 괴로워하는 것 같드구먼. 나 나오는데 지 처 몰래 여비를 주는데 묻지는 않아도 이 애비가 어디로 가는지 감을 잡고 있는 눈치였네. 그런 자식을 보는 이 애비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그러니 그 아이 탓을 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종화 놈을 너그럽게 봐주면서 좀 살펴줘야겠어. 임자를 물 속에서 건져냈으니 되지 않았는감? 또 설악산에서 구경 잘하고있으니 됐고.”
제사상 앞에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르고, 두 번 절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라도 내가 있으니 지내주지, 나 죽어 봐...... .”
“계신가...... ?”
마지막 절이 끝났을 때였다. 밖에서 주인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설 영감은 주인여자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했다.
“계세요?”
설 영감이 안절부절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주인여자가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미처 대꾸를 못하고 절절 매는데 문이 열렸다.
“에그머니나!”
문이 열리는 순간 주인여자의 두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쟁반에 받쳐들었던 떡국과 함께 나동그라져 버렸다. 뒤로 나자빠진 주인여자는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는 표정으로 설 영감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살다 살다 별 일 다 보겠네. 난 또 혼자 쓸쓸하게 계실 것 같아 떡국이라도 드리느라고 끓여 왔더니만!"
허리를 구부정하게 오그라뜨린 설 영감에게 주인여자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여기가 무슨 무당 집인 줄 아세요?”
주인여자가 몸뻬에 묻은 떡국을 털어 내면서 일어났다.
“별꼴이네 정말!”
주인여자가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무엇을 하는지 눈으로 확인해보려는 행동인 것 같았다. 설 영감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죄송합니다...... .”
설 영감이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조아렸다.
“제사인 것 같은데 아직 덜 끝났나요?”
모조지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죽 훑어보던 주인여자의 음성이 다소 누그러졌다. 제사라서 다행이라는 것 같았다.
“예, 예, 다 마쳤습니다.”
설 영감은 주인여자가 그렇게 나오는 것이 여간 고맙지가 않았다.
“작년에도 그럼 이방에서 제사를 지내셨나보죠?”
설 영감은 염치가 없는 노릇이어서 대꾸를 못하고 머리만 끄덕였다.
“대체 누구 제사기에 이러시는데요?”
“마누랍지요.”
“그래도 영감님 제사 받는 마나님은 행복하시네요. 그러잖으면 영감님한테 절을 받아볼 수 있는 일이던가요?”
당연히 자손이 지낼 일이다. 하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될 경우에는 마누라 제사를 남편이 지내는 일이 유교적으로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설 영감은 알고있는 터였다.
“나도 세상을 살았다면 좀 산 인생인데 영감님 같은 분은 처음이네요. 작년에 오셨을 때, 흩어졌던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젊은이도 아닌 노인네가 이런 델 혼자 오신다는 게 어딘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이러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네요.”
주인여자의 얼굴은 이제 연민의 빛으로 변했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설 영감은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게 되었다는 생각이었다. 서글펐다.
“다 지냈으면 지방을 살라야지요.”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주인여자도 제사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지가 않았다. 설 영감은 주인여자가 보는 앞에서 소지에 쓴 지방에 불을 붙여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지방이 타들어 가면서 잿티가 하늘위로 날아올라갔다. 잿티가 가볍게 올라가는 것에 설 영감은 마누라가 제사를 잘 받아준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그래, 무슨 연고로 제사를 이런 데서 혼자 지내신 답니까?”
호기심에 찬 듯한 주인여자의 물음에 설 영감은 무엇이라 설명을 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러시겠지요. 이런데서 제사를 지내는 처지이니 어디 쉽게 말이 나오시겠습니까? 내 떡국 다시 끓여올 테니까 아침이나 드시도록 하세요.”
표정이 착잡해진 주인여자는 토방에 내팽개쳐진 쟁반을 줍고, 엎질러진 떡국을 스텐대접에 그러담아 들고 돌아갔다. 설 영감은 그 사이에 제사상을 치웠다.
잠시 후 주인여자가 끓인 떡국을 가지고 왔다. 자기는 먹었다면서 설 영감더러 먹으라는 것이었다.
"자식들이 있기나 하세요?“
“한 놈 있지요.”
설 영감은 자식놈 욕 먹이고 싶지가 않아 제 어미의 시신이 5년 동안이나 물에 잠겨 있었다는 것은 물론,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쯧쯧...... .”
주인여자가 으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런데 하필 여기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속내라도 계신가요?”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가 없었다. 설 영감은 떡국을 먹다말고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주인여자를 놀라게 한 마당에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요. 마누라를 이 산에다 두고 갔으니까요.”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태 전에 이 산에다 마누라의 뼛가루를 뿌렸습지요. 절엘 다녔던 마누라가 화장을 해달라고 유언을 했었는데 교회를 다니는 며느리 바람에 그렇게 하지를 못했어요. 시신도 교회의 공원묘지에다 안장을 했는데 이상한 일이었어요. 마누라가 꿈에 나타나서는 춥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이따금씩 같은 꿈을 꾸면서 오 년이 흘렀지요. 그래 아무래도 이상해서 이장을 하자고 주장했지요. 아들을 설득해서 묘를 파게 되었는데 글쎄...... .”
설 영감은 눈뜨고는 볼 수 없었던 그때의 일이 돌이켜져 말문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됐는데요?”
설 영감의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주인여자가 조바심을 냈다.
“물 속에 잠겨있는 것이었어요.”
“물, 물 속이라고요?”
“그래 꺼내 가지고 뚜껑을 열어보니까 시체가 뚱뚱 부어있지를 않겠어요? 갓 죽은 사람처럼 색깔만 푸르딩딩 해 가지고요. 물이 워낙 차서 살이 썩지를 않았다는 겁니다. 참 끔찍해 보였어요. 그제야 꿈에 나타나 그토록 춥다고 했구나 싶은 게 기가 막힐 수 밖예요. 왜 아니 추웠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조사해보니까 마누라 묏자리가 바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위에 쓰여졌지 뭐예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
볼 밑으로 쳐진 주인여자의 근육이 파르르 떨리면서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사십 구제가 미신이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하나님한테 죄를 짓는 일이라는 며느리의 주장이었지만 우겨서 화장을 해버렸지요. 오년 동안이나 물 속에 잠겨있었으니 답답했을 텐데 다시금 땅속에 묻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그래 물에 잠길 일없는 데서 사람구경, 경치구경 실컷 하라고 명산인 이곳 설악산에다 뼛가루를 뿌려 주었습지요. 반분이나마 풀렸는지 그 후론 꿈에 나타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정작으로 보고싶은 지금에 와서는…….”
“그러시겠지요. 사람의 도리란 게 그게 아닐 것이련만…… 주위에서도 보면 종교 문제로 제사가 미신이니 뭐니 해서 불화를 빚은 집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제 생각은 그래요 제사라는 게 돌아가신 조상 님에 대한 효도고 풍습인 것인데 그걸 미신이라고 몰아붙이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어요. 없는 걸 꾸미고 만들어서 섬기는 것도 아니고 살아 계시다 돌아가신 조상 님들 아닙니까? 그런 쪽으로 생각하면 문제될 게 뭐 있겠습니까.”
설 영감은 주인여자의 말을 들으면서 제사를 싸 짊어지고 다니는 일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