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월동준비, 페치카 점검하고 싸리나무 베어다가 빗자루 만들고
볏짚을 구해와서 새끼 꼬고 작은 멍석을짜서 막사 창문 외부에 방풍망으로 다는등
여러가지 일을 했었는데 당시군대는 시골 출신들과 농사 짓다온 병사들이 많아
모든 겨울나기 일들을 비교적 손쉽게 할수 있었습니다.
작업이 끝나면 고참들은 쫄따구 시켜서 PX에서 막걸리 받아다 한잔씩 했지요.
마치 농사일하다가 논두렁 앉아 한잔 걸치는 모습이 연상되는 3소대 말년고참들
내년이면 아마 70일 겁니다. 우직하고 말없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때리면 맞고
주는대로 먹고 3년을 보내신 분들....
군대는 먹는 시간이 제일 즐겁습니다. 식당앞에 줄지어선 누더기 상 거지떼 ?
아닙니다. 무적정예 20사단 60연대 1대대 전우들의 45년전 모습 입니다.
이광희(경북영주)상병과 김동완 상병(온른쪽)
춥고 추운 겨울이 오고 성탄절은 하루 쉬는 날이니 작업 교육없고 이날은
종합선물세트(과자,사탕등) 상자가 소대 별로 몇개씩 지급 되었는데 이것은
공무원과 국영 기업체같은 공공 단체에서 군 장병위문품으로 전달한것을
육군 본부에서 지급 시작되어 제일 말단 소총 소대까지 도착하면 소대당
고작 5-6개 정도가 전해졌습니다.
나중에 들은 애기로는 1인당 한개라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마니 묵었나?"
"정량 무겄습니다 !!!" 이건 아니고 그냥 대충 맛만 보았습니다....
12월 30일인가 31일인가 년말이라고 망년회는 아니지만 2소대에서 회식이 있었고
중대본부 고참 2명과 중대본부 제일 쫄병 김재수 일병도같이 어울려 한잔씩 했는데
김재수 일병은 충북증평 출신으로 중대본부근무병중 저보다 몇달쫄다구 였습니다.
회식이 무르익어 취기가 좀 오르자 2소대 연제옥 하사와 중대 본부 한영구 병장과
김학기상병이 서로 말 다툼끝에 주먹 다짐으로 번졌는데 그때 김재수 일병이 고참
위한 생각해서인지 뭔지 갑자기 중대본부 책상뚜껑 목제 나무판으로 연제옥 하사의
머리를 때려 7바늘이나 꿰매는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발생해서 대대 주번 사령도
오고 부대 비상 연락으로 퇴근 했던 소대장, 중대장,인사계님 모두 부대로
들어오시고 전중대는 연병장에 집합해서 앞으로는 회식도없고 모두들 정신차려
근무하라... 사고친 김재수 일병은 상관 폭행으로 영창에 입창조치한다....
모두들 근신하라.... 알겠나!!! 중대 구령 조정 3회실시 !!! 아!!!~~ 중대 해산!!!
모두들 곤히 잠든 새벽...
잠결에 항아리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조종현 상병이 "재수가 죽었다!재수가!"
모두다 행정반에 가보니 중대장실에 김재수일병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시간 상황근무 조종현 상병의 말로는 상황근무중 김재수가 행정반에 들어오더니
"조상병, 내가 지금부터 상황 근무 설테니 들어가 자라."
조종현 상병과 김재수 일병은 입대전 부터 서로 잘 알고 지냈던 사이였습니다.
그 말대로 내무반에 가보니 잘곳이 없어 중대장실 야전침대에서 자고 있었다는데..
김재수 일병이 깨워서 일어나보니 김재수일병이 의자에 앉아 M16을 턱에대고
"조 상병.. 우리집에 내 이야기 전해줘"
"야. 재수 너 왜그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성이 울리고 온사방에 피가 튀었다고 합니다.
M16 자동으로 세발이 김재수 턱밑에서 뒷머리로 관통, 현장에서 즉사 한거지요..
대대와 연대에 상황 보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대와 사단 관계자들이 오고
사단 헌병대에서 사망 현장 사진찍고 사체 검사 현장 조사후 중대본부 전원과
당직사관 중대장 인사계님 모두 불러 조사하더니 이어서 전날있었던 폭행 사고
관련 2소대 내무반장, 피해 하사 모두 대 행정반에서 1차 조사후 사망사고 현장에
있었던 조종현 상병만 데리고 갔는데 저는 앞서 말씀 드린대로 당시에 1소대
소속으로 되어있어서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았습니다.
조종현 상병은 사망당시 현장에 있었으며 입대전에 김재수 일병과 잘 알고
지낸것이 밝혀져 제일 먼저 조사 대상 이었고 다음날 2소대에서 싸웠던
한영구 병장 김학기 상병이 불려가 사단 헌병대에서 조사받고 조종현 상병과
함께 영창15일에 처해졌습니다.
부대 관리와 실탄 관리 책임등으로 중대장,인사계님은 연대 본부에
대기 조치되었습니다.
자살한 김재수 일병은 저보다 6개월 정도 늦은 후임병 으로 중대 본부에서
저와 둘이 쫄병생활 했었는데 평시에도 과묵하고 잘 웃지 않았으며 항시
무슨 고민 있는것같이 보여 그날 상급자 폭행사고로 인해 영창가는 이유만으로
자살했다고 보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특별하게 나타난것도 알려진것은 없었습니다.
고인은 말이 없고 그이유는 죽은 김재수 일병만 알고 있겠지요.....
며칠전 당시 인사계 김영미 상사님을 만났을때 그당시 사고후 어떻게 되셨냐고
물어보니 중대장님과 함께 대기 발령후 3개월간에 여러차례 조사 받았으나
별다른 문제점이 없어 군생활을 계속할수 있었고 이종헌 중대장님은 대령으로,
인사계님은 상급부대 여러곳을 거쳐 3군 사령부 주임원사로 두분 모두 군 생활을
영예롭게 마치셨다고 합니다.
1976년 1월 초 김재수 일병 사고후 공석이된 중대장, 중대 선임하사(인사계)에
새로운 분들이 부임 해오셨는데 중대장으로 3사 2기의 리득재 대위님과
신임 인사계로는 경남 통영 출신의 김태호 중사님이 오셨습니다.
이씨를 리씨로 명찰에 박으신 리득재 중대장님 !!!
60연대 제일 연장자 고참 중사 김태호 인사계님 !!!
이두분과 함께했던 저의 군생활 이야기 다음에 계속 하겠습니다.
첫댓글 지나간 아픈 과거의 이야기 이면서 조금은 미스테리한 사건이네요
예전이나 그 후에나 군생활 하다보면 영창 또는 군기 교육대 가는일이 많았는데...
88년도 제 군생활 할때 제 동기가 마지막 훈련 끝내고 몰래 술먹었는대.. 머라고 다그치는 전포대장(중위)을 가로수 지지대
몽둥이로 두둘겨 팬적인 있는데...덕분에 영창가서 군생활 더했는데,,이러한 비숫한 사고는 비일비재 했는데...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참 궁금 하네요
마음 한 구석 아련한 슬픔이 밀려오네요 83년도에 하사대병사 집단 난투극으로 전 중대원 군기교육과 여러명이 영창가고 그후 총기분실사고로 헌병대 수사과정의서 난투극있던게 밝혀져 다시 영창갖던 병사 3명이 군교도소간 아품이있었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제가 전역할 당시 2,4종계는 한상규 병장이었는데 아마 양평에서 78년 8월? 경 전역 했을거 같은데
백남칠 전우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