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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탄생과 소멸의 진화, 인간만이 방종을
배재경
지난여름 폭염은 모든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생물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살인적 더위에도 인류의 시계추는 변함없이 돌아갔고, 자카르타에서는 아시안게임이 열기를 더하고 나라 안에서는 민족의 비극으로 탄생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 눈물샘을 자극시킨다. 또 북한과 미국의 협상에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의 지나친 타산주의에 애꿎은 대한민국의 통일시계만 자꾸 멈췄다 절뚝이며 가는 형국이다. 우리 민족을 두고 외세의 눈치를 살피는 일들이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지상의 모든 것은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전제로 진화해왔다. 물론 소멸은 새로운 탄생을 위해 사라진다. 그건 불가분의 일이다. 현재의 우리 삶도 소멸함으로써 새로운 미래세대, 미래생물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유독 인간만은 다른 생물들에 비하여 지구상에서 오래도록 존재한다. 이건 우주질서를 위배하는, 인간의 두뇌가 가져온 지나친 방종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시인들도 탄생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잘 따르고 있는지, 되새김이 필요할 때 인 것 같다.
우리 한국문단의 중심은 물론 독자다. 요즘은 독자들의 눈높이가 높아 웬만한 글들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저 구렁텅이의 저급한 인터넷의 요설로 취급받는다. 그러기에 문학의 진지함이 더 요구되는 시기이다. 그럼에도 전국 곳곳에는 문학을 가방의 악세사리처럼 여기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작가나 독자가 모두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분들만이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지극히 정상적인 일반인들이 독자가 되고 나아가 노력하여 작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허나 문제는 이런 자연흐름을 악용하는 무리들 때문에 문단에 병이 든다. 실제 부산의 한 일간지에는 시인, 수필가롤 등단시켜준다고 광고까지 나온다. 순수한 일반 독자에게는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 광고인가? 막연히 동경하던 문학가가 1-2년 안에 될 수 있다니, 등단까지 시켜준다니.... 결국 그런 식으로 순수 독자를 우롱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학 판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온 사람들은 문학 판이 다 이런거구나 하고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간다. 자신이 ‘길을 잘 못 들었구나’ 라고 느낀다면 그 분은 성공한 사람이다. 자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최대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호는 긴급하게 기획하였지만 ‘시인들이 상상하는 통일’ 특집이 큰 호응을 얻었다. 긴박한 시간임에도 참여해준 시인들에게 무엇보다 감사함을 전한다. 시기적절한 기획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계속해서 더 좋은 책을 만들라는 채찍에 다름 아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가을호는 다소 산만하지만 나름 읽을거리가 있다. 먼저 오랜만에 서규정 시인의 소시집이 준비되었다. 현재 병상에 있는 그가 쓰는 시는 어떤 세계를 담고 있는 지 독자들은 무척 궁금하리라 여겨져 편성했다. 그리고 우리 문단의 어른들인 고래동인(강은교, 김형영, 윤후명, 정희성)들을 모시고 우포늪에서 가진 ‘나비詩會’ 현장을 스크랩한다. 문단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분들의 나들이에 많은 지역의 시인들이 함께 해주셨다. 시회의 집담 내용 중 전체적인 부분은 이미 사이펀 2호에서 다루었으므로 중복성을 피하고자 부분적으로만 정리하였다. 갑작스런 사고로 정작 나비시회의 죄장이신 강은교 시인이 행사에 참석치 못한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인기연재물인 ‘강은교 시인의 범어에서 보내는 문학편지’는 어김없이 원고를 보내주셨다. 이 계절의 시인은 부산의 김경수, 광주의 나종영, 제주의 변종태, 경북의 이중기 시인을 모셨다. 모두 자기 색채가 분명한 시인들의 시를 만나는 기쁨이 크다. 특히 이중기 시인은 사이펀 제1회 문학상 수상시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을호에 사이펀이 주목한 시집은 젊은 시인 임경섭 시인의 최근 시집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를 선정했다. 도시시의 대세로 따라하기의 시들이 난무하는 시단의 형세에서도 자신만의 서정성을 담보하는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젊은 시인의 시세계를 만나는 기쁨이 크다. 장은영 문학평론가가 소서평을 맡아, 이번 시집의 무게와 흐름을 짚어 주셨다. 아울러 신인특집에는 지난해 사이펀 제2회 신인으로 나온 김뱅상 시인을 비롯하여 우남정, 윤여진, 이소회, 임현준 시인을 모셨다. 문학잡지와 신춘문예 라는 두 축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신인들의 신선한 언어들을 만나는 즐거움 또한 크다. 이번호 사이펀의 시인들에도 많은 좋은 작품들이 모였다. 조진태 시인에서 이명선 시인까지 중견과 신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지역별 안배를 하다 보니 강원, 경기, 경상, 서울, 전라, 충청 등에서 다양한 시인들이 모셔졌다. 유명시인보다 열심히 쓰는 시인을 찾아가는 본지의 성격에 잘 맞는 구성인 것 같다. 그리고 올해는 한국현대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수영 시인의 50주기가 되는 해이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50주기 행사가 많이 열린 듯 하다. 본지도 후원으로 참여하여 ‘김수영과 전쟁문학’이라는 주제로 김수영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거제와 전쟁의 상흔 중심에 있는 동두천의 시인들과 함께 지난 7월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의 발제문을 한국해양대 구모룡 교수와 동두천의 최상경 문학평론가가 써주셨다. 그 내용을 전재한다. 아무래도 동일주제의 세미나 발제문이다 보니 두 내용 중 일부는 같은 부분도 잇으므로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다. 아울러 두 지역 시인들의 작품도 함께 게재한다. 행사를 준비해준 거제도의 이금숙, 동두천의 김정자 시인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번 호에는 전체적인 분량 때문에 서평이 빠졌다. 해설 엿보기는 고선주, 김명옥, 김황흠, 박은주, 양현주, 이동호, 이만식 시인의 시집을 내보낸다. 그리고 지난 호 주목시집에 참여하면서 빠졌던 송진 시 창작 특강이 계속 연재된다. 사이펀문학상이 그동안 숨어서 이름을 밝히지 않고 후원해준 독지가의 개인적 사정으로 문학상금이 중단되면서 ‘사이펀문학상운영위원회’로 확대하여 시작하였다. 안내 문자를 보고 참여의사를 전해오는 분들이 있어 올해도 제3회 수상자를 내는데 큰 문제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항구적 문제해결을 위하여 더 많은 위원과 후원참여를 기다리며 문학을 위해 진심으로 참여할 독지가를 기다린다. 물론 그 분과 함께 문학의 영광을 함께 나눌 것임은 당연하다. 가을의 서곡을 기다리며...... 사이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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