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釜山)
고대: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영도구(影島區) 동삼동(東三洞)·영선동(瀛仙洞), 서구(西區) 암남동(巖南洞), 사하구(沙下區) 다대동(多大洞), 북구(北區) 금곡동(金谷洞) 등의 해안과 강변에 있는 조개더미[貝塚(패총)]들이 있다. 여기에는 석기·빗살무늬토기 등의 생활용구와 먹고 버린 조개·동물뼈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주로 어로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내륙의 평지나 구릉지대에서 발견되며, 그 분포는 부산시내 전지역에 퍼져 있고 특히 동래구(東萊區)에 집중되어 있다. 이때 이미 원시적 농경생활이 이루어져 사회와 문화가 급속도로 발달하여 삼한시대에는 유력한 부족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 같다.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은 동래지방에 있었던 나라로 보는 의견이 유력한데, 이 나라는 김해지방의 가야연맹체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부강한 나라로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동래 복천동고분군(福泉洞古墳群)과 연산동고분군(蓮山洞古墳群)의 규모와 껴묻거리[副葬品(부장품)]의 내용으로 그것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는 옛 장산국 또는 내산국(萊山國)인데 신라가 이를 빼앗아 거칠산군(居漆山郡)을 두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동래군으로 개칭하고 동평현(東平縣)과 기장현(機張縣)을 영현으로 하였다. 835년(흥덕왕 10)에 범어사(梵魚寺)를 창건하였다.
고려
1018년(현종 9) 동래현이 울주의 영현이 되었다가 뒤에 현령을 두어 분립하였다. 동래현의 영현인 동평현은 양주(梁州)의 영현으로 이속되었다.
조선
1397년(태조 6) 동래에 진을 설치하여 병마사가 판현사(判縣事)를 겸하였다. 고려 말부터 창궐하던 왜구가 1396년 동래현·동평현·기장현을 침범하였다. 1423년(세종 5) 부산포를 개항하여 왜관을 설치하였다. 1428년 동평현이 동래현 소속으로 복귀하였다.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으로 왜관을 폐쇄하였다가 1547년(명종 2) 다시 개관하였는데, 이때 동래현을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켰다. 1592년(선조 25) 울산 개운포(開雲浦)에 있던 경상좌수사영(慶尙左水使營)을 수영(水營;지금의 水營區 水營洞)으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부산첨사 정발(鄭撥)은 부산진성을,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양산군수 조영규(趙英圭)는 동래성을, 다대포첨사 윤흥신(尹興信)은 다대포성을 사수하다가 순국하였다. 1605년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송상현을 모시기 위하여 송공사(宋公祠)를 세웠다가 1624년(인조 2) 충렬사(忠烈祠)로 사액되면서 임진왜란 때 이 지방에서 순국한 충신·열사를 합사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동래성이 함락된 뒤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599년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07년 두모포(豆毛浦)에 왜관이 다시 설치되었다. 1655년(효종 6) 동래부에 독진(獨鎭)이 설치되고 1690년(숙종 16) 부사가 방어사를 겸하였다가 2년 뒤에 방어사가 폐지되었다. 1678년 왜관을 초량(草梁;지금의 龍頭山 일대)으로 옮겼다.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에 의하면 1759년 동래부 호구수는 6657호 2만 5753명이었다.
근대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체결에 따라 부산포가 개항장이 되었다. 1877년 부산에 조계(租界)가 설치되었으며, 일본·청·영국의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1883년 개항에 따른 항만관리·외교사무를 담당하기 위한 감리(監理)를 두어 동래부사가 이를 겸임하였으며, 부산해관(釜山海關;부산세관)을 설치하였고, 1890년 동래감리서(東萊監理署)를 설치하였다. 1895년 동래부는 경상남도에 소속되었으며, 1914년 군면통폐합 때 동래군이 되었다. 1906년 일본 영사관이 폐지되고 이사청(理事廳)이 개설되었다. 1908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1909년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하관)] 사이에 연락선이 취항하였다. 1914년 동래부가 동래군으로, 동래부 부산면이 부산부로 개편되었다.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겼으며, 1934년 영도대교가 준공되었다. 1936년 동래군 서면과 사하면 암남리를 편입하고, 1942년 동래읍·남면·사하면을 편입, 시역을 확장하였다.
현대
6·25가 일어나자 임시수도로 반격의 기지가 되었으며 피난민이 몰려 인구가 급증하였다. 1955년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 1957년 구제가 실시되면서 6개 구청을 신설하였다. 1963년 정부직할시로 승격하면서 동래군 구포읍·사상면·북면 및 기장면 송정리를 편입하였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1973년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1976년 김해국제공항이 개설되었다. 1983년 경상남도 도청이 창원시로 옮겨갔고, 1987년 지하철 제2단계 구간이 개통되었다. 1995년 3월 양산군 장안읍(長安邑)·기장읍(機張邑)·정관면(鼎冠面)·일광면(日光面)·철마면(鐵馬面)과 진해시 웅동2동(熊東二洞) 일부를 병합하여 광역시로 되었다. 이때 통합된 양산군 지역에 기장군이 신설되고, 동래구는 동래구와 연제구로, 남구는 남구와 수영구로, 북구는 북구와 사상구로 각기 분구되었다. 2003년 현재 15구 1군 2읍 3면 221개 동으로 되어 있다.
자연
한반도의 남동단에 있는 위치성과 북서쪽으로 뻗은 험준한 태백산맥의 여맥, 서쪽에 흐르는 낙동강 등의 지형적 조건은 도***달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북서쪽으로 금정산(金井山, 802m)·백양산(白楊山, 642m)·고원견산(高遠見山, 504m) 등이 뻗어가면서 이어지는 능선은 구봉산(龜峰山, 405m)에서 남쪽으로 급전하고, 남서쪽에는 천마산(天馬山, 322m)·장군산(將軍山, 144m) 등이 구릉성 산지로 이어져 다대반도·암남반도를 이루며 바다에 돌출하여 부산항의 남서단을 감싸고 있다. 북동쪽에는 황령산(荒嶺山, 428m)·금련산(金蓮山, 419m)을 잇는 짧은 능선의 저구릉성 산지가 남동방향으로 이어가면서 적기반도를 이루어 부산항의 동단을 감싸고 있다. 이 밖에도 계명산(鷄鳴山)·구월산(九月山)·증산(甑山) 등이 있다. 북서산지의 서쪽에서 남서방향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남해로 유입하면서 양안에 사상 및 사하지역과 김해지역의 넓은 평야를 이룬다. 지류인 죽림강이 김해군 대동면(大東面)에서 녹산 쪽으로 흐르면서 넓은 삼각주평야를 이룬다. 동래분지상을 흐르는 수영강(水營江)은 장산과 황령산 사이를 흘러 수영만에 유입하기까지 침식분지를 이루고, 백양산에서 발원한 동천은 부산항에 유입하면서 서면 일대에 평지를 이루며, 금정구(金井區) 북동부를 범어천(梵魚川)이 흐른다. 해안에는 적기·암남·장군·다대반도가 돌출하여 그 사이로 수영만·부산만·감천만·다대만 등이 있다. 해안선 가까이 산지가 임박하여 대부분 수심이 깊고 해안침식이 왕성하다. 따라서 태종대 등의 암석해안에는 해식애·해식대 등의 해안지형이 잘 발달하였고, 만입부에는 두각지에서 침식된 물질로 자갈해안·사빈해안 등이 있다. 기후는 전형적 해양성기후로 연평균기온 14℃, 1월 평균기온 0.9℃, 8월 평균기온 25.4℃이며, 연중 0℃ 이하의 평균일수는 10일 미만이다. 연강수량 1466.2㎜로 다우지역에 속하며, 강수량은 4∼9월에 약 78%가 집중된다. 바람은 겨울에 북서풍, 여름에 남서풍과 해륙풍이 심하며, 연중바람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
산업·교통
한국 최대의 항구도시로 취업인구는 2001년 현재 농림어업 2.0%, 광공업 및 제조업 22.3%, 기타 서비스업 75.8%로 제조업 및 기타 서비스업의 비율이 매우 높은 전형적 상공업도시이다. 농업은 1978년 김해군 일부지역의 편입으로 그 비중이 일시적으로 높아졌으나 농업 노동력의 유출과 농경지의 도시적 토지이용에로의 전환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농업의 형태는 도시시장을 대상으로 소채·과수·우유 등을 주로 생산하는 상업적 근교농업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구포배와 삼락동(三樂洞) 딸기는 예로부터 유명하다. 수산업은 농림어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개항 당시 대구·청어를 주어종으로 하여 상업 다음가는 주요 산업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도시산업화에 기인하여 비중이 점차 감소 추세에 있다. 상업활동으로는 조선 후기에 읍내장(邑內場)·좌수영장(左水營場)·부산장(釜山場)·독지장(禿旨場) 등이 있었으며, 이들 시장은 모두 5일 정기장이었다. 장시에서는 농산물이나 부업적으로 생산된 동래담뱃대·동래유기(東萊鍮器) 등의 수공업제품과 명지소금 등의 어염(魚鹽)이 거래되었고 보부상이 큰 구실을 하였다. 근대적 상업의 효시는 개항 후 전통적 상업의 붕괴와 함께 일본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6·25 이후 한때 침체되었으나 1960년 이후 제조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크게 발달하였다. 거류지를 중심으로 한 광복동(光復洞) 일대의 국제시장 등이 제1의 상권이었으나 시가지의 확장과 함께 서면 일대가 지리적 중심부가 되면서 새로운 상업중심지로 등장하였다. 한때 전국의 90%를 차지하던 무역은 다른 항구들의 성장으로 비중이 낮아지긴 하였으나 아직도 최대 무역항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부산항은 1876년 부산도라는 이름으로 개항하였으며, 1906년 처음으로 부두축조공사를 시작하여 1945년까지 제1·2·3·4부두와 중앙부두를 만들어 근대 항만의 위상을 갖추었다. 1974∼1982년에 부산항 1, 2단계 개발사업을 추진하여 자성대 컨테이너 부두를 비롯한 4개 전용부두와 국제여객부두 등을 만들었다. 1985∼1991년에 부산항 3단계 개발사업으로 신선대 컨테이너 부두를 건설하였으며, 1992∼1998년에 4단계 개발사업으로 감만컨테이너 터미널을 만들어 늘어나는 컨테이너화물 수요에 대처하였다. 2002년 2월에는 신감만부두를 개장하였다. 부산항은 한국 제1의 항만으로서 우리나라 총 해상수출화물의 40%, 컨테이너 화물의 85%, 전국 수산물의 40%를 처리하고 있으며, 북항·남항·감천항·다대포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3년 현재 연간 하역능력은 9104만 t이며 이 가운데 컨테이너 하역능력은 668만 TEU (부산해양청 자료)이다. 2003년 7월 현재 부산항을 기점으로 한 연안여객선 항로는 제주와 장승포, 목포, 고현 등 6개 항로가 있다. 도시공업의 발달은 주로 섬유·의류·신발류·합판·철강제품·조선 등의 대외무역 증가에 기인한다. 종업원 5인 이상인 제조업체는 음식료품, 섬유, 의복, 가죽산업, 나무 및 나무제품, 종이제품, 인쇄·출판업, 화학, 석유, 석탄, 고무, 플라스틱, 비금속광물제품, 1차 금속산업, 조립, 금속제품, 기계장비 등 9813개 업체(2001)가 있으며 산업 및 농공단지는 신평장림 공업단지를 비롯하여 총 7개로 총면적은 2111만 7311㎡에 이르고 여기에 1107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2001년 현재 부산의 수출실적은 45억 6672만 달러로 이 중 대부분을 공산품이 차지한다. 공업지역은 사상공단, 장림·신평공단, 영도·충무·동래·용호·서면지구로 나누어진다. 사상 및 장림·신평공단은 도시내 주택지구의 공장을 이주시키기 위하여 조성된 공업단지로 주물을 중심으로 한 각종 공업이 입지하여 있다. 영도지구는 가장 오래된 공업지구로 조선·금속기계 등이, 충무지구에는 수산물가공업·인쇄업 등이 집중되어 있다. 교통은 철도·도로·해상·항공의 모든 교통이 고루 발달하였으며, 철도는 경부선·동해남부선과 연결되고 도로는 경부·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되고 있다. 강서구에 김해국제공항이 있어 서울·제주·일본 등지를 잇는 국내선과 국제선이 개설되어 있다. 남해 각 지역으로 쾌속선이 운항되고 있으며 일본 시모노세키와는 부관페리호가 취항하여 국내 및 국제 여객항으로 중요한 구실을 한다. 한편 옛날 해상교통의 역할로 수영만 일대에는 재송포라는 포구가 있었다. 도시내 교통은 지형적 요인과 인구의 밀집으로 도로율이 불과 11.0%로 매우 낮아 심한 교통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주요 시내 교통로는 수출입화물 수송을 담당하는 도시고속도로와 남북으로 도시간선도로 역할을 하는 중앙로가 있다. 1994년 노포동과 신포동을 잇는 지하철 1호선 34개역이 완공되고 2002년 2호선이 일부 개통되어 운행되면서 도시교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동래향교와 안락서원이 있었다. 동래향교는 1392년(태조 1) 건립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35년(인조 13) 지금의 명륜동으로 이건하여 동래 유림을 강학하는 장소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안락서원은 1605년(선조 38) 부사 윤훤이 임진왜란 때 순절한 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관민제위를 향사하기 위하여 남문에 건립한 충렬사가 그 시초가 되었다. 1652년(효종 3) 부사 윤문거(尹文擧)가 송상현의 학행과 충절이 후학의 사표가 된다 하여 안락리(지금의 安樂洞)에 사당을 창건하여 안락서원이라 하였다. 이 밖에 1732년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읍성을 쌓은 기념으로 읍인(邑人)의 자제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세운 시술재(時述齋)라는 서당이 있었으며, 당감리의 봉래재(蓬萊齋), 송정리의 송호재(松湖齋), 부곡리의 영모재(永慕齋), 화지산(華池山) 아래의 경엄재(敬嚴齋), 지곡산(池谷山) 아래의 율수재(律修齋) 등이 있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김우정(金禹鼎)의 강학소인 향교재(鄕校齋)를 비롯하여 당리의 학산재(鶴山齋) 등이 소학교·보통학교 등과 함께 운영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895년 박기종이 설립한 사립 개성학교(開城學校)가 그 시초이며, 이어 그해 10월에 좌천동(佐川洞)에 사립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가 개교하였다. 1900년에는 동래 기영회(基英會)에 의하여 동래부소학교가 개교하였으며, 개양학교(開陽學校)·삼락학교(三樂學校)·동명학교(東明學校)·양정숙(養貞塾)·초량학교(草梁學校)·옥성학교(玉成學校)·부산공립보통학교 등이 잇따라 개교하여 조선 말기 신학문의 진원지가 되었다. 1946년에는 부산대학·동아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영남지방 교육문화의 중추적 구실을 담당하게 되었다. 2002년 현재 초등학교 273개교, 중학교 161개교, 고등학교 130개교, 전문대학 12개교, 대학 13개교가 있다. 또한 각 대학에는 많은 연구기관이 부설되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으며, 특히 해양·수산과학분야의 특색 있는 연구소가 많다. 이 밖에 시민을 위한 공·사립 도서관 17곳이 있으며, 부산대학교와 동아대학교의 박물관 외에 대연동(大淵洞)에 부산시립박물관이 있어 선사시대·가야문화·대일본관계의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시민회관을 비롯한 공연장에서는 연중 활발한 문화예술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해마다 10월 5일의 이충무공 부산포 승첩기념일을 전후하여 시민의 날 행사가 종합문화예술제로 거행되고 있다. 1996년부터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매년 가을 개최되어 아시아의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언론기관으로는 1946년 창설된 부산일보사가 있고 한국방송공사 부산방송국본부, 부산문화방송, 기독교부산방송, 부산교통방송, 부산방송 등 7개 라디오방송국과 한국방송공사 부산텔레비전방송국본부, 부산문화방송국, 부산방송국 등 3개 텔레비전방송국이 있다. 스포츠시설로는 서구 서대신동(西大新洞)에 실내체육관·수영장 등이 갖추어져 있는 시립 구덕운동장(九德運動場)이 있고 동래구 사직동(社稷洞)에는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부산종합운동장이 있다. 주요 복지시설로는 종합병원 26개, 병원 46개, 보건소 16개(2001) 등이 있으며, 아동복지시설 23개, 장애인복지시설 17개, 부랑인시설 3개, 노인복지시설 13개, 여성복지시설 14개, 정신질환자요양시설 2개 등이 있다.
문화재
부산만의 해안선과 낙동강 하구 및 내륙의 부산진·동래지역은 한국에서도 선사시대 유적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해안과 강변의 동삼동·다대포·금곡동 등의 신석기시대 조개더미와 내륙의 동래·전포동(田浦洞)에는 철기시대의 조개더미가 있으며, 동래지역과 사하지역의 여러 곳에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支石墓(지석묘)]과 각종 유물·유적들이 발견, 조사되었다. 이러한 유적들 가운데서도 사적 제266호인 동삼동조개더미는 신석기시대의 여러 문화층이 겹쳐진 한국 선사문화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며, 사적 제192호인 동래조개더미는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으로 여기에서는 제철화덕자리[製鐵爐址(철제노지)]가 발견되었다. 삼국시대의 고분군은 사적 제273호인 동래복천동고분군과 부산광역시기념물 제2호인 연산동고분군 등이 대표적 유적이다. 복천동고분군은 최근에 발굴, 조사되어 그 독특한 묘제와 풍부한 껴묻거리가 발견되었으며, 연산동고분군은 일찍이 도굴, 파괴되어 그 껴묻거리가 해외로 유출되었다. 구포동(龜浦洞)·화명동(華明洞)·덕천동(德川洞)에서도 소규모의 군집묘(群集墓)가 발굴, 조사되었고, 동래구 거제동(巨堤洞)에는 동래정씨의 시조묘(始祖墓)가 고려시대부터 전해지고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신라 말에 창건된 범어사에 범어사대웅전(보물 제434호)·범어사삼층석탑(보물 제250호)·범어사일주문(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2호)·원효암동삼층석탑(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1호)·원효암서삼층석탑(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2호)·범어사당간지주(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5호)·범어사석등(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6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만덕사지(萬德寺址;부산광역시기념물 제3호)에는 만덕사지당간지주(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4호)가 남아 있다. 그 밖에 부산대학교의 오층석탑(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9호), 동아대학교의 삼층석탑(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0호), 고려오층석탑(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3호) 등이 있다. 성곽 유적으로는 연산동 배산(盃山) 정상에 있는 배산성지(부산광역시기념물 제4호)가 가장 오래된 토성이며, 연산동고분기념물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한편 동래의 금정산성(金井山城;사적 제215호)은 한국 최대의 산성으로 금정산성복설비(金井山城復設碑;부산광역시기념물 제15호)가 있다. 동래읍성지(부산광역시기념물 제5호)는 지형을 이용한 산성식 읍성으로 고려 말 박위가 왜구침략에 대비하여 축성하였으며, 조선 영조 때 수축한 것으로 내주축성비(萊州築城碑;부산광역시기념물 제16호)와 동래남문비(부산광역시기념물 제21호)가 있고, 성내에는 동래부사청동헌(東萊府使廳東軒;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호)이 있다. 또 수영에는 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부산광역시기념물 제8호)와 수영성남문(부산광역시유형문학재 제17호), 다대포에는 수군첨사영의 성지와 다대포객사(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3호)가 있다. 부산은 일찍부터 한국의 관문 구실을 하여 왜관과 왜란의 유적도 적지 않은데, 용두산의 초량왜관 경계에 세웠던 약조제찰비(約條製札碑;부산광역시기념물 제17호)는 지금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왜성으로는 구포왜성(부산광역시기념물 제6호)과 부산진성 및 그 지성(支城)인 부산진지성(부산광역시기념물 제7호)이 있으며, 부산진지성 서문 및 성곽우주석(부산광역시기념물 제19호)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좌천동의 정공단(鄭公壇;부산광역시기념물 제11호), 다대포의 윤공단(尹公壇;부산광역시기념물 제9호)은 임진왜란 때 순국한 부산첨사 정발, 동래부사 송상현, 다대포첨사 윤흥신과 전몰장병을 위한 제단이다. 수영에도 25의용단(부산광역시기념물 제12호)이 있다. 동래성에서 전사한 군·민의 유해를 거두어 임진동래의총(壬辰東萊義塚;부산광역시기념물 제13호)에 매장하였으며, 충렬사(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7호)는 그들의 영령을 모신 사당이다. 그 밖에 동래향교(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6호)·장관청(將官廳;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8호)·군관청(軍官廳;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21호)·척화비(부산광역시기념물 제18호)·온정개건비(溫井改建碑;부산광역시기념물 제14호)·이섭교비(利涉橋碑;부산광역시기념물 제33호)·정운공순의비(鄭運公殉義碑;부산광역시기념물 제20호)·망미루(望美樓;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4호)·독진대아문(獨鎭大衙門;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5호)·금강공원(金剛公園;부산광역시기념물 제26호) 등이 있다. 한편 동아대학교박물관에는 개국원종공신록권(開國原從功臣錄券:국보 제69호)·안중근의사유묵(安重根義士遺墨;보물 제569-6호)·초충도수병(草蟲圖繡屛:보물 제595호)·궁궐도(보물 제596호)·융기문토기(隆起紋土器;보물 제597호)·쌍자승자총통(雙字勝字銃筒:보물 제599호)·의령보리사지금동여래입상(보물 제731호)·조대비사순칭경진하도병(趙大妃四旬稱慶陳賀圖屛;보물 제732호)·헌종가례도병(憲宗嘉禮圖屛;보물 제733호) 등의 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으며, 부산시립박물관에는 금동보살입상(국보 제200호)·영태이년명납석호(永泰二年銘臘石壺;국보 제233호)가 있다. 그 밖에도 마두식각배(馬頭飾角杯;보물 제598호)·동모(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8·19호)·동파두(銅把頭;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20호) 등의 유물이 있다. 또 부산진의 배롱나무(천연기념물 제168호), 범어사등나무군생지(천연기념물 제176호), 낙동강하류철새도래지(천연기념물 제179호), 부산전포동의 구상반려암(천연기념물 제267호), 부산수영동의 곰솔(천연기념물 제270호), 부산구포동의 팽나무(천연기념물 제309호), 부산수영동의 푸조나무(천연기념물 제311호), 부산괴정동의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316호) 등의 천연기념물과, 동래야류(東萊野遊;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수영야류(水營野遊;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대금산조(大琴散調;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좌수영어방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2호)·풍어제(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수영농청놀이(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 제2호)·동래학춤(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 제3호). 동래지신밟기(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 제4호)·충렬사제향(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 제5호)·부산아미농악(釜山峨嵋農樂;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 제6호) 등의 무형문화재가 있다. 이 밖에도 태종대(太宗臺:부산광역시기념물 제28호)·오륙도(五六島;부산광역시기념물 제22호)·유엔묘지(부산광역시기념물 제23호)·용두산공원(龍頭山公園;부산광역시기념물 제25호)·몰운대(沒雲臺;부산광역시기념물 제27호)·어린이대공원(부산광역시기념물 제32호) 등이 있다. 또한 부산광역시는 온화한 기후에 해변을 따라 발달한 해수욕장과 경승지 및 온천·사찰·역사유적 등의 관광자원이 풍부하여, 연중 내국인은 물론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찾아드는 국제적 관광지이다. 특히 동백섬과 미포 사이에 있는 해운대는 국내 최대의 해수욕장이자 부산의 대표적 관광지로서, 백사장과 송림·바다가 조화를 이룬 해안경승지이며 이 절경을 해운팔경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해운대온천이 있으며 숙박시설과 각종 위락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여름철이면 100만여 명 이상의 피서객이 모여드는 곳이다. 이 밖에 송정·광안리·다대포 등의 해수욕장이 있다. 영도 남쪽의 태종대는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인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해금강을 연상하게 하며, 오륙도는 부산만 내의 훌륭한 낚시터로서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시에서는 이곳을 국제수준의 해안공원으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래에는 동래온천이 있으며, 금정산은 공원으로 개발되어 동물원·식물원을 비롯한 많은 위락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케이블카로 연결된 산꼭대기에는 금정산성 등의 역사유적이 있고, 금정산 북쪽의 수목이 울창한 계곡에는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범어사가 있어 손꼽히는 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경치가 뛰어나 동래팔경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밖에 충렬사·안락서원·동래향교·자성대(子城臺) 등의 역사유적이 있으며, 금강공원·대신공원·성지곡공원·용두산공원·어린이대공원·자성대공원 등의 시민공원과 유엔묘지 등이 부산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또한 한국 10대 관광지에 해당되는 경주권·제주권·한려수도권·지리산권 등 4대 관광권과 연결된다. 대형 고급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은 도심부와 해운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온천을 중심으로 한 동래 일대와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하는 서면 일대도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2002년 현재 130만 5904명의 외국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