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스스로 팔목 자른 아론 랠스턴
미국의 등반가인 아론 랠스턴 (1976 ~ )은 2003년 5월에 등반 중에 조난을 당하고 바위 틈에 손이 끼인 채 5일 동안 고립되었으나 더 이상 구조의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팔목을 자르는 최후의 선택을 함으로써 살아날 수 있었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미국 서부의 사막지역 협곡을 혼자 등반하다 바위틈에 손이 낀 20대 남자가 고립된 지 며칠 만에 스스로 팔목을 절단하고 한손으로 암벽을 타고 내려와 극적으로 생환했다.
랠스턴은 협곡을 등반하다 바위가 내려앉는 바람에 오른팔이 끼었다. 온갖 방법으로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그는 그 상태로 사흘을 버텼으며 그동안에 배낭 안의 물과 빵조각이 떨어져 갔다. 그가 조난당한 사실을 아무도 몰라 구조대가 올 가능성은 없었다. 살아 돌아갈 유일한 방법은 손을 잘라내는 것이었다. 그는 15달러짜리 플래시를 사면 공짜로 주는 다용도 칼로 손목 주변을 찔러봤다. 날이 너무 무뎌 손목을 자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 다음 날 마침내 그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도 떨어졌다. 이젠 정말 양자선택을 해야 할 처지였다. 절망과 공포 속에서 번민하는 사이 다시 하루가 흘렀다.
또 다시 하루 뒤에 그는 마침내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팔을 잘라낼 힘이 남아 있을 때, 그리고 바위에서 손을 빼내고 나서도 구조를 받을 수 있는 곳까지 걸어갈 힘이 있을 때 결정을 해야 하였다. 그는 먼저 배낭에서 옷가지를 꺼내 상처를 동여맬 준비를 하였다. 그런 다음 있는 힘껏 팔을 비틀었으며 이때 바위 틈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팔목을 잘라내기 시작하였다. 칼이 무뎌 완전히 잘라내는 데 한 시간 가까이나 걸렸다. 지옥 같은 통증이 엄습했지만 그는 주저앉을 여유도 없었다.
랠스턴은 상처를 싸매고는 한손으로 바위산을 타고 내려갔다. 그는 피를 흘리면서 약10km를 걸어간 끝에 네덜란드 등산객을 만났다.
랠스턴은 미 방송사들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특별히 용기가 있었던 게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쪽 팔을 잃었지만 앞으로도 탐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랠스턴에게서 바위 틈에 끼인 팔, 그것은 분명히 그의 생존을 가로 막는 마이너스One에 해당하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큰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잘라냄으로써 살아날 수 있었다. 마이너스One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그의 인생은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었다.
(5)271전 272기의 서상문
경북 농촌 마을의 노인인 서상문(1936~ )은 70을 바라보는 나이게 무려 272번의 도전 끝에 2005년 4월에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합격하였다. 서씨는 "경북과 강원 일대를 돌며 집 수리공으로 일하는 직업 성격상 면허가 필요했지만 글을 읽지 못해 엄두조차 못 내다 2000년 구술시험이 도입돼서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이후 서씨는 각 면허시험장이 월 2회 실시하는 구술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매주 강원도 태백과 경북 문경을 오가며 시험을 치른 끝에 마침내 2종 보통 운전면허 학과시험 커트라인인 60점(100점 만점)에 턱걸이해 합격했다. 그동안 낙방한 횟수가 271회, 응시원서 인지대(1회 4000원)만 100만원이 넘는다.
서씨는 "나이가 들면서 지난해부터 집 수리 일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고 있지만, 오기가 생겨서 운전면허는 꼭 따고 싶었다"며 "서울에서 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경찰청의 문경운전면허 시험장 직원들은 합격 직후 서씨에게 축하 선물로 행운의 열쇠고리를 전달했다. 면허시험장 김치영 경위는 "보통 20~30회 정도 실패하면 대부분 포기하는데 서 할아버지는 5년째 우리 면허시험장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직원들과 아예 가족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집수리공으로서 발 역할을 하는 자동차를 운전하지 못하는 서상문의 불편함,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 그것은 곧 마이너스One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고 결국은 절반의 성공이지만 필기시험에 합격하는 성과를 만들고 새로운 인생을 펼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것은 곧 자신의 약점 즉 마이너스One을 제거하고 극복함으로써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표본이 될 것이다.
(6)얼굴 콤플렉스로 고민하는 회사원
최영민씨는 30대의 회사원이다. 그는 평소에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유난히 남보다 검은 편이어서 그것 때문에 남다른 콤플렉스를 가지면서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 싶은 마음에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도 두려워했다. 그것은 어쩌면 어떤 이성도 자기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민씨는 자신의 콤플렉스로 인해서 매사에 의욕을 잃었다. 그리고 회사 생활 자체에 대해서도 스트레스를 크게 느꼈다. 왜냐하면 사
무직인 그는 늘 많은 여직원들과 함께 근무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혼자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영민씨는 특히 여직원들이 자기네들끼리 농담을 하면서 웃어도 자기를 비웃는 것으로 여기고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는 특히 최근에는 몇 명의 여직원들과 함께 다음 주에 며칠동안 지방 출장을 다녀와야 한다는 상사로부터의 지시를 들은 후부터 더욱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심하게 두통을 앓고 위장장애를 겪기까지 하였다.
영민씨는 스스로에 대해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느낀 나머지 상담실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검은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의 원인을 찾아보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것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그는 자신이 마음으로 좋아했던 같은 학급의 한 여학생이 얼굴이 검다고 자신을 놀렸던 일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으며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얼굴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공부를 잘 하여 다른 여학생들로부터 관심과 인기를 얻었던 일도 기억할 수 있었다.
다행히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던 영민씨는 검은 얼굴이 오히려 특히 여성들에게는 건강과 남성다움이라는 매력적인 요소로 인식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직장에서 능력이 있으면서도 오히려 겸손하여서 다른 여직원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직장생활의 활력을 찾은 그는 최근에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기개발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7)햇빛 알레르기를 가진 여성
60대의 여성인 정희수씨는 햇빛 알레르기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 30여년 전부터 시작된 햇빛알레르기는 여러 가지 면으로 정씨를 괴롭혔다. 그는 중학교의 체육교사로서 20여년간 근무를 하였으나 최근에 사표를 내었다. 왜냐하면 그는 체육교사로서 운동장에서 수업을 할 때면 햇빛을 쐬기 때문에 늘 햇빛알레르기가 유발되어 고통을 겪어왔다. 그가 경험한 알레르기 증상은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면서 가려운 증상이다. 때로는 너무 가려워서 긁게 되는데 때때로 너무 심하게 긁고 하여서 피가 나기도 했다.
정씨는 자신의 피부가 햇빛에 노출된 상황에서 붉게 달아오르면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보이게 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었다. 뿐만 아니라 가려움 때문에 몸을 긁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남들에게 점잖지 않게 보일 것 같아서 그것 또한 싫었다. 교사로서의 직업을 사랑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크게 보람을 느끼고 있었던 그 자신이었지만 알레르기 문제 때문에 하루 하루가 고역이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여러 번에 걸쳐서 명예퇴직을 생각하였지만 막상 정든 직장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도 먹고 알레르기의 문제가 줄어들 것 같지않다는 생각 때문에 학교 생활이 지겨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모든 생활에서 의욕도 느낄 수 없었고 짜증만 늘어갔다. 알레르기 문제만 없으면 정년퇴직때까지 충분히 건강하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너무도 아쉽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는 상담을 통하여 자신의 햇빛 알레르기가 신혼초의 스트레스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시간선치료 기법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알레르기 문제 한 가지가 해결되었을 뿐인데 이제 그의 삶에는 새로운 활력이 찾아온 것 같았다. 이제 다시 생활이 즐거워졌다. 비록 학교는 그만 두었지만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느라 바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그는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