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
- 금오산
김 광 웅
임동초등학교 46회 동기회 첫 산행
1. 일시:
2. 산행장소: 구미 금오산(976.6m)
3. 참가자:
설레는 마음, <소나기>책에서 소녀가 던진 하얀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며 가슴이 뛰던 소년의 가슴처럼 내 가슴도 콩닥거린다. 그렇게 보고프고 그리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하지만 걱정이 먼저 앞선다. 오늘이 첫 산행인데 과연 몇 명의 친구들이 올까?
운전을 하면서 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내 안동 윤수한테 전화를 걸었다. 야! 지금 어디냐? 사실 어디냐가 문제가 아니고 몇 명이나 올까 그게 더 궁금한 건 산행을 추진한 나로서는 감출 수가 없다. 윤수 친구도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었는지 못 오는 친구들 설명부터 한다. 만종이는 계장 진급으로 바빠서 어떻고! 누구누구는 뭣해서 우짜니 등등 결론은 13명이란다. 그래도 안심이다. 대구 조희한테 다시 전화를 돌린다. 지금 어디지? 응 방금 대구에서 출발했다. 그래 조심해 와. 하고 곧이어 서울 철현이 한데 전화하니 지영이가 전화를 받는다. 철현이는 잠에 빠졌는지 아님 통시에 갔는가? 상걸이는 버스로 가고 지금 4명이서 특급열차 전세 내어서
난
그런데 가는 도중 조희한테 전화가 왔다. 부산에 사는
멀리 부산에서 친구가 좋아 한걸음에 달려온 정희랑 함께 금오산에 도착해 매표소 쪽으로 올라가니 갑걸이가 가져온 김밥과 귤, 과자 등을 친구들이 가방에 챙겨 넣고 있었다.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대구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손에 손마다 뭔가를 들고 인숙이는 언제 만들었는지 부침개랑 막걸리를 가져와 한잔씩들 하고 올라 가라나.
춘수가 제일 반기는 눈치다. 너무 좋아서, 너무 예뻐서 미운 친구들! 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희는 또 언제 준비했는지 수건 40장을 준비해서 친구들에게 땀날 때 닦으라고 하나씩 선물한다. 이런 친구들이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고향 친구란 이래서 좋은가 보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 했는데 우리 친구들은 정말 그런가 보다. 우정을 제일로 여기는 정 깊은 우리 친구들. 너무너무 고맙다고 나는 마음 속으로 모든 친구들을 대신하여 전한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향기 나는 대구 우리 친구들이라고 또 자랑한다.
산행기점은 금오산 관리사무소이다.
처음 산행에 참석한 친구들이 벌써 힘들어하는 눈치다. 차멀미 땜에 올까 말까 망설이다 용기 내어 찾아준 수자 친구, 자신의 등산 실력을 잘 아는지 한발짝 한 발짝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선행이 친구,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며칠 전 퇴원하여 멀리 서울에서 달려온 지영이. 자그마한 덩치에 약해 보이는 조희랑 옥순이. 언제나 공주처럼 착한 박순희, 봉희, 길란이! 사실 다들 조금 걱정이 된다.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앞세워 다시 오르니 1백여m나 되는 수직 절벽이 버티고 서있다. 수직절벽 명금폭포에는 흘러내린 빙벽폭포가 장관이다. 우리 친구들이랑 사진을 함께 찍고 할딱 고개를 올랐다. 너무 힘들어 오르면서 할딱! 할딱거린다 하여 할딱 고개라나. 정말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나 보다. 그래도 우린 고갯마루 바위에 올라 구미시내와 구미공단, 낙동강 물줄기와 가야산에서 수도산으로 뻗은 능선들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한 컷 찍고
이렇게 우린 정상에 도착해 하늘을 배경 삼아 사진을 한 컷 찍고 바로 아래 약사암에 자리 잡고 앉아 가져온 김밥이랑 옥례가 가져온 산삼주에 인숙이가 보내온 장아찌랑 오늘 오지 못한 친구들을 안주 삼아 맛나는 점심식사를 하면서 윤수 친구의 사회로 2006년 총동창회 일정(4월 16일)과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우리 임동초등 46회 동기회 산행동아리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토의했다. 결론은 각자의 의견이 분분할 거라 여겨 임원진의 의견을 쫓아 분기별 1회 산행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방금 먹은 점심 소화도 시킬 겸 우린 삼삼오오 추억을 담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단체사진은 물론 지역별 사진, 그리고 옛 기억을 더듬어 새들, 웃챗걸, 장터, 마령동, 이싯골 등등 끼리끼리 서 보니 그 어릴 적 꼬맹이들이 어느새 머리가 벗겨지고 배불뚝이 아니면 굵은 주름 몇 가닥이 잡힐 만큼 장년이 되었나 생각하니 세월은 알게 모르게 우리 곁을 스쳐가고 또 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산은 약사암으로 내려선 후 남통계곡과 법성사를 경유해 관광단지로 내려갔다. 그런데 약사암을 막 지나고 보니 급경사길에 음지라 바닥이 전부 빙판이다. 이때부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우성과 엄살에 내숭 떠는 우리 여자친구들이 너무 귀엽다. 아직 마음은 소녀 같은가 보다. 이럴 때 손 내밀어 잡아주지 않으면 어찌 친구라 하겠는가? 자, 내 어깨에 기대어 이 힘든 고비를 넘어가자, 친구야! 평소 넉살에 입담 좋은 석순이도 역시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여자일 수밖에 없는지 남자 친구들의 도움으로 설설 기어 내려가는걸 보니, 석순아! 이제 남자 친구들한테 애교도 좀 부리고 내숭도 좀 떨고 구박하지 말고 잘 좀 해라! 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우린 이렇게 금오산을 품에 안고 처음 출발했던 목적지에 도착하니 구미 사는 갑걸이랑 혜자가 마중을 나와 우릴 반겨준다. 혜자는 정말 오랜만이라 더욱 반가웠다. 우린 혜자의 안내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구미 한양가든 식당에 들려 취향대로 해장국이랑 추어탕을 시켜 소주 한잔씩을 권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오늘 저녁식사는 대구지역회장인
오늘 산행은 주차장에서-매표소-해운사-명금폭포-할딱고개-정상-약사암-법성사-주차장 이렇게 5시간의 첫 산행을 무사히 끝마쳤다.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며 친구들 무릎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산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기원을 떠나는 친구들의 가슴마다 헤어지기 아쉬운 작별의 미련으로 불어넣었다. 힘들었지만 친구들이랑 함께 하는 산행이라 다들 너무너무 행복해 보였고 우리 나이에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또한 행복하다.
여기가 천국이었네
- 덕유산
이 옥 례
어린 시절의 소꿉 친구들과의 등산이라 전날부터 가슴 설레고 잠 못 이루었다.
모두 종백이 봉고에 오르니 다섯 명이다. 조금 섭섭하지만 어쩌랴, 바빠서 못 온다는데 아흐, 너무하다. 안동양반네들 모두 두고 보자, 그래도 다섯 명이 모이니 이 얘기 저 얘기로 깨가 쏟아졌다. 야! 오랜만에 사람이 적으니 더 재미있다야! 종백이는 내가 제일 좋아한다. 바쁜 와중에도 친구들을 태워줄 차가 없으니 의무적으로 나왔다나, 얼마나 고맙냐! 종백이 정말 멋지다. 배려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친구를 위해서는 버선발로도 뛸 수 있는 마음, 그런 친구가 있어 난 행복하다.
차창 밖으로 울긋불긋 단풍진 산들이 필름처럼 휙휙 지나간다. 나오길 잘했다. 옆에 순희는 학교 다닐 때도 짝이고 처녀적도 새마을운동 한답시고 군 농촌 지도소에서 활동할 때도 행여 떨어지면 어찌될까봐 갱엿처럼 붙어다니고 이렇게 나이 들어 몇 가닥 주름이 어려도 메밀꽃에 벌처럼 붙어다닌다. 사는 게 뭐 별건가? 늘 이렇게 웃으며 사는 것, 작은 것에도 마음 설레며 사는 것, 그래서 느끼는 행복은 천 날 만 날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대구에 도착하니 동책이가 제일 먼저 나와 반기고 서 있다. 잘 있었냐? 모두 얼싸안고 반가움에 시끌벅적 난리다. 요즘 경제가 어려우니 동책이가 모두 한 차로 가는 게 어떠냐고 했다. 모두 찬성이다. 우리 모두 이 기회에 애국자가 된 기분이다. 기름도 아끼고 솥뚜껑이 들썩이도록 수다도 떨고 일석이조 아닌가? 모두 동책이 봉고차에 옮겨 타고 우린 꿈에 그리던 덕유산으로 출발했다.
차 안에 식구가 열한 명 오붓하게 조금 끼어 앉으니 더 정답다. 아까보다 식구가 많으니 왁자지껄 옛날 챗거리 5일장을 방불케 한다. 거기다가 조희가 땅콩과 먹을 거리를 잔뜩 사와서 연신 입 속으로는 땅콩을 까 넣으며 입도 즐겁고 얘기도 즐겁고 그저 흥이 난다. 하하 호호 재미좋아! 1년을 하루같이 매일 이랬으면 하는 기분으로 한참을 달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서울에 은희였다. 옥례니? 여기 금산인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천둥에 번개까지 어떡허니? 뭘 어떡하냐! 그냥 내려와. 비가 많이 와서 산에 못 올라가면 산 밑에 방하나 얻어서 먹고 놀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오늘 날씨가 왜 이럴까? 하필 오늘 비가 올게 뭐람. 파란 하늘, 눈부신 햇살, 빨간 단풍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다가 먹장구름 속에 갇힌 창 밖이 어두컴컴하다. 여기도 소나기가 내리려나? 예상은 했어도 기분이 영~ 그래도 차 안에 분위기는 친구들을 만나 마냥 즐겁기만 하다.
30분 정도 가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차창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세찬 빗줄기가 온 세상을 때리기 시작했다. 번개에다 천둥에다 차 안에 친구들은 그 새 꿀을 먹었는지 말을 잃었다. 에~이휴, 하느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못 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죄 없는 하느님만 원망한다. 그러나 마음 착한 친구들을 위해서는 하느님도 베풀 줄 아시는지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에 설마 날씨가 갤까 했더니 삼공리 매표소에 도착하니 하늘에 해가 더 눈부시게 나타났다.
서울에 철현이와 은희, 옥희, 부산 애들과 광웅이가 반가운 얼굴을 하고 다가와 서로 악수와 인사를 나누었다. 향적봉을 향한 표를 끊자 활짝 개인 날씨 속에 상쾌한 마음을 가득 안은 우리는 비에 씻긴 덕유산행을 시작했다.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가다 보니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친구들이 마치 걸어가는 단풍 같았다. 무주라 구천동! 말 그대로 구천계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도가도 끝없는 계곡과 작은 폭포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 맑은 물 위로 낙엽이 둥둥 떠내려와 한곳에 수북이 쌓여있다. 빨갛고 노란 단풍잎이 비가 와서인지 아님 내 눈이 파란 하늘에 씻겨서인지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되는 계절에 우리는 소꿉친구에서 중년을 넘어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만나 뜻 깊은 산행을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예쁘게 물든 단풍 앞에 우리는 나란히 서서 한마음이 되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화~ 안히 웃으면서 김치 ~~~
백련사로 가는 길은 전나무가 유난히 많아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없는 특이한 풍경을 이룬다. 길은 평지길이라 편안했다. 평지가 조금 길어 지루했지만 걸을만 했다. 또 양옆에 계곡과 단풍이 어우러저 눈이 즐거웠다.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몇 개의 봉우리 속에 향적봉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과연 정상을 밟을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우리가 1600미터를 오른다는 건 시간이 너무 늦다.
무사히 백련사에 도착하여 도시락을 풀어헤첬다. 너도나도 꺼내 놓은 음식들이 푸짐하다. 예나 지금이나 소풍 가면 먹을 때가 제일 즐겁지 않나 싶다. 김밥에다 초밥에다 먹을 게 얼마나 많은지 실컷 먹었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김밥과 맞바꾼 소주 두 병으로 술 한잔을 나누면서 주말마다 산에 가서 주운 도토리로 내가 써온 묵을 먹고 친구들 입이 즐거울 수 있다면 나는 이 때가 제일 행복하다.
백련사 올라가는 계단에 단풍이 하도 고와 친구들이 올라오지 않기에 내가 내려가서 야들아! 저 위에 단풍이 지서로 안 곱데이~ 모도 사진 찍으러 가자! 하는 내 말에 친구들은 지서로 안 곱다는 소리가 우스워 죽는다고 빼꼽을 잡는다. 하산하는데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보이는 산들이, 또 9부 능선까지 내려온 단풍이 어찌나 고운지 너도나도 옹기종기 모여 서서 사진 찍느라 난리다. 너무 빨리 하산하여 시간이 남는다고 산행위원장 웅이가 좋은 곳이라며 데려간 곳이 얼마나 좋은지 여기가 천국이 안닌가 싶다.
적상산 올라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굽이를 돌아 내려다보니 어찔어찔하다. 한굽이 틀 때마다 내려다 보는 단풍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였다. 산꼭대기에 틀어앉은 양수댐은 백두산 천지를 보는 듯한 착각 속에 어찌 이런 곳이 있을까 싶다. 뿐만 아니라 전망대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뭐라 말해야 할까? 멀리 보이는 산들이 그려내는 한 폭의 산수화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정말 황홀했다. 저기 멀리 보이는 향적봉 봉우리가 내 눈 속에 잡힌다. 비록 정상을 밟진 못했지만 이렇게 가깝게 보니 위안이 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식당에서 파부침개가 어찌나 맛있던지 거기다 내가 해온 묵과 막걸리를 친구들이 맛있다고 먹어 주니 음식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 음식을 맛나게 먹어 주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는데 힘이 솟아서 다음에도 해 와야지~ 하는 마음이 굴뚝처럼 솟는다. 끊임 없는 친구들의 찬사에 나는 이렇게 돈 안들이고 칭찬을 받으니 너무 행복한 여자다.
대구까지 오는 동안 차 안에서 노래를 얼마나 크게 불렀던지 목이 아프다. 꿈 속에서... 특히 순희의 울산아리랑은 듣기 좋았다. 순희야, 다음에도 울산아리랑 많이 불러도고! 아무튼 모두 집에들 무사히 갔다 하니 더욱 좋고 또 다음 산행을 기대하면서 천국을 다녀온 마음을 착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곱게 접는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
- 월악산
김 은 희
사랑하는 내 친구들아~ 오랫동안 기다려온 시간여서 그런지 너무도 반가웠고 정말 헤어지고 싶지 않은 머무르고 싶은 시간이였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눈부신 날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나타나준 친구들이 반가워서 눈시울이 젖어왔고 마주잡은 손에 따스한 우정이 느껴져서 힘이 들어가니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 즐거운 시간은 결코 흔하지 않을 것 같았어.
친구가 밤잠 설치며 해왔을 정성이 깃든 음식에 우린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행복함을 느꼈다. 휴게소에서 그놈의 우동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픈 와중에도 주차장에서 옥례가 따뜻한 호박 범벅을 한 그릇씩 퍼다 안겨 주는 그정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 또 영주 사는 인술이가 튀겨온 쌉싸름한 인삼은 어떻고. 꿀에 찍어 한입 깨물고 나니 온 몸에 힘이 절로 나드라. 이번엔 너무 험한 산을 피해서 우리 중늙은 초보들을 배려해주며 앞장서서 애써준 남친들 정말 감사하고 고마웠어. 누가 뭐래도 경상도 친구는 인정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며 우리 친구는 그 중 으뜸이라고 생각 해본다. 절대 빈말 아니다.
오르락 내리락 작은 봉우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올라가는 우리 친구들처럼 정겨웠고 웅장하고 높은 산들과는 달리 아기자기한 볼거리로 월악산 옥순봉 구담봉 자락은 영원히 우리들 눈 속에 남아 있겠지. 월악산을 굽이굽이 감아도는 충주호반은 안개를 머금고 여유로이 유람선을 띄운 채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어. 그 사이로 광호의 녹용주 알싸한 뒷 맛도 입안 가득 퍼지던 송이향도 오래오래 기억날 것이며 뜻하지 않게 나타난 한들댁 인술이 덕분에 처음 인삼 튀김도 맛보았네.
언제 먹어도 일품인 옥례표 도토리묵과 설기떡은 또 어땠구? 큰 덩치에 몸이 안좋아 축 늘어진 옥례가 안타까워 가슴이 쓰려왔다. 어찌됐던 재영이, 인술이 늬들이 명의다. 손가락 따주고 엎어놓고 등짝을 지압으로 꾹꾹 누르니 간 밤 잘못 먹은 음식이 체했는지 얼굴이 노랗게 질려 있던 옥례가 트림 한 번 스윽 하더니 금방 생기가 돌아 사과를 깎으며 아니 놀지는 못하리로다~ 하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잖아.
그 바람에 그저 흥에 겨운 분자는 그 끼를 주체 할 수 없어 신이 났고, 술병 들고 여기저기 누비는 기하도 잔칫날이 따로 없었어. 멀리서 와 준 친구들아, 고마웠다. 좀 먼 길이냐? 남쪽 끝자락에서 충청도까지 오느라고 수고했다. 이번 우리 서울팀은 거리가 가까워 여유가 있었고 힘들지 않아 거저먹기~ 호리뺑뺑이였다. 어찌됐거나 석순이가 강구에서 가져온 오리지널 싱싱한 해물 안주에 내가 준비한 돼지갈비는 찬밥 신세였다는 것만 알아다오.
가까이에 있었지만 근처에 접해본건 첨인 충주호의 하루는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이제 내 맘 속에 오래오래 자릴 잡겠구나. 이렇듯 중년을 무료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게 크나큰 기쁨과 환희를 안겨준 친구들아,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렴. 그리고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길 빌어줄게.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고 책임감 있게 자신의 자릴 지키고 있을 친구들아, 뒤늦게 찾은 우정이지만 변치 말고 잊지 말자. 희로애락도 함께 나누며 살아가자. 또 다른 여러 인연들도 많겠지만 그 중에도 어린시절을 함께 보냈던 고향 친구만큼 마음 편한 친구들이 또 어디 있을까? 만나면 절로 웃음이 묻어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 모두 모두 아프지 말고 행복하길 바란다. 설레이며 가슴 터질듯하던 어제의 그 환희를 다시금 맛보고 싶거든 제발 건강해다오. 사랑한다 내 친구들아!
- 내연산
김 은 희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에 전 날 밤 두어 시간이나 잤던가?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 세수하고 분장을 하고 새끼들 먹거릴 대충 챙겨두고 화실에서 밤새 일하고 있는 옆지기에게 전화를 했다. 재영이가 기다리고 있는 개봉역으로 태워다 달라고. 마침 중국에서 귀국해 큰 아들 수능시험 보는 걸 보고 간다고 집에 있기에 잘됐구나~하고 부탁을 했다. 이번 산행은 내연산이라 포항까지 갈려면 일찍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지하철은 홍제역에
교통사고로 퇴원한지 며칠 안 돼 불편한 몸으로 기어이 따라나선 우리 옥희도 들떠있다. 시인이 그 좋은 단풍을 안 보고 친구들을 못 만나면 시상이 떠오르겠냐며 너그럽게 산행길에 보내준 옥희 신랑이 고맙고 감사하다. 사실 나 혼자 멀대 같은 두 남자와 간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고, 갈까? 말까? 하는 갈등 속에 며칠을 보냈기에, 토요일 "나도 간다" 는 옥희의 전화에 내심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포항 친구 복자와 기원이도 보고 싶었고, 이 좋은 가을날이 아니면 또 내년 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척 서운했는데, 역시 이쁜 옥희가 있어 난 행복하다. 제발 장시간 여행으로 후유증이 없어야 될 텐데 걱정이 된다.
고향이 가까운 대구로 들어서니 마음이 한결 푸근해지고 설레기 시작한다. 휴게소에서 남쪽 친구들을 만나 시끌벅적 손을 잡고 흔들고 얼싸안고 하는 중에 분자의 꾸밈없는 털털한 목소리가 온 휴게소를 뒤흔든다. 언제 봐도 편안하고 정감이 가는 내 고향 내 친구들. 부담없이 웃을 수 있는 멋진 친구들아!우린 이렇게 치열하고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가끔씩 만나 서로에게 에너지를 충전해주는구나. 사랑한다 내 친구들!
보경사 휴게소에 다다르니 안동 친구들이 미리 도착해 있다. 역시 옥례가 일찍부터 잠 못 자고 서둘렀을 호박죽이 한 그릇씩 돌려지고 있었다. 아버님의 타계로 국내에 들어와 있던 상만이도 모처럼 산행을 함께 하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맛난 호박떡에, 경란이네 사과와 사과즙이 봉고차에 가득 실려 있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입이 벌어진다. 작년 봄 우리 남매와 남편이 함께 했을땐 푸른 신록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눈을 황홀하게 해주더니, 이번엔 계곡을 오르는 주변 풍경을 뒤늦은 단풍이긴 했어도 울긋불긋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많은 인파로 좁은 산길에 치이며 한적하진 않았어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오순도순 땀흘리며 나누는 대화는 정겹고 주변의 경관에 눈이 즐겁다 한다. 이번 내연산은 산행이 아니라 수려하고 폭포가 많은 계곡행이었다. 작년 봄에 봤던 연산폭포는 그 웅장한 소리와 내리꽂히는 물줄기에 두려움도 느꼈고 가까이 갈 수도 없었는데, 이번엔 영한이, 상만이, 기하와 사진을 찍고 여유도 부렸다. 관음 폭포의 숭숭 뚫린 저 동굴 속은 무엇이 감춰져 있을지 여전히 궁금하다.
관음폭포 왼편 등산로에 둘러쳐진 로프를 붙잡고 한참을 올라가자 와~우! 아래 계곡 쪽과는 또다른 아름다운 평지가 펼쳐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만 기를 쓰고 올라왔었구나. 선발대가 기다리는 넓은 개울가에 앉아 우린 또 배낭을 털어낸다. 그래 우린 이 맛에 중독이 된거야. 사방 팔방에서 가방에 꾹꾹 눌러 넣어온 먹거리를 꺼내 놓고 빙~ 둘러앉은 친구들은 어느새 사는 이야기로시끌시끌하다가 여기까지 공수해 온 귀한 술 한잔으로 즐거운 점심식사는 시간가는 줄 모른다. 너도나도 포즈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고 까르르 웃어제낀다. 행복의 시간은 머무르지 않고 흘러만 간다. 내려오는 하산길도 늘 옥희와 난 꼴찌다. 비실이 탁준이도 죽겠나보다. 보경사에 들려 우리 아들 수능 편한 맘으로 보게 해달라고 재영이와 부처님께 기원을 드렸다.
포항 친구
32명이 우렁차게 건배를 외치며 우린 살살 녹는 회맛에 빠져든다. 할 말은 서로 많지만 술 한잔을 부딪히며 위하여!로 대신했고 함께 노래부르며 우정을 확인했다. 아~ 이보다 좋을 수가. 하지만 시간은 우릴 기다려 주질 않는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또 먼 길을 제각기 돌아가야겠기에 서둘러야 했다. 아쉬움 속에 부산쪽 애들을 먼저 보내고 행여 흥이 깨질세라 상만이가 노래방으로 남은 애들을 이끈다.
먼저 간 부산 대구 애들이 함께 했으면 더더욱 좋았으련만 후배가 한다는 노래주점은 기대 이상이였고 끼많은 우리 친구들은 마이크를 잡고 놓을줄 모른다.역시 큰 물에서 놀다와선가? 덩치처럼 통큰 상만이가 상다리가 휘게 술과 안주를 준비해놨다. 갈 길은 먼데 분위기는 죽이고 이런들 어쩌하리 저런들 어쩌하리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살리며 순희의 울산 아리랑은 살살 넘어가고 태기 신랑까지 합세하여 노래주점의 흥은 식을줄 모르고 깊어만 가니 어쩔거나 마음은 불안하고 (수험생을 둔 부모들은 괜시리 죄진 거 없어도 새끼들한테 미안하다.)
몸은 떠나자는데 마음은 미련이 남아 더 놀다 가라고 내 안에서 악마가 소곤댄다. 그러니 어쩌랴. 우린 차에 올라야 했던 걸. 옥례와 광호는 술 마셔서 서로 운전 못한다고 날 잡아먹으라고 배 째라던데,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복자, 태기, 기원아, 만나서 반가웠다~. 늬들이 보고 싶어 포항으로 날랐구 역시나 가기를 잘했다고 혼자 빙그레 웃는다. 상만이가 함께 해준 산행은 더욱 좋았고 재미있었다. 아마 자네도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오르니 감회가 또 달랐을 것이네. 이제 고향 친구가 좋고 옛것이 그리운 나이가 아닌가?
우린 뭣에 홀린듯 친구들이 모여라 하면 자석에 끌리듯 달려오고, 함박웃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살면서 이제는 이런 재미라도 없었으면 뭔 낙으로 살았을꼬.라는 생각도 든다. 옥례야, 기하야 제발 건강해라. 그리고 남은 날이 그리 길지는 않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우린 열심히 살아가자~ 사랑하고,부대끼며, 언제나 행복한 마음으로 머무르고 싶은 순간을 만들어가자.
가슴에 피운 진달래
- 비슬산
김 은 희
옥희가 대구 비스산 산행후기를 쓰라고 자꾸 보챈다. 일 안 한다고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아나 본데,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이 더 바쁜 거 알까? 준비 운동 없이 산에 갔다가 발병이 나서 이틀을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더니 밀린 일이 산더미다. 잘난 두 아들 덕분에 두 학교에서 대의원으로 코 꿰었지만 어젠 다리가 아파 모임에 가지도 못하고 후원금만 따로 냈다. 입시 설명회도 가야 하고 시어머니, 친정엄니, 가끔 찾아뵈야지. 두 애들 오면 밥 먹여 학원 보내야지. 열두 시 넘어 오는 놈들 간식 챙겨줘야 하고 보고 싶은 영화도 많고 가끔 불러 주는 신랑이나 친구들과 술도 한잔씩 해야 하고, 시장보고 반찬 만들어야지 청소빨래는 기본이고 우리 주부들도 쉴 틈 없이 바쁘다. 영화 보기와 술 마시기는 왜 넣냐구? 국희처럼 넓은 초원 위에서 공은 못 치드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내 생활을 가져야 우울증이 안 온다. 내무부장관이 잡다한 병이 생겨서 앓아 눕고 가정이 엉망되는건 미연에 방지하는 게 최고다.
이번 비슬산은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로 다녀오게 돼서 더욱 뜻깊었다. 재영이 덕분에 그리웠던 많은 친구들 손을 잡아보고 췌취도 느껴보았으며 감미로운 봄향기를 흠씬 맛보고 왔다. 봉고차를 비롯해서 7대로 움직였던 총 인원이 30명... 아마 이번이 제일 많이 모였던 것 같다.
따스한 금빛 햇살을 받아 정겹고도 고즈녁한 집결지 유가사 앞에서 등산은 시작됐다. 산 사나이 광웅이를 선두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오랫만에 만난 친구의 근황을 묻고 살아가는 얘기를 꽃 피우며, 마치 황산절로 소풍가던 그 때처럼 들뜨고 즐거웠다. 몇 번을 쉬면서 나눠 마시는 이슬이 때문에 기하 얼굴이 벌써 종희 말처럼 홍단 불렀다. 지난번 덕유산행에서 술고팠던 걸 생각하며 배낭에 쐬주만 일곱 병 짊어지고 온
선발대와는 자꾸 멀어지고 진달래는 보이지 않고 하산하는 이들의 아직 꽃 피려면 멀었다는 말에 기운은 빠지고 다리도 아파오고... 끙 ㅡ하지만 속상하진 않았다. 우리가 꽃만 보러온 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아름다운 연초록 산길을 내 정다운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등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 남쪽 신사 광웅이 말마따나 우리가 이렇게 등산할 수 있는 건강한 다리를 과연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특히 우리 여자들은 골다공증이나 퇴행성 관절 등에 많이 노출되어 있으니 유효기간이 더 짧겠지? 기를 쓰며 오길 잘했다.
송진 냄새와 함께 감미로운 봄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지나간다. 혼자 떨어져 오르는 오솔길은 마냥 운치있고 정겨웠다. 지난번에 옥례가 감자떡과 푸짐한 도토리묵으로 포식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조희가 맛있는 떡을 해와서 돌린다. 이뿐 지지배 같으니라구. 각자의 배낭을 털어 둘러앉아 먹는 점심시간이 바로 해피타임이다. 아아아~지난번처험 술이 또 모자란다. 앞으로는 자기 먹을 술은 각자가 한 팩씩 넣어 오자고 해야겠다. 그래야 기하가 지 술 안 뺏기고 혼자 먹을 수 있어 좋아하지. 그러나 그 술을 나눠먹었으니 망정이지 아님 탁준이랑 기하 내려오다 아마 구부래졌을 거다.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어 피면 온천지가 불타듯 한다던 비슬산에서 아쉽게 참꽃을 보진 못 했어도 가슴에 가득 꽃피운 채 능선을 돌아 내려오는 등산로는 무척 아름다웠다. 정말로 꽃이 활짝 피어 천지사방 꽃밭이었다면 아마도 친구 몇몇은 그 꽃밭에 묻혀 영영 꽃이 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흐르는 땀을 식히며 내려다 보는 저 아래 전경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발가락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마음은 물론 눈도 즐거웠다. 대구 회장 준희가 예약하고 안내한 생고기 집에서 둘러앉아 유쾌하게 건배를 외치며 잔을 돌리고 배를 채웠다. 음식이 있고 술이 있고 친구가 있으니 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괜스리 참석 못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들만 이 행복을 누리는 것 같아서. 하지만 몸이 불편해서 혹은 일에 쫒겨서 못 온 친구들이 한 달 후 동창회에선 모두모두 빠짐없이 나와서 한 바탕 걸판지게 어울렸으면 좋겠다. 서로 얼싸안고 춤도 추면서 너무나 빨리 흘러가는 세월이 아쉽지 않도록, 하루가 다르게 나타나는 주름과 흰머리가 안타깝지 않도록 힘을 충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