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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멋지네! 너무 아름답고 고급스럽고 신비로와! 바깥은 완전히 식물원에 온 것 같고, 유럽의 옛 성터에 온 기분이야”
제이의 안내로 그와 다정히 손을 맞잡고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을 둘러 보던 솔희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시대와 예술 스타일이 공존하고 있지. 이곳은 루네스크로, 바로크, 르네상스 등 다양한 시기의 예술작품들이 모여있어. 이곳에서 각 작품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시대적 맥락을 살펴보면서 예술가들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고나 할까?”
"정말 멋져요... 이 작품 속에 그녀가 담아낸 감정들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나도 저런 심오한 것을 이해할수 있었으면.......제이 너는 그림에 담긴 감정을 이렇게도 잘 설명하는구나”
솔희는 제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반짝이며 그의 눈빛을 응시했다.
그녀는 제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과 예술가로서의 열정에 완전히 매료되어 감정이 커지고 있었다.
거기서 단순히 손님들처럼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제이가 전달하는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면서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 이끌려 미술관 안에서도 마치 오롯이 둘만의 공간이 생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 저쪽으로 건너가면 콘서트홀로 사용되는 장소가 있어. 나도 여기서 실내악단과 협연을 한바가 있어. 거기 가볼래?”
“어머, 음악행사를 위한곳까지 있어? 제이가 여기서도 연주를? 함 가보자”
제이와 데이트중인 솔희는 검정색의 짙은 단색 바탕에 하얀 망사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고 정장구두를 신고 한껏 멋을 내었다.
그녀의 정성이 깃든 풀메이크업은 전혀 천박해 보이지 않았고 품위와 섹시함이 어우러져 있었다.
솔희는 보스톤에서 제이를 만나고 나서 본격적인 신세계로 진입했다.
제이는 콘서바토리 동창생이고 베프라면서 여기저기 음악을 하는 지인들에게 소개를 했고, 그 소개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주말의 하우스 파티장이었다.
그녀는 매주 파티에 참가하고 가볍게 음주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댄스를 즐겼다.
파티장이라 함은 거대한 사교장과도 같았다.
보스톤에서 재회한 제이와 함께 참가한 파티장은 화려하고 활기차게 분위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솔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드레스를 골라입고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 헤비 메이크업을 하고 자신감을 뿜어내며 파티장에 나갔다.
여성 뮤지션들 중에는 헐리웃 배우들을 능가할만큼 키크고 아름다운 백인 여성들도 많았지만 솔희는 절대 그녀들에게 꿀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분야별로 각 분야의 솔리스트들, 오케스트라 단원들, 성악가, 작곡가, 공연기획사 인사들, 음대교수들이 모였으며 그들은 서양 기준으로 자그마하지만 예쁜 아시안 여성 솔희를 환영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샴페인잔을 들고 여러 음악인들과의 스몰토킹을 하다가 댄스를 같이 추고 어떤 이와는 음악적인 깊은 대화까지 이어지며 이를 통해 쌓인 친분과 화끈한 대화들은 솔희에게 지금까지 보거나 만날 수 없었던 자극과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또 거기는 자기의 콘서트 티켓을 배부하거나 판매할수 있는 세일즈의 장이기도 했다.
그녀의 연주실력은 실제로 그 짧은 시기에 한단계 상승했다.
워낙 실력자들이 많은지라 자극이 되었기도 했지만 그런 문화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음악적 감성이 고양된 연유이기도 하다.
솔희는 보스톤으로 온 것에 대해 전혀 후회를 할턱이 없었고 오직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왜 1년이라도 빨리 오지 않았는지였다.
이제 솔희의 우선순위에 남편인 정균은 맨 뒤로 밀려나 버렸다.
그녀의 아이폰 화면만 몇 개 긁으면 뻔히 쉬운 카톡 메시지조차 찍는게 귀챦을 정도가 되었다.
이곳에서 제이를 다시 만나고 그를 통해서 여러 인맥들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솔희는 사람들과의 사교와 만남이나 파티의 즐거움, 혹은 새로운 연인 제이와의 데이트에 빠지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남편과의 장기간 별거를 무릅쓰고 이곳으로 온 이유가 자명하고, 세미프로 정도의 수준을 완전히 넘기지 못한 애매한 실력 상태에서 이곳의 부차적인 재미에 빠지면 실패로 직결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솔희는 무조건적으로 에이젼시가 제시한 스케쥴에 따르고 별도의 연습공간에 세들어가서 치열한 자기만의 싸움을 했다.
소형차 두대가 꽉 찰만한 2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 사방으로 방음장치가 된 방에서 악보가 외워질때까지, 익숙해질때까지, 곡의 선율과 리듬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여 그의 영혼을 다시 살릴때까지, 거기에 그녀의 감성을 가미하기까지 고독하고 고난스러운 혼자만의 행군을 했다.
(음악애호가 집단은요, 귀가 즐거우면 그만이고 잘해야 연주자한테 찬사를 보내주는 정도죠. 하지만 연주자가 그 화려한 무대에 서기까지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때로는 자기 스스로가 초라해질 정도로 망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선 알턱이 없어요. 혹시 음악대학의 개인연습실 구경해 보셨어요? 업라이트 피아노랑 의자 하나 들어가는 1평 짜리 감옥에서 될 때까지 연습하는거, 일반인들은 미쳐 버릴거에요)
결혼초기 LA필 콘서트에 같이 구경가자고 졸라대던 음악애호가인 남편 정균에게 솔희가 일갈했던 말이다.
솔희의 그 말은 사실이었지만 음악을 실제로 하지도 않고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정확히는 그녀의 남편에 대한 우월감 과시였다.
솔희의 결혼조건으로 클래식 애호가는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었다.
그 이유는 클래식 애호가들이 음악가나 음악전공자들에 대해 갖는 신비함과 그들에게 하는 대접들이 융숭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막상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500장이 넘는 음반을 모았다는 남편 정균의 취미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가 듣는 클래식 음악에도 차갑고 냉소적이었다.
(어유, 양심이 있지 어떻게 저런걸 녹음을 해서 돈받고 팔수가 있죠? 당신은 못 느껴요? 저거 지멋대로 친거고 녹음기술로 얼렁뚱땅 그럴싸하게 효과를 낸거에요. 음악한 사람 입장에선 감상도 아무거나 못해요.)
정균과 차를 타고 어디를 갈 때 그의 차에서 피아노곡이라도 흘러나오면 솔희는 그 예민한 청음으로 연주스킬을 비판했고 그는 머쓱해서 다이얼을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다.
어찌했든 솔희는 놀라울 정도의 이성과 자제력을 발휘해서 연주스케쥴과 홀로 하는 맹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곳은 우아하고 예술적인 곳이지만 마치 백조의 수면 아래 발길질처럼 복마전이라는 것도 파악을 했기 때문이다.
노력과 노력을 거듭해야 이런 치열한 곳에서 살아 남아 성공할수 있으라는 각오를 솔희는 매번 다졌다.
솔희는 제이와 더불어 음악쪽 일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솔희는 제이가 그녀의 연습을 참관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
“솔희! 너의 감정표현은 뛰어나. 그런데 넌 그 감정 표현 자체에 너무 집중하고 성실하려고 해. 그건 이성으로만 하는건 아니야. 차라리 초탈해 버린 도인처럼 그 감정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악상에 그냥 몸을 맡겨. 그러면 과장되어 보이는 몸짓이랑 표정도 다소 줄어들게 되어 있고 실제로 선율에 감성적으로 몰입이 되는 법이지, 자! 129번부터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듯, 윈드서핑을 하듯 쭉 나가볼까?”
제이는 솔희의 연습실의 업라이트 피아노 덮개에 팔꿈치를 걸치고 그녀의 문제점을 기분 나쁘지 않게 편안하게 충고해 주었다.
사실 솔희의 연주중 감정 표현은 뛰어났지만 경우에 따라 너무 몸짓과 표정이 과장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솔희는 심호흡을 하고 악상에 몸을 맡긴다는 기분으로 다시 아까의 그 악보를 연주하는 것을 반복했다.
(아, 된다! 되! 희열이 차고 올라! 어머, 어쩜 이럴수가!!)
그녀는 그 뒤의 악보 부분까지 온 몸과 마음을 맡기고 연주를 해 나갔고, 마치 작곡가의 영혼이 그녀의 업라이트 피아노 위에 앉아서 웃음을 짓는 것 같은 강한 인상을 느꼈다.
“어머! 대박이다 얘! 어쩜 이게 가능하지? 난 며칠 고민하고 또 연습하고, 그 감정을 느껴볼려다 안되서 혼자 신경질 내고, 또 몇 년간 내 문젯점이기도 했는데 네 말 몇마디로 확 달라지는구나!”
“그게.....프로 뮤지션들이나 평론가들이면 누구나 지적할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그걸 고치는건 쉽지 않지. 이건 나도 여러 악기들을 다루고 음악과는 분야가 다른 책들을 보다가 터득한 노하우야”
솔희는 기쁨에 겨워 피아노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고 비스듬히 업라이트 피아노에 앞몸을 걸친 제이의 목을 감싸쥐고 키스를 퍼부었다.
입술 부딪치고 터지는 소리가 비좁은 연습실의 흡음장벽 안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가끔씩 제이가 그녀의 연습과정을 지켜보아주며 제이는 솔희의 문젯점을 지적해주거나 보완해야 할 것을 노트에 적어주곤 했다.
거기에 그녀의 장점인 감정적 표현에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제이의 간단한 멘트만으로도 상당한 음악적인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들 새 연인은 음악적 일을 하는 것인지 데이트를 하는 것인지 분간은 확실히 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반면 이들은 서로 각자 일정들이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했고, 두 사람다 각자 일이 우선임을 명확히 했다.
그래서인지 솔희는 제이를 만나러 갈때는 그만큼 애틋한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초조한 마음이 들어 계속 화장을 고치고 머릿결을 매만지는 습관이 들었다.
아름다운 유부녀 솔희와 잘생긴 독신남 제이는 보스톤 외곽지대의 아주 오래된듯한 카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제 이곳 음악가들에게 소개가 되기 시작한 솔희는 기혼여성이기에 제이와 공공연히 자주 함께 다닐수가 없어서 이들은 보는 눈들이 많은 번화가를 피해서 데이트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대신 교외 드라이브를 함께 하거나 외곽의 작은 영화관을 이용하거나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카운티 내의 자연경관을 즐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연인의 운치를 더해 주는 듯 했다.
“제이, 이렇게 일 속에서 애정관계가 살아나고 그게 다시 일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게 너무 꿈만 같아.”
솔희의 말은 진심이었다.
일과 사랑이 병행된다는 것, 그리고 그 일과 사랑이 함께 자란다는 것은 정말로 신비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솔희야, 우리에게 일과 사랑은 서로 떨어져있지 않아. 우리의 열정과 음악적인 영감이 일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지. 넌 이것이 현실이라는 걸 믿어야 해”
“내가 엘에이에 있을 때 늘 뭔가 꽉 막혀 있고 답답하면서도 뭔지는 모르지만 늘 근심같은게 날 지배하고 있었어. 그런데 여기와서 널 만나고 보니깐 그런게 어느날 싸악~없어진거 있지?”
“보스톤은 널 성장시킬수 있는 곳이야. 이제야 솔희가 날개를 달기 시작한거지. 신중하게 천천히 하지만 쉬지말고 노력하면 반드시 그만한 댓가가 있을거야”
이 시골카페는 컨셉삼아 조명을 어둡게 만든 것이 아니라 건물이 낙후한데다가 그 정도로 전력량을 감당하기 힘들어 어쩔수 없이 성능이 약한 전구 몇 개만 빛나는 곳, 이들은 이것을 데이트의 운치로 여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후미진 구석 테이블에서 와인잔을 감싸쥐고 있던 솔희는 감격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테이블 앞쪽을 몸을 당기면서 얼굴을 내밀고 눈을 감았다.
제이도 똑같은 동작을 따라하자 두 사람의 얼굴이 급겨히 가까워졌고 입술이 마주쳐졌다.
“쪼오오옥”
가벼운 입술터지는 소리와 함께 솔희는 눈을 뜬다.
키스를 마치고 여전히 가까이 있는 제이를 보고 솔희는 제이의 털복숭이 팔꿈치를 만지면서 말했다.
“제이, 괜챦아?”
“뭐가? 나 콘디션 좋아”
“아니, 푸후후후훗! 콘디션 말고, 내가 너한테 너무 미안해”
솔희는 감성에 휘둘리는 여성같았지만 때로는 냉철할 정도로 이성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와 사랑을 즐기면서도 넘어서는 안될 선과 깨어져선 안되는 그릇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함에 다름이 아니었다.
“내가 너의 진가를 알아보았더라면, 학생 시절에 널 꽉 잡았을텐데. 김브라이언이라는 곱상한 녀석한테 빠져서 널 그냥 남사친 취급했던거, 그리고 졸업식 하자마자 엘에이로 날아가 바로 유부녀 타이틀 단거지.”
제이는 솔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리고 그녀의 속내가 어떤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솔희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경청하겠다는 눈빛을 건낸다.
와인 한잔 마신게 하필 달달한 싸구려라 그런지 솔희의 분위기는 갑자기 예사롭지 않았다.
“제이야, 널 사랑하게 되었어. 하지만, 하지만 남편과 끝내고 너와 모든걸 함께 하기엔 아직 내가 많이 버거워”
“솔희, 너답지 않아.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일로 부담을 주었니? 나 너를 사랑하지만 독신주의자임을 의심해본적이 없어. 우리의 관계도 무슨 무슨 법과 사회적인 제약이 주어진다면 언젠가는 권태에 빠질거고 서로에게 무심해질수도 있고, 아니면 서로 굴레를 씌울수가 있지”
“그말 진심이니? 넌 내 결혼생활을 존중해줄수 있다는 이야기 맞지?”
어느덧 솔희가 제이를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지만 솔희는 그렇다고 현재의 가정을 깰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솔희가 이런 속내를 내보인 것은, 그녀가 제이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제이를 평생 편안하게 신뢰하지는 못할 상대라는 것을 여자만의 직감으로 깨달은 부분이 있었다.
제이가 좀더 강하게 솔희에게 어피얼 했다면 어쩌면 솔희는 완전히 제이에게 넘어갔고 그전에 갖고 있던 이중생활에 대한 신념을 버리고 정균과의 결혼생활을 끝내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이는 솔희보다 한술 더떠서 제약없는 자유로운 사랑과 인생을 추구하는 나름 멋진 사나이였다.
“솔희야, 네가 남편과 어떻든 내 소관이 아니야. 그와 자식을 낳고 백년해로를 하던 이혼을 하던 너의 존중받아야할 선택이야. 하지만 너도 내 입장을 이해해줬으면 해. 나는 법과 관습과 심리적 속박을 의미하는 생활에는 관심이 없어. 나 그것 때문에 엄마랑 연락도 안하고 지내”
“참, 한국 엄마들은 다 그런가봐. 어머님이 우리 제이 걱정스러워서 그렇겠지, 얼굴 잘 생겼겠다, 유능한 피아니스트에 비젼있는 공연 사업가겠다, 부잣집 미인 딸에게 아들장사좀 하고 싶어하실텐데 말이지, 호호”
어쨌든 솔희는 제이와의 사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함께 성장할수록 어딘가에 남아 있던 마음 속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어느덧 깜깜한 밤중에 노란색 미등만 켜진 그 근처의 모텔방.
침대 위에서 솔희의 꽃봉오리같은 가슴과 제이의 야성적인 털복숭이 가슴이 살짝 맞닿아만 있는 상태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장발인 제이와 솔희의 머리카락은 이미 산발되어 있었고, 전희삼아 키스를 얼마나 해댔는지 제이의 코와 입가 주변은 어두운 색상의 루즈 자욱들이 나 있었다.
솔희는 솔희대로 이미 입술의 루즈는 다 지워진채 엉뚱하게 그녀의 목과 젖 주변에 루즈 자국이 옮겨와 묻어 있었다.
그녀는 골반 속에 둔탁한 압박을 느끼지만 충만하고 행복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제이에게 의문을 던진다.
“자기, 왜 갑자기 멈추었어? 나 애태울려고 그러는거 맞지? 이 선수........!”
“미안해, 이런 싸구려 모텔로 데려와서. 옆방 신음소리 들리지?”
“신경쓰지마. 어차피 우리가 갈 곳은 네 콘도 아니면 이런 시골밖에 없쟎아. 그래도 운치있는걸? 옆방에서 뭘하던 우리 사랑은 방해 못한다는거, 글구 은근히 낭만이 있다 예”
“어차피 사람들 눈에 띄면 특히 너한테는 좋을게 없으니깐 외곽으로 나오는거지만 또 여기서 낭만을 엔조이할수 있는 너도 참 멋진 여자야”
“호호, 비행기 태우네? 낭만과 운치가 있는건 사실이야..........제이야, 계속 해, 난 괜챦아.”
솔희는 특유의 입술을 길게 늘여 띠우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그 웃음에 넘어가지 않을 남자는 없을 듯 했다.
그 남자는 솔희의 재시작 싸인에도 아랑곳없이 솔희의 그 미소에 도취되어 있었다.
“........솔희, 너의 미소 정말 아름다워”
“진짜? 구체적으로 칭찬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집에서 신경질 피우고 남편잡을 듯이 야단을 피운 다음에 딱 한번 이렇게 웃어주면 남편은 천사로 변한다? 아무리 내가 구박을 하고 모욕을 줘도 그냥 내 딱 한번 웃는 모습 보면서 산대. 너도 이런 것에 대해 말로든지 행동으로든지 뭔가 댓가를 보여줬음 좋겠어”
“으음...........내가 지금 할수 있는건 말이지!....허읍!!”
“아으으으! 아아아”
말문이 막힌 제이는 솔희의 까다로운 요구에 응할 새도 없이 온 몸에 다시 힘을 주기 시작했고 솔희는 입을 벌리고 눈을 감고 마른신음과 섞인 짙은 숨소리를 내뱉는다.
이윽고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포개어졌고 그 상태에서 제이는 부드럽게 솔희의 허리를 잡자 두 사람은 뒤엉킨 상태로 침대를 통나무처럼 떼굴떼굴 굴렀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데이트 장소가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을 다녀야 했지만 그만큼 이들이 찾아가는 숨은 관광지는 아기자기한 풍광이 많았기에 솔희에게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었다.
솔희는 이곳 보스톤 사람들도 모르고 그녀의 엘에이 친지들도 모르고 남편도 모르는 자기만의 비밀을 즐긴다는게 마치 지하의 히로인이 된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2주가 더 지난 어느날 BOS(보스톤공항)의 티케팅 장소를 벗어나 올라가기 전에 솔희는 제이와 함께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솔희는 안색이 어두웠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가기 싫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더군다나 어젯밤 솔희와 제이는 제이의 콘도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그때까지만 해도 솔희의 분위기는 세상 행복했었기 때문이다.
“솔희야, 무슨 문제 있니? 너 방금전부터 좀 행색이 이상해졌어”
“.......왜 이런지는 나도 몰라. 두달전 남편한테 갈때만해도 이런 감정은 없었어. 너를 다시 만나고 너를 사랑하게 된후였는데도. 그런데 이번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 되는거야. 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있니?”
“내가 소라고 가정해 보니깐 끔찍하네.......”
아직 LAX(엘에이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편이 오려면 멀었기에 솔희는 대합실 옆자리에 앉은 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시간적 여유가 느껴지자 갑자기 감상적이 되어서 옛날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2년전 임신했을 때야. 아이를 지우러 갈 때 정말 고민하고 갈등했어. 내 마음은 신속히 결정되었지만 산부인과 수술대 위에 누워서 환자용 원피스를 걷어 올리고 발목을 양쪽으로 벌려 고정시키고 속으로 가위와 칼이 들어와 생명 하나를 떼어낸다고 생각해봐. 그리고 여자로서 성공가도에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어쩔수 없이 추가수술까지 받았지. 그때 처음 느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암소가 된다는게 그런거구나 했어..........”
“으으으음”
솔희의 여자로서의 비관적 체험을 이해할 리가 없는 제이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제스츄어를 취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남자들은 몰라. 여자의 고뇌를. 병원에서 제공한 밴을 타고 간신히 집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웬지 서러운 생각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뒤척거렸어. 늦었지만 내가 아이를 지우고 영구피임을 받은 결정이 맞는지도 틀렸는지 웬지 후회감도 들었고. 뒤늦게 퇴근한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나를 마구 야단치더라. 당신은 살인한거야 그러면서, 그때 얼마나 서럽던지 눈물을 쭉 뺐어.”
“우리 솔희 힘들었겠다”
솔희는 거기서 할 말이 더 많았지만 제이는 그 이상의 진술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의 입술을 그 둔탁한 입술로 막아버렸고 솔희는 그 상황에 굴복해 버렸다.
하지만 공감해주고 안아주고 키스해주는 제이의 모습에 솔희는 그대로 녹아 버렸다.
“그리고 지금 또 도살장가는 암소같아. 두달전에 엘에이 가서는 나름 내 역할 잘했어. 아내로서의 역할말이지. 연기가 필요한 부분은 충분히 수행했고 어수룩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남편의 불만을 잠재우고 왔어. 그런데 이번엔 그게 안될 것 같은 예감이야, 내 몸이 말을 안들을 것 같아”
“솔희야, 내가 보기엔 네가 너무 스트레스 받는 것 같아. 나같으면 그냥 그 사람과의 시간도 즐길 것 같아”
“뭐? 그래 니놈도 숫컷이지. 원치 않는 상대에게 몸을 바치러 비행기 타는 심정을 네가 아니? 남편은 어디 외식하러 가자, 외곽의 경치도 보고 맛집도 가자고 말하지, 결론은 한 침대에서 자야 하는거야. 아마도 알면서 겁탈을 당하러 일부러 가는 듯한 느낌? 왜 그러지? 바로 전엔 그렇지 않았어. 난 쿨하다고 생각했거든.”
제이는 솔희를 한참 안고 그녀의 웨이브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며 위로해준다.
“솔희야, 내가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그냥 즐겨. 어쨌든 남편은 남편이야. 네가 잠자리를 원치 않는다면 솔직히 밝히던지, 아니면 쿨하게 몸을 주면서 그냥 같이 그 순간을 즐겨. 나는 네가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어”
솔희는 이제야 위로가 된 듯 기운을 차렸다.
“내 행복을 생각해주는건 자기 뿐이야. 어쨌든 내가 감당할 몫이니깐 다녀올께, 그때까지 도망가지 말고 잘 대기하고 있어”
“Yes Ma’am!”
“아유, 진짜 몬 말을 못하겠다. 나 이제 비행기 탈게. 5일 뒤에 공항에 나 픽업 나올수 있으면 나오고 네 일정 겹치면 알려주기만 해. 너의 시간도 소중하니깐 나 때문에 네 시간 희생하는거 원치 않아”
솔희와 제이는 다시 대합실에서 기나긴 연인의 입맞춤을 나누었다.
얼굴 화장기 하나 없이 흰색 기지바지와 역시 흰색 블라우스 위에 오버코트를 걸친 솔희는 제이를 몇 번 뒤돌아 바라보고서는 축 늘어진 모양새로 작은 캐리어를 질질 끌며 티켓소지자만 들어갈수 있는 탑승대기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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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저두 님 글 천천히 읽고 있답니다
감사 합니다
저두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