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지 역 |
특 징 |
주요 가락 |
경기.충청 |
경기, 충청 북부, 영서 지방 |
쇠가락 구분이 명확함. |
길군악 칠채, 쩍쩍이, |
호남 |
우도(김제, 정읍, 부안, 익산, |
쇠가락의 기교에 치중함. |
오채질굿, 외마치질굿, |
좌도(임실, 남원, 곡성, |
쇠가락이 빠르고 기교가 발달하였음. |
굿거리(풍류굿), 휘모리, | |
영남 |
남도(부산, 진주, 삼천포) |
빠른 쇠가락의 기교와 곡예적 기교가 |
홑다드래기, 겹다드래기, |
북도(안동, 영주, 대구, |
쇠가락의 변주가 단순하고, |
살풀이, 자진마치, 덩덕궁이, |
3)영남 농악
판굿보다는 지신밟기 등과 같은 마을굿이 성행했으며, 지신밟기 사이사이에 판굿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은 지신밟기와 같은 축원풍물이 잘 계승되어 있는 지역이다. 동북으로 올라갈 수록 영동 풍물굿과 비슷하고 서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호남좌도 풍물굿과 비슷해진다. 경북지역의 풍물굿은 영동·경남·경기지역의 풍물굿의 모습이 섞여있으며, 경남지역의 풍물굿은 나름의 영남 풍물굿의 형태를 지닌다. 대기로서 서낭기(성황)가 있으나 영기는 없는 곳이 많다. 곳에 따라 신대를 사용하기도 하며 다른 지역에 없는 나무로 만든 나발이 있다. 악기는 쇠·장구에 비해 징·북이 발달하였으며, 잡색은 색시·양반·포수·무동들이 있으나 지역에 따라 화동·집사가 있다. 쇠·소고는 상모를 단 전립을 쓰고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며, 장구·북은 고깔을 쓴다. 지역에 따라서는 전립을 쓰는 경우도 있다. 예능적인 면에서 보면 대체적으로 단체놀이가 발전했다. 영남 중간지역의 진풀이는 영동이나 경기와 비슷한 정방형 등이 있고 농사굿도 있다. 서남지역에는 노래굿이나 연극적인 군사놀이가 있으며 개인놀이가 발달했다. 또한 판굿의 순서에 뒷풀이가 있는 곳이 많은데 이것은 춤이 발달한 지역임을 입증하며 지신밟기가 토착화되어 있어 다양한 사설을 갖고 있다. 비교적 빠른 가락이 많고 3분박의 덧배기 장단은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힘차고도 흥겨운 가락이라 할 수 있다. 영남풍물은 대구,달성,김천,청도 등의 남성적이고 굵은 가락과 부산,밀양,진주,삼천포 등의 색다른 가락이 있다. 비교적 빠른 가락이 많고 쇠 가락은 섬세하며 북은 타지역 보다 숫자가 많고 중요시 되어 웅장한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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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농악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광활한 김해평야를 무대로 발달한 농경사회로 김해지역의 걸궁(걸림)치기 놀이는 지금부터 약 60여년 전 김해군 장유면 벼등 마을(유하리)에서 장유암(도 문화제 자료 31호) 칠성각 건립을 위하여 시발의 주축이 된 유하리 626번지 강흥주의 시작으로 성금모금을 위하여 시작되었다. 매년 음력 정월 초순이면 걸립패들이 당산나무 밑에 모여 정월 대보름까지 가가호호를 방문하고 성주굿(고사) 풀이 등 여섯 마당을 치면서 가내의 아귀를 몰아내고 안가태평을 기원하는 연중행사로써 오늘날까지 벼등마을은 물론 김해 일원에 걸궁치기 놀이가 계승되고 있다. 또한 김해 지역에서만 이어져오는 길굿 여섯 가락 속에서 응용된 짜임새와 넘겨집는 가락이 특이하고 빠른 자진모리 가락에서 넘겨 집는 가락이 소고놀이꾼의 흥을 북돋워 주는데 특이한 점이 있다 하겠으며, 각 굿풀이 여섯 마당 중 성주굿풀이는 다른 행사, 즉 상여놀이, 회심곡, 백발가, 농요놀이 등의 대사가 혼합되지 않고 목수가 집을 지어 나가는 과정이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으며, 집을 짓고 그 집을 지켜주는 으뜸가는 신령 성주신을 모심으로 자손이 번창하고 안가태평한다는 내용 전체에서 보더라도 한 구절 한 구절 의미가 예능의 우수성을 꼽을 수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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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화전농악
화전(花田)은 남해의 별칭(別稱)이다. 화전농악은 남해에서 자연 발생된 전통 민속악으로서 특히 질굿, 판굿, 거듭나기굿을 비롯한 경쾌한 가락은 남해에만 있는 특유한 가락이다. 화전농악이 전수된 지역은 남면 석교마을이다. 마지막 전수자 한석동(1866~1943)옹으로서 유일하게 남해 풍물굿 12채박을 재연한 사람이다. 이후 한회포(1884~1952), 한점식, 전찬기 등으로 전수되어 현재에는 김태우(석교), 박희오(장항) 등으로 이어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농악은 1년동안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비는 민속으로 주로 정월대보름에 행사를 개최한다. 화전농악은 제42회 개천예술제 전국농악경연대회(1992.11.3)에서 대상을 수상하였고 제24회 경상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1992.10.7)에서는 노력상을 받았다. 상쇠 박희오는 개인상을 수상하는 등 그 맥을 유지하고 계승하고 있다. 화전농악은 모움굿-질굿(길긋)-당산굿-문굿-진굿-질굿거듭나기굿-정기(부엌)굿-성주 조앙굿-지신밟기굿-새미(우물)굿-춤굿-덧배기굿-4채굿-개인 따드래기굿-덩덕굿-호우굿-종굿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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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삼천포 12차 농악
12차 매구굿(풍물)의 유래는 김한호에 이어 박경호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황일백, 문백윤으로 이어졌다. 진주 풍물은 삼천포 풍물과 함께 1966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11호 농악 12차로 지정되었다. 진주 풍물 기능보유자는 황일백, 삼천포 풍물 기능보유자에는 문백윤이 있었다. 황일백 상쇠가 진주 풍물을 이끌어 왔으나 1976년 작고하였고, 뒤이어 1980년 양산 출신의 이영우가 이어받았다. 삼천포 풍물의 문백윤도 1981년에 작고하였으며, 뒤이어 진주 출신의 이영우도 1992년 5월에 작고하였다. 현재는 기능보유자인 삼천포 출신의 박염과 진주 출신의 기능보유자 후보인 김선옥, 그 밖에 진주 삼천포 지방의 많은 풍물잽이들이 진주 삼천포 12차 매구굿을 이끌고 있다. 편성은 호남농악과 경북농악의 중간형태이며 잽이가 모두 전립을 쓰고, 쇠가락은 3분박으로 호남좌도농악과 유사하며, 호호딱딱과 덧배기 다드라기는 경북농악과 유사점이 많다.
*진주 삼천포 12차농악 가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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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화천농악(칠북)
경남 함안군 칠북면 화천리(化川里)는 마을의 역사가 500년 이상이고 대대로 농사에 종사하는 순수한 농촌공동체인데다가 농악의 내용이 두레의 성격이 남아 있음을 보면, 화천농악은 조선조 중기때부터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 시대 문화 탄압으로 잠시 끊어졌다가 해방과 더불어 다시 전해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경상남도 무형 문화제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농악놀이에 앞서 서낭당에 제사를 드린다거나, 서낭나무를 중심으로 삼는다거나 함을 보면 농민으로서 풍작과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주요행사로 이어져 온 것이라 생각된다. 화천농악의 특색으로는 상쇠 박동욱선생님의 화려한 쇠가락으로써 살풀이와 덧배기의 접엇가락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농악으로써는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는 경력도 가지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는 지신밟기굿과 풍년기원굿이 돋보이며, 영산 다드래기굿은 제사 모시듯이 경건하다. 기능보유자 박동욱씨와 박배열씨를 중심으로 회원 60명과 마을 전체가 전승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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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미농악
여러 마을에서 풍물이 놀아져 왔는데 차차 없어지고 합쳐져서 지금은 직접적인 농악단으로 [부산 아미 농악단]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사단법인 부산농악보존협회로 불려지고 있다. 해방 후 서구 대신동(大新洞)에 살던 유삼룡(1970년 작고)이 15명 안팍의 인원을 모아서 {곱은돌이 농악단}(곱은돌이란 부산시 서구 대신동에서 괴정으로 넘어가는 길을 일컫는 옛날이름이고 지금은 서구 부민동 지점이다.)을 만들면서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걸립굿패가 생기게 되었다. 유삼룡 씨는 쇠를 잘 쳤으며 특히 성주풀이를 아주 잘했다고 한다. 옛날 상쇠는 요즘처럼 쇠만 잘 치는 것이 아니라 성주풀이를 잘 하여야 상쇠를 할 수가 있었다. 이는 그 당시 풍물의 활용성이 주로 지신밟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6.25 전쟁의 혼란기에 활동이 중지되었다가 1953년 정초에 서구 아미동에서 {아미농악단}이라는 이름으로 재출발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산에서는 아미농악단 외에 직업적인 몇 단체가 있었으나 차차 아미농악단에 합류되었다고 한다. 유삼룡 씨의 뒤를 이어 이명철(1973년 작고)이 뒤를 이었고 이명철 씨 다음에 현재의 상쇠 김한순 씨가 뒤를 잇고 있다. 음력정초에 가가호호를 돌면서 농악을 하며 고사를 지내고 복을 빌어주는 형태의 걸립농악이 주류를 이룬다. 부산농악은 박자가 느린 굿거리 장단이 많고 춤이 많이 삽입되어 있는데 상쇠와 부쇠, 그리고 소고잽이들만 상모를 쓰고 나머지 징, 북, 장고잽이와 그밖의 놀이꾼들은 고깔을 쓴다. 상모돌리기, 백구놀이의 기능이 뛰어나며, 특히 4북이 일치되어 배지기로 대북을 안고 넘는 기교는 일품이다.
*부산아미매구 가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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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다사농악
지금의 달성 다사 농악(12차 진굿 풍물)은 금호강과 낙동강을 끼고 가장 서쪽에 위치한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서 오래 전부터 행하여 온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이다. 특히 강을 가까이 두고 있는 몇몇 마을이 풍물과 춤을 추며 즐겨 놀았다고 한다. 이 지역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놀기 좋은 버들 숲과 맑은 물이 많아 춤과 풍물을 많이 치며 놀게 되었고 천수제와 빛신제, 당산제를 지내며 무속무와 진혼무를 추어 왔으며 신들에게 가가호를 빌며 놀았다고 한다. 달성 다사 농악(12차 진굿 풍물)은 약 300 ·400년 전부터 허튼춤과 제천의식 무속 신앙무의 춤을 추고 풍물을 치며 허튼춤을 자주 추었다고 한다. 이것은 농사놀이, 무속놀이, 군사놀이, 연예놀이 다양한 의식성과 예술성을 띄며 발전하였고 전문걸립패에 뜬쇠로 까지 발전하여 전국순회까지 하며 1950년대부터 전국농악 경연대회를 주최하며 70년대까지 가장 많은 활동을 해왔으나 시대에 변화로 인해 패거리가 해체되었고 그후로 달성다사 농악(12차 진굿 풍물)은 연희를 하지 못하고 잊혀지는 아픔을 격어야했다. 1986년부터 재현하기 위한 준비를 해오면서 1995년 10월에 공주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25년만에 다시 연희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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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고산농악
고산농악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내환동에서 자생<自生>하여 전승되는 농악이다. 내환동은 고려시대부터 곡계<谷溪>라 불리우는 옛 '서울나들'에 위치하는 전형적인 농촌의 자연부락이며 각성<各姓>마을이다. 고산농악은 마을 개척시기부터 전승되어 오면서 농악 원래의 소박성을 그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내환동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동제 (상당, 중당, 하당<上堂, 中堂, 下堂>)를 지내는데 이 동제의 왕복길에 농악을 잡히며 동제가 끝난 뒤에도 풍물을 쳤다 한다. 고산농악의 특징은 한 자연촌락의 노인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고유의 전통적이 미를 잃지 않고 마을 단위의 향토색 짙은 농악형태를 유지하는 점이다. 연행 과정에서 '닭쫓기'놀이는 이 마을에만 있는 독특한 놀이마당이다. 고산농악은 상쇠 장이만(남, 사망)에 의하여 쇠가락이 전승·보존되어 왔다. 그는 기본적으로 부락마치, 조름세, 굿거리, 살풀이가락 등의 가락을 칠 수 있었다고 한다. 닭쫓기는 다른 농악놀이에는 없는 특이한 놀이 형태로 상모팀 전원이 원 중앙에서 서로 손을 잡고 원을 돌면서 닭(각시와 양반)을 쫓는다. 방석말이(오방굿)는 농기<農旗>를 구심점으로 원을 돌면서 좁혀 들어갔다가 다시 반대로 풀어 나온다. 모내기굿은 원이 풀어지면서 징, 북, 장고가 1열로 서고, 상모가 1명, 이렇게 2열 종대로 마주보고 중앙에서 쇠를 치는데 이는 모내기, 모심기, 김매기 놀이의 형태이다. 법고놀이는 상모, 장고, 북, 징의 순으로 각 악기팀 전원이 원 중앙에 나와 팀별 놀이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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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 빗내농악
빗내(廣川)는 김천시에서 동쪽으로 12km, 선산읍에서 서쪽으로 14km 떨어진 사달산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빗내는 경상북도 금릉군 개령면 광천리의 다른 이름이다. 이곳 개령평야 일대는 고대국가 시대부터 마을을 이루어온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금릉군의 곡창지역이다. 삼한시대에는 감문국(甘文國)이 있었고, 감문국의 나라 제사와, 잦은 물난리를 막으려는 풍년제가 마을굿의 형태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마을굿은 음력 1월 6일이고 마을굿에 이어 '풍물놀이'와 '줄당기기' 두 가지 놀이를 한다. 감문국은 서기 231년 신라에 병합되었다. 지금도 감문국의 옛 궁궐터와 성터가 남아 있고, 군사를 동원할 때 군호(軍號)를 올렸다고 전하는 취적봉(吹笛峰)이 있다. 빗내 진굿은 단순한 농사굿이 아니라 '빗신'(別神)과 전쟁에서 유래하는 진(陣)굿으로 전해져 내려온 굿이다. 빗내 마을에서 빗신굿이 열리면 보러 온 이웃 마을 사람들로 발디딜 틈도 없었다고 한다. 빗신굿은 아주 옛날부터 한 해에 한 번씩 해오다가 삼 년에 한 번씩으로 바뀌었고, 60년 전부터 10년마다 하다가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풍물놀이와 동제가 없어지고 약간의 악기만 남게 되었다. 요즘에는 금릉군의 풍물 시범 마을로 지정되면서 다시 빗내 진굿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대북춤과 소고잽이들의 기러기춤,수박치기춤이 인상적이며 가락의 수가 많다.
*빗내농악 가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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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농악
하천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도 여러 유형의 농악이 형성되었으며, 넓은 평야가 있는 지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산악지방 농악은 거칠고 빠른데 비해 평야 지방 농악은 가락이 느리고 부드러운데 이는 지역 환경 때문이라고 하겠다. 농악의 형태가 개성적으로 독특한 지역으로 보면 대체적으로 앞에는 강과 평야가 있고 뒤에는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마을이라는 것이다. 의성 지방도 낙동강 유역에 산이 둘러 쌓인 분지여서 그렇게 독특한 농악이 발달한 것 같다. 단밀면은 동쪽은 위수강, 서북쪽은 낙동강으로 둘러 쌓인 곳으로 강가에 위치한 부락인 팔등리, 낙정리, 속암리 마을이 농악이 발달하였다.강가에 위치한 부락은 농사를 지으려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배를 건조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데, 마을 자체로서는 어렵기 때문에 농악으로 정초 인근 부락을 순회하면서 걸립하여 재정을 확보하였고, 배의 안전 운행을 기원하는 용왕제를 지낼 때도 농악으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농악이 발달한 것 같다. 의성군은 동쪽은 산악지대, 서쪽은 평야지대로 낙동강을 위시해서 크고 작은 하천이 많고 산으로 사방 둘러싸인 분지라서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기후 특성도 있고 해서 그런지 우리 의성지방에 전승되어오는 농악가락은 힘찬 박진감과 생동감이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을 돋구고 신명과 어깨춤이 절로 나오게 하는 특색있는 농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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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차산농악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는 속칭 신라고촌이라 불리워지는 역사깊은 마을이다. 유일한 기능보유자인 김오동은 차산 농악을 유지 발전시킨 공로자일 뿐 아니라, 60년간 그의 인생을 농악에 바쳐온 상쇠의 명수이다. 경북과 경남의 도계에 접한 차산리는 옛부터 정초가 되면 풍각면내의 여러마을은 물론 고개넘어 창령군의 여러마을과 화려한 천왕기 싸움을 펼쳐왔다. 천왕기싸움은 길이 6~8 미터에 가까운 여러 가지 색으로 단장된 천왕기를 앞세우고, 마을의 농악대가 풍각장날인 정월 11일날 장터에서 서로 마을의 위세를 자랑하며 즐겼던 것이다.차산농악은 바로 이 천왕기 싸움을 발판으로 발전한 농악으로서, 경상남,북도는 물론 전국적으로 알려진 농악놀이이다. 굿거리 장단에 덥배기 춤은 경상도 농무의 특징이거니와, 차산농악은 춤과 민요가 삽입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12가락 36마치로 표현하고 있다. 열두가지의 변화를 가지는 놀이에 서른 여섯종류의 장단이 있다는 것이다. 농악은 대개 한 지역사회의 최소단위인 자연부락의 동민을 단위로 행해지며, 각 굿거리의 장단에 따라 순차적으로 쇠의 가락에 맞추어 놀이가 진행되는 것이 특색이다. 그 편성은 5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수는 과거 행해지던 농악단의 인원보다 20여명이상 많은 것으로 이러한 현상은 근래에 들어와 농악공연장소가 확대되고, 농악의 외적인 요소(성격)인 연희적 성격의 비중이 가해진 때문이라 여겨진다. 가락은 비교적 빠르며 호남농악의 짝드름과 유사한 호호딱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