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의 원심력과 구심력
유성호(한양대학교 교수)
1. 민족시형의 확장과 성찰의 가능성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2006년에 거행된 ‘현대시조 100년’ 행사가 제법 깊이 남아 있다. 이 획기적 행사를 통해 우리는 ‘시조(時調)’라는 역사적 운문 양식에 대한 성찰과 전망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이 자랑스러운 민족 시형을 어떻게 하면 온전하게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에 알릴 것인가 하는 것을 메타적으로 고민하기도 하였다. 외관으로 드러난 사례들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 시조 시인들의 작품을 ‘현대시조 100인선’ 시리즈 형식으로 간행하였고, 7월 21일을 ‘시조의 날’로 제정하고 선포하였으며, ‘세계 민족시 포럼’을 비롯한 시조 관련 국제 세미나를 다채롭게 열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현대시조 100년의 시간을 일구어온 미학적 선구자들의 헌신과 정성 때문에 가능했음은 췌언을 요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 시조시단은 인적, 매체적, 제도적 조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정점의 활황을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조시단을 구성하는 시인들의 수효는 이제 가족과도 같았던 지난날의 규모를 훌쩍 넘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졌고, 그 기저(基底)에 등단 제도나 인적 재생산 구조가 튼튼하게 뒷받침을 하고 있다. 시조에만 주어지는 문학상도 꽤 많아졌고 시조 관련 학술대회도 늘어나 이제 시조는 한국문학의 변방이 아니라 또 하나의 구심을 형성하면서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이제 이러한 확산적 흐름을 공고하게 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세계 각국으로 시조를 성실하게 소개해가야 하는 시의적 과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을 보편적인 ‘세계적인 것’으로 확장해가기 위한 역설적 노력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과 ‘세계’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족 관념은 퍽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근대적 제도와 인식이 채 자리 잡기도 전에 닥쳐온 식민지 근대는 우리로 하여금 민족을 탈환하고 재구성하려는 열정을 가지게끔 해주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민족 신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순혈주의적 단일 민족 관념을 굳건하게 형성해갔다. 최근 일정하게 탈(脫)민족 담론이 힘을 얻는 듯이 보였지만, 그렇다고 민족의 동일성을 상상하고 실천하려는 에너지가 소진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민족국가(nation state)의 배타적 일원으로 귀속시키려는 의지와 열망을 여전히 양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의 키워드가 ‘내셔널’에서 ‘인터내셔널’로 또 ‘트랜스내셔널’로 숨가쁘게 옮겨갔을지라도, 민족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현실적 범주가 아닐 수 없다.
두루 알려져 있듯이, 앤더슨(B. Anderson)은 그의 유명한 상상의 공동체에서 ‘언어’가 근대 민족국가를 형성한 핵심이라고 갈파하였다. 그만큼 ‘언어’는 민족국가의 통합과 활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민족 단위를 기반으로 활발하게 펼쳐졌던 언어적 실체인 근대문학이, 최근에는 민족 단위를 넘어 국경과 체제를 횡단하는 확연한 유동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문학이야말로 민족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야 한다는 논리가 세를 얻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한 기운을 시조에 국한하여 살필 경우 우리는 세계화라는 흐름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방향이 두 가지가 될 것으로 생각해본다. 하나가 우리 안의 힘을 외화(外化)하여 다른 민족 국가와 공유하려는 확장의 가능성이라면, 다른 하나는 우리 안의 힘을 되돌아봄으로써 민족시형을 심화하려는 성찰의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세계문학으로서의 시조
먼저 앞의 방향부터 살펴보자. 우리 문학은 21세기 들어 더욱 발달한 통신 테크놀로지나 변역 능력 등으로 인해 세계 각국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확연한 흐름은 이제 시조를 ‘민족문학’이 아니라 ‘세계문학’으로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훤칠하게 가져다주었다. 그 점에서 최근 시조가 활발하게 번역되고, 외국어로 씌어진 시조집까지 나오고 있는 사실은 퍽 시사적이다. 그만큼 우리는 더욱 역동적인 인적, 매체적 교류와 소통을 통해 시조 창작과 보급의 권역을 외국으로 확산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하이쿠를 세계에 전파하며 그 고유한 명성을 얻어갔듯이, 시조도 외국인들의 마음과 경험 속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여러 모로 열리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번역’이라는 난제가 개입한다. 시조의 고유성을 위해 3장 구조를 묵수(墨守)해야 하는 과제가 번역의 용이성을 상당 부분 제한한다. 더구나 우리 시를 다른 외국어로 번역할 때 특별히 어려움이 많은데, 특히 시조의 경우는 율격 문제 번역에 따르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 결국 우리는 시조가 선험적 율격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양식적 고유성을 살려 번역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의견에 상도하게 된다. 영어는 어휘적 자질이 강한 반면, 시조는 독특한 우리말 율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어로 시조 율격을 살려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에 임할 때는, 의미나 이미지를 최대한 강조해서 옮길 수밖에 없다. 장경렬은 시조의 시상 전개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제안을 내놓았는데 시조의 문학적 특성과 서양 언어의 특성 사이에서 접촉점을 선명하게 가질 수 있는 탁견이라 생각된다. 이런 점을 더욱 깊이 논의하여 시조 번역의 기율과 방법론에 대한 심화된 결실을 얻을 수 있기 바란다.
우리가 잘 알듯이, 하이쿠의 경우는 감각적 이미지를 병치하여 세계 문화 속으로 다가갔다. 하이쿠는 오랫동안 일본의 전통시가로 명맥을 이어오면서 그 특유의 서경적 순간성 때문에 집중성과 선명성을 가질 수 있었다. 시조는 하이쿠와 늘 비견되어왔고, 또 적극 상통하는 존재론적 조건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시조는 의미 쪽에 중심을 두어 창작되고 소통되었다는 점에서 번역의 어려움이 자동적으로 수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NHK 같은 데서 하이쿠 공모 제도를 실시하고 광범위한 국가적 번역 후원을 수행하는 것처럼, 우리도 국가 권력이 매개되는 시조 세계화와 변역 사업이 활성화되기를 소망해본다. 그때서야 비로소 시조의 세계적 전파가 현실화할 것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가능성을 살펴보자.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세계화의 원심적 방향이라면, 우리 시조의 내적 조건과 가능성을 성찰함으로써 우리 자체에 대한 사유를 넓혀가는 일은 세계화의 구심적 방향일 것이다. 주지하듯, 우리가 시조를 정형 율격에 안정된 시상을 담는 전통적 민족문학 양식으로 인식하는 관행은 꽤 오래되었고 그만큼 익숙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조 미학은 사물과의 불화보다는 화해, 새로운 것의 발견보다는 익숙한 것의 재확인, 갈등의 지속보다는 통합과 치유, 외래적인 것보다는 민족적 특성 쪽으로 무게중심을 할애해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다양성과 복합성으로 상징되는 현대성의 징후들을 담기에는 ‘시조’라는 정형 양식에 한계가 따르지 않겠느냐면서 시조의 현재적 가치나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다. 심지어는 현대시조의 소통 현상 자체를 시대착오적인 복고주의나 국수주의 정도로 간단히 폄하해버리는 무지의 시선도 존재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형 양식이 가지는 가능성과 한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면서 “왜 시조여야만 하는가?”라는 본질적이고 재귀적인 질문을 적극 던져야 한다. 요컨대 고시조와는 달리 현대 사회의 주류 미학으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한 현대시조를 어떻게 우리가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시조의 양식적 속성이 우리가 양도할 수 없는 고유하고 배타적인 민족적인 것임을 논증하여 시조 자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호환 불가능한 것인지를 깊이 각인해가야 한다. 서둘러 해외에 소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우리 안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미학적 심화를 위해 구심적 성찰에도 인색하지 않아야 함을 이로써 알 수 있다.
우리가 만나고 경험한 서구인들의 상당수는, 한국 운문 양식 가운데 ‘시조’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시조가 하이쿠에 비견되는 생명력과 자기 갱신력을 가진 양식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물론 시조가 가창적 장치들을 모두 덜어버리고 오로지 문자예술로서의 위상만 지키게 되면서 근대문학의 주류 자리를 자유시에 내주게는 되었지만,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그 문학사적 공백을 깊이 반성하면서 ‘시조’에 대한 역사적이고 미학적인 탐색을 지속해가야 한다. 그것이 한국문학의 자연스런 세계화를 위해 우리가 그려야 할 확연한 내적 밑그림일 것이다. 이러한 양방향의 과제를 충실하게 감당해감으로써, 우리는 시조의 세계화를 위한 남다른 적공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3. ‘존재의 집’으로서의 시조
정형시와 자유시 사이에는 형식적, 내용적 차이가 일정하게 존재한다. 그 가장 주된 차이는 ‘율격’의 원리에 있다. 가령 정형시에는 일종의 선험적인 율격 원리가 주어져 있다. 그것을 충족하지 않으면 결코 정형시가 될 수 없는 최소한도의 요건이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자유시에는 그 어떤 원리도 미리 주어진 것이 없고, 시인의 호흡에 따른 자유로움만이 사후적(事後的) 필연성으로 부여될 뿐이다. 물론 자유시 안에도 자유로운 율격이 있는 것이지, 율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최근 씌어지는 자유시는 줄글로 씌어지는 산문시 양식이 범람하는 데다, 최소한의 내적 호흡에 바탕을 둔 운율마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율격 훼손의 극점을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 점에서 자유시와 거의 구별이 안 되는 시조작품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는 점은 매우 문제적이 아닐 수 없다.
이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왜 시조인가?”라는 원론적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자유시로도 표현 가능한 것을 왜 ‘시조’라는 구속적 형식을 통해 표현하려 하는가? 첨단의 디지털 시대에 ‘시조’라는 오래된 양식의 궁극적이고 필요불가결한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과 마주할 때, 우리는 시조에는 어떤 고유한 표현 형식과 자질이 있다는 점에 다시 한 번 상도하게 된다. 시조가 창사(唱詞)로서의 굴레를 벗어나 문자예술로서의 성격만 남은 점을 고려한다면, 필연성도 없이 율격을 해체하는 것은 적극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단형의 정격을 단아하게 지켜냄으로써 시조는 SNS 시대의 매체적 속성을 한껏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3장 6구의 제약은 이때 온전한 맞춤형의 최적화 형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언어, 습속, 정신, 위의(威儀)를 그 안에 자연스레 내장하고 있는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라는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시대의 풍속과 이념 그리고 보편적 정서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표상해온 우리 문학의 정수(精髓)이자 보고(寶庫)이다. 우리는 이 같은 긍정적 요소들을 계속 발전시켜, 서구의 미학적 박래품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적 항체(抗體)로 현대시조를 키워가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시조의 고유 자질인 ‘정형’이, 자유로운 시상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장애 요인이 아니라 그러한 형식적 특성을 통해서만 성취가 가능한 어떤 불가피한 ‘존재의 집’임을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불가피한 정형의 울타리를 통해 우리는 스케일이 큰 우주적 상상력에서부터 작고 미세한 사물들의 움직임에 이르는 다양한 시적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장중하고 파장이 큰 내러티브와 함께 이른바 ‘충만한 현재형’에서 구축되는 순간적 정서를 다양하게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력과 정서가 정형 안에 잘 갈무리됨으로써, 이러한 해체 지향의 시대에도 잘 짜인 고전적 감각과 인식을 경험할 수 있게 되고, 인간의 원초적이고 미분화된 정서와 통합적 삶의 이치를 만나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난경(難境)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시조의 ‘시조다움’을 더욱 첨예화하는 수밖에 없다. 정형은 그 점에서 폐쇄적이고 답답한 ‘존재의 감옥’이 아니라, 더없이 단란하고 화목한 ‘존재의 집’일 것이다
많은 서양인들은 시조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시조가 일본의 하이쿠에 비견되는 생명력과 자기 갱신력을 가진 장르라고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조가 가창적(歌唱的) 속성을 버리고 문자 예술로서의 지위만을 굳히게 되면서 근대 자유시에 주류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할지라도, 이제부터라도 그 문학사적 공백을 반성하면서 현대시조에 대한 역사적 정리와 탐색을 시작해가야 한다. 말하자면 정밀하고 잘 씌어진 현대시조문학사(現代時調文學史)가 필요한 것이다. 우수한 연구자들에 의해 완성되어갈 견고한 정형 미학의 역사 서술은, 정제된 의미론을 한없이 탈주하고 있는 국적 불명의 현실에서, 우리로 하여금 역설적 경종을 주는 자산이 될 것이다.
4. 현대시조의 역사성
고시조를 지나 현대시조로 토양을 옮기면서 시조 양식의 본래적 특성들은 많은 변화를 치러왔다. 왜냐하면 현대시조는 고시조와는 달리, 현대인의 복합적인 정서와 인식을 충실하게 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현대시조에는 때로는 장형화하고 때로는 요설과 파격을 통한 충격적 시형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시조 형식의 확산과 다양화를 위한 고육책임에는 틀림없으나, 시조의 시조다움을 훼손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잘 생각해 보면, 시조는 본래적 특성을 잘 견지하면서 부분적으로 변용을 이루어내는 것이 온당하다. 왜냐하면 정형시의 전통은, 오랜 세월을 축적하면서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는 그릇의 역할을 충분히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조는 근원적으로 안정되고 보편적인 인생론의 경향을 띠기 쉽고, 그만큼 강렬한 해체 정신보다는 고전적인 정서의 재발견에 더 무게가 주어지게 마련이다. 이때 정형 양식의 위의로서의 음악성은 양도할 수 없는 실존적 조건으로 다시 한 번 새삼 강조될 것이다.
하지만우리 시조문학의 미래를 응축의 원리나 경제성의 지향만으로 계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삶과 언어의 확장과 응축의 길항이 구체적인 육체로 소용돌이치는 여러 형식의 시조 전통을 확장해가야 하는 까닭도 인간 삶의 복합성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시조는 매체적 환경이나 대중적 관심에서 전망이 그리 밝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난경(難境)을 극복하는 길은, 시조의 시조다움을 더욱 첨예화하면서 동시에 인접 양식들과의 혼종 교배보다는 시조 안에서의 형식적 다양성을 실험하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때 사설시조는 그 확장과 응축의 길항을 통해 우리 시조 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설시조의 현대적 발전은 그 흐름이 그리 원활치 않았다. 1970년대 들어 현대 사설시조의 창작이 활발해졌고, 현대 사설시조만의 창작집이 간행되었고, 현대 사설시조로서 문단에 추천을 받아 나오기도 하였고, 현대 사설시조 작품을 발표하는 시조시인이 늘어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대 사설시조의 문단적 흐름은 그 역사가 영성하다 할 것이다. 우리가 잘 알거니와, 사설시조의 구조적 특성은 평시조 정형의 틀 안에서 일정한 변화를 보이는 속성에 있다. 그리고 사설시조의 맛은 형상의 연쇄적 병치를 통해 언어를 확장해가는 엮음의 재미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양식적 모색이 근대 비판으로서의 시조 미학을 심도 있게 궁구하게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조선시대의 양축을 구성했던 시조와 가사 가운데 가사는 완전히 소멸한 데 비해, 시조는 시인의 숫자만 천 명을 넘어서고 있을 정도로 활황을 누리고 있다. 시조를 싣는 문예지가 20여 종이나 되고, 시조 관련 문학상만도 10여 개를 헤아리고, 시조 관련 단체만 해도 여럿이고, 시조 백일장이나 시조 낭송대회 같은 행사들도 여러 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5. 시조문학사의 요청
현대시조를 읽고 해석하고 그 흐름을 집성(集成)하는 데 20년이 넘는 시간이 쌓였다.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지령을 이어가는 열린시조 2001년 봄호가 첫 지면이었는데, 그때로부터 월평, 해설, 작품론, 시인론, 테마론, 형식론, 교육론 등 많은 카테고리에 걸쳐 우리 시조에 대한 논의를 이어온 것 같다. 현대시조 관련 작업 가운데 아직 착수조차 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시조문학사일 것이다. 수많은 근대 이후의 작품들, 시조집들, 시조시인들, 동인이나 단체들, 매체나 제도 같은 권역에 걸쳐 ‘시조’가 흘러온 문양과 흔적을 탐사하는 일은 당연히 요청되어야 할 학문적, 비평적 과제임에 틀림없다.하지만 문학사 서술에서 시조는 그동안 확연한 주변부에 있었다. 내면의 자율성과 현실의 구체성을 통합하려 했던 근대문학의 일반적 지향을 시조가 충족하기 어려웠던 데다, 근대의 장(場)에 시조를 새롭게 새겨보려 했던 시조부흥운동이 문학사의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채 한시적 흐름으로 종결된 탓도 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근대인들은 시조가 음악으로서의 속성을 일정하게 지우고 활자의 옷만을 입고 출현하자 오직 율독을 통해서만 그것이 정형 양식임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작품 평가 또한 시조 고유의 양식적 요소보다는 시 일반의 문법에 더 의존하게 됨으로써 정형 양식으로서의 독자성은 해석의 과정에서 때때로 멀어지기도 했다. 연구자는 연구자대로, 비평가는 비평가대로, 자신이 다루는 작품이 정형시임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들이 시조를 완벽하게 주변부로 밀어낸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러한 변방성이 시조의 양식적 가능성을 제고한 측면도 있었던 것인데, 그것은 현대시조가 ‘반(反)근대의 근대문학’으로서 뚜렷하게 자기 위상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그 돌올한 성과와 질서야말로 ‘시조’의 고유한 배타적 영역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현대시조는 다양한 근대적 변형을 치르면서 지금도 활발하게 창작되는 현재형 양식이다. 비록 시조에 무지한 분들이 아직도 중세주의의 낡은 연장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지만, 현대시조는 백년을 넘는 전개와 축적의 역사를 간단없이 이루어왔다. 따라서 우리는 고시조의 구투(舊套)를 벗어나 새로운 전언과 형식과 소재를 담아온 시조문학의 원리를 횡(橫)이 아닌 종(縱)으로 조감해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러한 원리를 필자는 ‘역진(逆進)’으로 표현해보았지만, 그것은 핵심 원리이기는 하나 보편적 관통 원리라고까지 규정될 수는 없다. 따라서 새로운 섭렵과 통관의 시각을 통해 현대시조는 새로운 통시적 질서를 부여받아야 한다. 그 특유의 서경적 순간성 때문에 너절한 스노비즘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했던 하이쿠와는 다르게, 시조는 자신만의 빛과 그림자를 거느린 채 성속(聖俗)이 얽힌 근대사 한복판을 가로질러왔다. 그 힘겨운 역사를 통시적이고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서술 욕망은 이러한 조건 안에서 생겨나고 있다.
1906년 7월 21일 대한매일신보 소재(所載) 「혈죽가(血竹歌)」 이래로 120년 가까이 펼쳐진 현대시조의 역사는 이러한 사적 질서에 대한 요청 앞에 도열해 있다. 물론 「혈죽가」가 시조의 양식적 정체성을 과연 충족하는지, 이전에 활자화된 작품은 과연 없는지 하는 문제들이 파생되었지만, 그동안 가창되어왔던 시조가 비로소 근대 매체에 활자로 발표된 최초 사례로 그 작품이 평가되면서 지금은 7월 21일이 ‘시조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가령 최남선이 시조집 백팔번뇌(百八煩惱)(1926)를 내면서 “최초의 시조로 활자에 신세를 진 지 23년 되는 병인(丙寅)해”라고 했으니 그가 시조를 쓴 것은 1903~4년 어름이 되는 셈이지만 그렇게 일찍 쓰인 육당 시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 후 우리 현대시조는 다양한 거장들의 출현과 성취에 의해 그 역사를 펼쳐간다. 제1기는 최남선, 이광수, 이병기, 이은상, 정인보 등 천재들을 보유함으로써 장관을 보인다. 잘 알려져 있듯이, 최남선은 시조를 국민문학의 일환으로 복원하여 민족주의운동으로 승화시켰고, 이광수는 스스로 시조를 많이 쓰기도 했지만 최남선 시조를 평가하여 문학사적 의의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그 뒤를 이은 이병기는 시조를 혁신하려는 야심적 프로젝트를 내놓은 인물이다. 그는 「시조는 혁신하자」를 통해 구체적인 시조 창작 방법론을 제시하였고, 스스로 전통적 서정을 바탕으로 3장의 유기적 구조를 완성하였다. 이은상은 새로운 시조 형식을 부단히 모색하고 실천함으로써 시조의 양식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정인보는 민족적 기율로서의 시조 창작에 매진하면서 유교적 규범으로서의 인간 지표에 대해 형상화한 시편들을 남겼다. 이분들은 한결같이 시조를 통해 민족의식을 발현하였고, 역사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었다. 그 점에서 역사와 현실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시조로 그것을 실천한 사례로 초창기 시조 역사를 수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2기 시인은 조운, 김상옥, 이호우, 조남령이다. 이들은 미학적 세련성을 점증하면서 정형 양식으로도 생동하는 현대적 감각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운은 등단 시기는 매우 빠르나 해방후에 조운시조집을 발간함으로써 세대론적으로 2기로 포괄되었다. 그는 고향 영광에서 줄곧 문예운동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우리의 눈을 밝게 하는 문학적 고갱이를 통해 감각적이고 활달한 시조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김상옥은 은유를 통한 굴절과 상징의 참신함과 사유의 깊이로 현대시조의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 실로 다양한 형식과 소재를 변주한 장인이었는데, 고향과 고전에 대한 함축적 지향을 내내 보여주었다. 이호우는 시조 형식을 선험적인 굴레로 생각하지 않고 다양한 형식 탐색을 통해 3연 6행이라는 독자적 형식을 정착시켰다. 그의 후기는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는 데로 확장되기도 하였다. 조남령은 동시대의 민중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가난한 현실을 서정적 언어로서 표현하였다.
제3기는 이태극, 이영도, 장순하, 정완영으로 이어진다. 이태극은 창작, 연구, 매체의 트라이앵글 역할을 매우 왕성하게 보여주었고, 이영도는 여성적 정한과 그리움의 세계 그리고 속 깊은 인생론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장순하는 생명적 원형과 함께 존재론적 깊이를 탐구하였고 순수한 생명 추구와 존재의 깊이를 찾아가는 모습을 드러내주었다. 정완영은 자연 형상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담아내는 데 깊은 안목과 솜씨를 보여주었고, 높은 예술성과 함께 시조의 문학적 위상을 높여주었다.
지금까지 살펴온 이 정도의 밑그림이 초창기 현대시조의 대체적 얼개가 될 것이다. 1970년대 이후 많은 시조시인들이 괄목할 활동을 보여주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양적으로 확장된 시인군(群)이 시조시단에 등장하였다. 이러한 흐름에 기대어 필자는 근대 초기부터 1970년대까지 펼쳐진 시조문학사를 일차적 구도(構圖)로 잡아보고자 한다. 물론 여기에는 시인 중심의 편제 방식을 벗어난 새로운 배치 방식이 필요하고, 형식상의 중요한 흐름에 대한 개괄이 보태져야 하고, 매체나 운동 단위의 흐름에 대한 분석도 부가되어야 할 것이다.
근대성과 국민국가라는 두 마리 토끼는, 언제나 근대 국민국가의 결여 상태에 놓여 있던 우리에게는 언제나 초미의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근대사적 과제는 문학을 누리고 해석하는 데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왔다. 시조문학사에서도 이러한 접근은 당연히 필요하고 또 장려되어야겠지만, 문학 내적 연구 흐름을 더욱 본격화하여 적용해볼 것을 다짐해본다. 문학 연구자의 역할은 작품이나 현상을 해석하면서 시인이나 작가가 실제 세계(the actual world)에 근거하여 구축해놓은 가능 세계(the possible world)를 밝혀내는 데 있다. 작품 혹은 문학 현상에 대한 동어반복의 축적은 더 이상 성장이 아니라 제도적 현상유지 혹은 퇴행일 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성장의 시각을 위해서라도, 부족한 대로 시조문학사의 실제를 내놓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학문적, 비평적 과제인 셈이다.
6. 현대시조의 새로운 기율
그동안 우리 교양 체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고시조들은 자연을 이상적 형식으로 추구하였고 성리학적 이념에 충실한 주제들을 형상화해온 경우들이 특히 많았다. 그래서 우리가 고시조를 읽을 때 그러한 주제에 동화와 투사의 경험을 흔연히 치러온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고시조의 화자와 청자는 입장을 달리해 미적 균열을 일으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합리적인 인과론, 이성에 의한 예측 가능성, 계기적인 선형적(線形的) 사유들이 많이 그 힘을 잃고 그 대신에 불확정성의 원리, 불온한 상상력, 입체적이고 다양한 아이러니적 사유 등이 세계의 실재에 더 가깝게 접근하는 방법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해졌다. 모든 시 창작의 근원적 동기가 자기 확인의 나르시시즘에 있다고 할지라도,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그 거울조차 반질반질하고 투명한 것이 아니라, 흐리고 어둑하며 심지어는 깨어진 거울일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 깨어진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자신의 얼굴은, 나르시스처럼 매혹에 가득찬 모습이 아니라, 자기 연민 내지는 자기 부정의 갈등을 가져다주는 복합성의 얼굴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매혹과 몰입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환경적 모순과 맞서고 있는 자신에 대해 사유하고 표현하려 한다. 이 같은 모순과 갈등의 이중적 의미를 표현하는 미학적 양식이 ‘아이러니’라고 할 때, 우리 시대에는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정서보다는 주체와 사물 사이의 날카로운 균열과 불화를 암시하는 ‘아이러니’가 다소 유력한 방법이자 양식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현대시조의 새로운 미학적 활로는, 전통 형식과 현대적 감각을 결합하여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다가서는 데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전통 형식과 현대적 감각 사이의 활발한 교섭과 통합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노래하는 시’에서 탈각하여 활자 매체에 의존하는 ‘읽는 시’로서의 속성을 가지게 된 현대시조는, 다양한 근대적 변형을 치르면서 오늘날까지 양식적 동일성을 이어왔다. 하지만 정형 양식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선험적 규정성이 엄존하고 있고, 낡은 중세주의의 연장으로 바라보는 편견까지 남아 있어 이른바 근대적 양식으로의 이월이 그리 순탄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시조는 ‘현대’라는 에피셋과 ‘시조’라는 양식 규정이 서로 일정하게 상충을 일으키면서 논의의 구심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현대’에 대한 요구를 무리하게 관철할 경우 자유시와 변별되지 않는 형식 실험이나 원심적 파격의 과잉이 염려되고, 시조로서의 동일성과 정체성을 표나게 강조할 경우 고시조가 가졌던 전언 및 형식에서의 진화 여부가 문제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 같은 상충과 갈등이야말로 현대시조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리우고 있는 천혜의 역설적 토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승리와 파시스트적 속도의 기술 혁명으로 대변되는 후기 근대의 환경에서, 시조가 가지는 정격의 미학과 근대 비판적 속성이 일정하게 대안적 지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고시조의 구투를 한껏 벗어나, 이른바 ‘다른 목소리(the other voice)’를 통한 전언 방식과 소재의 다변화를 꾀하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의 결핍 요소들을 채워가는 이른바 역진의 방식을 취할 수 있는 유리한 입지를 현대시조가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역진의 상상력이 바로 반(反)모더니티까지 포괄하는 시조 미학의 존재론이 될 것이다. 그러니 현대시조의 모더니티는 동시대의 현실 감각 못지않게, 끊임없이 어떤 근원을 향한 반근대적 발상을 자신의 일용할 양식으로 하여 번져갈 것이다. 그것이 현대시조의 모더니티의 역설이요 모순이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시조는 정형시이므로 자유시가 가지고 있는 언어적, 형식적 자유를 누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엄격한 형식을 지키면서 그리고 자수(字數)를 견고하게 지키면서 씌어지는 것이 옳다. 그 점에서 현대시조에 요청되는 모더니티란, 형식 일탈이나 확장보다는 시인의 복합적 시선과 사물 해석의 새로움 그리고 언어의 세련됨에서 찾아져야 한다. 특별히 시조의 중장에서 의미를 확장하고 종장에서 그 시상을 수렴해 들이는 기율은 섬세하게 지켜져야 한다. 사설 양식이 일정 부분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현대시조의 본류가 될 수는 없다. 이처럼 이른바 정형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은 앞으로도 간단없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시조의 존재 방식에 대한 메타적 성찰로 이어져 현대시조의 존재 의의를 설명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대부를 창작 주체로 하였던 고시조의 양식적 속성은 현대시조에 와서도 크게 훼손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현대 자유시가 율격을 등한시하면서 현대시조의 이러한 양식적 동일성은 커다란 대안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 점에서 무한하게 열린 구조로 존재하는 자유시의 대극적인 위치에서 현대시조는 양식적 구심력을 한층 더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 자유시가 놓치고 지워버린 어떤 것들, 예컨대 정격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하게 변용된 율격, 시상의 견고한 안정성, 우리 것에 대한 새삼스런 발견 등을 현대시조가 회복할 때 될 수 있다. 현대시조가 다시 근대문학의 주류로 오를 수는 없겠지만, 현대인의 삶을 내용으로 하되 시상의 완결성과 율격을 지키면서 시조만의 역할을 수행할 때 이 같은 양식적 모더니티는 견고하게 지켜질 것이다. 이제 현대시조는 내용과 형식 사이에 상존하는 긴장과 상충을 감안하면서, 검증된 양식적 미덕과 개척해가야 할 모더니티 사이에서 완미한 정형 미학을 이루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시조단의 많은 분들이 남다른 열정과 공력을 축적해갈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아름답고 견고한 정형 미학이야말로, 정제된 의미론을 한없이 탈주하고 있는 국적 불명의 언어적 현실에서, 우리로 하여금 역설적 경종을 경험케 할 것이다.
‘시’라는 언어 형식을 규율하고 거기에 일정한 구심력을 부여해온 개념 가운데 으뜸은 아마도 음악성에 관련된 속성들일 것이다. 문학예술을 오랫동안 운문과 산문으로 구획해온 원리 역시 이러한 음악성의 충족 여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그 가운데 가령 시는 운율을 핵심적 원리로 하는 양식이고 소설이나 희곡은 줄글로 쓰임으로써 산문 양식에 속한다는 분법이 오래도록 통용되어온 것도 우리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녹아 있다. 이처럼 정형시와 자유시를 포괄하는 시는 음악성의 적자로 우리에게 오래도록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정형시와 자유시 사이에도 음악성을 중심으로 한 분화가 역사적으로 있어왔다. 이때 우리가 정형 양식인 ‘현대시조’를 메타적으로 성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띨 것이다.
7. 현대성 구현 과제에 직면한 시조
오랜 양식적 변형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른 현대시조는, 정형 양식으로서의 고유한 역사를 통해 자신만의 함축과 절제의 원리를 견고하게 지켜왔다. 다양한 해체와 원심적 확장 경향이 부박하게 떠도는 우리 시대에 가장 구심적인 미학적 고갱이를 산출함으로써 독자적인 계승과 창신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최근에 시조는 활발한 외관을 띠면서 민족 시형으로서의 위상과 미학을 한층 수준 높게 구축해가고 있고, 시조 시단의 인적 구성이나 매체적 조건도 활력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흐름은 시조를 시절 지난 전근대적 양식이 아니라, 그 나름의 현대성을 개척해가는 양식으로 거듭나게끔 해주었다.
물론 최근 시조 시단에서는 자유시에 거의 근접한 파격의 작품도 다수 발견된다. 이 또한 시조의 다양한 분화 과정을 보여주는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때 우리는 여전히 시조의 정체성이라는 해묵은 질의를 해볼 수밖에 없는데, 형식 제약이라는 굴레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시조를 택하는가 하는 존재론적 물음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첨단 디지털 시대에 시조라는 양식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우리는 거듭 묻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과 마주할 때, 우리는 시조에는 시조 아니면 안 되는 어떤 고유한 내질이 존재한다는 점에 이르게 된다.
그동안 시조는 정형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감안하면서 특유의 균형과 절제의 미학을 지속적으로 구현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조 양식의 율격적 구속을 최대한 허물면서 형식 미학적 확장을 꾀하려는 작품들도 적지 않게 씌어지고 있다. 그만큼 현대시조는 정형의 강화와 이완, 그리고 전통적 정서의 재확인과 현대적 감각의 도입 사이에서 심하게 길항하고 있다. 이때 우리는 현대시조만의 형상과 논리를 구축해야 하는 만만찮은 과제와 마주치게 된다. 다시 말해 ‘현대성’과 ‘시조성’이라는 이질적 범주를 적절하게 통합하는 시조만의 독자적 미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시조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연면한 생명력과 영향력과 파생력을 가지면서 그 저변을 확대해가고 있는 현재 진행의 장르다. 견고한 생명력과 폭 넓은 자기 갱신 가능성을 가진 시조는 우리가 보유한 가장 독자적인 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아마도 시조 양식이 우리 민족의 성정이나 사유 방식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여러 특성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고시조를 지나 현대시조로 존재를 옮겨오면서 시조 양식의 본래적 특성들은 많은 변화를 치렀다. 왜냐하면 현대시조는 현대인의 복합적인 정서와 인식을 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시조의 현대성이란 무엇을 함의하는 것일까? 두 가지 차원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내용, 둘은 언어이다. 말할 것도 없이, 현대시조는 동시대인의 사유와 감각과 정서를 담는다는 데서 엄연한 현재형 장르이다. 그런데 고시조가 애호했던 소재나 사유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경우가 아직도 없지 않다. 이때 시조는 현대인의 삶을 환기하는 데 못 미치게 되고, 독자 또한 시조를 고루한 옛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화법이나 조사(措辭)에서 구투를 버리지 못한 경우도 많다. 가령 “~매라”나 “~노라” 같은 결구(結句)가 여전히 보이고, 또 제목에 ‘가(歌)’를 별 필연성 없이 붙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또한 시조의 현대성 제고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일 것이다.
우리는 시조에 자유시의 역사에 늘 있는 ‘극단(the extreme)’의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시사에 나타나는 이상(李箱) 류의 아방가르드나, 황지우 같은 도상(圖像)의 시, 황병승 같은 데카당스 미학은 시조에 거의 없다. 따라서 시조의 현대성을 두고, 자유시에서 실험했던 극단의 지점을 요구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시조의 현대성은 정형 양식의 구심력을 최대한 지키면서, 내용과 언어의 현대성에 착목하면 될 일이다. 이 점, 두고두고 토론에 값하는 의제가 될 것이다.
8.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에서
고시조를 지나 현대시조로 토양을 옮기면서 시조 양식의 본래적 특성들은 많은 변화를 치렀다. 왜냐하면 현대시조는 고시와는 달리, 현대인의 복합적인 정서와 인식을 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현대시조에는 때로는 장형화하고 때로는 요설과 파격을 통한 충격적 시형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시조 형식의 확산과 다양화를 위한 고육책임에는 틀림없으나, 시조의 시조다움을 훼손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생각해 보면 시조 양식은 본래적 특성들을 잘 견지하면서 부분적으로 변용을 이루어내는 것이 온당하다. 왜냐하면 정형시의 전통은, 오랜 세월을 축적하면서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는 그릇의 역할을 충분히 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전통과 현실 사이의 창조적 균형이 없다면, 시조 양식의 확장이나 개신은 거의 불가능하고 또 무의미할 것이다. 그만큼 정격(正格)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전통과 현실을 적극 매개하고 통합하려는 의지는 중요한 것이다. 시조 미학은 이러한 과제 곧 고전적 구심과 현실적 균형 감각을 특유의 내적 깊이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시조의 양식론에 대한 실천적 응답이자 시조가 현대적 양식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정공법적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시조시인들은 필연성 없이 형태적 변형을 꾀하는 지향보다는, 시조의 미학과 역사를 촘촘히 궁구(窮究)하여 그것을 현대적 해석이나 감각과 활발히 교섭하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때 정형 양식의 위의로서의 정형성은 양도할 수 없는 실존적 구심력으로 다시 한 번 새삼 강조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안출되고 창작되는 수많은 시조의 변형태들을 일탈적 양태라고 한꺼번에 함부로 일괄할 수는 없다. 모든 양식은 생성, 변화, 소멸의 역사성을 밟아가니까 말이다. 우리 비평은 그 가운데서도 시조문학의 우뚝한 범례들을 많이 찾아내고 격려하고 세워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시조는 세계화와 현대성이라는 원심력과 양식적 본래성이라는 메타적 구심력 사이에 끊임없는 진자 운동을 하면서 우리 언어를 심미적으로 풍요롭게 각인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