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법주 영원하소서
이 땅이 불국토이며 일체 중생이 부처님 공덕을 두루 갖춘 대보살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바로 자기 구제이며 중생 제도이며 국토 장엄이다. 이와 같이 나를 구제하고 중생을 구제하며 세계를 밝히는 중심은 앞서 「청전법륜장(請轉法輪章)」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그것은 이땅에 진리의 광명을 던지는 설법주(說法主)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설법주가 영원히 계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그것이 그대로 청정한 깨달음의 마음인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이며 대보살의 마음이며 일체중생 본래 면목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 클 때 중생이 성숙되고 보살이 성장하며 국토의 광명이 넘친다.
불보살님과 일체 중생이 영영 열반에 드시지 말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여 주소서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공덕인가는 가히 짐작이 간다.
2. 보살의 원(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열반을 모르는 범부들은 열반을 부처님 육체의 몸이 일체 중생과 함께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법에 걸려 사라지는 것이며 부처님은 그 다음에 원만한 열반에 든 것으로 착각한다.
열반은 죽음이 아닌데도 죽음을 열반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형상의 그림자를 거두는 사실을 일러 열반에 든다는 말이 불교계에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해서 열반은 일체 번뇌의 멸이며, 일체장애의 멸이며, 일체 한계의 멸이며 일체 생멸의 멸이다. 그러므로 열반은 결박에서 벗어남이며 대해탈이며 대완성이다.
대개 대승사상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깨달음의 자체로 본다. 영원과 즐거움과 참 아(我)와 청정의 사덕(四德)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런 입장에서 열반에는 팔미(八味)가 있다 하였으니 상(常) 항(恒) 안(安) 청정(淸淨) 불노(不老) 불사(不死) 무구(無垢) 쾌락(快樂)을 들고 있다.
열반은 본래의 것이며 깨달음을 통하여 주체적 파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중생의 진면목인 것을 알고 열반이 지니는 진실한 덕성과 그 위덕을 십이분 발휘하도록 하여야 한다.
불보살이 이와 같이 불생불명을 시현하며 중생을 교화하시건만 범부들은 부처님이 세간의 인식권 밖으로 벗어나게 됨을 열반이라 하는 것이므로 이런 열반은 이 땅에서 열반의 광명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영원과 중생성취를 기원하는 보살이 마음속으로부터 ‘열반에 들지 마소서. 영원히 중생을 이롭게 하여 주소서’하고 청원하는 것이다.
3. 세 가지 선지식
경에는 “모든 부처님과 또한 모든 보살과 성문 연각인 유학 무학 내지 일체 선지식께서 열반에 드시려 하실 때 열반에 드시지 말고 극미진수겁토록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여 주소서.”한다 하였다.
한마디로 모든 선지식에게 이 땅에 오래 머물어 주시도록 지극 정성 권청하는 것이다.경에는 부처님과 보살과 유학인 성문과 아라한과 일체 선지식을 들고 있다.
선지식은 우리를 번뇌의 불집에서 나와 열반의 편안한 집에 이르게 하신다. 선지식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를 외호하고 우리와 벗하여 주신다.
고래로 선지식을 선우(善友)라고도 하며 승우(勝友)․친우(親友)라고 하여온 것은 이때문이다. 그래서 외호(外護)선지식, 동사(同事)선지식, 교수(敎授)선지식이라는 이름도 있는 것이다.
또 선지식이 우리에게 법을 주고 또는 재물을 주면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니 이때에 삼우(三友)가 있게 된다. 삼우란 상친우, 중친우, 하친우를 말한다. 상친우는 오직 법만 주는 선지식이고, 중친우는 법과 재물을 함께 주는 선지식이며, 하친우는 재물만 주는 선지식이다.
여기서 법과 재물을 주는 선지식이 중친우라 함에 다소 의아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법이 무상(無常)이며 일체 구족이며 일체 성취라는 것을 상기하고 이러한 법의 순수성에 대하여 제어를 의미하는 것은 그 모두가 최선이 못된다는 것을 다시 알아야 하겠다. 법에 의한 독존, 법에 의한 자재, 이것이 불교가 사람을 가르치고 일으켜 세우는 최상의 형식이며 기술인 것을 알아야 하겠다.
어쨌든 법이든 재물이든 그것이 선지식의 뜻에서 행해지는 한 그 모두는 법인 것이며 최상의 시혜(施惠)인 것이니, 우리는 처처에서 최상의 선지식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선지식에게 차별심을 내지 말고 여법히 권청하고 여법히 받들어 섬겨야 할 것이다.
4. 정법을 호지하는 공덕
선지식은 설법주이며 이땅의 광명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을 옹호하고 정법을 호지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최상의 의무이다. 경에는 호법(護法)의 공덕을 처처에 말씀하고 있다. 그 중에도 『대반열반경』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과거세에 호법한 내력이 밝혀 있다. 그리고 호법하는 자의 기본 자세와 그 방법을 또한 밝게 말씀하신다.
저 머나먼 과거세에 각덕(覺德) 비구가 출세하여 정법으로 교화하고 있었는데, 그때에 그를 훼방하는 악한 무리들이 떼를 지어 각덕 비구를 해코자 하였다. 그때에 왕인 유덕(有德)이 정법을 호지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저들을 맞아 싸웠다. 저들의 군세가 대단하여 유덕왕의 용전분투로 각덕 비구를 보호할 수 있었어도 유덕왕은 상처를 입어 마침내 죽고 만다.
임종을 당하여 각덕 비구는 그에게 법을 설하고 그는 목숨을 거두자 곧 아촉불국 제1의 제자로 태어난다. 그리고 이 호법공덕으로 마침내 성불하였으니 석가모니 부처님이 바로 그이시다.
『대반열반경』「금강신품」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선남자야, 이런 까닭에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은 마땅히 힘써 정법을 호지하라. 정법을 호지한 과보는 광대무량하니라. 선남자여, 이 까닭에 호법하는 우바새들은 도장(刀杖;무기)을 잡고 그와 같은 법을 지니는 비구를 옹호할지니라.
만약 오계를 갖춰 수지하는 자가 있더라도 이로써 대승의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느니라. 오계를 받지 않았더라도 정법을 호지하는 자는 이 사람을 곧 대승이라 할 것이니라. 정법을 호지하는 자는 마땅히 칼 등 기장을 가지고 법사를 호위하라.”
이 얼마나 정법을 지키어 만겁으로 전하시고자 하시는 지극한 말씀이신가. 일신의 청정과 안이한 자비심에 등대고 정법이 파괴되고 정법을 선설하시는 법사가 위협을 당하여도 오히려 눈감고 지나가려는 겁약한 마음을 격발시키는 웅혼한 말씀이신가.
오직 정법을 호지하기 위하여 능히 무기를 들고 일어서는 자야말로 진실한 계를 가지는 자며 대승의 보살이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덕이 광대무량함을 말씀하신다.
호법하는 공덕에 대하여『열반경』에서는 “부처님의 몸은 항상 머물어 있는 몸이며 허물어지지 않는 몸이며 금강의 몸이며 음식을 먹어 지탱하는 몸이 아니니 부처님은 곧 법신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그와 같은 부처님의 금강불괴신을 성취한 인연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능히 정법을 호지한 인연으로 이 금강신을 성취할 수 있었느니라. 가섭이여, 내가 옛날에 법을 지킨 인연으로 지금 이 금강신이며 상주불괴신(常住不壞身)을 성취할 수 있었느니라.
선남자여, 정법을 호지하는 자는 五계를 받지 아니하며 위의(威儀)를 받지 아니하며 칼․활․창 등을 가지고 청정 비구를 수호할지니라.”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의 청정법신을 성취하여 금강불괴신을 이루신 인연이 정법을 호지한 적극정신에서 왔다는 말씀에 주목하는 바이다.
5. 정법호지자의 계명
『열반경』「장수품(長壽品)」에는 정법을 파괴하는 자를 보면 마땅히 여법규하라고 말씀하시며 그 복이 한량없음을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열반한 뒤에 어떤 곳에서든 계를 가지고 비구가 있고 위의가 구족하여 정법을 호지할 때 만약 법을 파괴하는 자를 보고 곧 능히 내쫓고 꾸짖고 규치(糾治)한다면 이 바램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복을 얻을 것이다…(중략)….”
“선남자여, 비유컨데 장자가 사는 곳에 밭이나 집에 여러 가지 독한 나무가 났다면 장자가 이것을 알면 곧 베어 버려서 다시는 나지 않게 하는 거와 같이… 정법을 호지하는 비구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계를 파하고 정법을 파하는 자를 보거든 마땅히 구견 하책 거처 할지니라.
만약 어떤 착한 비구가 법을 허무는 자를 보고 구견 하책 거처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지라. 이 사람이 불법 중의 원수니라. 만약 능히 구견 하책 거처하면 이것이 나의 제자며 참된 성문이니라.”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정법을 호지하는 자는 오계를 갖지 아니한다. 그러나 두 가지 움직여서는 아니 될 지상목적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그 하나는 정법을 호지하는 목적이고, 또 하나는 저들을 자비심으로 대하고 능히 무기를 드는 것이다.
만약 정법을 파괴하는 자를 보고도 그것을 조복받지 아니한다면 파법행위를 외면한 그 사람이 불법의 원수라고 하였다. 또한 경에는 호법하는 자가 무기를 들고 일어나더라도 지극한 자비로서 명근만은 끊지 말라고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6. 맺는말
우리는 여기서 열반의 대승적 의미가 어떠한 이인가를 보는 것이며 설법주를 보호하고 정법광명을 호지하는 공덕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짐작하게 한다.
이 땅에 평화와 안락이 영원하기를…, 이 땅의 중생들이 보리를 이루기를… 기원하는 보살이 일체 선지식에게 권청하되 “열반에 드시지 마소서. 영겁토록 이 땅에 머물어 주소서. 일체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여 주소서.”하는 이것이 바로 불심광명의 표현인 것을 능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기원은 그만둘 수가 없다. 이 땅에 태양이 영원하심을 기원하듯이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도 보살의 이 권청은 결코 쉴 수 없는 것이다.
「청불주세장(請佛住世章)」에서 보이신 원대한 보살의 책임정신과 호법의지를 우리는 깊이 배워야 할 것이다.
[註解]
비구(比丘) : 범어의 빅슈(Bhiksu:苾蒭)라고 한다. 걸사(乞士).포마(怖魔).파악(破惡).제근(除饉).근사남(勤事男)이라 번역된다. 남자로서 출가하여 250계를 받아지니며 수행하는 이를 말한다.
비구의 종류에 대하여 『사분율』에는 다음의 7종 비구가 보인다. 명자(名字)비구.상사(相似)비구.자칭(自稱)비구.선래(善來)비구.걸구(乞求)비구.착할절의(着割截衣)비구.파결사(破結使)비구인데 이 파결사비구 즉 파번뇌비구가 참 비구다.
(광덕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