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Of The Affair
영화를 보고나면 메스를 들고 처음부터 다시 해부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고, 반대로 그 영화의 허술한 부분들은 모두 덮어두고 그 분위기에 한없이 취해보고 싶은 경우가 있다.
아마 <애수>를 보고나면 '메스'를 찾아들기 보다는 빗속을 걸어보고 싶을 것이다.
당신은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당신이 사랑하는 여인은 신과의 약속으로 인해 당신을 떠나려한다.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신'과의 약속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당신을 떠나간다. 당신은 신을 증오하지 않겠는가? 나라면 아마 신에게 살의殺意를 느낄 것이다.
"전 지금까지 당신에게 기도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을 살려만 주신다면 전 앞으로 당신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제발... 그를 살려만 주신다면 전 영원히 그의 곁을 떠나겠습니다... 다시는... 그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소원대로 기적은 이루어지고 분명 죽었던 남자는 멀쩡히 살아난다. 그녀는 이 말도 안되는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건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그녀는 '약속'대로 그의 곁을 떠난다. 그에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단지 '보지 않는다고 사랑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말만을 남긴 채... 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기도나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졌다.
시간이 흐른 뒤 남자는 그녀만의 비밀을 알게되고 그들의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여전히 신을 믿지 않는 남자에게 그 사랑은 새로운 행복의 시작이었지만 신과의 약속을 믿는 여인에게 그 사랑은 죽음을 담보로 한 약속의 위반이다. 그리고 그녀는 짧은 사랑을 위해 기꺼이 죽어간다.
만약, 당신이라면 신을 증오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신을 믿지 않는 당신이라해도 그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영화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화두를 던져주며 그들의 사랑에 취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여인이 그랬던 것처럼 홀로 빗속을 걸어보게 만든다.
<애수>는 닐 조던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허술하고 가벼운 소품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판단을 지워버릴 만큼 열정적인 감성으로 넘쳐난다.
모든 영화가 비평과 해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향기만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도 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영화는 우리의 뇌를 마비시키는 감각적 폭탄은 아니다. 그런 폭력적 도취만 아니라면 우리는 기꺼이 영화에 취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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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Of H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