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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100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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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간 관련 스크랩 박일규 유스또 선생님 이야기..백주간을 한국에 연결시키신 분...
용기와믿음.... 추천 1 조회 150 10.03.14 17:52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4월 16일.. 말씀의 집..서 박유스또 어르신께서 후원회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그분의 체험, 백주간을 연결하게 되는 이야기들 등을 너무나 진지하고 의미있게 들었습니다..이를 정리하였습니다....>

 

백주간을 소개해 세종로성당에서 장익 주교님과 처음 시작할 때, 좀하다가 빠져나가겠지 라고 생각하였습니다..그러나 시작한 후 빠져나갈 수 없었고, 한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연희동에 살면서 아들을 미국에서 교육을 시키고 싶었습니다..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프로테스탄트 문화를 접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는 '한국중앙기계'라는 공작기계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신자가 아니었고, 미국서 아들을 데려가서 가르치고 싶었습니다..암스트롱이 달에 먼저 착륙하는 기사를 보면서 미국의 정신을 자식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누이동생이 암으로 사망했습니다..4살아래였는데 9남매의 장남인 제가 업어 키운 누이동생이 죽었습니다..누이동생은 방배동성당을 다녔습니다..장례식서 그곳 신자들이동생을 위해 연도를 바치는 것을 보고, 성가 50번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라는 노래를 들어면서 감동과 편안함,기쁨이 왔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연희동성당을 찾아가 주임신부님을 만나서 세례를 받고 싶다고 하였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까지 가톨릭책을 25권정도 읽었습니다..그중에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님의 순교 관련 자료를 보았습니다.. 그중에 바로 사제서품을 받고 오신 외국사제(브르트니에르 유스토 신부)께서 6개월 숨어지내다가 잡혀서 순교한 내용을 읽고서 이런 일도 있나라고 생각했습니다..그후 불란서 신부님을 기록한 책을 보게되었습니다.. 브르트니에르 신부님은 선교도 해보지 못하고 한국에오자 마자 죽게 되었습니다... 그 분에 대한 생각에 불란서 신부님을 보면 너무 죄송하게 생각되었습니다..정말 죄스러웠습니다..교회사연구진중에 외국 신부님을 비판하는 것을 들으면 너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불란서 신부님을 친일로 비판하는 것에 동조하지 못하였습니다..

 

일본에 사업차로 자주 방문을 하였습니다.. 누가 일본에도 불란서 신부님이 계시다고 하셨습니다..33년간 계신 분이 있다고 했습니다..단지 불란서 신부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위스키와 인삼뿌리를 선물로 사서 찾아갔습니다.. '우에노 본당신부님'으로 계신 '마르셀 드 도르즈'신부님이었습니다.. 그분은 불란서에서 돈을 가지고 와서 일본서 성당을 지었습니다..신부님은 일본신자들을 영세시킨 후 재교육을 하려고 '성서'를 읽자고 하였고, 신자들은 성서를 읽으면서 토론도 하고 서로 싸움도 하였다고 합니다..해서 원칙을 정해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하나 하나씩 산 체험을 통해 원칙을 정해 나갔고, 당시 일본에도 세계적 성서학자들이 많이 계셨지만 성서교육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신부님께서 북해도에 가서도 다듬고 다듬어서 '책'을 만들었고 합니다.. 도르즈신부님은 보자마자 '백주간'이야길 하였고, 그때 제가 막 신자가 되었을 때였습니다..불란서 명문가집안의 장남으로 사제서품되어 한국에 오자마자 선교도 못하고 순교하신 브르트니에르신부님..그분에 대한 안타깝고 죄스런 마음때문에 '도르즈'신부님이 불란서 신부님이란 이유만으로 대접하고 싶었습니다..그 도르즈 신부님은 계속 '백주간'이야기만 하였습니다..일본서 당시 3000명정도가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한번 오시라고 초청을 하였고, 비행기표를 보내드렸습니다.. 도르즈신부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연희동에서 미리내 성지순례를 걸어서 동참하시면서 친해졌고, 그분은 계속 '백주간'에 대한 이야길 하였습니다..그후 신부님이 백주간에 대한 새로운 Text가 나오면 주고, 또 보내주고 하였습니다..

 

당시 교회사연구소에 자주 다녔습니다..틈만나면 돈만 있으면 그곳에 갔다주었습니다..그곳에 계신 신부님께 백주간이야길 하였고 그분이 일본에 같이 가자고 하였지만 내키지 않았습니다... 장익주교님는 제 아들의 혼배성사를 해주신 분이신데, 그분께 '백주간'에 대한 설명을 하였고, 그 뒤 그분이 전화와서 직접 찾아오시겠다고 하시면서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십자가 성 요한 성인을 좋아해서 장주교님과 친근감이 더했습니다..장주교님께서 일본에 같이 가자고 하셨고, 일본에서 백주간 모임에 같이 참여하였고, 장주교님께서는 그 내용을 일일이 적어나갔습니다..

 

그뒤, 장주교님께서 도르즈 신부님을 한국에 초청, 백주간의 설명회를 가졌고,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고, 분도회 세바스챤신부님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다시 살아나셨는데, 명동성당서 만났는데 내려오면서 기쁜표정을 지어시면서 책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번역은 영원한 도움의 수녀원에 계신 박숙안까리따스수녀님께서 맡기로 하셨는데, 일본성심여대 출신이시고 일본말을 아주 잘하십니다..그분들을 한번 이곳 말씀의집)에 모시고 싶습니다...

 

백주간을 한국서 시작하자 마자, 그 숫자가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그때 저는 성서에 관심이 없었고, 혼자서 읽으면 되지라고 생각했습니다..저도 백주간 봉사를 좀 하였고, 열정으로 먼길까지 가서 봉사를 했습니다..어떤 자매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이 발동하여 '너는 내딸이다'라는 말씀에 펑펑 울기시작하였고, 사람사는 본류를 만난 것이고, 지금도 굉장한 축복속에서 삽니다..그 때 백주간 한 분들 만나면 친척들 같이 생각되어 집니다..

 

성서백주간의 글씨는 안동김씨 따님이신 국내에서 제일 잘 쓰시는 분께 부탁해서 만든 것입니다..책과 번역등이 너무 잘 나왔습니다..

 

제 둘째 사위는 잘났다고 생각할 만한 아이입니다..부르뜨니에르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쓴 시 '신부하늘'이란 시를 읽으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합니다..그는 서서히 변하여 새벽미사를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파티마 발현의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에도 하늘과 소통하는 구나 라고 감동을 받고 파티마에 가서 프란치스코형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누이동생 히야친따 옷자락(3개)를 잘라서 주었습니다..하나는 푸른군대 계신 신부님께 드렸고, 하나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 올리베따노 수녀원에 도르즈신부님께서 오셔서 설명회를 하시는데, 통역을 해달라고 장주교님께서 직접요청하셔서 가게 되었습니다..그곳의 모든 수녀님들이 참석해서 미사를 하는데, 눈물이 이유모르게 막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총원장수녀님이 형제님은 딴일을 못하겠습니다..라고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 같이 함을 깨달았고, 잊을 수 없습니다..저 개인적 감동으로 흘렸다고 생각하지 못하겠습니다..큰 감동이었습니다..그곳의 수녀님들이 너무 이뻐게 보였습니다.....

 

청담동 성당으로 옮겨서 그곳 백주간 봉사 하시는 자매님을 만났을 때, 그분이 세번이나 봉사를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전 감동을 받았습니다..제 아들이 좀더 진심으로 다니길 바라고, 전 새벽미사를 다니는데, 아내가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말씀앞에 무릅꿇는 것은 '복'입니다..제 나이 77세 입니다..제가 모르고 한 일이 너무나 큰 것으로 다가옵니다...이 모든 것은 모두 주교님의 몫이고 역할입니다..

 

가톨릭다이제스트..제 딸과 사위가 인수하여 12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7만부가 배포되고 있습니다..이것을 하면서 땅도 생기고 돈도 생겼습니다..신기한 일입니다..NewYork에 가서 영어로 catholic digest를 발간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제 딸은 제가 했던 백주간 묵상록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저의 세례명은 한국서 28세에 순교하신 '브르트니에르 유스토(Bretenieres Justus)'성인의 이름으로 정하였습니다..부르기 어려워 잘 따지 않을 것같아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브르트니에르 성인의 선교혼이 '도르즈'신부님께, 김대건 성인의 선교혼이 '장익'주교님께 갔다고 생각합니다...

 

< 백주간..하나의 좋은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의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하시고, 땀과 노고가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그분들의 뜻이 하느님품안에서 영원히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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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1.10 23:03

    첫댓글 박일규 유스토님이 장익 주교님과 함께 일본가셔서 백주간을 도입하신 것은 백주간 초기에 뵙고 말씀 들었는데 상세한 경위를 이글을 통해 읽으니 감동스럽습니다. 좋은 글 정리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13.06.06 22:57

    이 글 보고 또 보이도 감동과 감사!

  • 13.09.12 09:42

    참 감동적입니다. 읽으면서 저도 눈물이 글썽!!

  • 21.07.20 13:22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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