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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은혜, 구원의 유기적 관계: 하나님의 책임과 사람의 책임(엡11):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흠정역성경, 설교, 강해, (2023.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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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은혜, 구원의 유기적 관계: 하나님의 책임과 사람의 책임(엡11)
성경: 엡2:8-9 - 8 만일 예수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분께서 그 뒤에 다른 날을 말씀하려 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한 안식이 남아 있도다.
에베소서 강해
1장 성도에게는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이 있다
- (3) - 이미 믿은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나니 이것은 세상의 창건 이후로 그 일들이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려면 믿어야 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모든
것 위로 높여지신 것같이
- (20-21) - 20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21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주]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그분의 몸인 교회도 그렇게 된다. (*)
우리가 천사들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이 세상 삶에 속한 일들은 얼마나
더 많이 판단하겠느냐?
- (고전6:3) - 우리가 천사들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하물며 이 세상 삶에 속한 일들은 얼마나 더 많이 판단하겠느냐?
2장, 1-10 - 1 또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
3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5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7 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긴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의 부끄러운 과거와 영광스러운 현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 11-22 - 11 그러므로 기억하라. 너희는 지나간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를 받아 [할례자]라 불리는 자에 의해 [무할례자들]이라 불리던 자들이라.
12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연방 국가 밖에 있던 외인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서 분리된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이었으나 13 한 때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분은 우리의 화평이시니라. 그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사 우리 사이의 중간 분리 벽을 허무시고 15 원수 되게 하는 것 즉 규례들에 수록된 명령들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없애셨으니 이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화평을 이루려 하심이요,
16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죽이사 친히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또 그분께서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에게와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 화평을 선포하셨느니라.
18 그분을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나니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와 외국인이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20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21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주]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22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
특별히 신약 시대에 이방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 교회란 무엇인가?
오늘 <
>,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 믿음, 은혜, 구원의 유기적
관계
1. 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가?
- (6-7) -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7 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긴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를 영원 속에서 보여 주시려고
- (7) - 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긴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
성도는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습니다’를 고백하는 사람.
바울 딤전1:12-14 -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그분께서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기 때문이라. 13 내가 전에는 신성모독하는 자요, 핍박하는 자요, 해를 끼치는 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얻게 됨은 내가 믿지 아니하는 가운데 알지 못하고 그것을 하였기 때문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천국에 가면 영원토록 듣게 될 말,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간증
2.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 (8) -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8-10절 -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은 신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 오용 혹은 남용되는 구절 중 하나이 구절에는 하나님의 책임과 인간의 책임이 들어 있다.
먼저 구원과 구속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구속(redemption),
어떤 사람이 돈이 없어 노예로 팔려나간다.
왜? 그의 힘으로는 그것을 면할 수 없기에.
그를 다시 자유인으로 만들 힘이 그에게는 전혀 없다(*).
그런데 구약 성경을 보면 그의 친족 중 하나가 그를 위해 돈을 지불하면 그는 양민으로 돌아올 수 있다. 속량된다. 룻기, 노예의 몸에서 자유인이 된다. 이것이 구속이다.그러므로 이 구속을 위해 그 당사자가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구속은 모두, 100% 친족 구속자가 한다. (*)
구원: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대부분의 경우 구원, 영생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구원은 구속과는 달리 사람이 해야 할 것이 있다.
요3:16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10:9-10 -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들어야 한다. 믿어야 한다. 불러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엡1:13 -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 2:8 -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인간의 구속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족 구속자로서 온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지불하셨다.
그런데 인간들 가운데는 그분과 그분의 속죗값을 신뢰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즉 구원받은 자들이 있고 구원받지 않은 자들이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믿느냐, 믿지 않느냐, 즉 믿음의 문제 8절, 믿음을 통해
엡2:8-9 -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는 이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일단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에베소서 1-2장 강해가 나오면 칼빈주의자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예정 선택 등
(*) 8 -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8절 중간의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영어 that: 칼빈주의자들은 여기의 그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1절: 칼빈주의자들의 오류: 칼빈주의 5대 강령(TULIP),
첫 번째 것,
전적 타락 교리(Total depravity),칼빈주의자들은 ‘전적 타락’을 ‘전적 무능력’으로 가르친다.
즉 아무리 말씀을 듣고 배우고 읽어도 죽은 송장이므로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구원받을 수 없다.
그들의 주장: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죽은 자들을 살려놓아야 그 뒤에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faith라는 말 대신
‘saving faith’라는 말을 즐겨 쓴다. 즉 하나님이 선택받은 자들을 살린 뒤 saving faith를 주셔서 믿게 하신다.
그러니까 믿는 것도 하나님이 하게 해 주신다. 살마은 그냥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엡1:13 -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이 이것을 반박한다.
8절 -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의 믿음은 내가 믿는 것이다.
(*) 9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 바로 이것을 설명한다. 9절은 8절 설명,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래서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딛3:5 -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Faith에 대한 칼빈주의자들의 주장 9절, faith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의 행위(일)이므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받을 수 없다.
목사, 참으로 어려운 직무 수행자,
- 딤후3:16 -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특히 이런 부분그런데 실제로 교리를 가르치면 설교가 논리적이고 딱딱하고 어떤 면에서 은혜롭지 못하다.
그래서 대다수 교회 목사들, 예를 들어가면 감성적인 설교, 은혜로운 설교를 한다.
나의 믿음: 일단 교리가 올바른 가운데 성경을 읽으며 경건 서적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아야지 완전히 다른 교리를 가지고 그것에 도취되어 은혜를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요즘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유명 연예인, 인사들의 간증
대개: 고통, 하나님께 기도,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다. 그런데 실제로 모든 영광은 자신이 받았다.
그래서 이런 간증을 들으면 안 될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누구나 좋아한다.
사실 이런 것은 동기 부여 세미나에서 해야 할 일이지 교회 목사나 성도가 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같은 경우 서신서 전체에서 자기 간증은 거의 없다.
100독 1도의 의미 백독일도(百讀一禱)(*)
바울 1-3장 교리, 4-6장은 실행, 1-3장은 어쩔 수 없이 교리 설명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믿음은 행위가 아님을 보여 주려 한다.
(*) 롬4:1-3 - 1 그러면 육체에 관한 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발견했다고 우리가 말하리요?
롬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으면 그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그에게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4:3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느니라.
율법 이전과 이후 믿는 것은 행위가 아니다.
8-9절의 결론: 노만 가이슬러 -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전체적인 구원 설명,
노르만 가이슬러의 칼빈주의 반박, (*) Norman Geisler(1932-2019)
자타가 공인하는 20-21세기 최고의 크리스천 변증학자, 신학대학교수, 10년간 댈러스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위키 백과 약 90여 권의 책, 조직신학(1,600쪽), 로마 카톨릭 주의 문제, 이단들, 비교 종교, 철학, 창조와 진화, 칼빈주의, 성경의 영감 등에 대해 매우 조직적으로 논리적으로 책들을 저술함, 보통 1권이 4-500쪽, 칼빈주의 관련: Chosen But Free, 285쪽
1. 은혜와 믿음
내가 1억 원을 누구에게 주려고 한다고 치자. 이것은 나의 선함 마음에서 나온 선물이다. 여기에는 아무 조건이 없다. 즉 받으려는 사람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만 한다든지 하는 조건이 붙어 있지 않다.
누구든지 이것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 조건 없이 이것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편에서의 은혜, 무조건적인 선택이다. 구원(영생)을 무료로 주신다.
그런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것을 받기 위해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주려는 선물 즉 1억 원을 받아야만 한다. 즉 내가 아무 조건 없이 1억 원을 주려고 하는데 당사자가 그것을 받아 자기 것으로 삼으려면 손을 내밀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취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 조건이 없다.
그러나 받는 사람 편에서는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코 그의 것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너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믿을 필요도 없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으면 그것은 무조건적으로 네 것이 된다. 네가 믿으려 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이.
또 실제로 너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너는 죄들 가운데서 전적으로 죽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체이므로 복음을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셔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즉 하나님이 구원받아야 할 자들 즉 선택받은 자들을 먼저 구원해야 하며(다시 태어나게 해야 하며)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
고 믿을 수 있게 된다.”
(*) 파이퍼, 맥아더. 스프로울, 대다수 개혁주의 신학자들, 중생, 믿음, 성화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구원받으려면 사람이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믿는 것은 우리의 몫(책임)이다. 하나님이 믿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라.
요3;36 -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즉 아들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지 않는다. 반면에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
2. 믿음은 행위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칼빈주의자들은 이상한 말을 둘러댄다. 그러면 내가 받은 구원은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느냐?
혹은 내가 얻은 구원에 대해 누가 칭찬과 영광을 받아야 하느냐?
내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들이면 결국 내가 구원에 일조한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것은 행위이다.
이것은 사실 궤변이다.
어떤 사람이 내게 아무 조건 없이 1억 원을 선물로 주려고 한다.
그것을 내가 받아들여서 1억 원이 내게 선물로 주어졌다.
자, 내가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내가 이 일에 일조하였는가?
나는 단순히 선물을 준다는 사람의 말을 진정으로 믿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체적인 선물 1억 원에 내가 기여한 것이 있는가? 없다, 단 하나도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려고 하는 사람의 은혜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모든 사람들은 1억 원이라는 큰 선물을 준 그 사람을 100% 칭찬하지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을 조금이라도 칭찬하는가? 그런 사람이 있나?
“선물을 받아들였으니 너는 참 큰일을 했다. 일조했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믿음: 이렇게 이런 소식을 듣고 그것을 신뢰하고 손을 내미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이다.
누가 선물을 준다고 했는데 그가 늘 거짓말하는 사람이면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다.
3. 하나님의 선택의 범위
어떤 농부에게 깊은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 근처의 소년들은 거기서 수영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수영하다가 익사하면 안 되므로농부는 거기에 펜스를 두르고 (*) 접근 금지, 수영 금지 팻말을 크게 만들어 붙였습니다.
어느 날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동네 소년들 세 명이 거기 와서 수영하다가 물에 빠져서 익사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농부가 어떻게 할까요?
트랙터를 멈춘 뒤 팔을 접었다가 그 팻말을 가리키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을 할까요? “얘들아, 이 팻말에 무어라고 적혀 있냐? 접근 금지, 수영 금지라고 적혀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가 이것을 위반하고 여기에 들어와서 수영하다가 빠져 죽게 되었으니 빠져 죽어도 싸다.” 그러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세 소년이 빠져 죽는 것을 보고 있다면 과연 이 농부는 사랑이 있는 사람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농부가 그렇게 한다면 그는 전혀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 이제 성경의 하나님과 이것을 비교해 봅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법을 주셨습니다. 선악과 접근 금지, 선악과 먹는 것 금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법을 어겼으므로 마땅히 지옥에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실 아무도 구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법을 어겼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주장을 하면 사실 반만 맞고 반은 틀립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공의로우시지만 동시에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법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죄로 인한 형벌을 마땅히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또 다른 절반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분명히 법을 주었는데도 그들이 이 죄를 지었으니 그들을 무조건 지옥에 넣어야 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겼는데도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 농부처럼 아이들이 빠져 죽는 것을 기쁜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면 그분은 무자비한 하나님이 됩니다.
이런 하나님은 의로운 하나님일 수는 있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절대로 이런 분이 아닙니다.
자 이제부터 칼빈주의자들의 하나님과 성경이 하나님의 차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칼빈주의자들의 하나님
지금 세 명의 아이들이 죄를 지어 빠져 죽고 있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의 하나님은 이 세 아이들 가운데 하나에게만 구명 로프를 던집니다. 그리고 로프를 당겨서 그 아이를 구출해 줍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아이가 빠져 죽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만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기쁨이라고 생각하면서.이것이 바로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하나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 성경의 하나님
그러나 제가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성경에서 이런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저는 성경의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라면 전적으로 그분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분께 헌신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전적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면 저는 저의 모든 사랑을 그분께 바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 단지 일부만을 사랑하는 하나님, 다른 사람들은 전혀 구조하려 하지 않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은 전적으로 사랑이신 성경의 하나님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세 아이들처럼 온 인류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죄를 지어 타락하였습니다. 지금 다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물에 빠진 세 소년 모두에게 구명 로프를 던져 줍니다.
그리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이들을 구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세 명 중 하나는 그 구명 로프를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습니다. 반면에 나머지 두 명은 그것을 거부하고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하고는 열심히 노력하다가 빠져 죽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느 누구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모든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도록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손을 내밀어 로프를 붙잡는 것은 우리의 믿음
하나님은 죄 가운데 빠져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구명 로프를 던지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명 로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자기가 던지는 구명 로프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눌러서 무조건 로프를 받게 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강제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사람에게 부어질 때 생기는 두 가지 반응
해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좀 더 쉽게 설명이 될 것이다. 동일한 해가 있다. 그 해가 빛을 내면 초는 녹이고 진흙은 더 딱딱하게 만든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자, 동일한 태양이다. 그런데 그 햇빛을 받아들이는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햇빛 자체의 부드럽게 하는 빛들이 다른 작용을 한다.
초처럼 그 빛들을 수용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의 마음을 녹일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이 딱딱하여 그 사랑을 거절하면, 그 사랑은 오히려 여러분의 마음을 진흙처럼 더 딱딱하게 만들 것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에 따라 그 동일한 사랑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냅니다.
마음이 부드러우면 그 사랑은 더욱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초처럼 녹게 됩니다.
그러나 원래 마음이 딱딱해서 하나님의 그 사랑을 거부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진흙처럼 더 딱딱해집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분을 신뢰한 적이 있는가?
이것이 인생에 한 번 꼭 있어야 한다.
오늘 구원받아야 한다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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