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
요1:1~5
- 원포인트 설교
2017년 정유년 – 붉은 닭의 해 – 어둠속에서 빛을 알리며 만물과 영혼을 깨운다.
닭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새벽에 꼬기오 하고 닭우는 소리가 생각이 난다.
과거에 자명종이 없던 시절에는 - 어스름한 새벽, 초가 지붕 위에 올라 꼬끼오 하고 길게 목을 빼는 닭 울음 소리가 농가의 아침을 알리는 시계 역할을 했다.
이제는 보기 힘든 풍경이고 듣기 힘든 소리지만 생활 곳곳에 관습적인 표현으로 남아있다.
닭은 보통 새벽 4~5시 동트기 직전에 운다. 닭은 어떻게 동트는 시간을 알고 울까?
조류는 빛에 민감하다고 한다.
조류는 뇌에서 직접 빛을 감지하기 때문에 사람보다 훨씬 빛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한다.
실제로 닭은 빛이 차단된 공간에 닭을 두었더니 새벽이 되었는데도 울지 않더라는 것이다.
닭은 하루의 시작을 알고 새벽을 깨우는데, 사람은 하루의 시작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지만 사람의 문제는 - 시작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 하루의 시작을 잘 모른다.
- 우주만물의 시작을 잘 모른다.
- 새해를 맞이하지만 한 해의 시작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해의 시작을 모르면서 새해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한해의 시작을 모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1) 시작은 모르면 – 목적지를 모른다.
시작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목적지를 알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가?
어떻게 출발하고 어디로 가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는 인생을 살게 된다.
목적지를 모르는 인생은 방황을 하는 삶을 살게 된다.
2) 시작을 모르면 – 미래가 불안하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인생은 –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자신감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갑작스럽게 예고 없이 닥치는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헤쳐 나갈 수가 없고 원망과 불평과 탄식의 삶을 살아간다.
3) 시작을 모르면 – 운명론적인 삶을 살게 된다.
모든 것이 내 팔자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운명과 신세를 한탄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운명에 도전하고 싸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한 해의 시작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만물의 시작, 하루의 시작, 한 해의 시작은 말씀이다.
1절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는 시작이요. 시작은 말씀이다. = 시작에 말씀이 계시니라
시작에 말씀이 계시다면 – 새해를 시작하는데도 말씀이 있어야 한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새해의 시작에 말씀이 있는 성도는 새해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새해의 시작에 말씀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새해의 시작에 말씀이 있는 성도 – 새해에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성도가 된다.
새해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일 년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도가 된다.
새해에 가장 큰 복이 무엇인가?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새해에 말씀이 계시는 성도가 되시므로 – 새해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가장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과 함께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가?
요 1:14절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영광스러우신 하나님 죄가 없으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 사람과 함께 하실 수가 없다.
아담의 범죄 이후에 타락한 사람은 - 죄인이다.
하나님은 - 죄인과 함‘께 하실 수가 없다. 죄인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
모세 – 시내산 – 십계명을 받을 때 여호와께 올라오지 못하도록 백성에게 경고하였다.
-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죽을까 경고하셨다.
모세도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 말씀하셨다.
내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자가 없음이니라
그렇다! 죄인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말씀 곧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말씀이요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다. -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믿는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을 믿는가?
예수님을 믿고 말씀으로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가?
믿으시기를 바란다. - 아멘
믿으시므로 새해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요셉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여호와께서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
다윗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이사야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이런 놀라운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1)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한 복을 받게 될 줄로 믿는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치 못 할 일이 없다.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해야 할 모든 일들을 능히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자.
2)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생업의 주인 삶의 주인이 되어 책임져 주시고 보장해 주실 줄 믿는다.
하나님을 주인삼고 살아갈 때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보아 주시고 치료해 주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축복해 주실 줄 믿는다.
3)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가 될 것이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장하지고 생명의 빛 가운데 거하게 될 줄로 믿는다.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빛가운데 걸어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지를 버려야 한다.
5절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 믿기 전에 사람은 어둠이다.
엡 5:8 -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사람은 누구나 어둠을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어둠 속에 있으면 –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다.
-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마음껏 뛰어놀거나 달려갈 수가 없다.
- 강도나 도둑을 만나 해를 받게 되지 않을까 무서워한다.
- 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 다툼, 시기 등 어둠의 일을 행한다.
문제는 어둠을 싫어하면서 실상은 어둠에 속한 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어둠을 싫어하면서 어둠에 속한 자임을 알지 못하는가?
영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은 - 분별력이 없다.
어둠에 속한 줄도 모르고 어둠에 속한 자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모르고 살아간다.
어둠의 세상 주관자는 - 악한 영이다.
어둠에 속한 자는 - 악한 영, 사탄의 영의 속한 사람이다.
어둠에 속한 자는 - 악한 영의 지배를 받으면서 비참하게 살다가 어두의 세계, 영원한 지옥으로 간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박해하던 사도 바울은 -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을 때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증언하였다.
행 26:18 -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바울의 사명은 두 가지이다.
1)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오게 하는 것이다.
2) 죄사함과 예수님을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에 기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은 - 영적인 어둠에 속한 자들이요 사탄의 권세에 속한 자들이다.
바울은 – 빛으로 예수님을 전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다.
문제는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들이 어둠에 있고, 사탄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캐나다의 케이프 브레톤 섬에는 엄청나게 큰 탄광이 하나 한다.
그런데 이 말들을 한 번 깊고 어두운 탄광 속으로 들여보내면 다시는 탄광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이미 오랜 어두움에 적응되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말들은 바로 실명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탄광 속으로 들어간 말은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까지 계속 어두운 땅속에서 일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깊은 탄광 속에 빠져 어둠에 적응하는 순간, 우리의 생명도 끝난 것과 다름없다.
어둠 속에서 늙고 병들고 죽을 때까지 일을 하는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요 12:46 -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혹 어둠에 속하여 어둠의 일을 하고 있는 성도는 없는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성도는 없는가?(요3:19)
영적무지를 버리고 -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 새해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깨달아야 한다.
4절 –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는가?
-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생명이다. 예수님의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캄캄한 밤에 바다에 길을 잃은 배가 있다.
험판 파도에 휩쓸려 망망대해로 떠내려가는 난파선에 탄 사람들은 –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어둠에 속하여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등대의 빛이다.
어둠에 속하여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생명의 빛이다.
어둠에 속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생명의 빛을 깨닫는 것이다.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깨닫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말씀이 예수님이요,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분이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다.
예수님은 만물을 지으신 분이다.
예수님은 생명이요, 어둠에 비치는 빛이요 사람들이 빛이다.
창1:1,2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
예수님은 - 혼돈을 생명으로 채우시고, 공허를 질서 있게 하시고, 흑암을 빛으로 아름답게 해 주셨다.
예수님의 창조사역을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생명이요 사람들의 빛임을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깨닫고 믿는 성도에게 새로운 창조의 삶을 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줄로 믿는다.
기독교로 개종한 한 인디언 추장이 예배 시간에는 매우 열렬히 기도와 찬양을 드렸다.
그리고 목사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선물도 드리며 목사님의 일을 열심히 도와드리곤 하였다.
그 인디언 추장의 이런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목사는 추장에게 물었다.
- "기쁨에 넘친 헌신을 하며, 자신에게도 친절히 대해 주고 또한 그렇게 후한 선물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 인디언 추장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다.
- "목사님은 어둠 속에서 헤매던 절망적인 심정을 잘 모르실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나를 그 어둠 속에서 구원이 있는 환한 빛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고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성도의 삶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예배시간에 열렬한 기도와 찬양이 있는가?
기쁨에 넘치는 헌신과 희생이 있는가?
주의 종을 극진히 대접하고 성도들을 친절하게 섬기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도의 신앙생활이다.
성도 여러분!
새해를 시작하면서 - 내가 어둠에 있지는 않는지, 내가 영적 무지한 사람은 아닌지 –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성도가 되자.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가 아니라 – 깨닫더라 – 아멘!
살전5:5 -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깨닫는 성도는 - 다 빛의 아들이 된 줄로 믿는다.
빛의 아들임을 깨닫고 - 빛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