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선택
1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천국은 사라질 것이요 그 위에 있는 천국도 사라져 없어 질 것이다. 죽은 것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요, 산 것들은 죽지 않으리라. 너희가 죽은 것들을 먹었던 그 날들에 너희가 그것을 살아오게 만들었다. 너희가 빛 가운데 있을 때 너는 어찌 하겠느냐? 네가 하나(one)였던 시절에 너는 둘이 되었다. 그러나 네가 둘이 되면, 너는 어찌 하겠느냐?"
어릴 적 남묘호렝게교를 믿으라고 말하던 누나 친구는 하루에 두 시간씩 ‘남묘호렝게교’를 외우면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이 낫는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하지만 하루 두시간식 외웠지만 위암으로 배에 복수가 차서 돌아 가셨습니다.동네 절에 여자 친구가 살았는데 그녀는 스님이었습니다.제게 부처님에게 절을 열심히 하면 아버지의 병이 낫고 집안도 잘되고 공부도 잘된다고 하였습니다.저는 친구들과 놀 시간에 열심히 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부처님이 말씀하시던 극락은 사라졌습니다. 요즘 젊은 스님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지도 않습니다. 스승님은 氣수련을 열심히 하면 돈도 벌고 명성도 얻고 잘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하지만 저는 氣수련을 한지도 20년이 넘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氣수련에서 이야기하는 후천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사주명리학을 가르쳐 주던 여자 선생님은 부적만 쓰면 90%이상 안 좋은 기운을 막아준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이 안 좋아 수술을 했고 어머니와 누나와는 재산 다툼 때문에 원수가 되었습니다. 심리상담을 배운 뒤에는 담당 교수님이 이야기를 잘 들어만 주어도 병이 낳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습니다.그러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저 더 나빠지지나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 노릇을 하게 되자 실망하고 정신의학으로 갈아탔습니다.정신병원에 와 보니 주사만 맞으면 난폭한 환자도 순식간에 잘못했다고 하고 정신의학이야로 천국으로 가는 열쇠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퇴원하는 환자들…도박중독이나 알코올중독, 우울증이나 조현병 환자들의 증상이 재발하여 재입원을 보면서 정신의학이 만능이 아니란 걸 깨달었습니다.
"이 천국은 사라질 것이요 그 위에 있는 천국도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인 해결책의 한계: 남묘호렝게교의 기도, 기수련, 사주명리학 등 다양한 신앙과 실천들이 제공하는 해결책들은 일시적인 희망이나 위안을 줄 수 있으나, 근본적인 변화나 해결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실제와 이상의 괴리: 여기서 각 신앙 체계나 실천이 약속한 '천국'은 이상적인 상태나 결과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은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으며, 결국 속았다는것을 경험했습니다.
진정한 천국의 탐색: 이러한 경험은 외부적인 신앙이나 실천만으로는 진정한 해결책이나 만족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는 진정한 '천국', 즉 영적 만족과 깊은 의미는 내면적인 성찰과 깊은 영적 탐색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천국은 외부적인 신앙 체계나 실천에 대한 의존보다는, 개인적인 깊은 성찰과 내면적인 영적 여정을 통해 참된 의미와 해결을 찾아야 합니다. 이는 영적인 성장과 진정한 변화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새롭게 신천지가 나타나 이만희 교주가 재림 예수라 주장하면서 교세를 확장 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그 위에 있는 천국을 강조하는 사람입니다.’과거에는 구원파의 유병언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월호의 소유사인 청해진 해운의 회장이었고 구원파,즉 구원 받는 순간 인간의 내적 성장이 마쳐진다는 종파의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월호 침몰의 책임을 회피하려 도피하던 중에 객사하였습니다.
죽은 것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요, 산 것들은 죽지 않으리라.
천국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더 비참한 삶을 살며 사라져갔습니다. 정명석이나 그 외 사이비 교주들은 순진한 신도들을 유혹하여 노예로 만들고 착취하고 군림합니다. 하나같이 여성 신도들을 성폭행하고 그들이 나와서 폭로하는 패턴을 보면 점점 교주가 그들을 착취한 것이 아니라 신도들이 그런 종교 지도자들을 원하는 건 아닌지 착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이 책 도마복음은 서두에서 말했듯이 나의 탐구나 발견들은 합리주의적 과학적 심리학이나 사고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정반대로 교회 규모나 신도들의 수나 종교지도자의 말재주나 속임수에 놀아나기 쉽습니다.그래서 영적수행의 길에서 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교인들은 우리를 위해 돈을 주고 내 장사를 잘되게 해주고 경조사때마다 도움을 줄 것입니다.하지만 그것이 우리 교회 우리 교인만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하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시험은 갑자기 내 가진 것을 다 포기하고 전혀 물 설고 낮 선 새로운 곳으로 가라 말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소유를 모두 팔아 남을 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결혼은 정말 낯선 타인과의 만남입니다. 이미 형제 자매와 부모는 잘 맞춰서 살아왔는데 이제 전혀 나와 다른 이성과 함께 살라고 말하십니다. 요즘 이혼율이 높다고 합니다. 과거의 어머니는 들은 딸들이 힘든 결혼생활을 토로하면 그래도 헤어지지 말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자행된 여성의 희생과 인권 유린은 말도 없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어머니가 먼저 딸들의 결혼생활을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이혼은 아무것도 아니다 혼자 살면 된다고 용기를 주십니다. 덕분에 ‘돌싱’ 들이 만난 다시 재혼하는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저도 즐겨보곤 했습니다만, 이혼한 커플들이 재혼하기까지는 처녀총각들이 만나 결혼하는것 보다 더 어려워 보입니다.이미 한번 실패했기에 많은 부분을 생각하고 자식이 있다면 그 부분마저 상대가 이해해 줄 수 있는지 고려하는 모습은 초혼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성경적 해석에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무조건 일독을 해보라고 말합니다. 사실 나도 모르니깐 혹시 네가 읽다가 알 수도 있으니 많은 성도들이 성경 읽기에 참여할수록 더욱더 성경의 비밀이 드러날 확률이 높습니다. 성경에서는 죽은 자에 대한 구절이 나옵니다.
"죽은 자의 일은 죽은 자들에게 맡겨라"라는 구절은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이 구절은 누가복음 9장 60절에서 찾을 수 있으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따르라고 부르실 때 한 제자가 먼저 가서 아버지를 장사 지내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예수님이 이에 대해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누가복음 9:60)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제자에게 영적인 삶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의 우선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죽은 자들로 자기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라"는 표현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세상적인 일에 집중하도록 하라는 의미로, 제자가 복음 전파와 같은 영적인 사명에 집중하도록 권유하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도마복음에서 전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도나 복음을 전파하는 내용은 이 책 도마복음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이것은 저자의 의도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마복음이 주로 개인의 영적 변화와 내면적 깨달음에 집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은 실제로 이 문헌의 편집 의도와 성격을 반영합니다. 도마복음의 특징과 편집 의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1. 개인적 깨달음과 영적 탐색: 도마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격언 형태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러한 형식은 개인적인 영적 탐색과 깨달음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 문헌은 독자가 스스로 성찰하고, 내면적인 깨달음을 얻도록 격려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신비주의적 경향: 도마복음의 내용은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종교적 진리가 직접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깨달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관점을 반영하며, 집단적인 종교 실천보다는 개인적인 영적 여정을 강조합니다.
3. 정경과의 차별성: 도마복음은 신약성서의 다른 책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전통적인 복음서들이 예수님의 삶과 사역, 특히 공적인 전도와 기적에 초점을 맞춘 반면, 도마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영적 메시지에 더 집중합니다.
4. 다양한 초기 기독교 사상의 반영: 도마복음은 초기 기독교 사상의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이 문헌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존재했던 다양한 신학적 경향과 신앙의 표현을 반영할 수 있으며, 그중 하나가 개인적인 영적 경험의 중요성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도마복음이 개인적 영적 탐색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특별한 종류의 기독교 문헌임을 나타냅니다. 이는 당시 다양한 기독교 사상과 신앙의 표현 중 하나였을 것이며, 이러한 점이 도마복음의 편집 의도와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죽은 것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요, 산 것들은 죽지 않으리라.
우리가 삶의 고난속에서 꺾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과 분노 이기심을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우리는 살아도 죽은 것이 됩니다.그런 사람들은 세월을 지나 역사가 흘러도 두고두고 손가락질 당하면 욕을 먹습니다.하지만 인간의 생존에 필수인 탐욕,분노,이기심을 자비와 사랑으로 바꾼 사람들은 죽어도 살아남아 영원히 회자되어 경탄과 삶의 지표가 됩니다.
너희가 죽은 것들을 먹었던 그 날들에 너희가 그것을 살아오게 만들었다.
이 문장의 의문은 앞의 ‘너희가’와 다음 부분의 ‘너희가’ 입니다. 앞의 ‘너희가’가 하나님의 고난속에 변화하지 않고 보다 나은 인간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성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인간을 나타낸다면, 다음 부분의 ‘너희가’는 상반되는 내용입니다.’죽은 것처럼 살던 너희가 그것을 살아오게 만들었다’말씀은 마치 도덕경의 문구처럼 혼란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죽음 것처럼 살기도 하고 오히려 살아있는 생명의 삶을 살아오게 만드는 주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단지 하나님만의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참여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창세기를 아담과 하와가 나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악과를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자 알라서 남편인 아담과 도망치고 싶어합니다.옛날에는 시부모를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부모를 안 모시는 건 기본이고 나이가 들어 혼자서 생활이 안되면 요양병원으로 보내 노후를 보내시게 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입니다. 어쨌던 하와 여사는 뱀의 말에 아담을 부추겨 사과를 따먹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현명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고 에덴 동산을 떠나 독립하게 됩니다.그들은 자신들의 탐욕이 몸을 마치고 천국에서 쫓겨나고 출산을 하고 평생 노동을 통해 먹고 살게 됩니다.어떤 사람들은 여성 차별이라 주장하지만, 결혼하고 난 후에도 시아버지와 같이 사는 건 힘들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왜 선악과를 따 먹었나?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단순히 하나님을 평면적으로 이해하면 좋은것들만 만드시고 나쁜 것은 안 만드시면 되는데 왜? 구태여 만들어 가지고 시험에 들게 하시고 집에서 쫓아 내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사실 도박중독으로 들어온 남자 환자가 있는데 도올 김용옥 선생의 ‘논어 이야기’를 보고 있었습니다.전 그에게 도박중독 치료에는 사실 기도교다 더 좋다고 했습니다.그랬더니 논어에 대해 물어 오길래 ‘설명충’인 제가 도 장황하게 논어 자랑을 했습니다.그랬더니 자신의 궁금증을 물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죽음이 두려워 기독교 서적이나 성경을 읽어봤지만 연쇄살인범이 회개만 하면 영적으로 구원 받는다는데 이해가 안 갑니다. 하나님이 자비하신다면 왜 전쟁과 기아와 재해가 있는겁니까?’
의문을 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매우 개인적인 일입니다. 과거 우리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논쟁으로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예수 그리스도님의 인류 구원을 증명하려 애썼습니다.그것은 치열한 사상 논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이제 기독교를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충분히 알사람은 아는 종교입니다.하지만 내적 완성은 모자라듯 느껴집니다.보다 나은 사회,보다 나은 인간으로의 성장과 창조는 오히려 퇴보하는 느낌입니다.노인 공경 문화는 어느 나라도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입니다.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우리가 기독교를 믿기로 결심할 때 비로서 성경은 낡은 먼지를 털고 그 신비한 힘을 발휘합니다.그것은 그냥 종이책이 아니고 삶의 증표요 하나님과 나의 임대차 계약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과 방향성에 따라 살겠다는 서약입니다.인간은 전쟁과 기아 질병에 매몰되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게 됩니다.그러나 하나님과의 약속을 한 사람은 고난속에서도 배고픔과 기아 속에서도 당신을믿고 따르고 당신의 말씀하신 길을 가겠다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번제로 바치는 제사입니다.그래서우리는 내가 힘없고 어리석어 할 수 없으니 그 일을 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다 먹는 바람에 우리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출산과 노동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만,하나님의 계획은 단순히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그리고 그 놀라운 역사는 신약에 이르러서 에수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영원한 생명의 나무’의 실재와 따먹는 과정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샘물을 마신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그것은 하나의 큰 계획을 위해 준비된 두개의 설계도입니다.우리는 하나님과의 믿음의 계약을 통해 비로서 회개와 구원을 맏으며 고난을 통해 인간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간 생존에 필요한 탐욕과 분노와 이기심만으로 예정되어 있던 죽음의 길을 버리고 자비와 사랑, 인간이 노력해야 가질 수 있는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게다가 그 길을 선택하라고 하나님은 강요하시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질병과 고난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때때로 잘 사라는 사람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맛있는 요리를 즐기는 사진이나 해외로 나가 여행을 다니며 인생을 만끽하는 사진을 올립니다.그럼 저 같은 서민은 빈부격차를 느끼고 침울해지게 되거나 분노하거나 부러워하게 됩니다.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에겐 전혀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바로 자신의 것을 남과 나누거나 사회에 환원해 야하는 고난을 겪습니다.
얼마전 박수홍과 그의 형의 사기사건은 형제간의 재산 싸움의 아귀다툼을 잘 보여주니다.박수홍의 기획사 대표인 그이 형은 박수홍이 벌었던 돈으로 부동산을 구매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해놓는등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다른 사람이 갖는다’라는 속담처럼 횡령죄를 저질렀습니다.문제는 박수홍이 연하의 여성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고,그의 부모님은 형을 지지하다보니 결국 부모와도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그것이 예능에 나와서 가족간의 친밀함을 보여줬던 박수홍이었던지라 대중의 충격은 말로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의 형이 박수홍의 요구대로 재산을 넘겨줬더라면 징역형을 살고 국민의 공적이 되지는 않았을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기 싫어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주시어 지킬려고 하면 할수록 더 힘들게 하십니다.얼마전 ‘기생충’의 배우 이선균 배우도 질 나쁜 범죄자와 어울려 마약을 투약했다는 누명을 쓰고 협박을 받다가 3억 5천만원이라는 돈을 뜯기고 여론에 보도되어 무수한 악플을 당하자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그의 연기와 유명세는 세계적이었지만 어느날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운명의 시험에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기업 회장이고 인가 높은 스타일수록 그들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감시자이고 그들이 누리는 해택과 권리를 가지고 싶어합니다.그래서 보다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필요합니다.반대로 유명한 보디빌더인 황철순은 사업 실패로 고시원에 살게 되자 자신에게 그렇게 악플을 달고 미워하던 사람들이 다 없어졌다고 합니다.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아집니다.많은 것을 주신 하나님이 그것을 가져가실 때 기거이 사회에 환원하고 목숨을 부지하여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그것은 고난이 아니라 자산이 됩니다.
또한 자신만이 아니라 고난을 겪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정신적 위안을 주게 됩니다.
너희가 빛 가운데 있을 때 너는 어찌 하겠느냐? 네가 하나(one)였던 시절에 너는 둘이 되었다. 그러나 네가 둘이 되면, 너는 어찌 하겠느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속에 모든 것이 자신들의 것이었고 대가 없는 풍요를 가졌다고 합니다.그러나 우리 인간은 선악과를 다 먹어 선과 악 둘이 되었고,이제 선악과 문제는 끝났지만 우리는 또 다시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인간은 다리위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문제의식을 가지고 살건지,아니면 동물적인 삶을 살건지,문제 의식을 가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지, 힘들고 어려운 길 보다 나은 세상과 나은 인간으로 가는 삶의 여정으로 살을 것인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이기적인 삶과 하나님이 알려주신 이타적인 삶을 아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겪고 성장한 아담에게 다시 어찌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양심선언’이란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내려 놓으라는 하나님의 시험입니다.선언자는 가진 것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히고 온갖 고난을 겪게 됩니다.선언자는 후회하고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합니다.하지만 이미 쏜 화살처럼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에덴동산 즉 ‘빛 속에’ 있을 때, 하나였으나 우리 스스로 ‘선악과’을 취하면서 이원론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류의 모둔 문명은 탄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원론적인 사고는 빈부와 선악 같은 대립 개념의 세계관을 형성하였고 우리는 이제 스스로 공멸의 길로 걸어갈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물으십니다.’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비참한 자신의 삶속에서 희망을 잃어 버리지 않고 보다 나은 인간창조의 장으로 탈바꿈 시키는 기적은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참여가 없으면 보다 나은 세상도 그 빛이 바래게 됩니다.
오직 인류 공동의 가치만이 영원한 것입니다.이 글 도마복음에서는 인간의 로드맵을 제시하십니다.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통하여 영적 관계를 창조할 때 비로서 하나가 둘이 된 인간은 갑자기 주어진 자유의 길에서 갈팡질팡하며 두개의 길에서 어디로 갈까? 갈등하며 때론 인간이상으로 때론 인간 이하로 떨어지면서 혼란스러워합니다.정신병원에서 간호사들은 젊은 여성들이 많습니다.간호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이나 대학병원의 살인적인 스트레스와 업무량 압박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소위 이류 간호사들이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면 가지는 연민과 동정심이 풍부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만성환자나 급성환자들의 인간이하의 행동들에게 상처받고 찢겨져 분노와 미움의 감정에 괴로워 하는 모습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저 또한 험한 꼴 많이 본 사람이지만 힘들고 어려워서 그만두고 싶은 때가 많았습니다.’여기는 어디?나는 누구인지?’
환자들의 ‘액팅아웃’이나 직원들간 의 갈등 때문에 밤잠 못 자고 괴로울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지금 이 일을 하는 이유와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경제가 호황이고 수입이 많을 때는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거나 쇼핑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한번씩 해외 여행을 통해 마음의 바람을 쉴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불황이고,부동산 폭락으로 중산층과 서민의 가정 경제가 폭락한 지금 우리는 그런 외적 의미를 구하기 어려워졌습니다.결국 4천만 국민들이 유튜브나 눈 관람으로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빵으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다"
마태복음(4:4)
라는 말씀은 성경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받을 때 하신 말씀으로, 구약 성경의 신명기 8장 3절에서도 유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경제성장기를 거쳐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 과거처럼 기술을 배우고 남의 밑에서 10년정도 일하면 전문가가 되어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돈 벌어서 건물사고 땅 사던 시대는 지나고 말았습니다.밥 먹고나서 유튜브 보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그리고 과거 ‘보릿고개’ 시절에는 절대적빈곤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지금의 세대에게는 전혀 다른 빈곤 즉 상대적 빈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빈부의 격차가 너무나 크고, 물자는 풍부하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대금은 너무나 고가라 일반적인 서민들은 꿈꾸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특히 저 출산율은 우리 아이를 남들 아이만큼 키우기 위해서는 살인적인 교육비와 주거비, 의류비 병원비가 들고 내 아이를 키워 있는 자들을 위해 고급 진 삶을 살게 도와주는 직업을 가지게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누구나 내 아이가 잘먹고 잘입고 멋진 삶을 살기를 바랄것입니다.이런 요구에 하나님은 그 대책을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서민의 삶을 축복으로 바꾸는 삶, 도마복음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