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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김씨(光山 金氏)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이다. 김흥광(金興光)은 신라(新羅)가 장차 국난(國亂)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경주를 떠나 광산현(光山縣) 서일동(西一洞, 현 담양군 평장동)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닦으며 살았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선조의 세거지인 광산(光山, 광주(光州))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그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 정2품 벼슬)가 계속 8명이 배출되자 사람들이 그곳을 평장동(平章洞)이라 불렀다. 14세 문숙공(文肅公) 김주정(金周鼎)을 파조로 하는 문숙공파(文肅公派), 14세 양간공(良簡公) 김연(金璉)을 파조로 하는 양간공파(良簡公派), 14세 낭장공(郎將公) 김규(金珪)를 파조로 하는 낭장공파(郎將公派), 15세 문정공(文正公) 김태현(金台鉉)을 파조로 하는 문정공파(文正公派),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을 지낸 17세 김영(金英)을 파조로 하는 사온서직장공파(司醞署直長公派)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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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희도 대전 뿌리공원에가서 광김하고 천안전씨 비석을 구경했습니다.
남편이 천안 전 섭자후손이거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