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남정맥(落南正脈) 개요
낙남정맥(落南正脈)은 낙동강(洛東江)의 남쪽 울타리라는 뜻이다.
한반도 최남단의 산줄기로 즉 지리산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갈래쳐 나와 옥산,
대곡산, 여항산, 무학산, 천주산, 정병산,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하구 매리라는
동네에서 끝나는 도상거리 약 232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 산줄기는 시종일관 경상남도의 남강 남쪽 바닷가를 달리는 산줄기다.
지리산 천왕봉 북쪽에서 흐르는 경호강을 따라오다 경호강이 산청군 단성면 에서
남강 이라는 이름으로 바꿔달고 김해 북쪽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잠시 낙동강이
되었다가 바다로 흘러들게 된다.
지리산군을 제외하고는 함안 여항산(770m)이 최고봉이 될 정도로 대부분 낮은
산으로 이어지지만 남해바다와 인접한 산줄기인 탓에 시야가 확 트이는 조망이
일품이며 남녘의 산 특유의 멋을 즐길 수 있는 정맥이라 하겠다.
산줄기를 이루는 산들은 지리산 영신봉,지리산 삼신봉,태봉산,실봉산,와룡산,
무선산, 봉대산,양전산,백운산,천황산,대곡산,무량산,백운산,덕산,필두봉, 암산,
깃대봉, 여항산,서북산,봉화산, 광려산, 대산,대곡산, 무학산, 천주산, 정병산,
대암산, 용지봉, 신어산, 동신어산 등이다.
▣ 낙남정맥
낙남정맥은 백두대간의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김해 매리 동신어산으로
이어지는 분수령으로 232km(gps:244km)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그런데 산자분수령 개념으로 볼 때 분수령(分水嶺)이란 둘 이상의 수계를 가르는
(分水界)산등성이를 말하는 바, 김해 매리에서 정맥이 끝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이론(異論)이 제기되면서 신상경표가 등장한다.
낙남정맥이란 낙동강 남쪽에 있는 정맥으로서 큰 수계로 낙동강과 섬진강 또는
남해바다의 분수령이 되어야 하는데 신어산, 동신어산 등의 산줄기에 떨어진
빗물은 어느 쪽이던 모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따라서
신상경표에서는 낙남정맥은 창원 대암산에서 용지봉으로 잇지 않고, 상정령,
불모산, 화산, 굴암산, 보배산, 봉화산을 이어 녹산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한 낙남정맥은 하동, 진주, 함안, 마산, 창원을 지나
마지막으로 김해의 낙동강 하류인 매리마을에서 그 맥이 다하는 한반도
최남단의 산줄기이다.
산행구간 : 발산재~영봉산갈림길~정고개~오봉산갈림길~오곡재(비실재)~법수분맥~
미산령~여항산~소무덤봉~서북산~감재고개~대부산~봉화산(왕복)~한치재
산행거리 : 구간거리 약:25.13km,(접속구간 없음)
산행일시 : 2016년 05월 13일(금.무박) 알파산악회와 함께
총 소요시간 04:46~14:46 ★10시간 소요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
날 씨 : 낮 시간대 무더운 날씨/ 시원한 바람
▼오늘 우리가 지나는 여항산!
경남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에 있는 여항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남고북저하여
나라를 배반할 기운이 있다하여 남쪽에 위치한 이산을 여항산 이라고 불려졌다고
하고, 낙남정맥 8구간의 산행길 등로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으로 격전을
치른산으로서 서북산에 가면 전적기념비가 있으며, 봉화산에는 옛날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가 복원돼어 있다.
여항산,서북산,봉화산,어디를가도 진동앞바다가 눈앞에 펼처지며 조망이 일품인 곳
산을 찿는 이들로 부터 인기가 높은 산이다.
봉화산은 한티재 1.8km지점 갈림길에서 0.9km 지점에 있는 왕복 30~40분 소요된다.
▼8차 코스 : 발산재~한티재
▼발산재 도착
발산재는 진주시 이반성면과 마산시 진전면을 잇는 고개인데, 4차선 신도로가
생긴 지금은 옛사람들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발산재는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에 밀려 후퇴하다 창설된지 얼마 되지 않은
김성은 부대로 불리던 해병대가 진주에서 발산재를 넘어오는 북한군 6사단의
정찰부대를 궤멸시키고 또한 통영 장평리 해안에 기습 상륙하여 통영의 관문인
원문고개에서 북한군 7사단과 치열한 백병전을 펼친 끝에 대승을 거두기도 했던
해병대의 기상이 서린 지역으로 미국의 여기자 마거릿 히깃스가 김성은 부대를
일컬어 "귀신 잡는 해병"이라고 기사를 쓰게 되었던 고개이기도 하다.
이곳은 역사의 현장으로 예사롭게 지나갈 고개가 아님을 알려주는 곳으로 100년 전
임진왜란 당시에도 김준민 장군과 고종후 장군 등의 선열들이 왜적과 싸웠던 치열한
격전지였다.
▼들머리 도착
발산재는 요즘 한참 공사 중인 공터에 도착하여 민가처럼 보이는 저 건물은 예전에
(구)발산재 휴게소였다고 하는데.. 지나서 들머리에 도착하게 된다.
또한 새로운 휴게소가 지금 한참 공사중인 듯 하다.
산으로 오르는 초입에는 장승 두 개가 나란히 서있다.
하나는 크고 나머지는 작고 볼품이 없게 생긴 것이 의도적인 것 같은데..
▼들머리 들어서자 오르막길을 한동안 올라가다 넓은 묘지터를 지나 연이어
묘지를 지나 다시 오르막을 올라가면 갈림길을 만나서 좌측으로 이어가고..
▼무명 봉우리를 넘어 이후 고만고만한 이름 없는 봉우리들을 이어가고..
좌측으로 희미한 갈림길이 있는 곳을 우측으로 이어가면..
▼능선봉 갈림길 도착
시그날이 여럿 달려있는 봉우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면..
안부 갈림길 지나서 잠시 후 좌측으로 송전탑이 있는 곳을 지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3051425737E5A441)
▼잘록이 재 도착
잘록이 재에서 약간 오르면 우측 아래로 임도가 나란히 따라 이어지고 있고..
그 너머로 진전면 고사리 마을과 소류지가 조망된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오름 내림 이어가고..
▼영봉산 갈림길 도착
좌측은 영봉산으로 가는 방향이고, 낙남정맥 마루금은 우측 능선쪽으로 오르면서
진행하게 되는 주의구간이다.
영봉산(靈鳳山. 397m)은 주변의 산세와 암석이 신령스러운 기운이 서리 곳이라
하여 영봉산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반성현 사람들은 예부터 이 산에서 동제를 지내왔다고 전하고 있다.
▼빼곡히 자리잡고 있는 소나무 사이 등로를 이어가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 지도상
356m봉을 넘어 가고, 등로길은 완만하고 푹신한 육산길이 이어진다.
▼안부 갈림길 도착
선답자 시그널이 많이 메달려 있는 곳으로 장안리로 내려가는 고개로 보여진다.
이 고개를 지나서 부터는 넓은 산판 임도길인 듯 몇번 만나게 된다.
마지막 임도 갈림길이 큰정고개라고 하는 선답자도 있다.
▼암릉옆 지나서 가파르게 오르고...
▼능선봉 좌측에 조망처가 있어 아래쪽 진주 이반성면 장안리 일대가 조망된다.
▼다시 암릉과 등로에 쓰러진 잡목으로 이리저리 피해서 오르고..
▼오봉산(528.9m)갈림봉 도착
이정표가 낙남정맥 발산재 7.39km, 오봉산 2.14km, 여항산 5.20km, 가르키고 있다.
마루금은 우측으로 꺽어져 이어간다.
심방분맥(尋芳分脈)이란
오봉산(五峰山) 갈림길인 이 곳에서 심방분맥(尋芳分脈)이 가지쳐 나가는데,
심방분맥은 낙남정맥 큰정고개에서 오곡재 방향 약 1km 지점 528.9m봉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오봉산(五峰山. 524.7m), 제산령(第山嶺), 30번도로, 어색재,
괘방산(掛傍山. 460m), 남해고속도로(10번도로), 심방산(尋芳山. 156m),을 거쳐
경남 진주시 지수면 용봉리 남강에서 맥을 다하는 24km의 분맥을 말한다.
▼524.4m봉 도착
삼각점 안내판이 있는 봉우리로 준.희님의 코팅지가 걸려 있고, 삼각점도 있다.
▼524.4m봉에서 조금 내려서면 마루금은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오곡재로 내려 가는 길에 가야 할 등로길과 미산령, 우측으로 여항산이 조망된다.
안부를 지나고..
▼오곡재(비실재. 360m) 도착
함안군 군복면 오곡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산서를 잇는 고개로 이 재는
옛날에는 보부상들에게 중요한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오곡재는 신라말 고운 최치원선생이 어린시절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넘어가던 중
피로하고 배가고파 뒷산에서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하늘위로
빙빙돌다가 선생앞에 닭고기를 물어주고 갔다 하여 오곡(烏谷)이라 불리우고 있다.
다른 설로는 '오곡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까마귀 두마리가 깃을 펴고 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한강 정구선생이 '오곡'이라 이름 지었다는 설도 있다.
오곡의 자연부락 중 '골말'은 먼저 형성된 마을로서 원래 '고마을(고촌)'이었다고 하며,
새말은 맨 나중에 형성된 마을이라 '새말(신촌)'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또한 이곳을 함안군 군북면 쪽에서는 '오곡재'라고 부르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산서 쪽에서는 '비실재'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555m봉 도착
오곡재에서 올라가면 작은봉우리 넘어 안부를 지나서 다시 가파르게 올라가면
주변에 어수선하고 돌과 바위돌이 자리잡고 있는 555m봉을 지난다.
▼어수선한 등로길이 이어지며,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 가는 길에
우측으로 가야 할 미산령과 여항산이 조망된다.
▼군북,사촌(사랑목)삼거리 갈림길 도착
이정표 : 여항산 2.31km, 군북사촌(사랑목) 4.48km, 오봉산 5.03km
마루금은 여항산(2.31km) 방향으로 이어가면 미산령에 도착하게 된다.
이 곳 분기점에서 좌측 군북. 사촌 방향 능선이 "법수분맥(法守分脈)이다.
법수분맥(法守分脈)이란
낙남정맥 오곡재와 미산령 중간 지점의 630고지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미봉산(520m), 장고개, 비치고개, 남해고속도로(10번도로), 천제봉(天祭峰),
법수산(法守山. 155m)을 지나 경남 함안군 법수면 사정리 남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21.5km의 분맥이다.
▼군북,사촌(사랑목)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약간 오르면 조망처에서
좌측의 함안군 군북면 파수리 조망되고, 진행 방향으로 743.5봉과 그 뒤 여항산..
우측 오곡 마을과 여양저수지가 조망이 되고, 마루금은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 내려섰다가 다시 통나무 계단길따라 약간 올랐다 내려서며..
마루금 우측 아래편에 팔각정 쉼터가 있는 미산령(眉山嶺. 661m)이 보인다.
▼미산령(眉山嶺. 661m)도착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와 함안면 파수리 미산마을을 이어주는 옛 고개마루로
지금은 도로를 포장하여 동물이동통로 에코브릿지를 만들어 놓았으며, 미산령까지
자동차가 통행이 가능하지만 차단기를 설치하여 고개를 넘어 갈 수는 없다.
미산령에는 정자가 설치되어 있으며, 주변에 잔디밭이 널찍하여 보기가 좋다.
낙남정맥 안내판과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장소를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6.25 전쟁당시 군인. 경찰. 학도병등 다수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장열히
산화한 장소로 제39보병 사단이 국방부 유해발굴 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 4월
8일부터 5월3일까지 유해를 발굴하여 국립묘지에 안장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발굴하지 못한 유해가 많을 것으로 생각되며 그 분들을 위해
잠시 묵념을 올립시다.
* 전투산 유해 발굴결과 : 유해 19구, 유품 1,000여점
* 야반산 유해 발굴결과 : 유해 11구, 유품 500여점 발굴하였다 한다.
▼미산령에서 1시간 정도 식사를 하고 여항산으로 출발한다.
여항산 오르는 등로길은 유명한 탓인지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통나무계단을 타고 소나무 군락지를 보며 올라간다.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오면 바위 전망대에 도착
조망바위에 오르면 지나온 마루금 미산령 주변 임도가 조망되고, 그 뒤로 군북
사촌 갈림봉인 법수분맥 갈림봉과 그 좌측으로 이어져 온 정맥길이 조망된다.
여항리 방향도 바라보고...
이곳 마을은 6.25전쟁 당시 군인, 경찰, 학도병 등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장소로 많은 유해가 발견되어 국립묘지에 안장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받았던 마을이기도 하다.
▼성터흔적이 있는 곳 도착
바위계단을 오르면 무너진 성터 봉우리에 도착하게 된다.
옛 아라가야의 성곽이 지금은 기원탑으로 가득하며, 조선시대 "함수지"에 파산산성이
신라 이전에 축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산성이 바로 여항산 능선따라 남아
있는 산성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이정표에는 거리 표시가 없는 744.m봉 도착
너덜지대을 지나면 이정목에 119구조목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서북산 방향으로 진행하면 암릉을 따라 양쪽으로 조망이 된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는 갈림길 지나고..
▼뒤 돌아 본 지나 온 마루금 바라보고..
▼돌탑봉/미산봉(743.5m)도착
지도상에는 743.5봉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선답자들의 후기를 보면 이곳을
미산봉으로 표기하는 선답자도 있다.
아마도 바로 아래 미산령이 있어 미산봉으로 표기한 것 같은데..
돌탑이 있는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면 완만하게 산책로처럼 좋은길이 이어지고..
여항산 정상바위가 눈앞에 모습을 보여준다.
▼배능재(715m) 도착
이정표 : 여항산0.5km, 돋은샘1.2km, 미산2.7km,미산령1.3km
돋을샘 갈림길인 이 곳에서 여항산까지는 0.5km 정도가 남은 지점이다.
▼헬기장 직전 좌촌 갈림길 도착
이정표 : 미산령 1.5km, 여항산정상 300m, 서북산 4.2km, 좌촌[3코스]2.5km
여항산 0.3km 지나면 쉼터의자 지나 헬기장을 가로질러 이어간다.
▼쉼터의자 4개가 있는 곳 지나 헬기장을 통과하면 여항산이 코 앞에 보인다.
▼좌촌 갈림길 도착
여항산 200m, 방향으로 이어가고..
▼여항산 정상에서 아래쪽 바라본 아라가야 옛터전
1,500년전 저 아래 벌판에서는 아라가야의 백성들이 논,밭을 일구며 살았다.
남강과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기름진 평야는 어느 지역보다 풍요롭고 가장 일찍
철기 문화가 들어섰음에도 백제와 신라, 고구려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지형조건은 가야를 늘 고단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이들 국가의 힘을 못이기고
가장 일찍 멸망해 버렸다.
아라가야(阿羅加耶)는 삼국지에 전하는 변한 안야국을 기반으로 함안지역에서
성장, 발전한 가야이다.
아라가야, 안라국, 아시라국으로도 불렸으며, 가야 전기부터 멸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남아 있었던 세력이다.
바다와 육지로 나갈 수 있는 함안지역은 교통의 요지로서 가야의 모든 지역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곳이다.
아라가야는 통치자들의 거대한 무덤을 따로 만들었으며,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남쪽으로 내려와 전쟁을 할 때 이에 대항하여 싸울 만큼 힘을
갖추고 있었던 큰 세력이었다.
아라가야의 유적과 유물들은 함안지역을 비롯해서 인근의 마산, 의령, 진주
일대에서도 다수 확인되고 있을 정도로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잠시 후 쉼터의자 지난다.
▼여항산 직전 좌측으로 암릉길..우측으로 나무데크 다리길이 조성되어 있다.
▼암릉에서 앞쪽 여항산을 바라보고..
여항산 유래
옛날 천지사방이 물에 잠겼을 때 이 산의 꼭대기가 배만큼 남았다고 한다.
실제로 여항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길게 늘어진 암릉의 모습이 배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며, 또한 여항산은 장멱처럼 솟아오른 정상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하여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6·25전쟁 당시 미군들이 전투에 지쳐 '갓뎀'이라고 욕을 하였는데
그 이후부터 주민들이 갓데미산이고 부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여항산(餘航山. 770m) 도착
여항산 정상에는 1997년 2월16일 함안산악회에서 세운 커다한 표지석 있다.
정상은 암봉인데, 정상석과 조망안내도가 있고, 이곳에서 둘러보는 조망은 최고다.
더구나 조망안내도가 잘 그려져 있어 주변 마을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좌측 아래는 함안군 여항면 좌촌, 대산, 대촌마을과 봉성저수지가, 우측 아래로는
멀리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조선 선조16년 함주 도호부사로 부임된 한강 정구가 풍수지리학적으로 남고북저한
함안의 지명을 배가 다니는 낮은 곳을 의미한다 하여 남쪽에 위치한 이 산을 배 여(艅)
배 항(航)자로 하여 여항산이라 전하고 있다고 한다.
함안은 물이 거꾸로 흐르기 때문에 풍수지리상으로‘불경스러운’ 땅이라고 불렀고,
‘역수의 고장’이라고 하여 무척 홀대를 받았다고 한다
함안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아 억류가 흐르기 때문에 이를 고르게 하고자 풍수
지리설에 의거 명명된 지세를 고치고자 산이 많은 남쪽에 배를 띄우라는 뜻에서
여항이라 하고, 산이 없는 북쪽에는 산을 대신하기 위하여 대산(代山)이라 하였으며
동쪽에 위치한 산인면은 위험하여 뫼(山) 어질(仁)자로 하였다.
함안(咸安) 지명은 다함께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뜻의 안(安)자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여항산 일설에 의하면 6·25전쟁 당시 미군들이 전투에 지쳐 '갓뎀'이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하며, 또"갓을 쓴 사람이 요강에 오줌을 누는 형상"이라 하여
"갓더미산" 혹 "요강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여항산에서 휴식하며..오늘 우리가 걸어 온 마루금이 조망된다.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능선길도 바라보고..
▼여항산에서 내려가는 등로길은 전에는 밧줄을 붙들고 힘들게 내려가야 했는데
지금은 나무계단으로 설치되어 있어 편안하게 내려갈 수 있다.
이정표 지나서..벤치와 평상이 있는 쉼터를 지난다.
▼또 다른 데크 계단길을 내려서고..
▼경고 안내문 앞 도착
이 곳은 급경사 지역으로 등반증 추락사고가 생길 수 있어 위험하오니 돌아
가라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 귀바위 앞이다.
▼이곳 암릉이 소무덤봉이라는 선답자도 있고..
얼마나 위험한지.. 가 보니 암반 위에 묘비명을 붙여 놓았다.
산이 좋아 여기 잠들다(산봉산악회)
묘비명 우측 소나무가 있는 곳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서 첫번째 로프로 내려서고,
두번째 로프를 이용하여 암릉구간을 내려온다.
나는 유격대 소속이라...그러나 위험하게 가지 말고 우회 하는 것이 좋겠다.
▼벤치가 있는 곳 앞에서 좌측으로 이어가고..
▼소무덤봉 우회하고...
직진으로 낙엽이 쌓여 봉우리 오르는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좌측으로 우회하는
등로따라 가다보니 소무덤봉(668m) 지나쳐 가는 것 알았지만, 정상에는 특징없는
봉우리이라 하여 그냥 지나친다.
봉우리에 남양홍씨 묘지가 있다고 한다.
▼헬기장 통과..이정표 서북산 2.5km 가르키고 있다.
▼완만하게 이어가면 우측으로 전망바위에서 여양리 일대가 조망되고..
방금 지나 온 마루금이 조망이 된다.
▼좌측으로 가는 길과 우직진으로 오르는 길에서 우직진으로 오르고..
▼진전면(질매재) 갈림길 도착
이정표 : 마당바위 0.4km, 진전면(질매재) 6.0km, 여항산정상 2.0km
이정표가 두개가 설치되어 있는 질매재 갈림길을 지나면 선답자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차라리 여기가 소무덤봉이라면 좋겠다 내 나름데로 생각을 해 본다.
이 봉우리를 지나 서북산 가는 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우직진길 앞쪽에 전망바위가 있어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보고 간다.
▼706봉(별천. 대촌)갈림길 도착
이정표 : 별천(상별내) 2km, 대촌(나뭇골) 3.1km ,서북산 1.9km
좌우로 별천과 대촌으로 하산길이 열려 있으며 별촌은 뒷산의 계곡 풍경이
아름다워 정한강 선생이 노닐다 간 곳으로 별천지라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약수터산장이란 안내판도 보이고...
▼마당바위 도착
서북산이 앞쪽으로 조망되고..
▼별천 갈림길 안부 통과...서북산 0.6km 가르키고 있다.
▼평상 쉼터 통과
좌측편으로 평상 쉼터 지나고...
▼또 다른 나무 쉼터 통과
우측편으로 암릉지대 지나면, 좌측편으로 나무의자 쉼터 지나고...
▼서북산 전적비와 정상석 그리고 윗쪽으로 헬기장이 보인다.
▼서북산(西北山.738.5m)도착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있는 산으로 진북면의 서북쪽에서 있다고
해서 서북산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서북산에서는 1950. 8. 7~9월13일까지 이루어졌던
연합군에 의한 최초의 대규모 반격작전으로서 전라남도를 우회하여 진주지역을 침입
해서 마산을 탈취한 후, 부산방면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6사단을 미군 제25사단
5연대 전투단과 한국군 민 기식 부대, 김 서은 부대가 여항산 및 서북산 일대에서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를 19회나 하면서 사투 끝에 한국과 미국군의 합작해
승리함으로써 대구방면에서 적의 압력을 분산시켜 낙동강 방어전선을 확보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북진 및 인천상륙 작전이 가능하게 하였다.
서북산에 설치된 "서북산전적비"에는 한글과 영문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서북산 전투는 6.25 한국전쟁 중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하였던 곳으로 1950년
8월에 미 제25사단 이하 제5연대 전투단이 북괴군을 격퇴하여 유엔군이 총반격
작전을 가능케 하였던 격전지이며, 이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 티몬스대위외
100여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 아들 주한 미8군 사령관 리차드 티몬스 중장과
제39사단장 하재평 소장을 비롯한 사단장병 및 지역주민들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1995년 11월>
이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용열히 산화한 이 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2013년 11월29일 이 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여항산과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한국전쟁당시 대단한 격전지였다고 한다.
이곳이 무너졌더라면 오늘날 남한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낙동강 방어선에
희생된 우리의 자랑스런 전사자에게 이런 기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헬기장 이정표 도착
이정표 : 대부산,봉화산2.8km, 여항산4.8km, 배내이재, 가야사 2.1km
견적비를 지나 헬기장에 오르면 남쪽으로 진동만의 푸른바다가 보인다.
한국전쟁 때 바다에서 함대포로 이곳을 공격을 하여 북한군이 물러가고
인천상륙작전이 이루어져 오늘날 우리가 낙남정맥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항산이 있는 함안은 아라가야(안라국)의 옛 도읍지로서 변한의 소국이었을
때부터 신라에 병합될 때까지 약 500년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고을이다.
함안군민들은 특히 아라가야가 여러 가야국들을 대표하는 강력한 국가로서
우수한 토기와 철기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 고대 한반도
남부의 발전을 주도해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서북산에서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오면 편백나무가 있는 쉼터 통과..
쉼터의자가 나란히 있는 곳 지나자..우측에 돌담을 설치되어 있는 곳 지난다.
▼감재고개 도착
이정표 : 미천 5.3km, 서북산 0.9km, 버드내 1.5km, 봉화산 2.6km
진북면과 어항면의 교통로가 되고 있는 고개 좌측으로 버드내와 별천계곡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창원시 진북면 영학리 대밭골로 내려가는 넓은 임도길이다.
▼감재고개 오르면 방화선으로 보이는 임도가 정맥길따라 능선으로 이어진다.
임도길따라 이어가면 앞쪽으로 가야 할 마루금 능선길 조망된다.
▼갈림길 삼거리 통과..
우측의 진북면 영학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를 지나 가파르게 오르면 바위들이
많이 나오는 곳에서 아래쪽 별천지를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하고 간다.
▼706m봉(평지산) 능선 갈림길 도착
이정표 : 봉화산 2.1km, 여항산 5.3km, 서북산 1.4km
우측 평지산 방향은 송전탑이 높게 서 있으며, 마루금은 좌측으로 진행한다.
▼대부산(469.2m) 도착
대부산은 경남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의 산으로 정상 표시판은 나무로 만들어져
나무에 걸려있으며 그나마 표시판이 없어다면 여기가 어디인지 알 길이 없겠다.
공터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지만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봉화산으로 잘못 표기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봉화산 갈림길 도착
이정표 : 한치(진고개휴게소) 1.8km, 봉화산 0.9km, 청암 3.3km, 서북산 2.6km
봉화산은 마루금에서 우측방향으로 0.9km, 약간 비껴 있고, 봉화산갈림길에서
봉화산 정상까지는 0.9km에 위치하고 있으면 소요시간이 약15여분이면 도착한다.
▼봉화산으로 가는 길..
▼봉화산 가는 길..
▼봉화산(676m)도착
봉화산은 멀리서 보아도 산 정수리에 돌로 쌓은 봉수대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봉화산 봉수대는 조선 전기에 축조되어 조선 후기까지 국가기간 연락망 역할을
하였고, 진해의 봉수를 받아 의령의 가막산 봉수와 연결했으며 원래는 5기의 봉수대
가 있었는데 이 산에서 2기의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지금은 1기만 복원을 하였다.
조선시대에 설치된 봉수로중 동래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제 2봉수대에 속하였으며
남쪽으로는 진동만 가을포 봉수대와 북쪽으로는 의령 가막산 봉수대가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한다
▼봉화산에서 지나 온 평지산 갈림길에서 대부산으로 그리고 이 곳까지..
한티재(진고개) 오늘 산행종료 지점과 지난 구간 광려산 삿갓봉 능선이..
▼되 돌아 온 봉화산/한티재 갈림길
이정표 : 한치(진고개휴게소) 1.8km, 봉화산 0.9km, 청암 3.3km, 서북산 2.6km
왕복 천천히 37분쯤 소요, 갈림길에 되 돌아 온 갈림길에서 한치재(1.8km)방향
으로 급경사 내림길에는 나무계단으로 설치되어 매우 가파르게 내려서기 시작한다.
▼너덜 마당바위 통과..
마당바위를 지나면서 평탄한 등로를 타고 봉곡 갈림길에 도착하게 된다.
▼봉곡 갈림길 도착
한치(진고개휴게소) 0.8km, 봉곡 0.8km, 봉화산 1.9km 이정표가 가르키고 있다.
좌측으로 여항에 속한 마을인 봉곡으로 가는길이며, 이 고개를 음앙골 고개라 한다.
여기서 잠시 휴식 후..
쉼터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이 곳에서 한치(진고개)0.8km 방향으로 마루금을 이어간다.
▼오늘 마지막 봉우리(334m) 도착
이곳 334m봉을 넘어야 한치재에 도착하게 된다.
▼한티재가 보이면서 건너편으로 지난 구간에 걸어 던 광려산 삿갓봉이 보인다.
▼한치고개(한티재) 도착,산행종료
좌측으로 밭이 있는 곳 지나면 진고개휴게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함안과 창원을 잇는 79번 국도가 지나가는 한치(진고개)고갯마루에 내려서게 된다.
한치고개는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진북면과 함안군 여항면을 잇는 고개마루다.
2차선 79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으며, 한치고개 주변으로는 진고개 휴게소와
여항산 보리 한우집과 버스정류장등이 자리잡고 있다.
창원시 진동면에서 약 30십리, 함안군 가야읍에서 약 30십리 지점으로 남포선의
중앙에 위치한 고개로 행인들이 이 길을 많이 지나갔던 곳이라 한다.
▼한치재에는 지난 구간 새벽에 본 이방실장군의 유적비가 도로가에 있다.
이방실장군은 고려 공민왕 때 20만 군사를 이끌고 수도 개성으로 침략해 온
홍건적의 난을 평정한 3원수(이방실. 인우. 김득배) 중 한사람으로 함안 사람들이
을지문덕과 이충무공에 필적하는 인물로 추앙받는 사람으로 그는 충렬황 24년
"1298"에 지금의 여항면 내곡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나이 47세 때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충목왕을 뛰어난 지모와 무용으로 보필한 공으로 중랑장(정5품)에
올랐으며, 그 후 호군과 도지휘사로 영전되어 무장생활을 하다가 홍건적이 국경을
수시로 침탈하자 그 때마다 물리쳤던 인물이라고 한다.
진고개 휴게소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뒤풀이 장소로 이동 술한잔으로 마무리 한다.
이번 낙남정맥길도 이렇게 추억속으로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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