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춘선 할아버지가 맨발이 된 이유는? [하정완의 영화칼럼] 팔복1-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맨발의 성자 최춘선 할아버지
만일 우리가 지하철에서 맨발 모습으로 극성스럽게 느껴지는 “예수 천당”이라고 외치고 다니는 최춘선 할아버지를 만난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두말할 것도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처럼 정신나간 광신자 정도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꼭 저렇게 전도해야하나?”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1995년 7월부터 시작된 영상일기가 2001년 9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실 때까지 김우현감독의 카메라에 하나씩 드러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진실들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이 사실입니다. 할아버지는 단순히 정신나간 노숙자나 지나친 광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드러난 최춘선 할아버지의 이력을 아는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70년대 자가용 5대를 소유한 재력가, 김포일대의 땅이 모두 할아버지의 소유, 일본 동경 와세다대학 유학, 5개국어에 능통, 김구선생과 함께 독립운동, 최춘선 할아버지 직업은 목사, 아들도 목사 최바울, 대전 국립묘지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
참 기막힌 이력입니다.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은 재력과 학력 그리고 바른 정신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하던 멋있는 목사였습니다. 더욱이 아들 최바울 목사는 “아버님이 독립유공자였기 때문에 도장만 찍으면 연금이 나오고, 저희들은 대학까지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는데 신청을 안 하셨어요. 남과 북이 아직 분단된 상태이므로 완전한 독립이 이뤄지지 않았고, 보상을 받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어요”라고 술회합니다. 진정한 독립운동가이셨습니다. 그러고보니까 최춘선할아버지가 전도할 때 안중근, 유관순열사를 인용하는 것이 이해가 되고 신발을 신지않고 맨발로 다니시는 이유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최춘선 할아버지를 이렇게 살게 한 것일까요? 김우현감독과의 대화 중에 최춘선 할아버지는 벽에 걸린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버려”라는 말씀과 함께 “내 몸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아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22세에 부름받고 주님 따르는 가운데 있지만 너무 너무 불충성 불순종에 진짜 죄인 중의 괴수인데 하나님의 자비가 한량이 없어서 붙들어주시니까 날마다 감사와 기도로 승리합니다”
▲최춘선 할아버지는 “진짜 죄인 중의 괴수인데 하나님의 자비가 한량이 없어서 붙들어주시니까 날마다 감사와 기도로 승리합니다”라며 고백한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이렇게 산 이유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보았기 때문입니다.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본 것이, 그가 안 것이 그의 삶을 결정하게 한 것입니다. 정말 예수의 사랑을 체험하고 십자가를 경험한 그는 가장 큰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표준새번역/빌3:8-9)
사실 조금만 더 살펴보면 성경에는 최춘선 할아버지와 같은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있었고, 세례 요한도 약대 털옷을 입고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노숙하였었습니다. 호세아는 창녀가 된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다녀야 할만큼 비참하였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행동하는 광야의 연극인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산 것은 보았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았고 들었고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문제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도취되어서, 그것을 추구하느라고 정말 진리를 보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마치 쥐덫에 걸린 것도 모르고 쥐덫속에서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고급 치즈와 고기 그리고 과자부스러기를 먹고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이 지금 문제인 것입니다. 보지 못하니까 가짜와 허구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런 우리가 불쌍한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한계적 운명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쥐덫에 갇혀 거기있는 음식들을 한쪽으로 숨겨놓으려고 하는 쥐에 불과한 신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아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물질과 세상의 노예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답답한 세상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삶은 보지 못한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가난하더라도 진리를 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칼럼니스트 하정완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영화를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읽고 묵상하는 일에서 기쁨을 찾는 하정완은 꿈이있는교회(www.dreamchurch.com)의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