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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당백전 - 쌀 14섬(벼 28가마니)
* 제가 산출하는 가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쌀 1섬 = 쌀 144kg(10말) = 36만원(쌀 20kg x 5만원 계산) = 28만원(쌀 20kg x 4만원 계산) - 당백전 가치하락시는 8냥으로 한섬을 구입하였음 # 쌀14섬은 현재가치로 보면 약 350만원에서 450만원으로 조선시대 상황으로 접근해 보아도 너무 높은 가격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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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100원(조선은행권) - 쌀 11가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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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00원 - 14장이 쌀 한 가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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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500원 - 65년 도시 6인 가구의 한 달 평균 생활비(9810원)의 20분의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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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5000원 - 쌀 반 가마니 (당시 쌀 수매가격은 한 가마니 9888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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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만원 - 대졸 초임(4만5000원)의 약 5분의 1 |
출처:중앙선데이,2009.02.01
다시 본론으로 가서 당백전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당백전이란 흥선대원군 정권이 1866년(고종 3)에 발행한 화폐로
1866년 10월 우의정 김병학(金炳學)의 제의에 따라 금위영에서
11월 6일 주조, 발행하여 1867년 6월 17일 중지될 때까지 주조
총액은 약 1천 6백만 냥이었다.
당시 쌀 한 섬이 7-8냥 정도였으니 지금 시세로 쌀 200만석을 1석 80kg 16만원(실제 1석 = 144kg)으로 계산
해도 3,200억원이며 쌀 20kg을 4만원으로 144kg(28만원)으로 계산하면 1냥은 35,000원 x 1,600만냥 = 5,600억원이 넘는 거액이 시장에 풀린 셈이지만 당시 경제상황을 고려한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입니다.
그리고 당백전을 만들기 위해 1100여년 동안 속리산 법주사를 지키던 ‘금동미륵대불’도 당백전 재료로 쓰기 위해 녹여 없어지게 된 슬픈역사가 숨어있습니다.
(# 계산하기 좋게 쌀 20kg 4만원 80kg하면 1냥 2만원 x 1,600만냥 = 3,200억원)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 옆에 위치한 미륵대불을 설명하고 가야 하겠습니다.
1996. 8월 청동대불 모습
국보도, 보물도 아니지만 천년불교의 역사를 대변하며, 중생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미륵부처님으로
33m 높이의 미륵불은 진표율사가 청동으로 주조했다고 합니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공사를
진행하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했습니다. 당백전을 찍기 위해 청동이 필요
했던 흥선대원군은 천년문화유산을 훼손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미륵금동대불 모습
당백전은 모양과 중량이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의 5,6배에 지나
지 않으면서도 당백전 1매의 명목가치는 실질가치의 약 20배에
달할 정도로 대표적인 악화(惡貨)였다.
조선정부가 이러한 악화를 발행한 것은 당시 국가재정의 위기와 밀접
한 관련을 가진다. 조선 후기 이래 국가의 재정지출이 날로 확대되는
반면에 재정수입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어서 정부로서는 이러한 위기
를 타개해야 했다.
더구나 대원군집권기(1863∼1873)에는 안으로는 실추된 왕실의 권위
를 회복하려고 경복궁 중건사업을 벌이고, 밖으로는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비하여 군대를 증강하고 군비를 확장하는 사업을 벌여야 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일시적으로 타개하는 방안으로 악화를 발행
하여 명목가치와 실질가치의 차액을 남기려고 했던 것이다.
정부는 당백전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려고 이 악화를 모든 공사거래에
서 종래의 상평통보와 함께 통용하게 하고 각 관청에서는 경비를
지출할 때 당백전 2/3, 상평통보 1/3의 비율로 통용하게 하였다.
그 결과 당백전 발행 초기인 1866년 12월경에 7∼8냥에 지나지 않았
던 미곡 1섬의 가격이 1∼2년 사이에 약 6배로 폭등하였다.
당백전 발행으로 말미암아 폐단이 매우 심하게 되자 정부는 1867년
5월 당백전 주조를 중단한 상태에서 서울과 서울 밖 각 관청의 공납과
사사로운 채무보상 등에 모두 당백전을 쓰되, 1냥(100푼) 이하 거래에
는 상평통보, 1냥 이상 거래에는 당백전을 사용하도록 하는 등 그 유
통영역을 넓혀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아무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1868년 5월
최익현(崔益鉉)의 상소로 당백전 통용을 금지시키고 말았다.
결국 당백전의 발행은 재정난을 타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물가앙등과
체제위기를 가져왔다.
통용금지된 당백전은 중국 동전 또는 상평통보를 대급(代給)하고 환수하여 철재로 전용하게 되었던 것이라 많이 남아 있다고 들하지만 구하기 힘든 것을 보면 앞으로
자녀들의 교육용으로 소장가치는 충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제가 당백전을 구하고자 인사동 옛날돈 취급 가게를 다 돌아다녀도
진품은 하나도 안보이고 가품도 한 곳외에는 없는 것을 보면 알음
알음으로 분양받거나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구하기가 어려운것
같습니다.
소장자가 도매상에 2만원에 넘긴다고 들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물량자체도 없어진지가 2년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인터넷 경매에 일부나와 있는것은 진품(상태불량 통용전)은 30,000원 가품은 8천원정도에 거래되고 있고 일부 통용전은 모듬으로 끼워팔기로 3만4천원에 거래되고 있으나 상태는 그냥 별로입니다.
그래도 이것은 진품입니다.
* 인사동 옛날돈 가게에 새로 찍은 당백전이 꾸러미에 있던데 가격은 5,000원 신품이라 구입은 안하고
벽에 걸려있는 가공전(당백전) 사진만 허락을 받아 촬영 (본문 하단에 사진게재)
참고로 이곳에서는 당백전에 대한 언급만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엽전이야기는 본 블러그 내 엽전(葉錢)의 가치는?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화폐박물관은 자료는 많은데 상세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http://museum.komsco.com/
상평통보를 크게 분류하여 보면
‘상평통보 무배자전(無背字錢)’
‘상평통보 단자전(單字錢)’
‘상평통보 당2전 하부 2자전(當二錢下部二字錢)’
‘상평통보 당2전 하부 천자문순전(當二錢下部千字文順錢)’
‘상평통보 중형전(中型錢)’
‘상평통보 당1전(當一錢)’
‘상평통보 당5전’
‘상평통보 당백전(當百錢)’ 등으로 구분됩니다.
아래 당백전은 제가 가장 아끼는 물건인데 당채(단청)색이 일부 사라지고 두께는 얇아졌지만 멧돌출신은
아니고 폼 낸다고 얇게 갈아내고 채색을 한 진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평통보 당백전 뒷면
상평통보 당백전 앞면
당백전에 당채(채색)가 보이니 설명을 하고 가야 하겠습니다.
별전이나 열쇠패, 당오전, 당백전 등 엽전에 채색을 하는것은 시각적으로 보기 좋기 위한것도 있겠지만 오행사상에 입각한 채색이란 것을 알려드립니다.
오행의 색상과 방위와 계절의 상징을 표로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기본빛깔은 5색이며 이를 혼합해서 수많은 빛깔을 낸다. 5색은 청·적·백·흑·황이다.
정약용(丁若鏞)의 《여유당전서》 〈잡찬집(雜纂集)〉에 단청의 5색은 오행사상과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청(靑)은 동(東)이며 용(龍)이고 계절로 봄[春]이며 5행으로 목(木)이다.
적(赤)은 남(南)이며 주작[雀]이고 계절로 여름[夏]이며 5행으로 화(火)다.
백(白)은 서(西)이며 호랑이[虎]이고 계절로 가을[秋]이며 5행으로 금(金)이다.
흑(黑)은 북(北)이며 현무(玄武)이고 계절로 겨울[冬]이며 5행으로 수(水)이다.
황(黃)은 중앙이며 계절로 토용(土用:환절기에 해당)이며 5행으로 토(土)이다.
위에 보듯이 단청의 오행사상에는 현세의 강녕(康寧)과 내세의 기원이 깃들어 있습니다.
위에 설명에 있듯이 근대에 와서는 단청이라는 개념이 건축물에 채색 하는 일 또는 그 상태를 일컬어
한정하여 쓰여지는 경향이 있으나 원래의 개념으로 되돌아가 우리가 흔히 엽전 채색을 당채(唐彩)라고 하고 있는것을 단청(丹靑)이라고 표현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다음은 중국당백전과 일본 당백전 이미지 입니다
중국 함풍원보(1851-1861) 보원국 주조 당백전입니다
직경 49mm에 보통 크기이지만, 두께가 4mm로 다른것들에 비해 두꺼운 편입니다
유구통보 당백전 (유구는 현 일본 오키나와)
한국, 중국, 일본 의 당백전 3종으로 진품사진입니다.('09.10월 옥션가 15만원)
옛날 단위 냥과 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근을 16냥인 600g으로 100돈인 375g으로 계산을 합니다.
상품이나 지방에 따라서 16냥을 1근, 100돈을 1근으로 각각 상품이 거래되고
있으나, 미터법 통일로 법률상 상거래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근의 유래는 고대 중국에서 생긴 것으로, 한대(漢代)에는 약 223g, 당(唐)나라에서는 이것의 약 3배였으며, 송(宋)나라 이후 16냥이 600g으로 정립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1633년(인조 11) 이후 주조하여 통용한 상평통보(常平通寶)는 1문(文)의 무게가 2돈 5푼[分]이고, 100문이 1냥이 되었으며, 10냥이면 1관(貫)이 되었다.
한국의 냥 단위는 996년(성종 15) 철전(鐵錢)을 주조한 뒤 생긴 것으로, 1101년(숙종 6) 처음으로 동전(銅錢)인 해동통보(海東通寶) 1,500관(1만 5,000냥)을 주조하여 대신(大臣) 및 양반과 군인에게 나누어주고 화폐로서 쓰게 하면서 기본적인 화폐단위로 통용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 동전의 단위로 통용되다가,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 이후부터는 일본의 원(圓)과 혼용되었으며, 이때 서울지방에서는 2전(錢)을 1냥, 1원을 50냥이라 하고 지방에서는 교환율로서가 아니라 편의상 1전을 1냥이라고도 하였다.
냥의 무게도 당초에는 1문의 무게가 2돈 5푼이던 것이 영조 때인 1750년대부터는 1돈 2푼으로 가벼워진 동전이 통용되었으며, 이는 화폐경제(貨幣經濟)가 발달됨에 따라서 각 계층의 화폐가치 인식이 심화되어, 종래의 실용성 중심의 화폐가치관(貨幣價値觀)이 명목가치(名目價値) 중심의 화폐가치관으로 이행(移行)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866년(고종 3) 11월부터 1867년까지 주조한 당백전(當百錢)은 그 실질가치가 1문전 상평통보의 5∼6배에 불과하였으며, 거기에 명목가치만 100배로 고액화(高額化)하여 놓은 악화(惡貨)로서 화폐가치의 폭락을 가져왔다. 당시 금위영(禁衛營)에서 주조발행한 당백전 1,600만 냥은 쌀값으로 환산하면 당백전 통용 초인 1866년 12월경에는 약 200만 석에 해당하는 당시는 거액이었다. (한석 = 한섬 = 쌀한가마)
참고로 심청전의 쌀 300석은 쌀 144kg짜리 300가마로 석은 원래 벼 두가마로
쌀로 도정( 방아찧으면)을 하면 한가마(144kg)가 나오게 됩니다.
계산해 보면
# 8천6백40만원 = 300석 × 1석당 144kg(216천원 = 20kg당 4만원)
# 1억8백만원 = 300석 × 1석당 144kg(36만원 = 20kg당 5만원)# 4억5천만원 = 당시 정1품 녹봉 100석(현재총리 1억5천만원) x 3배
심청전에서 심청이가 몸값으로 받은 공양미 300석의 가치를 현실적으로 계산하면
1석(섬)이 144㎏이니까 300석이면 4만3,200㎏. 이를 80㎏ 쌀 한가마니로 환산하면 540가마니가 된다.
지금 80㎏ 쌀 한가마니 가격이 16만원(20kg x 4만원)정도로 계산하면 공양미 300석의 지금 가격은 8,640만원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300석에 대한 당시의 가치는 이를 훨씬 넘어선다. 조선시대 정승인
정1품의 1년치 녹봉은 쌀과 명주 등을 모두 합해 쌀 100석 정도였다고 한다.
쌀 100석이면 현재 가격으로 2,880만원. 당시 정승인 현 국무총리의 연봉이 1억5,000만원 정도니까 가치 차이는 5배가 난다. 이를 감안하면 심청이 몸값 공양미 300석의 현재 가치는 4억5,000만원 안팎이 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다시 당백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당백전의 주조는 간단한 기구로서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처벌규정이 엄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무리의 불법주조(不法鑄造)가 근절되지 않아 물가의 폭등을 조장, 1868년 10월에는 유통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1888년(고종 25)에는 명목가치가 상평통보 5문에 상당하는 당오전(當五錢)을 발행하였으나 2배에 지나지 않았고, 더구나 후에는 더욱 가치가 폭락하여 상평통보 5문과 대등한 값이 되어 버렸다.
또한 1888년은 근대적인 화폐가 주조된 해이기도 한데, 1환(圜) 은화(銀貨) 1,300여 매에 10문 ·5문 적동화(赤銅貨)를 합하여 모두 4,000원(元)을 발행한 것이 그것이다. 이때는 새로이 냥 대신에 환 ·원의 화폐단위가 등장하는 것이 눈에 띈다.
1892년에는 5냥 은화, 1냥 은화, 2전 5푼 백동화(白銅貨), 5푼 적동화, 1푼 황동화(黃銅貨) 등 모두 23만 4,744환(圜)의 화폐를 주조하여 환이 화폐단위의 기본을 이루었다.
이때는 일본화폐도 국내에 다량 유입되어 혼용되었으며, 조선화폐와 일본화폐의 값을 비교해보면 1푼 황동화는 2리(厘), 5푼 적동화는 1전, 2전 5푼 백동화는 5전, 1냥 은화는 20전, 5냥 은화는 1환으로 환산되었다.
1905년(광무 9) 1월에는 금본위(金本位)화폐제를 채택하면서 구화폐의 교환과 회수에 관한 사항이 규정된 칙령(勅令) 4호 ‘구화폐 정기교환에 관한 건’이 공포되었으며, 이에 의하면 우선 구화 10냥 은화는 신화(新貨) 1환에 상당하는 비가(比價)로 정부의 편의에 따라 점차로 교환, 또는 회수하기로 하여 1911년까지 960만 8,636환을 회수하였고,
1678년(숙종 4) 이후 법화(法貨)로서 통용된 상평통보의 환수 비가(比價)는 1문을 1리 5모(毛)로 하였다가 종이 ·구리의 값이 급등하므로, 1908년에는 2리로 다시 상향조정하여 1909년(국권피탈 전년)까지 327만 8,958환 68전을 회수함으로써, 고려 이후 조선시대 전기(全期)에 걸쳐 화폐의 기본단위로 사용된 냥은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중국에서의 화폐단위 냥은 한(漢)나라 때부터 사용한 것으로 5수전(五銖錢)이 사용되었으며, 24수전을 1냥이라 하였고,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시대[德川幕府時代]에 1냥을 금화 4푼, 은화로는 4돈 3푼으로 하였다.
당백전 소평이란
당백전 전면의 상평통보 글자 중에서 평자가 약간 작은 당백전을 말합니다.
희귀성은 3배, 가치는 일반 당백전의 2내지 3배정도 된답니다.
아래 당백전과 平(평)자 크기를 비교해 보시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엽전 읽는 순서(order of reading)
○ 대독 : 읽는 순서가 가운데 네모난 구멍을 기준으로 위에서 아래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대칭되게 읽는 방법
○ 회독 : 읽는 순서가 가운데 네모난 구멍을 기준으로 위에서 시계
반대방향이나 시계방향으로 읽어가는 방법으로서 대개
동양권은 시계방향이 일반적이다.
글자의 위치와 서체에 따라 대독해서(對讀楷書), 회독해서(回讀楷書), 회독전서(回讀篆書), 회독팔분서(回讀八分書), 회독행서(回讀行書)등 5종류로 세분된다.
멧돌 출신 진품을 몇 점 구했습니다. 시장에 유통되었던 엽전으로
멧돌(두부콩을 갈던 기구) 멧쇠(아래사진)에 끼워져 서민과 함께
이시대를 살아온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살아온 주인공 입니다. 모양새는 험하지만 사랑스런 엽전들 입니다.
엽전을 끼웠던 곳 = 멧쇠(멧돌쇠) : 아랫 맷돌에 박아놓은 쇠를 일컫는 말이다.
멧돌 : 두부를 만들기 위해 물에 불린 콩을 갈던 기구
곡식(팥,콩,메밀,녹두)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 때나 물에 불린 곡식(콩)을 갈 때 사용하던 농기구
위 중간은 백동, 오른쪽 1개는 가품이며 당백전 재질의 다양함(백동,황동,적동)을 한눈에 볼수 있음
왼쪽 맨위 1개(당채) 및 오른쪽 중간에 있는 1개(가품) 제외하고는 맷돌 출신
위에 있는 당백전을 옆에서 본 모습 (동일한 크기인데 각도를 잡았더니 탑모양이 되었음)
통용전 중 상태양호한 당백전 소장품
고형틀에서 떼어낸 자국(우측중간) 두께 30mm
엽전제조 고형틀에서 나온 모습
상평통보 당백전으로 만든 가공전
인사동에서 본 당백전 가공전 (옛날돈 가게)
장식품으로 사용된 당백전 (가공전)
가공전 화동양행 경매시 25만원에 팔렸다고 해서 판매가격은 물어보지 않았지만 10만원대로 구입이 가능
할 것으로 생각되었음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가격이나 물어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상평통보 당백전 가공전 개당 244,000원
常平通寶 當百 加工錢 50種組 화동양행 낙찰가 12,200,000
가품(가짜) 당백전에 당채도 입혔군요
가품(가짜) 당백전
가품(가짜) 당백전
가품(가짜) 당백전
진품 아니면 가품 ? 참 어렵습니다. 일단 가품에 무게를 둡니다.
아래에 있는 가품 당백전과 쌍둥이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백전 앞면 진품 3개, 가품 1개 (가짜 = 오른쪽 아래 당백전)
당백전 뒷면 진품 3개, 가품 1개 (가짜 = 오른쪽 아래 당백전)
윗줄 우측의 것은 전형적 당백전의 관주전 재질이고, 아랫쪽 좌측것은 노란빛을 더 띄며 재질감이
약간 떨어(무른 느낌) 지게 보이지만 진품입니다.
위쪽 좌측것은 주석이 보다 많이 함유되어 보다 단단한 느낌을 주며 진품입니다.
오른쪽 아래 당백전이 인위적으로 색깔을 넣은 것을 아실수 있으면 진품을 구입하실 확률이
높아집니다.
肉부분(바닥면 테두리)을 보시면 석고나 실리콘 같은 걸 이용하여 만든것으로 가짜 중국 대형전의
형태로 우리나라 鑄沙는 고운 海沙로 주형을 뜨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결과물은 나올수 없습니다.
현재 이베이에 나오는 중국 고전중 이런 색깔과 느낌의 물건은 모두 가짜일 확률이 높고 또한 이베이
경매 중국 고전중에는 진품이 5%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베이(eBay) : http://www.ebay.com/ 온라인 경매, 인터넷 쇼핑몰 회사
보너스 별전 등재
구사벽악(驅邪辟惡) 벽사엽전 뒷면(?)
벽사엽전인데 구벽사악으로 읽어야 할지 비교대상을 못찾음
* 구사 : 해악을 내쫓는 것 * 벽악 :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악기(惡氣)를 몰아내는 효능임
벽사엽전 앞면(?) # 벽사(辟邪) :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
벽사엽전
벽사엽전
출입평안(出入平安) 하시라고 마지막으로 장식합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yes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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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휴... 두고두고 읽어야 하겠습니다..^^ 많은 정보 얻어갑니다..^^
공부 많이 했습니다.^^
좋은자료 영구보관해야겠습니다
좋은 자료 즐감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도움되는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
자료 정리를 잘 하셨습니다. 상평통보 1푼 짜리의 구분은 크게 당2전,중형전, 당1전이라 불리우는 데 이를 대형전, 중형전 ,소형전(다른 명칭이 있다면 더 좋고요.)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사진의 출처는 밝히시는게 어떨지요.. 제 수집품도 게시되어 있네요(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요즘에 우리 누리꾼들은 이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ㅜㅜ)
전체 글의 구성상 여러 자료를 인용하는 바람에 일부 사진의 출처를 명시하지 못한 점이 있었습니다. 고전에 대해서 전문지식이 많으신 지토님이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불편하시다면 해당되는 부분을 말씀하여 주시면 삭제하거나 출처를 명시하여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당백전 10개를 찍은사진이나 통용전중 양호한 당백전 그리고 별전 등은 제 소장품입니다. 그리고 가공전 사진이나 일부 이미지 사진은 제가 직접찍은 사진입니다.
좋은 자료를 보고 얻은것이 너무 많습니다.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아주 유익한 자료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몇번이고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