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티브 명상 치유 후렌즈 이너뷰
사르잔(조 주 영)
1. 인생에서 가장 기쁠 때(인생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들)
◽ 성취와 성장: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때·부모님이 나를 자랑스러워하실 때, 초·중·고 시절 수상(글짓기, 사생대회, 수예 등), 취업 후 업무 또는 봉사활동 등으로 수상(교육부·법무부·여성가족부 장관, 사회 기관장 상 등), 박사학위취득, 교수임용, 논문발표, 관심 있는 주제의 책 출간, 프로그램 개발 및 발표, 개인적 성장을 느낄 때, 배움의 기쁨을 느낄 때 등
◽ 출산: 큰 아들(1992년), 작은 아들(1994년)
◽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사이버멘토링 활동으로 멘티들의 성장을 볼 때(몇 번 우수 사례로 뽑혀 발표 됨), 상담조력으로 내담자의 성장과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재능 기부 등
◽ 현재의 즐겁고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가는 것
◽ 가족들의 일이 잘 풀릴 때: 함께 할 때(식사, 영화보기, 여행 등), 승진·입학·수상(가족파티를 열어 축하) 등
2.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은?(인생에서 힘들었던 경험들)
◽ 엄마가 저혈압으로 쓰러지셨을 때: 고교 때(충격을 크게 받음. 다행히 곧 회복되심)
◽ 신혼 초에 남편 직장에 문제 생겨 실직 위기에 빠졌을 때(1994년)
- 설상가상으로 그 즈음에 출생한 작은 아들이 출산 시에 항문 옆에 상처가 나서 그것이 나을 동안 갓난아기의 고통을 애처롭게 지켜보며 많이 힘들었음. 이런 일들로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함.
◽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母(1993년 5월), 父(1998년 3월)
◽ 자녀 청소년기: 기도와 일에 몰입하며 견뎌냄
- 지금은 두 자녀가 잘 성장해 있고, 그 시기를 돌아보며 서로 웃으면서 얘기 나눔. 그러나 그 당시는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는데 뭔가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느낌에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됨.
- 힘들 때는 아들이나 남편에게 그것을 안 뿜으려 욕실에서 소리 지르기로 발산하곤 했음(지금이라면 지버리쉬나 웃음치유명상으로 발산할 수 있을 것 같음)
◽ 2016년 12월 여러 일들로 마음이 분주하여 서두르다 넘어져 꼬리뼈 골절사고: 넘어진 순간 드는 느낌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였음. 너무 아파서 잠도 제대로 못자는 상황. 연말이라 일은 많고 병원 갈 시간도 못 내어 별일 없겠지 하며 통증을 감내하다 일주일이 지나도 진정이 안 되어 그제야 병원엘 감. 진료결과 꼬리뼈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자들을 지원하려 진행 중이던 일에서 한 제자가 일에서 펑크를 내는 일이 있었고, 교사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에서 구성원 중 한명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의 책임자이자, 책임연구를 맡았던 내가 그것들까지 감당하며 마무리하느라 새벽까지 작업하는 나날의 연속이었음.
- 다른 일들도 많이 몰려 있었지만 다 무리 없이 해냄. 그 이후 깨달은 것이 많고, 덕분에 일도 사람관계도 많이 조절함. 일과 사람관계 유지를 위해 분산되어 있던 에너지를 자신의 삶의 질 향상으로 전환할 수 있어서 더 긍정적으로 변형되어 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감사하게 수용됨.
3. (액티브)명상을 시작한 계기는?
◽ 개인적 치유와 성장
◽ 15년간 팀티칭으로 진행해 오던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 중 일부를 보완하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
- 위 프로그램은 머리(사고)·가슴(감정)·장(행동)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본질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으로서 오쇼 명상에서 몸·마음·영혼을 일체로 보고 전체치유를 지향하는 것과 닮아 있어 이 명상공부를 지속하고 있음
4. 명상 이전과 명상 이후의 삶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 마음이 더 여유로워지고 깊어짐
◽ 그 동안 내가 지향하고 추구해온 길이 올바르다는 것을 확인 받았고, 그 의지에 힘이 실려 더 즐겁게 나아가고 있음
5. 액티브 명상 치유사 수업을 통해 일어난 변화들이 있다면?
◽ 자신과 삶을 더 관조하게 됨
◽ 일상에서 감사와 행복감이 늘어남: 작은 풀꽃도 사랑스럽고, 떨어지는 단풍잎도 사랑스러움. 작은 일 조차도 감사함의 연속임
6. 통일되면 하고 싶은 것은?
◽ 지금 부분적으로 하고 있는 일들을 퇴직 후에는 종합하여 통합 상담(상담+음식+자연)을 꿈꾸고 있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북한주민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됨
[통합 상담 모형]
- 통합 상담을 구상하게 된 계기: 지난 30여 년간 상담·교육·연구 활동을 해오며, 직·간접적으로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며 종합결론을 내림. 그 과정에서 배운 내용들은 아래와 같음
① 상담(중심축): 전통상담, 최신상담, 에니어그램, NLP, EFT, TRE, EMDR, FAT, 미술치료, 동작치료, 치료놀이, 최면, 명상 등
② 음식공부: 심리영양학, 한방꽃차, 사찰요리, 발효, 산야초 등
③ 자연: 숲해설, 숲치유, 원예치료 등(핵심내용과 방향은 움직임을 상담 및 치유에 포함하되 개별적 준비도를 반영하여 놀이 또는 치유적으로 이끌어감)
- 통합 상담의 지향방향: 수월성, 접근용이성, 활용용이성, 놀이성(즐거움), 경제성, 자연성 ☞ 소집단 치료조력(놀이로 시작 ~ 희망자에 한해 트라우마 치료까지)
◽ 세계일주의 꿈 실현에 북한 포함, 또는 북한 경유
7. 통일되면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 북한주민들이 남한을 이해하도록 돕고, 우리도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로부터 도움 받음
◽ 북한주민의 심리적 적응 조력: 내면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변환하도록 도와 줌
8. 명상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면?
◽ 먼저 망설이는 이유를 들어봄. 그 이유가 명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설명을 해줌. 아직 명상을 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경우는 그 선택을 존중. 어떤 선택이든 그 결과도 본인의 몫임을 기억하게 함.
9. 간단한 자서전
1) 조신하게 길들여졌던 성장기
◽ 「돌아돌아 동디」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 동디라는 작은 동네 이름으로 이웃 마을 사람들이 붙인 수식어임. 동디는 마을 뒤와 양옆의 삼면이 산이고,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마을로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보임. 우리 선조 중의 한분이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땅 사방 10리에 조상들이 터전을 잡았다고 함. 그래서 어르신들의 자부심이 대단하셨음. 지금은 이 동네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많이 변화하여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청학동에 버금가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음.
◽우리 할아버지는 외출 시에 갓 쓰고 두루마기를 입으셨음. 담벼락을 지날 때면 이웃집에서 ‘자왈~ ~ ~’을 읊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음. “정직”을 강조하셨던 아버지는 슈퍼에고가 강하셨던 분으로 기억됨. 더불어 성장기의 전반전 분위기가 모든 것을 조신하게 유지해 가야 하는 것으로 흘렀고 나는 그것을 수용하며 성장해 온 것으로 보임
◽ 나는 성장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음.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아버지의 친구셨고, 선생님들 중에도 아버지와 친구가 있어 나는 튈 수가 없는 존재였음. 또한 아버지는 우리학교 육성회장을 맡아 가끔 학교를 방문하기도 하셨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글을 잘 쓴다고 몇 번 교내대회에서 수상을 하였으며, 특별히 국어선생님이셨던 교장선생님은 그런 나를 높이 평가해 주셨음. 졸업식 때는 직접 쓴 글로 후배들의 송사에 답사를 하기도 함
◽ 동네에서도 우리 집안을 꽤 괜찮게 인정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됨. 가끔씩 “교육자 집안 딸이라 ~ 책임감이 강하고 ~”등의 얘기를 듣기도 했고, 그것에 부응하려 노력했음
2) 준비되지 않은 자유와 해방, 대학생활
◽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할 즈음, 딸이 집을 떠나 공부하는 것에 대해 엄마는 적극 찬성하셨고, 아버지는 고지식한 면이 있으셔서 흔쾌하게 허락하시지는 않았지만, 수용은 해주심.
◽ 성장기의 나는 “내향형”처럼 다소곳했었는데, 대학생활하며 자유와 해방감 속에서 이런 저런 경험과 배움을 통해 내가 외향형임을 알게 됨. 자유와 해방은 보장된 대학생활이었지만 그동안의 습관이 작용하여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함을 드러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곳하며 나름 애썼지만 좌충우돌의 생활을 한 듯함.
◽ 내가 대학 다닐 때 우리 집은 대학생이 4명(오빠, 언니, 나, 여동생) 이었음. 나는 부모님에게 부담을 적게 드리려 휴학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스스로 궁핍한 생활을 선택함.
3) 새로운 시작, 결혼
◽ 연합 써클 선배였던 남편의 구애로 몇 년 연애 후 결혼. 남편은 가난한 고학생이었지만, 지적이고 자상한 성격. 성실하고 책임감 강.
◽ 결혼 전 나는 서울에서 대학원 다니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청주에서 대학원 다니며 조교생활을 하고 있었음. 남편은 수시로 서울과 청주를 오르내리며 나에게 정성을 들였음. 결혼 후 나는 출산 전까지 서울에서 지냄. 출산 3개월 전 청주로 내려와 큰 애 출산. 출산 전 후 7개월가량 집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씀.
4) 월화수목 금·금·금, 18년
◽ 큰 아이 4개월 때 청소년상담실에 다시 취업. 재취업을 국고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시범사업단에서 시작함. 그 이래, 새로운 사업을 많이 함. 아이는 단양에 계신 형님이 3세까지 봐 주심. 두 살 터울의 작은애가 태어나기 전까지 주중은 비교적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였고, 주말은 큰애를 만나러 단양을 가곤 함. 작은 애가 태어나고 부터는 둘 다 형님이 키워주시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주마다 큰 애 보러 가는 것도 무리여서 고심 끝에 큰 애도 데려옴.
◽ 그 이후 큰애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작은 애는 이웃집 아주머니를 고용하여 도움을 받음. 이웃집 아주머니는 작은 아이가 중학교 때까지 돌봐 주셨고 살림도 도와주심. 나는 육아·일·학업(또 다른 석사와 박사과정) 병행하느라 매우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음.
◽ 약 18년가량 월화수목 금·금·금의 나날이었음. 육아·일·학업의 세 가지 큰 역할에 그것들의 세부역할과 그 외의 주어진 일들을 해 내느라 휴가는 꿈도 꿀 수 없는 시간들의 연속이었음.
5) 또 다른 도전, 교수의 길
◽ 상담과 교육현장에서 보낸 18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를 다지는 기간이기도 했음. 좌충우돌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터득한 것이 많음. 현장에서 18년을 보내오며, 꾸준히 공부하고 또 기회 닿을 때마다 연구를 지속해 오며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지만, 뭔가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음.
◽ 그래서 꿈꾸어 오던 길이지만 주저하고 있던 새로운 도전인, 교수의 길을 지향하게 됨. 18년 간 현장에서 열심히 건설적으로 추구해온 덕에 교수에 임용되었다고 판단됨. 상담과 교육 경력이 18년이나 되었지만, 교수로서는 신참이어서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음. 교수가 되기 전에 시간강사 경력도 길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적인 일들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음. 개인적인 불안도 작용하고, 여러 정황들로 인해 쉼 없는 나날들로 이어짐.
◽ 그 결과 작은 애가 대학 들어갔던 해 여름, 내 몸은 망가질 때로 망가져서 심각지경이었음. 그 전(현장에서 일하던 18년 기간 동안)에 과로로 병원신세도 두어 번 졌었지만, 일을 그만 두지 않았기에 크게 개선되지 않음.
- 급기야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이 몸에 쌓여 한계수위에 도달하였던 것임. 몸이 더우면서 여기저기 시리고, 전반적으로 혈액순환도 안 되는 것 같고, 기분도 묘하게 나쁜 등 복합증세를 보여, 그것들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였음.
◽ 궁여지책으로 한의원을 찾았고, 나를 진료한 한의사는 보약과 더불어 운동처방을 내려 줌. 그리하여 운동을 시작하였고, 한 달에 두 번(첫 1년은 한 달에 두 번, 지금은 한 달에 한번 가량) 경락 마사지를 받아오고 있으며, 다행히 지금은 많이 회복됨
◽ 교수생활에 좀 적응하고 난 다음 보니 교수가 일은 많지만, 시간을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음을 새삼 알게 됨. 그래서 그 직업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얻게 됨. 13년째 교수의 길을 가면서 나의 삶의 질은 많이 향상되어 가고 있음
6) 통합 상담의 그림을 가슴에 품다!
◽ 교수가 되자 상담센터 운영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한 교수가 서울에서 교육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좀 더 깊이 자신의 일에 관여해 달라는 제안을 해옴. 그 일의 내용이 사고·감정·행동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고, 내 삶의 추구방향과 잘 맞았기에 흔쾌히 수락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음.
- 연구소의 연구개발국장을 겸임하고 있고,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해 오며 내적으로 더 큰 성장의 기회를 얻음. 부가적으로 다른 공부들도 지속적으로 하여, 좀 더 큰 그림인 “통합 상담”을 그릴 수 있게 됨
◽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몇 가지 대안을 염두에 두고 뜻이 통하는 사람들과 그 꿈 얘기를 나누고 있음.
◽ 통합 상담의 그림은 “6”에서 제시함
7) 꿈 너머 꿈
◽ 나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까지 많은 것을 참 어렵게 배움. 지역에는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고, 또 전국적으로 보더라도 원하는 때 배움의 장이 열리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음. 상담 슈퍼바이저가 되고 상담을 더 깊게 배우기 위해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또는 외국 학자들이 내한하면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열 일 제치고 달려가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시간과 돈과 노력을 많이 들였음.
◽ 그 옛날 청주에서 서울이나 부산 또는 대구로 갈 때엔 새벽에 택시를 이용하여 고속터미널이나 기차역으로 향하곤 함. 그때 택시기사들 중에는 여자가 첫 승객인 것, 특히 안경 쓴 여자 승객을 태우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고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경우도 있었음. 그래서 여자임은 바꿀 수가 없고, 슬며시 안경이라도 벗고 눈치 보며 택시를 이용했던 기억이 있음. 지금은 그런 면들이 사라져서 다행임.
◽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어, 나는 나의 후배나 제자들은 나보다 쉽게 배우도록 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됨.
◽ 그런데 계속 공부하다 보니 기존의 상담도 훌륭하지만, 더 빠르고 쉽게 내담자들을 조력해 줄 수 있는 탁월한 도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을 습득하며 나의 생각이 변하고 있음. 그동안 정(전)통 상담분야에서 취득한 수련감독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앞으로도 내가 계속 감당해 가는 것이 시간적인 면에서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 들고, 대신 그 시간과 노력을 더 효율적이고 의미와 가치를 살려 활용하고픈 마음이 일게 됨.
◽ 그래서, 이제는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림. 그 에너지를 더 괜찮게 쓰고 싶기 때문임. 앞으로 상담 및 치유를 위해 공부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적은 비용으로 깊이 있게 공부해 가는 장을 열어 주고픈 열망이 있음.
- 퇴직 후엔 나도 나이가 더 많이 들고난 뒤이므로, 직접 내담자를 만나는 것은 최소한으로 하고 대신 상담자나 지도자 양성 또는 그들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음
10. 나를 즐겁게 하는 재미있는 얘기 & 다른 사람을 위한 재미있는 얘기
1) 나를 위한 재미있는 얘기
◽ 삶 자체가 재미있는 스토리임. 그것을 잘 누려가고 있는 자신에게 감사함. 그간 배우고 적용해 오던 것을 종합하며 통합 상담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통합 상담을 지향하며 배우는 것마다 즐거움의 연속임.
◽ 그 간의 수많은 선택과 정성들인 노력들이 마치 퍼즐이 맞추어지듯이 잘 꿰어져 가고 있는듯하여 마음이 뿌듯함. 그 과정에서 하는 것마다 몰입하여 행복하게 참여하는 것도 재미를 더해 주고 있고, 그 또한 나의 특별한 재능이라고 봄
2) 다른 사람을 위한 재미있는 얘기
① Coin Bottle Trick(동영상으로 본 것)
- 부인이 남편에게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제안함. 남편이 흔쾌히 수용함
- 먼저 부인이 남편에게 동전을 보여줌. 그리고 그것을 찬물이 담긴 페트병 밑에 두면서, 자신이 마술을 위한 주문을 외면 그 동전이 페트병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알려줌
- 남편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부인의 마술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봄. 부인이 마술을 보여주기 위해 셋팅한 것을 천으로 덮고 자신이 구상한 절차대로 한 다음 페트병 안을 들여다 봄. 그리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계획대로 잘 되었으니 남편도 확인해 보라고 함
- 남편이 페트병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순간, 부인이 페트병 중간 부분을 확 눌러 남편이 찬물을 덮어 쓰게 함
(부부는 한바탕 웃음으로 마무리)
② 시골 할머니의 도토리묵 가짜소동에 얽힌 이야기
- 한 시골 할머니가 서울에 사는 자녀의 집으로 와 좋은 아파트에서 살게 됨. 그러나 특별히 할 일은 없고 너무도 심심하여 소일꺼리로 자신이 잘하는 도토리를 주워 묵을 쑤어서 아파트에서 팔게 됨.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다른 아주머니가 가짜 도토리묵을 파는 할머니가 있다며 경찰서에 신고함
- 할머니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며 가짜 도토리묵이 아니라 진짜라며 억울함을 호소함. 그리하여 도토리묵 성분을 분석의뢰하기에 까지 이름. 조사결과 할머니가 팔았던 도토리묵은 100% 순 도토리묵인 것으로 확인됨.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경찰관은 신고한 아주머니에게 그 사실을 전하고 왜 신고했냐고 물으니, 그동안 먹어오던 도토리묵과 맛이 달라서 신고했다는 것임.
- 결국, 아주머니는 그동안 가짜 도토리묵을 진짜로 알고 먹어 온 것.
☞ 자신의 본질은 잊고, 에고를 진짜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한 단면을 돌아보게 함
☺ 감사합니다! ☺
|
첫댓글 사르잔님의 이너뷰..
아....
삶의 파노라마.
성장의 파노라마.
감사합니다.
공유해주셔서..♡♡♡
우왕~ 사르잔님의 삶의 여정 & 앞으로의 비젼들...잘 읽었습니다.
사르잔 네임뜻처럼 무한 창조성으로 꽃피어나시길..._()_
멋지세욤
너무 정성둘여 쓰셔서 꼼꼼히 잃었어요
^^~
사르잔님 뿌네 오세요!
와아~사르잔님!
성실, 성심. 성장, 삼성이네요.ㅎㅎ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늘 겸허하고 열심인 모습 본받고 싶어요.^^
읽어주시고,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에 처음 들어와 봤어요. 함께 해서 참 좋습니다~^^ 우리 다 같이 잘 성장해 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날이 기쁨 충만하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