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밤을 지새웠으면(2082.2023.3.5.)
민14:1-10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1절 104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천안에 감리교인인 유관순 누나의 외침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귀와 내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많은 견딜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친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이런 역사에 대해서 기억해야 할 오늘 잊지말아야 할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1절을 기념주일에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상기해 주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 토막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430년의 긴 세월동안 애굽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던 그들이 온갖 고초 끝에 출애굽이라는 대장정의 길을 떠난 후 마침내 ‘가데스’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멀고 긴 여행의 목적지를 바로 앞에 둔 곳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가나안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그곳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하여 각 지파에서 선출된 정탐꾼들을 투입했습니다. 40일 만에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그들이 보고 느낀 점들을 보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비극의 싹이 움튼 불행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라고 하는 두 사람만을 빼고 나머지 10사람 모두가 한결같이 가나안은 난공불락의 도성임으로 공격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성공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말고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민14:1절에서 보면 그날 저녁 밤새도록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열 사람의 주장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고 이로 인하여 이들이 더 많은 고생과 희생을 지불해야만 했다고 역사는 보여줍니다.
민14:2-3절에는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불신앙은 그 불신앙을 가진 사람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되어 치명적인 해를 끼치고 꿈과 용기와 희망을 빼앗아 갑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불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직 눈앞에 펼쳐진 현실만을 바라볼 뿐 만유보다 크신 전능자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메뚜기의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열등감이 많고 어떤 일에 쉽게 좌절하며 패배주의적인 태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신앙의 태도와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불신앙의 태도와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원망불평을 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입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불신앙과 싸워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10명의 정탐꾼에게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망감에 사로잡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모세가 아닌 다른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며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바로 그때 민14:5절에 모세와 아론은 회중 앞에서 엎드렸습니다.‘엎드렸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해주십니다. 우리가 엎드려 기도하고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주장으로 곁길로 들어서고, 그것을 시정하고 온갖 고초 끝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을 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희생과 상처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어려움의 대부분이 우리 안에 있는 불신앙과 부정적인 사고에서 비롯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동안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40년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출애굽1세대들이 모두 죽게 된 것도 그들의 불신앙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거역하지 말고 절대긍정의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어느날 밤에 가데스의 들판에서 들려왔던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그들이 눈물로 밤을 지새웠는가에 대한 결과는 400여년의 길고 긴 여행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지파장, 정탐꾼들이 다 소유하지 못한 그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축복을 소유하게 된 경우를 살펴보면서 우리들은 눈물로 밤을 지새워서라도 해결받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눈물로 밤을 지새웠으면 좋은것만 바라보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골동품 같은 것을 보잘것 없는데도 그것을 가치있게 사용하는 분은 그 귀한 자리에 잘 진열 해놓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집어던집니다. 일제강점기 때 경기 팔당 부근에 사는 할머니가 야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발견한 병을 참기름 담으면 좋겠다고 여겨 행상 아주머니에게 1원에 팔았다고 한뉴스가 나왔습니다. 그게 일본인 여성에게 팔려가 골동품상을 하던 남편이 백자라는 것을 알아본 후 여러 수집가를 거쳐 경매에 나오게 됐습니다. 우리 문화재 수집에 헌신한 간송 전형필이 1936년 당시 돈 1만5000원을 주고 사들인 덕분에 해방 후 국보로 간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볼 때이든지 그것에 대해서 좋은 점을 보면 거기에서도 더 나쁜 것 이상의 좋은 자기에게 유익된 일을 자기가 소유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7절‘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여러분 똑 같은 땅을 열두 정탐꾼이 탐지했는데 열 정탐꾼은 그 땅을 보면서 좋다는 말을 그리고 그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이런 저들의 소망적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볼 때에 뭐라고 했습니까?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보는데도 어떤 사람은 좋은 것을 생각하면서 봅니다.
믿음이란 좋은 것을 바라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바라보고 희망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주실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어서 취하러 가자.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군들은 바라보지도 말자. 엄두도 나지 않으니 바라볼 생각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똑같이 보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두 생각이 있습니다. 믿음의 생각과 불신의 생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두 마음이 존재합니다. 영의 마음과 육신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담대히 주실 은혜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히11:1절‘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바라보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면 자녀들이 좋은 믿음 가지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것을 바라보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면 모두가 하나님께 순복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날로 발전하고 부흥되는 것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그 믿음으로 내가 복 받고 내 자손이 복 받고 우리의 교회와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히11:5절‘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하나님 앞에만 나아가도 상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16:11절‘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바라보지 못합니다. 현재 처해 있는 현실이 엄두가 나지 않지요. 희망을 갖지 못합니다. 현실은 암담하고 경쟁은 심한데 나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바라보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 생각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수평적인 생각보다 수직적인 생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우실거야,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일하고 계셔. 그렇게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바라볼 뿐 아니라 믿음의 말만 하였습니다. 민13:30절‘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적인 말만 하였습니다. ‘장관을 세워 지도자로 삼자’,‘모세를 따르지 말자’,‘애굽으로 돌아가자’입니다. 불신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불신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만 생각하고 말을 하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합니까? 그러나 사람이 모여 회의하다 보면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일 말고 믿음은 저리가 있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믿음의 말만 했습니다.
잠18:21절‘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하였습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고, 죽고 사는 것이 입의 말에 달렸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으려면 입의 말부터 고쳐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아이들이 자랄 때 단점도 장점도 있는 것인데 그 좋은 점은 한마디 칭찬해주지 않고 나쁜것만 꼬집어가지고 ‘너는 나쁘다. 너는 못 된 놈이다. 너는 쓸모없는 놈이다’자꾸 이렇게 나쁘다, 나쁘다 하니까 자기는 이미 부모도 버리고 세상 사람이 날 버리는데 하고 그때부터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자포자기하면서 꿈과 소망과 비젼에 대해서 자기와는 상관없이 무법천지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만약에 그 아버지가 그에게 나쁜면이 있어도 좋은 점을 가지고 ‘너는 잘 생겼다. 너는 눈동자가 살아있다. 네가 선한 일에 한번 투신해 보아라. 너는 세계적인 인물이 된다. 위대한 정치가도 될수 있다. 위대한 성자도 될 수 있다. 위대한 사업가도 될 수 있다’이러한 말을 자꾸 했다면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었겠어요? 이 사회에서도 자꾸 나쁜 것만 헐뜯고 지적하고 찬반논리 속에 흑백논리 속에 이렇게 비판적으로만 살면 그게 옳은것 같고 정말 그분은 세계에서 성인군자 같이 보이지만 그것이 건설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더 좋은것을 더 선한 것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이 전도를 했더니 ‘나 교회 나갔는데 지금은 안나갑니다’, ‘왜 안나가십니까’, ‘예수 믿는 것들이 꼴보기 싫어서 안나갑니다’, ‘무엇이 그리 꼴보기 싫습니까’, ‘아, 00가 거짓말하고, 00가 사기치고, 아이고 00한테 나는 막 속았다고’여러분 이걸 아셔야 합니다. 가짜가 있으면 진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짜를 믿어야지 가짜 때문에 내 신앙을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보시오. 왜 가짜를 보고 당신의 귀중한 신앙을 포기하느냐 순금이 있으면 가짜 금도 있는거다. 진짜가 있으면 가짜도 있는데, 당신은 진짜 예수를 잘 믿는 정말 신앙을 위해서 순교를 당하고 자기 있는 모든 것을 다 나누어주고 자기생명을 바치면서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귀하게 산 분이 얼마나 많으냐? 그런 분을 본받고 그런 사람을 모델로 삼고 그런 사람을 존경하면서 예수 믿어야지 꼭 가짜들, 잘못된 사람들 그런 것만 자꾸 지적하고 그렇게 하니까 당신 마음이 병든것이요. 우리 신앙의 대상은 그 속이고 사기치고 그 00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다 구속해주시고 영원히 우리의 선한목자가 되시고 함께 하시는 그 주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시오’이렇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살전5:16-18절‘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바라보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면을 위해서 전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 우리 마음에 좋은생각을 가지면 좋은 일들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인 사람에게만 좋은것이 보여지게 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감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하나님이 보여지게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축원합니다.
2.눈물로 밤을 지새웠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없이 믿는 자이어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이스라엘의 우는 모습은 오늘 우리들이 겪고 있는 삶의 모습과도 너무나 흡사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점점 더 어려운 곤경 속에서 발을 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들에게 묵살되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돌아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는 호소 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호소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고백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땅 가나안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8절‘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즉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지금까지 절망했던 상황은 희망으로 천박한 삶보다는 고귀한 삶 곤경 보다는 오히려 더 큰 기쁨으로 변하여 희망에 찬 환호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불가능, 절망, 눈물의 사건이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고 의지하는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는 오히려 큰 기쁨의 선물로 확신을 가졌던 믿음의 비밀을 바라보면서 승리의 생활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그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입니다. 창12:1-2절‘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 땅은 가나안 땅입니다. 세속의 도성과 구별하여 제사장 국가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는 땅입니다. 다시 되찾을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430년 동안 종살이를 했으나 그 땅에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창15:6절‘네 자손이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바로 이 약속을 굳게 붙잡은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신11:10-12절‘네가 들어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는가? 그곳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권고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권고하셔서 때를 따라 파종기에는 이른비를 주시고, 수학기에는 늦은 비를 주어서 결실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은 영원하고 불변합니다. 계22:18-19절‘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는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했고, 이삭에게 약속했고, 야곱에게 약속했고,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전진하게 했고, 또 하나님께서 이제 목전에서 자기를 친히 밟아보면서 정탐까지 하게 한 이 땅을 반드시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마음에 어떻게 그것을 믿고 있느냐에 따라서 내게 소유가 되어지기도 하고 내게서 떠나가게 되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겨주시고 의로 여겨주실 때에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적을 나타낼 줄로 믿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는다 못 믿는다 그 표준이 뭡니까? 하나님의 것을 어떻게 내가 받아들이느냐 있는 그대로 다 여러분이 받아들인다면 믿음 그 속에 하나님의 기적은 수반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후1:20절‘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아멘’이란 ‘하나님 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인정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대로 인정하십니까? 받아들이십니까? 그대로 소유하십니까? 여러분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사람도 사기꾼, 횡령꾼, 절도꾼 그리고 이 세상에 악한 사람이 많이 있어도 선한사람도 많습니다. 오늘날 썩을대로 썩고 부패할대로 부패하고, 갈대로 지금가고 있습니다. 지위고하가 없습니다. 돈과 지위 명예에 환장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그속에도 진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표는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이런 부패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의 어떤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우리의 하나의 지도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그런 신앙의 사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자신이 이런 때일수록 본이 되어지는 신앙의 모델이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본받는자가 되라’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 안에 서는 얼마든지 ‘예’가 됩니다. 주의 약속에 대해서는 ‘아니오, 무엇 때문에, 왜요, 어째서’ 그런 말이 조금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멘,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여, 내가 믿습니다’ 이런 신앙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3.눈물로 밤을 지새웠으면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여러 모양의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근간에도 나라의 어려움 때문에 작고 큰 사업 터전이나 그 외 많은 경제적 여건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담대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한가지 특징이 있다면 담대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믿음의 사람들은 환경과 상황 앞에서 담대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밥이라는 것은 먹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먹어야 힘을 얻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보이는 환란과 역경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복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이미 그러한 체험적인 사건을 통해서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사건을 보는 눈입니다. 열 사람의 눈은 지적이고 경험적인 눈이었으므로 자기들의 인간적인 경험으로만 그곳을 보았습니다. 경험의 눈만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우매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의 눈처럼 똑같은 사건을 신앙적인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 메추라기를 주신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면 능히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업, 직장, 가정,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내 힘, 내 재간, 내 경험 갖고 산다는 것은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눈을 갖고 살아가므로 우리의 삶이 풍요롭고 넉넉히 이기며 사는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사건을 이야기하는 입입니다. 똑같은 사건을 40일간 보고와서 그들의 증언한 입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입이며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입이었습니다. 어제 밤에 불기둥으로 덮어주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잠을 잤어도 오늘 아침에 구름 기둥이 장막 위에 덮혀있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그들은 신앙적이고 긍정적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적극적인 발언을 하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내가 본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므로 이제 올라가자, 그 땅을 차지하자고 긍정적인 신앙의 소리를 발하니까 하늘이 움직여 광명의 빛을 주고 하나님이 주관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부정적이고 좌절로 바뀌어지고 긍정적인 말, 적극적인 말을 하면 어둠이 물러가고 빛을 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건을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똑같은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여호수아, 갈렙은 ‘그 고난은 우리 앞에 밥이다’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흙 속에 씨를 묻어두면 죽은 씨와 산 씨의 차이가 있는데 죽은 씨는 흙 속에서 썩어져버리고 죽고 말지만, 산 씨는 흙 속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싹이 움터서 고난의 흙을 젖히고 광명의 세계로 올라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죽은 신앙, 산 신앙의 차이가 있습니다. 죽은 신앙은 환난을 당하면 거기에 동화되어 패배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산 신앙은 고난, 환난이 오면 그 속에서 흡수하고 자기의 삶에 보탬이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고난이란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고난속에서 교만을 깨쳐 버리고 겸손한 인품을 소유하고, 오만 불손하던 것이 박살나서 온유한 성품이 생기고 위선, 거짓이 없어지고 정직이 생기며 감사하는 생활을 발견하게 됩니다.
9절‘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여기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는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고후13:8절‘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를 거역하면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역천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순천자는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정말 사람이 살 곳이 아닌 멕시코가 점령해 있을 때 그 사막 정말 덥고 무더운 그런 로스앤젤레스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니까 세계 사람들이 거기에 정착하고 거기에 정착하여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합니까? 한국인들도 거기에 60여만명이 정착하여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니까? 사막도 오아시스가 되는 것입니다. 거치른 광야도 에덴 동산처럼 하나님이 축복 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얼마나 환경여건 조건이 좋으냐, 얼마나 내가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있느냐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을 순종할 때에 안되는 것도 없는 것도 할수 없는 것도 하나님이 도와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도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복을 부어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장마비가 오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있다면 하나님을 내가 순종하고 있다면 아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 집이 없고 때거리가 없고 지금 다 쓰러져 있어도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어질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는 돈도, 명예도, 권세도, 축복도, 치료도 다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버리면 태산 같은 황금 덩어리도 그것은 오히려 축복거리가 아니라 저주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주께서 오늘 여러분을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절대 역천자가 되지 말고 순천자가 되어야 됩니다.
지상에서도 어느 나라든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시대 하나님을 위해서 정말 순종하며 사는 그런 인간이 모인 단체는 한 지역도 망하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축복해 줍니다. 삼상 12:15에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1:19절‘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을 영육간에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 한 하나님께서 여러분 장래를 이미 다 예비해 놓으실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믿는 것만큼 하나님께 순종하는것 만큼 하나님이 부어 주시고 역사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모습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아무리 예쁘게 단장을 하고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좋은 어떤 연기력을 가지고 지혜를 가져서 수많은 것을 발명 해내고 그리고 통솔력을 가지고 천하를 호령해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존경할만한 평가할만한 대상이 못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모든 것은 하나의 해골 떼들이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 없는 송장과 같습니다. 불꺼진 난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름없는 자동차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살지 않는 화려한 그런 고대광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속에 사람이 살아야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생명이 있어야 그 잘 생긴 얼굴의 가치가 있습니다.
4.눈물로 밤을 지새웠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주님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의 능력이 내게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지 못했던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내 삶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 순간 우리의 눈은 하나님의 눈으로 바뀌어 집니다. 사람의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면 황량한 사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그 땅을 보는 순간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으로 바뀌어 집니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면 오합지졸을 데리고 가나안을 정복한다고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안경,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가나안을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무한한 힘이 용솟음치게 되는 것입니다.
9절‘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참으로 우리에게 귀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 매우 귀하고 중하기 때문에 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외쳤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마1:23절에 예수님이 오실 때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비록 에덴동산에서부터 죄악가운데 태어났지만 그래도 우리를 지으신 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 속에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장 크게 약속한 말씀이 뭡니까? 마28:20절‘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거하는 곳이 어디에 있든지 여러분 들판이든 천막이든 도시든 혹은 산촌 어촌 강촌이든 주의 백성들과 함께 주님이 동행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제일 좋아하는 성구가 뭐냐고 물어봅니다. 신구약 성경 어느 말씀이 덜 귀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처음에 은혜 받은 말씀이 요10:10절 말씀입니다.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더불어 먹고 풍성하게 하셨다’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도 잘먹고 풍성해지기를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41:10절 말씀에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오늘 이 약속은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주신 말씀인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의 신실함을 믿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직장에도 말씀을 들고 가고 친구들을 만나고 사업 파트너를 만나고, 중요한 인생의 문제를 결정하는 그 자리에도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들고 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닥치는 문제와 상황들을 바라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길이 보입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내 밥으로 보여지는 새로운 관점이 일어납니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캄캄하던 견고한 문제의 덩어리들이 아름답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보여지는 기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된 가치관으로 세상을 전혀 다르게 사는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누가 가나안 땅의 축복을 차지할 수 있습니까? 좋은 것만 바라보고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없이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새로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달려가면서 항상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는 상주감리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