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에 대한민국 교육의 민낯이 드러났다. 교단에 서서 설명하는 여교사의 신체 뒤로 칠판 아래 전원 콘센트에 꽂힌 핸드폰을 반쯤 누워 스크롤하는 남학생, 웃옷을 모두 벗어두고 수업에 참여 중인 또 다른 남학생. 어느 중학교 담임교사의 수업 시간 풍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참한 모습이었다. 저 교실만 저럴까? 이어지는 질문에 아마도 많은 교사들이 저 교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메타버스, 스마트 교육, 인공지능 교육, 블랜디드 러닝 등 온갖 기술적 진보에 휩쓸려 교육 분야에서 뭔가 대단한 것이 이루어질 거 같은 환상이 난무하는 시절에 저 한 장의 사진이 필자에게 던진 질문은 바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였다. 똑같은 질문을 몇 년 전에도 했었다. ‘힘 있는 지식(Powerful Knowledge)’을 주창했던 마이클 F.D. 영을 읽을 때였다.
혼란과 좌절의 시기에 마이클 F.D. 영의 사회적 리얼리즘 논의를 읽어가는 과정은 무척 고단한 일이었다. 어느 부분에서 동의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느낌표와 물음표 찍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사실 느낌표와 물음표의 무한 순환은 어린이들과 생활하는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교직 경력 20년이 더 지나도록 갈피를 못잡고 갈팡질팡하는 일들이 날마다 벌어지니, “사회정의를 위한 힘 있는 지식”의 실재성이 어디에 있냐고 담벼락에 대고 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국가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내용체계와 성취기준,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한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교육과정 재구성 논쟁에서 담론의 지지부진함은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은 의욕마저 상실시킨다. “극단적 상대주의”와 “병렬적 회의주의”에 빠진 모습이랄까? 통합교과 중 바른생활 성취기준 중에 “가족과 친척 간에 지켜야 할 예절을 실천한다”는 성취기준이 있다. 이 예절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단 교과서는 가족 구성도를 보여주며 친척간의 호칭을 익히도록 하고, 식사 예절로 수저 사용법을 예시해 놓고 있다.
극단적 상대주의와 병렬적 회의주의 사이에서
가족 구성도 그림 하나만 봐도 무수한 의문이 떠오른다. ‘정상 가족’의 모습을 아주 정상적으로 상정한 저 그림은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보편적인 것인가? ‘친’가와 ‘외’가의 명칭에서 친가에는 ‘친’이 붙지 않는데 ‘외’가에는 친절하게 ‘외’가 붙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불온한 자의 심성인가? 요즘 아이들에게 이모는 유치원 이모, 동네 이모, 가게 이모 너무 많은데 이런 현상을 잘못된 것으로 가르쳐야 하는가? 이것이 힘있는 지식인가? 덜 사회화된 지식인가? 과잉 사회화된 지식인가? 이렇게 삐딱한 교사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교사 자신의 해석과 판단으로 교육 내용을 수정할 권한이 없을 때 그 가르침에는 힘이 있을 수 있는가?
식사 예절로 제시된 수저 사용법만 해도 그렇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똑같은 1학년이지만 15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저를 잘 사용했다. 특히 숟가락을 이상하게 잡고 밥을 먹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젓가락 사용법만 몇 명에게 가르치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 1학년 교실은 젓가락을 제대로 사용하는 아이는 극소수이며, 숟가락도 이상(?)하게 잡고 있는 아이들이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이쯤 되면 불쑥 떠오르는 노랫말이 있다.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 잘 먹나요?”
수저 사용법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인가?
어쨌든 교육과정에 나오니까 가르치긴 한다. 숟가락 잡는 법을 가르치고 숟가락으로 물을 떠서 옮기기, 공깃돌을 떠서 옮기기 같은 것을 하면서 익히도록 한다. 젓가락으로 공깃돌을 옮겨보고 작은 젤리를 집어 보고 그렇게 ‘놀이’ 중심으로 가르친다. 그 다음 학교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 습관대로 먹는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해야 하니까 밥을 먹으며 한 마디씩 한다. “개똥아, 숟가락 제대로 잡아보자.” “소똥이도, 말똥이도, 닭똥이도...” 의무감에서 시작한 것이 이쯤 되면 자괴감으로 변질되는데 그때 또 다시 머릿속에는 이 노랫말이 떠다닌다.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 잘 먹나요?” 그래서 그런가 아이들 대부분은 거의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숟가락만 사용해서 밥을 먹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 중 절반 이상은 숟가락도 ‘이상하게’ 잡고 먹는다.
수저 사용법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인가? 수저 사용법은 힘 있는 지식, 기능 혹은 전통인가? 수저 사용법 때문에 밥을 먹을 때마다 잔소리 같은 잔소리를 해야 하는 교사의 심정은 절대 편하지 않다. 일주일 쯤 하고 그만 둔다. 실천과 내면화는 딴 나라 얘기다. 그러나 수저 사용법이 힘 있는 기능이자 전통으로 제대로 잘 가르쳐야 한다고 경계선을 만들어 준다면 나는 좀 더 확신을 갖고 잘 가르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학부모의 민원이나 항의 앞에서 그 경계선은 여지없이 무력해진다.
회의감이 회의를 불러온다.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많은 지식과 기능들이 그렇다. 가위질을 잘 못해도, 풀칠을 떡칠로 만들어도 괜찮은 것인가?, 연필 잡기, 선 그리기, 따라 그리기, 주변 정리하기, 가방 정리하기, 경청하기 등 모든 기초적 기능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무너져가는 것 같은 이 경험은 착각인지 몰이해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도록 한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나 받아올림이나 내림이 있는 덧셈과 뺄셈을 계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지도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모순인가? 국(영)수 중심 입시교육인가? 삶의 기예보다 인지적 기능에 편중된 교육인가? 기초 학력 보장을 위한 당연한 책무인가?
완전히 교수화된 사회, 교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낸 완전히 교수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논어의 경구는 이미 옛말이다. 조그만 스마트폰 하나로 원하는 스승을 방구석에서도 찾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기술의 진보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이미 흥하고 있는 스마트한 처방들을 살피는 과정은 무척 고단한 일이다. 그 기술적 진보를 만끽하기 위해 학생은 수업 중임에도, 교사와 다른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고, 충전 중인 그 잠시도 기기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내가 스마트폰으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차고 넘친다.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부터 방과후 선생님, 학습지 선생님, 온갖 학원 선생님에 막강한 유튜브 선생님까지, 그 사이 어딘가에 학교가 있고 교사가 있다. 교사에게 법령으로 강제하고 있는 국가 교육과정은 애석하게도 우리 아이들에게 ‘힘있는 지식’이 되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 조회수 올리고 인스타 팔로워 늘리고 틱톡 조회수를 늘리는 것이 더 힘이 있다. 그리고 상위 20%의 기득권층은 국가 교육과정을 넘어선 최고 등급을 향해 학교 밖에서 매진하고 있다. 그런 시대에 우리 말글살이를 가르치고, 영문법과 수학적 원리, 논리적 사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은 유효한가? 유효하다면 경계를 세워야 한다.
뭐가 잘못인지 몰라.
중학교 3학년 교실, 서로 사귀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앞뒤고 앉아서 수업 시간에 끊임없이 스킨십을 한다. 심지어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여학생 볼에 키스를 한다. 교사가 칠판에 필기를 하고 있다거나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 그러는 게 아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보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도 버젓이 그렇게 한다. 학생들은 킥킥 거린다. 여러 교사들이 지적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우리가 떠든 것도 아니고 수업 방해를 한 것도 아닌데 왜 혼내는 거야?” 몇 번 얘기해도 달라지지 않는 그 학생들에게 더 이상 잔소리하는 교사들은 없어졌다고 한다. “포기한 거지. 엄마, 나 같아도 포기해.”
어쩔 땐 나도 포기하고 싶다. 그나마 담임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절대적인 초등학교 교사인 나도 어쩔 땐 포기하고 모른 척 하고 싶다. 그런데 어제도, 오늘도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잔소리 같은 잔소리를 한다. 이 진심이 어딘가에 닿길 간절히 바라면서.
출처 : 실천교육교사모임(http://www.koreateachers.org)
원글 링크: https://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