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대련"(大連)으로 향한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날이다.
"대련"(大連)으로 가는 길옆에는 새로 만들고 있는 고속철도가 따라온다.
중간의 휴게소.
기차(汽車)가 뭘까? 하고 물었더니 지동차를 말한다고 한다.
자동차가 왜 기차(汽車)인지 모르겠다.
도중에 공동묘지인지 가족묘지인지는 모르지만 묘지가 있다.
"父恩重如山"이란 글씨가 눈에 띈다.
일행이 휴게소에서 샀다며 먹는 꽈리를 하나 준다.
별로 입에 당기지 않아 먹지는 않았다.
"대련"(大連)에 도착하자마자 "성해광장"(星海廣場)으로 간다.
"성해광장"(星海廣場) 1993년 7월에 조성하기 시작해서
1997년 6월 30일 완공된 광장(廣場)으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베이징(北京)에 있는 천안문광장(天安門 廣場)의 4배 규모인 176만㎡에 달한다고 한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갓난아이부터 100세 노인까지 1000명의 발자국이 새겨진 80m의 靑銅길이다.
영어와 일본어의 해설은 있지만 우리나라의 말로는 설명이 없다.
100세 노인부터 한살바기 어린이, 그리고
각종 업계(各種 業界)에 종사하는 대표적인 인물(人物) 1000명의 발자국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대련(大連) 시민이 여러 난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뜻이 담겨있단다.
많은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자신의 발과 비슷한 족적(足跡)을 찾아서 대본다.
발자국 조각 끝에는 두 어린이가 바닷쪽을 향해 손짓하며 바라보고 있다.
"대련"이 세계로 진출하는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공원 입구쪽을 보면 광장 가운데 한백옥(汉白玉)으로 만든 화표(华表)가 보인다.
화표(华表)는 중국의 전통 건축에 사용되는 기둥을 말한다고 한다.
천안문의 화표보다 10m나 높은 19.97m로,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사진은 미처 가까이 가지 못해 다른 분의 사진을 대신 올린다.
청동 발자국길을 지나면 양쪽으로 책을 펼쳐놓은것과 같은 큰 조형물이 있다,
이곳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도 있고, 끝까지 올라가 주변을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아래는 악기를 연주하는 4중주 연주단이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람들은 앞의 마이크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공원 끝의 바닷가.
저 앞으로 바다를 가로 지르는 다리를 놓고 있다.
다리가 완성되면 또 하나의 명물이 되겠다.
이곳에도 유람선을 운영하고 있다.
바닷가 광장 바닥에 앉아 있는 청년 청동상(靑年 靑銅像).
이 동상옆에 앉아서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광장이 너무 커서 걸어 다니기에는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단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거나 저와 같은 마차를 타고 도는 것이 좋단다.
잔디광장에는 각종 운동선수들의 움직임을 조각해 놓았다.
앞에 보이는 아파트가 "국보아파트"라고 하는 중국에서도 아주 비싼 아파트란다.
홍콩의 유명배우 "유덕화"도 이곳에 별장으로 한 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충 구경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점심은 생선찌게를 해서 먹었다.
저녁은 비행기에서 주는 빵 한덩이가 전부니 점심을 든든히 먹어야지,,,
우연히 천정을 보니 큰 거울이 방 전체를 보고 있다.
카메라를 대보니 딱 맞는다.
해가 질 무렵 인천 상공에 도착을 한다.
가보고 싶었던 백두산.
거기에 "광개토대왕릉"과 "대왕의 비석", 또 북한의 마을을 직접 볼 수있는 여행이였다.
다만 우리나라를 통해가지 못하고 중국 땅을 통해서 가야 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리고, 백두산의 야생화를 많이 못 본 것도 못내 아쉽다.
언제 다시 가 볼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