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한 스승을 만났습니다.
스승님 힘이듭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 벽에 부딧혔을때는 원점으로 돌아가 보거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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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벽돌 -.
소달구지에 벽돌을 실어 가네요
아마도 1970년대 중반이니 새마을운동(1970. 4. 22 시작) 때가 이닐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미소는 변함이 없어 보이네요.
그때는 동네어귀에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딱지치기, 자치기, 쥐불놀이
여자아이들은 고무줄같은 놀이를 할때였죠
기와집에서 양옥집이라는 새로운 주택공법으로 바람이불었었죠
아버지가 집을 지으실때 벽돌을 몇장씩 날라드리고,
시멘트와 모래를 재미삼아 섞어보기도했던 기억이 어렴풋 하네요
아파트 개발로 흔적없이 사라진
학창시절의 우리 동네... 우리 집...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보단
한편으로 좋았었던 것 같은 기억들
가족들과 이웃들과 친구들과 함께 지냈던
우리집은 어디에 !
무술은 통한다 -.
운동이 좋아 학교가 파하면 도장으로 향했다
당시 이소룡, 성룡, 소화자, 원진 등등의 배우들로
홍콩영화가 붐을 이룰때였다.
내가 그린 브루스 - 리
고 3 때 시라소니라는 액션 영화에 오디션을 보았는데
강수연씨가 몇학년이냐고 물어보았다.
사실로 대답을 하였고, 남궁원씨가 영화배우될래? 대학갈래?
꾹 입을 다물었고 결국 케스팅 되지않았다.
맘 둘곳이없어 그랬는지 정말로 무술에 빠져들어 살았다.
독수리 자세
1993년 홍콩에서 하사부를 만나다.
황제사자 하늘을 날다.
당시 홍콩배우 알란탐과 함께
한국에 돌아와 사자무술팀을 결성
1994년 북경에서 중국무술 국가대표 코치 잉퀘이와
광주 전국체전 출전 - 장권, 도술, 곤술
전국 오페라 순회공연단 무술팀으로 참여 - 분장실에서
공연중 무술씬 5분을 배정받았다 - 무술팀원들과
극중 선화공주와 한컷
정리해보니 재미있었고 나름 자유로운 영혼이었네!
공연 기획을 제안해 오는 곳들이 제법 있었지만 광주 비엔날레공연을 끝으로
이런 시간들을 아쉽게 떠나보내고 장교로 군에 입대하게된다.
대한민국 화이팅 !
26살에 군 입대 - 유격훈련중
무술을 해서인지 많은 동기들중 혼자 특전사 707 대테러 특수임무대대로 선발되다
격파 - 아, 또 격파- , 처음도 끝도 정신집중
특공무술 훈련장- 합참의장님
테러진압 훈련을 이수하고 - 백호용사상 앞에서
밥먹듯 헬기를 많이 탓다 - 지형추적비행
훈련중에 팀원들과 한컷 - 소음총과 야시장비
수중폭파대 지옥주 훈련중 - 한주간 안자고, 안먹고, 바다와 싸운다.
태풍이 불던 어느날 고무보트가 전복되어 4시간 동안 표류하였지만
결국 혼자힘으로 살아 나왔다.
항공기 테러진압훈련 - 피랍 항공기에 침투하여 인질을 구출하는 긴급작전
내가 그린 그림 - 레이져 빔 조준
해상훈련 - 동해, 서해, 남해 어디든 접수한다.
스나이퍼 - one shot one kill
전진기지 - 총구가 벌겋게 달구어질 때까지
러시아에서 - 알파 특공대
15년전 강철같은 맨몸 체력단련 - 팔 벌려 뛰기 1만번
부 팀장과 동해바다 해상침투 훈련장에서
전역하기 전에 - 바람의 파이터 - 라는 무술인의 일대기를 그린
무술영화배우 오디션이 있었다.
1500 여명이 응시를 하였고 3차에 70명, 4차에 15명, 5차 오디션에 5명이 남았었다
그래서 발탁되지 않았다.
이렇게 7년여의 군 생활을 마감하였다.
대한 민국 군인 화이팅 !
집짓기의 그 시작 -.
전역 후
이것 저것 생각않고 지하로 갔다.
어찌보면
생각이 많았고,
어찌보면
아무생각없었다.
언젠가
이런집을 짓겠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처음엔 하루하루가 너무 무료했고,
주변엔
친구조차 없었다
그런 시간이 흘렀고,
점차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스스로 정리가 되어갔다.
밤에는 실내건축/ 부동산 공부를 하였고
주말에는 서울/경기도로 목조건축을 배우러 다녔다.
지금이것에 5년을 열중하기로 맘 먹은터라 집중하기로 했다.
와이프는 이런 신랑이 안타까웠는지 어느날부터 도시락을 싸주었다.
아무말도 안했지만,
그 도시락은 시간들을 이겨내도록 이끌어준 등대와도 같았다.
아무런 배움도 없었지만 스케치한데로 만들기를 실습했다
아침에
6시에 작은집에서 나오면
밤 11시에 들어가는것이 작은 목표였다.
처음엔 할일들이 없는것 같았지만
고독이 나에게 알려준것들이 있었나보다.
점차 계획이 잡혀갔고
뭔가 소득은 없어보였지만 열중하고 있었다.
- 콘솔 흉내 -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졌고
삶의 방향을 설정해준!
그리고
그런 준비들이 지금은 너무나도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거기엔
고독과 소외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들을 즐기고 있고
그리고
그것들이 때론 필요함을 알았다.
인테리어와 집 -.
1층인 만큼 거실확장 후 주택처럼 인테리어
식탁등 디자인 - 물론 목공도 직접하고 검은색상의 석재를 세팅
현관전실의 벽돌패턴 인조석을 직접붙이고
줄눈을 시공하는데 줄눈 넣는게 왜이리도 오래걸리던지
나중엔 고무장갑을 끼고 손으로 넣었던 기억
현관중문쪽 디자인 -
대부분의 디자인을 프리스케치로 하고
당시에 흔치않던 클래식한 장식들을 구해
직접 목공을 하며 느꼈던 뿌듯함들
이 사진을 보면 2004 그때의 감흥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지붕이 복잡헀고 거실천정이 높았고 커다란 벽난로를 세팅하느라 고생했던 기억들
하지만 저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들이 되어버렸네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누나의 도움을 받아 유럽풍으로 디테일을 잡아갑니다.
2층 작은거실을 엔틱하게 꾸미고 핸드레일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면 웅장해보이는 거실
이렇게 계룡산 주택은 완성되었고 제 추억속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사진들을 들추어 그때의 우여곡절들을 회상해보며 가장 인상에 남는 사진한컷
- 겨울날 화창한 했살이 비추던 동학사주택 -
지금봐도 원목과 벽돌의 조화가 편안한 느낌이네요
중문에 포크아트 핸드페인팅
거실을 확장하여 테라스 분위기로 연출
아트월에 벨벳을 감아 은은한 조명을 더욱 우아하게
그때당시 힛트였던 나만의 노하우 코너목 클래식장식
어느날 리빙TV라는 곳에서 전화가왔다.
주택 디자이너로 인터뷰를 하고싶다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당시 시공을 마친 주택에서 촬영을 하였고 약 5분간 TV에 방영이 되었다.
천정을 높게 원목으로 디자인을 하였다.
아트월은 내가 좋아하던 에코스톤으로, 마루는 티크원목
주방바닦은 대리석으로 패턴을 넣었고
천정등밖스를 아치로 디자인하여 벽면의 벽지와 같은칼라로 매치시켰다.
지금 생각을 떠올리면 강렬한 와인색 이었다.
유럽풍 ! 유럽풍 ?
궁금하여 떠났다
아르누보펠리스 이집의 압권은 대리석시공
기둥과 바닦의 대리석들 일일이 사이즈를 디자인하여 공장에 주문하였고,
보이는 도어도 직접 만들어
지하 작업실에서 도장을 하여 세팅하였습니다.
예전에는 마룻대 작업이라하여 대들보(리지보드)를 저런방식으로 작업을 했었다.
전용 설계프로그램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지붕 방수포까지 설치하니 한결 후련해지며
아마 퇴근후 식사를 하며 축하주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2000년도 중반에 유행하던 시멘트사이딩과 원목사이딩으로 외장을 마무리 했다.
당시에 카키색 스테인이 없어 쑥색과 백색을 혼합하여 나름 만들어 보았다.
시원하게 높은 거실천정 전원주택의 필수 요소이다.
어느해 겨울 스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중 잠깐들러보았다.
건축주 왈 집이 커서 난방을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따뜻하고
보일러가 하루에 한번 밖에 안돌아 간단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 방도 참 손이 많이도 갔네요 - 공주님을 위해
당시 수입싱크대 뷔셀 일부밖에 안보이네요. (주황색)
포크아트 강사인 집 주인
당시 수원대학교에서 대체의학을 강의하시던 교수님 청학동 농막
1박2일 봉사활동
미리 준배해 놓으신 재활용 재료들로
자그마한 농막을 함께 짓고있는 모습...
시간이 촉박하여 야간에도 작업을 했는데
하늘위로 보이던 청명한 별들
간간히 시장기를 달래려 마시던 한방차와 간식들
지금보면 정말 뜻깊은 시간들이었네요.
어느정도 마무리하고 장태수 교수님과 한컷
거의 10 여년 전이니 저또한 푸르르네요.
당시 중후한 분위기를 좋아하던 집주인 -
신발장을 목공제작하여 인테리어 필름과 금장몰딩작업을 했습니다.
당시에 아파트 리모델링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고
일을 많이하고 과로를 하면서도 젊음으로 이겨 나갔네요.
또 장마가 겹쳤다.
자주 비를 맞아야했고 팀원들도 지쳐갔다.
비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강행해야만 했는데
이놈의 장맛비는 내 맘을 모르는듯 했다.
외벽에 이중단열을 하고 시멘트 사이딩을 시공하였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그렇게 하고싶었다.
32평의 주택
전면부가 법사면 이어서 촬영각도가 안나온다.
현장 벽에 그림을 그려가며 디테일을 정리해 나가곤 했죠.
지인분의 집 인테리어 - 건강한 에코스톤으로 시공
점차 경험과 안목이 쌓이며
편안한 느낌으로 장식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게 되네요.
목공을 하고 무늬목을 시공해야하는데 시공자가 없어 직접시도 합니다.
연구단지쪽의 벤쳐회사 일들이 자주 들어왔었죠.
장앤리/ 파워21/ 나드리가구/ GNB어학원/ 갤러리아 백화점 등등
바이오 연구실..
GNB어학원..
갤러리아 모피매장..
2008년 후반 -.
현장에서 알수없는 불이 나
맘을 좀 다쳤었죠.
한 1년 이상 주로 혼자를 택했습니다.
주로 사람이 없는곳에 저는 가 있었고
그런시간을 아마도 1년은 넘게 보낸것 같네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었는데 혼자 걸었죠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고. 그렇게 저 산도 넘었네요.
봄이되자 주로 호수에 가 있었고,
전에는 몰랐던 풍광들이 보였으며
자연은 아무런 말없이 저를 품어주는것 같았습니다.
참 열심히 일했고,
고생을 고생고생이라 여기지 않고 살아왔는데..!
어느날 오프로드를 하다가 진창에 빠져버렸습니다.
제 신세가 저 차처럼 느껴졌고
사는게 허무한 적도 있었네요.
어느 겨울설악산 등산을 했고
이제는 세상으로 다시 나가고 싶어졌습니다.
깊은곳에서 그동안 잠자고있던 열망이 꿈틀거렸고
다시 망치를 잡기로 했습니다.
놓았던 일을 다시 하려니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죠..!
그러나 저에게는 열정과 기술 이 남아있었습니다.
그것만을 의지하고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
.
지인이 공사를 의뢰하여 다시 설계를 시작하였습니다.
인테리어/ 공조/ 집기류/ 주방세팅 까지 일을 맞았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집중하였습니다.
도착한 목재를 받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던 기억...
아이들이 노는 공간이라 더욱 세심해야했죠
목재를 가공하고
가구를 제작하고
의견을 나누고 늘 현장에서 살았습니다.
1년여를 쉬었지만 기술과 감각은 살아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네요.
친환경 소재를 고집했고 아이들이 노는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 공사를 통해서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되었는데
공사를 의뢰해 주신 지인에게 감사를 드린다는 인사도 못한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다시망치를 잡으며 왠지 대칭형의 구조를 고집했었다.
1 - 2층을 구분하여 2세대가 거주하도록 설계하였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다가 한국에 잠시 머무르며 함께한 친구 -
힘든일을 안해봤었고 더위까지 겹쳐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다.
팔에 붕대를 감은상태에서도 목조주택에 열정이 넘쳤었다.
후에 일본을 견학할때 안내해준 이 친구에게 감사한다.
매일같이 현장에서 뛰다보니 사진이 거의 없다.
예산이 부족하여 이정도로 마무리 한다.
그래도 주택의 느낌은 살려보고 싶었다.
타일도 직접 붙이고 거의 모든공정을 직접 하였다 .
여름에 시작된 공사는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봄에 마무리 되었다.
도심 주택단지의 토지를 매입하여 아늑한 주택을 지었다
이 집을 지으며 포크레인 작업이 제한되는 좁은 곳으로 흙을 옮기느라
한 1주일은 삽질과 질통을 매었다.
그때 흙 이란것에대한 느낌..!
더운 여름 땀이 비오듯했지만 정말 마음이 편했다.
등에 질통이라는 통을매고 조금씩 옮겨갔는데
조금씩 채워지는 빈공간이 내 인생과 비슷해 보였다.
나에게는 그 흙들이 특별해 보였다.
집을 지으며 느끼는 몇가지
- 집 이란게 흙에서 시작하여
하나하나 세워지며 그 과정에 희노애락을 거쳐 지어진다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살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내가 짓는 집들이 나에게는 내 삶처럼 특별한가보다!
2011년 도심 단독주택단지의 마음에 드는 토지를 매입하였다.
원래 스타일대로 기초 콘크리트, 골조, 지붕 및 외장, 수도배관, 내장 목공 등등
대부분의 작업을 직접 하였다.
현관중문을 열고들어오면 왼쪽은 거실과 주방 오른쪽은 안방과 드레스룸으로 동선구분
주방과 거실 사이에 벽난로를 배치 - 가끔 삼겹이나 꼬치구이도
거실에서 마당을 나갈 수 있게하고 부담 없을 정도의 천정을 구성
- 이때 적절한 조망/ 채광 고려
아주 오래전 만든 철망장을 이사한 후 카키색으로 리폼
계단을 통해 2층으로 가볼까요 - 1단 1단 넣은 작은타일! 손은 좀 가더라구요
2층 복도 - 테라스로 나가볼께요
가끔 이불도 널고 먼 산을 감상하는 여유도 느껴봅니다 - 야외 카페처럼
외벽에 아이보리 칼라의 스터코와 어울리게 고벽돌로 치장
작업할 땐 이놈의 집 언제 다 지을까! -
하지만 완성 후의 자긍심/ 보람 이것 땜에 짓나봐요
이사 후 아이들과 파티 - 아이들은 벽난로가 제일 맘에 든다네요
그동한 고생한 발을 위해
꿈 정말 내몸 속 어딘가에 숨어만 있는 단어인가요
정말 많은 공사를 해 왔지만...!
내 집을 짓고나니 이제서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은 뭘까?
집 이라는것에 대한 공부가 시간이 지나니 집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알게 해 주더라구요.
항상 해 왔던 고민 좀 쉽게 지을순 없을까?
.
2010년 어떻게 인연이되어
80평 가까운 집을 거의 둘이서 지었었다.
이 친구는 와세다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일본에서 20년 정도 사업을 했었다.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목조건축에 관심이 많다며 찾아왔고
몇 달간 함께 일하며 정말 거품을 물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하였다.
2013년 한국에서 함께 집을 지었던 이 친구의 도움으로
일본의 목조주택을 공부하기위해 그냥 도쿄행 비행기에 올라탓다.
대부분 걷거나 자전거로 동네 골목들을 돌아다니며,
이런 현장들을 찾기가 생각보다 힘들었다.
노후건물 철거
독립기초 - 콘크리트 마감상태가 정말 깔끔하다.
목재 골조 - 프리컷(설계도면에따른 대형 공장에서의 가공법)으로 가공되어 입고되므로
현장에는 톱밥가루도 거의 없다.
규격이 커지면 볼트등 별도의 하드웨어로 체결한다.
못은 사용하지 않는다.
1층 장선작업과 기둥들
2 * 4는 샛기둥 방식인데 이것을 보면 일본은 기둥보 방식임을 알수있다.
안전 보조 장치들 - 지붕에서의 슬립을 예방하는 설치들
외장재 - 세라믹 사이딩
오래전부터 일본에서는 가장 많이사용 (정말로 다양한 패턴이 있다-어찌어찌 메뉴얼 북 확보)
.
.
.
어느날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
집을 통해 삶을 배우고 그속에서 어른이 되었다
아버지때부터 시작된 인연.
아버지또한 집짓는 일을하셨고 나는 가끔 벽돌을 나르고 모래를 채로 걸러보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을 알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 들어갈즈음 아버지는 어려움을 격으셨고 힘들어 하셨다
모든가족이 갑자기 작은방으로 이사를 했는데 옷조차 걸곳이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벽에 못을 잘 박지 못하셨다
나는 우리아버지는 대단한 건축가라고 생각했었는데 ...
아버지는 건축회사 사장님 이셨지만 실제로 집을 짓는일은 안하셨나보다 .
유년시절의 기억은 잘 가시지 않나보다
특전사707대대에서 대위로 전역을 하며 특수직종에서 스카웃제의가 있었지만
나는 그냥 집짓는 일을 하고 싶었다
도와줄 사람이없어 막연했다. 하지만 마음으로 포기하지말자고 다짐을 하며
한계단 한계단 올라갔다
아무것도없이 결혼하며 10년 후에 대궐같은 집을 지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 무진 노력했다
결혼 10년이 되는해에 바로 이집을 거의 모든 공정을 직접 지어냈다
짓는 내내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다짐했다.
모든 아빠들이 가족들과 함께할 보금자리를 직접지을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
내 집은 내가 짓는다 는 이렇게 내 속에있는 상처로부터 시작된것 같다
저 그림처럼 꽃 뒤에가려 잇고지냈던 아버지와함께 집을짓던 추억이 아련하다
또 막연하게 혼자서 시작한다
그래도 저 대문을 열고 들어가리라
내 마음속에 있던 공허함이 저문을 열면서 채워질것을 이제야 알았기에
저 대문은 직접 집짓기를 갈망하는 모든 아빠들과 함께 열겠다.
앞으로도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저렇게 좋은계단일꺼라는 상상을 하며 이글을 쓴다
문경 퍼머컬쳐를 통해 저 매듭과 같이 단단한 고리를 만들고 싶다
이것이 시작이기에 어디든 달려가고 함께 집을 지으려 한다
아이들이 자연과 소통하고
넓게 펼쳐진 퍼머컬쳐의 정원식 텃밭에서 우리의 땀을통해 꿈이 커가고
이렇게 이 길을 통해 퍼머컬쳐마을은 시작되리라
여기서 집을 함께 짓고 정원식텃밭도 가꾸며 좋은 대안마을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지면 이책을 쓰고싶다
혼자 쓰지말고 많은 아빠들과 함께 쓰여지길 바란다.
그렇게 살고싶다
긴 글 읽어주신 회원님들 감사합니다.
님들도 직접 지으실수 있게끔 특별한 시스템(유로 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2014년 봄부터 문경퍼머컬쳐에서 워크샵을 할 계획입니다.
참여하셔서 공유하시고 손쉬운 집짓기를 체험해 보세요
프로젝트 - 내 집은 내가 짓는다 -
http://cafe.daum.net/antiquehousing
그동안 살아온 곳을 대략 정리해 보았습니다.
좋았던때도
괴로울때도 있었지만
이제 다 지난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지난 시간을 정리해보니 별것도 없네요.
그런데 마음은 후련합니다.
이제는 과거를 살지말고
현재와 미래를 향해 또 다른 도전을 해보려 합니다.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김상사님 - - - - - - ! ?
한~~~참 읽어 내려왔습니다.
양사부님께서 걸어오신 길도 참 <다사다난>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아드님, 그리고 사모님, 이렇게 네식구 한자리에 모여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양사부님의 집이야말로 양사부님의 안식처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보살피고 키운 꽃도 예쁘지만 꽃그림도 정말 예뻤습니다.
정리를 하고나서는 모든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산다는것에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되더군요.
늘 답은 나에게 있었는데...
정말 훌륭하신.반인생의,여정이 한마디 한마디가 땀과열정과 노력의 좋은결과물까지 잘보았읍니다
정말 대단하시고,,산교훈들을 잘배우며가는듯해요,,짓지으시는박사님 못지않게 훌륭하시네요,,존경합니다
회장님의 인생성공 사업의 전망도 무한히 크네요,,저도작은소망을 늘가지고 살아본다는,희망이생깁니다
감명깊게 잘 새기며,,,늘 큰 사업이되시길 빌며,소박하심까지 닮고싶습니다,,늘 건강아끼시고, 화이팅합니다~~^-^
장공님의 긴 공덕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저도 무엇인가 하고싶은데.. 글 잘 읽었습니다.
여름산님 그 무엇이 이미 이루어진건 아닐까요?
한편의 글로써 모든것을 나타내기란 힘든 일이지요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님의 삶에 대한 열정이 읽혀집니다.
저 역시 쉽지만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많은것 같아요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새로이 집을 지으시겠다는 말씀을 하시기에 인터넷을 기웃거리다
님의 글을 읽고 이렇게 댓글을 남김니다.
많은 지도 편달 부탁 드립니다.
저도 참고로 인터넷 카페를 운영을 하고 있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방문을 부탁 드려 보면서
집을 짓는데 필요한 정보를 부탁 드려 봅니다
다음카페 "하얀 민들레의 꿈" 이라는 곳입니다
http://cafe.daum.net/true-health
흐미님 좋게 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꼭 시간 내어 하얀 민들레의 꿈에 방문하여 공부하도록 할께요
아주 잘 쓰여진 자서전을 한편 읽은듯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아주 멋진 인생을 살고 계신듯 보이고, 꿈이라는 말에 마음이 동합니다.
문득, 저도 아직 많지 않은 삶이지만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좋은 인연이고 싶습니다. ^^*
저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저도 대전에 살고 있습니다.
양사부님 카페를 자주와 봤지만 오늘 장문의 멋진글솜씨와 아름다운 집들.
세월의 고뇌와 땀과 열정을 보았습니다.
가치있는 분이시고 특별한 아주 귀한 분이시네요.
잘 보았습니다.
나이는 제가 선배인듯한데 양사부님 글을 읽고 철학을 보니
고개를 숙여봅니다.
감사합니다.
가람과뫼님 왠 말씀이세요.
누군들 돌아보면 저 정도는 없을까요?
올해 문경퍼머컬쳐를 시작한지도 100일이넘어갑니다.
어떨때는 설레다가도 어쩔때는 지루하네요.
장마까지 겹치니 휴식을 하고 싶어집니다.
늘 양사부님 같은 분을 알게되는게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며 위안인데
카페에서나 알게됨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뵐수 있으면 좋겠네요.
술은 못하지만 식사는 제가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람과뫼님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회원정보를보면 지역이 제주도로 되어있으십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만나실 기회가 있겠죠.
다시 열정을 불러일으켜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살았습니다.
제주도에서 펜션사업합니다.
5년되었는데 이제 접었습니다.
6월30일 부로 매매되었네요.
이제는 무엇을 할까 잠시 여행좀 다녀와서
인생2장을 살아보려구요.
걱정이긴합니다만 인생 뭐 있습니까
어디로 가면 양사부님 뵐수 있을까요?
국밥한그릇에 깍두기 깨알같은 대화나 하게요.
삶이 곧 인생이며 인생이 곧 삶 아니겠습니까?.
둥글게 살아왔듯이 그렇게 달려보려구요.
일단 매매소식에 축하를 드립니다.
저 또한 건축업을하며 벌려두었던 가지들이 잘 정리들이 되질않아 가끔 -무소유-의
교훈들을 되세깁니다.
주중에는 문경퍼머컬쳐에 있습니다.
문경시 가은읍 성저리 242. 연락처 010 - 6437 - 5754
일할때는 전화기를 두고 다니니 미리 문자로 연락주십시요.
저도 뵙고싶고 펜션에대해 궁금한것도 많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곳은 대전입니다
공직 정년을 2년 앞둔 사람으로 귀촌에 대한 로망이 있어 카페을 찾고 정보를 나누고 나름대로 준비하면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양사부님의 카페도 가입하여 글도 잘봅니다 글을 보면서 나의 지난날을 회상하게 하는듯 하여 더 정감이 가기도합니다
우연히 귀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양사부님의 군동기 이대진 동대장님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인연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하루. 그리고 또 다른 내일
걷고 쉬고 달리고 ....
양사부님.
문경퍼머컬쳐에 대해 읽어는 보았습니다.
분양가라든가 여러가지 알고 싶네요.
이틀후 백수인데...^^
그곳에서 같이 일을 할수 있는곳인지도...
목조나 통나무주택 관심이 많습니다.
또 다른 내일은 어떨가요...
설레고 두렵고 짬뽕이네요.
화이팅....
교황방문때문에 부대원을 일찍 출동시키고 썰렁한 사무실에 혼자 앉아 카페글을 읽다보니 친구가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거라 믿고^^ .... 청주에 올일 있으면 꼭 연락해라
부족함을 이해해주고 서로 좋은시절ㅡ어려운시절을 함께했던 친구.
앞으로도 좋은사람으로 기억될 친구.
가슴 찡함이 밀려온다^^ 고맙고~~ 조금만 더 힘내자.
오늘 퇴근해서 옛생각하며 막걸리 한잔해야지^^
인생 잘 사셨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기대해 봅니다~^^
멋지십니다. 인물도 좋으시고 기대 만땅입니다.
역시 멋찌네요^^
부럽네요 도전하고 이루고
대단하시네요. 건강하시고, 저도 제 길을 꾸준히 가야겠습니다.
요즈음 시대에 보기 드물게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그저 눈만 움직이고 지나갑니다. 입은 다물겠습니다
멋지고 희망하는 삶을 사셨네요.
가르침을 받을수 있길 기대합니다.
대단한 분이십니다. 멋드려지게 사시네요
양사부라고 지은 이유가 여기 있었군요. 특이하게 생각이 되었었는데..
감각도 많으신것 같고.
한권의 책으로 엮어도 좋을듯요.(마지막 글을 보기전에 적어서요 ^^; 이미 책으로 남길 생각을 하셨더군요^^)
스토리도 있고 건축의 지식도 넣고.
형식은 무라카미 하루키 식으로. ^^;
그런데 인상이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아요. ^^;
멋지네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멋지시네요 ^^
원래 건축전공이신 분은 아니군요. 토속건축 하시는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살아 오신 삶을 건축과 연계하여
써주신 글에 끄덕이며
저 또한 작은 집을 짖고 싶어하는 여인입니다
읽으며 느끼고 갑니다
귀한 글...한 땀...한 땀...지으신 귀한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꼭 한 번 뵙고 싶군요. 저 또한 저의 손으로 집을 짓는 것이 꿈이라...많은 것을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청안한 하루되셔요.
배울점이 많습니다. 잘보고갑니다.
시간이 없어서 ㅎ 바람의 파이터 오디션까지 읽고 ... 다시 시간나면 읽어야겠습니다.
양사부라~ 흠
캬~~!!멋지심
잘보았습니다. 인생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대단하세요.감사합니다.
걍
멋지네요~~
잘 살아 오신것 같네요....... ^^*
한편의 드라마를 본 듯합니다. 휼륭하게 사셨네요
멋지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옛생각이 나네요...
멋지십니다~
뭘해도 잘해나가실겁니다..박수세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