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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우 문학회 제1회 해외학술대회 문학기행
도여(道如) 채기병
일정(3박 5일)
가는 날(1월 22일 ,월) 인천 국제공항 출발→치앙마이 국제공항 도착
첫째 날(1월 23일, 화) 치앙마이
메땡 : 뗏목 래프팅→물소마차→코끼리 트레킹
치앙라이
해외 학술대회(문학을 통한 한•태 친선의 밤)→마사지
둘째 날(1월 24일, 수) 치앙라이→황금의 삼각지대(태국-미얀마-라오스 국경일대)
→왓롱쿤(백색 사원)→롱아룬(유황 온천)→치앙마이 시티투어(야시장)
셋째 날(1월 25일, 목) 치앙마이
도이수텝(산상 사원)→싼캄팽 거리(다온→라텍스→우산공예센터→꿀가게)
→마사지→나이트 사파리
오는 날(1월 26일, 금) 치앙마이 국제공항 출발→인천 국제공항 도착
초우 문학회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초우 문학의 도약과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해외 문학 기행을 계획하였다. 첫 번째 국가로 태국이 선정되었고 드디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리 일행은 오후 4시에 인천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제2터미널은 제1터미널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새로 지은 공항답게 시설이 깨끗하고 한쪽엔 갖가지 화분을 잘 진열해 놓아 실내 조경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문복희 교수님께서 다가오시더니 이번 여행기를 쓰라는 임무를 주셨다.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로님이신 백승언 선생님께서 여행을 무사히 다녀오고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하는 출발 기도를 하셨다. 6시 40분에 출발하는 KE 667편 대한항공 비행기는 3,400여km를 비행한 끝에 태국의 치앙마이(Chiangmai) 국제공항에 현지 시각으로 밤 10시 40분쯤 도착 했다. 태국은 한국보다 2시간이 늦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열대의 습한 냄새가 확 밀려왔다. 치앙마이 국제공항은 인천 국제공항에 비해 규모가 작았다. 입국 수속을 하고 짐을 찾아 나오니 한 태국 아가씨가 초우문학회라고 인쇄된 종이를 펴들고 기다리고 있고, 현지 가이드가 나와서 우리를 맞았다.
늦은 시각이라 우리 일행은 대형 버스에 탑승을 하여 바로 숙소로 향했다. 버스를 타자 현지 가이드가 인사말과 주의 사항을 말했다. 자기 이름은 강수안(水安)인데 19년 전에 태국에 와서 생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목소리도 시원시원하고 성격도 밝아서 여행이 한층 재미있을 것 같았다. 3가지 주의 사항을 주었다. 첫 번째는 중요한 것을 잘 챙겨라, 여권은 매일 확인하고, 귀중품을 차량 안에 두지 말고 늘 들고 다녀라. 두 번째는 아무 물이나 먹지 마라, 여기 물은 석회질이 많아서 좋지 않으니 유리병이나 페트병에 담긴 물만 먹어라. 세 번째는 차량이 한국과는 달리 좌측통행을 하니 길을 건널 때, 타고 내릴 때 조심하라고 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아서 나는 자연히 뒷좌석에 앉았는데 차량의 흔들림이 무척 심해서 가이드의 말을 받아쓰기가 힘들었다. 태국의 도로가 이렇게 형편없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도로가 아닌 차량의 문제였다. 이 문제는 여행 내내 계속됐고, 나중에 한 분이 항의도 하였지만 끝내 해결되지는 않았다. 홀리데이 인(Holiday inn) 호텔에 당도하니 12시가 넘었다. 방을 배정받았는데 2018호였다. 2018년에 2018호니 뭔가 좋은 기운이 올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일었다. 가이드가 앞으로 3일 동안 5시30분에 모닝콜이 울리면 일어나서 6시부터 식사를 하고 7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첫째 날(1. 23. 화, 맑음)
5시 30분에 모닝콜이 울렸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6시에 짐을 싸들고 나와 식사를 했다. 난 보통 잠은 잘 못자도 아무 거나 잘 먹어서 그 힘으로 여행을 다닌다.
오늘은 정글 속에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하는 날이다. 가이드가 가는 동안 계속 이야기를 했다. 우선 태국에 왔으니 꼭 필요한 말을 배우면 좋겠다고 한다. 먼저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남자와 여자가 다른데, 남자는 ‘싸왓디크랍(Sa_wat_dii khrap)’, 여자는 ‘싸왓디카(Sa_wat_dii kha)’라고 하면서 스님이 인사하듯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면서 공손하게 하면 된다고 했다. ‘안녕히 가세요.’도 같은 말을 쓰면 된다. 이어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콥쿤크랍Khawp_khun khrap)’, ‘콥쿤카(Khawp_khun kha)’라고 알려 줬다.
여행이 좋으려면 3가지 복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날씨 복, 팀(team) 복, 가이드 복이 있어야 한다는데, 오늘 날씨로 봐서는 날씨 복을 받을 것 같고, 팀 복은 같은 초우문학회원들이 왔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다 가이드 복까지 있으면 다 갖춰지는 건데, 이번 가이드를 보니 그 복도 있을 것 같았다.
태국은 면적이 51.3만㎢로 남북한의 2.3배, 남한의 5.1배가 되며 인구는 약 7,000만 명으로 비교적 큰 나라이다. 태국은 제국주의 시대에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한 나라이다. 지형은 산이 20%, 평야가 80%인 나라로 벼농사가 잘 발달되어 있고, 세계 최대의 쌀 수출 국가이다. 치앙마이가 속한 북부 지역은 산악과 삼림 지역이고, 치앙마이는 타이 제2의 도시로 종교·경제·문화·교육·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태국의 기후는 열대 몬순 기후로 세 개의 계절이 나타난다. 3월부터 5월까지는 매우 무더운 계절이고, 6월에서 10월까지는 우기에 해당하여 기온이 조금 떨어진다. 11월에서 2월은 가장 시원하며 낮에는 덥지만 해가 지면 선선해서 이 계절에 여행을 다니는 것이 가장 좋다.
태국은 1차(농림수산업) 산업과 3차 산업(관광)이 발달된 나라이며, 2차 산업은 미약하지만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서양인들은 태국을 ‘미소의 나라’라고 한다. 사람들이 잘 웃고 다니기 때문인데, 태국의 서민들은 먹을 걱정을 별로 하지 않고 산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의무 교육이라서 애들이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동남아 다른 국가와는 달리 관광지에서 손 내미는 꼬마 거지를 볼 수 없다. 태국 사람들은 코끼리를 가장 좋아하는데, 코끼리는 부귀와 건강,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치앙마이 시가지를 보면 건물의 모양이 다 다른데, 태국에서는 모양이 같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아마도 관광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도시를 빠져 나오면 전통 가옥을 볼 수 있다. 열대지방의 가옥은 고상식(高床式)으로 기둥을 세운 다음 바닥을 지면에서 띄워 짓는데, 낮게는 50cm 정도에서 높게는 수m에 이른다. 고상식 가옥을 짓는 이유는 고온다습한 기후의 영향 때문이다. 바닥이 높기 때문에 지열을 피할 수 있고, 많은 강수와 높은 습도를 견디기에도 유리하다. 건물이나 사원 지붕의 경사가 급한 것도 강수량이 많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야생 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다. 치앙마이 일대의 고상식 가옥은 거의 대부분 1m 이내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 지은 가옥의 대부분은 전통 형식을 따르지 않는 것 같았다.
도시를 벗어나자 농경지가 펼쳐졌는데, 대부분 논이었다. 논의 풍경은 우리나라와 달랐다. 연중 벼농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곳은 금방 수확한 모습이었고, 어느 곳은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채워 놓았고, 어느 곳은 벼가 자라서 파릇파릇했다. 1년에 2~3번 경작이 가능하다고 하니 심고 수확하는 시기가 특별히 없는 것 같았다.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체험장에 도착했다. 체험장 입구엔 ‘메땡 코끼리 공원(Mae Taeng Elephant Park)’이란 간판이 보였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3종류의 체험장이 거의 붙어 있어서 먼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해서 뗏목타기부터 시작했다. 뗏목은 이 지방에서 자라는 대나무를 길게 잘라 15~20개 정도를 가로로 단단히 묵어서 만들었는데,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아서 뗏목 끝이 들쭉날쭉했다. 대나무는 속이 비여서 물에 잘 뜨는 것 같았다. 거기에 나무판자로 길게 만든 조잡한 의자를 올려놓고 앉는데, 의자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탑승 인원수에 맞게 올려놓으면 되었다. 한 의자에 2명씩 앉을 수 있으니 6명이 타면 의자를 3개를 놓는다. 사공이 앞뒤로 한 명씩 타고 긴 장대를 저어 가면서 속도와 방향을 조절했다. 우리는 6~7명이 한 조가 되어 3개의 뗏목을 타고 출발 했다. 구명조끼는 안 입고 타느냐고 했더니 강이 깊지 않아서 괜찮다고 했다.
허원선생님께서 의자에 방석도 없다고 한 말씀 하셨다. 그러고 보니 연세드신 분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가는 것은 힘드실 것 같았다. 그렇지만 배가 출발하니 신이 나셔서 노래를 부르셨다. 처녀 뱃사공부터 시작해서 아리랑, 오솔레미오, 대니보이 등 외국 곡까지 두로 섭렵하셨다. 뱃사공들도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다녀갔는지, 한국 노래를 좀 알고 있고,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알았다. 나무 이름도 말해주었고,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코끼리 똥’이라고 가르쳐 주기도 했다. 흥이 많은 사공은 일을 즐겁게 하는 것 같았다. 중간에 우리 일행들에게 노 젓는 체험을 하라고도 했다. 몇몇 선생님들이 실제로 노를 저으시면서 무척 기뻐하셨다.
메땡(Mae Taeng) 강(메는 강이란 뜻)을 따라서 4km를 탐사하는데 40분 정도 걸렸다. 이 강은 숲이 우거진 정글 사이를 흐르는 작은 강으로 폭이 넓지 않았다. 깊이도 얕았지만 지금이 건기라서 그렇고 우기에 수량이 많아지면 깊어질 것 같았다. 주변 경관이 좋고, 중간에 낮은 폭포도 나타났다. 물은 느린 속도로 흘렀는데, 여울이 나타나면 조금 빨리 흘렀다. 탐사의 끝 지점에서는 황금색을 띠는 대나무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내려서 보니 사람 다리통만한 대나무들이 수십 미터 높이로 죽죽 자라고 있었다. 이동하려고 버스에 올라 창문 밖을 보니 타고 내려온 뗏목을 기중기로 들어 올려서 차에 싣고 있었다. 뗏목 탐사로 뱃사공, 뗏목을 태워주고 내려주는 사람, 뗏목을 차에 싣고 내리는 사람, 차량 운전기사, 기중기 기사, 전체를 관리하는 사람 등 많은 일자리가 생기는 것을 보면 관광 산업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물소 마차를 탔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두 마리의 물소가 끄는 마차에 오르자 천천히 이동을 했다. 물소는 등에 큰 혹이 달려있는데, 흰색, 갈색, 누런색 등 털 색깔은 다양했고 덩치도 소마다 조금 차이가 났다. 나는 누런 소가 끄는 마차를 탔는데, 이 소들은 아주 실한 놈이어서 그런지 앞 마차의 바로 뒤에 자꾸 따라붙어서 마부가 제어를 하곤 했다. 마차 위에는 큰 파라솔을 펼쳐 놓아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열대지방은 연교차보다 일교차가 더 큰 것이 특징이라서 아침과 낮의 기온차가 크게 나타난다. 오늘도 아침에는 우리나라 10월 날씨 정도로 약간 차갑게 느껴졌지만 기온이 빠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지금은 건조한 때라서 한낮에도 햇빛만 피하면 더위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약 30분 정도 마을길을 따라 왕복하는 코스였는데 주변에 공사 중인 곳이 있어서 좀 어수선했고 시골 마을의 전통 가옥들은 많이 낡아 있었다. 물소들은 가다가 아무데나 똥을 쌌고, 다음 마차가 그 똥을 밟고 지나가니 똥 냄새가 많이 났다. ,
이제 마지막은 코끼리 트레킹인데, 2인 1조가 되어 탄다. 나는 허원 선생님과 같은 조가 되어 코끼리 등에 올랐다. 허원 선생님과 잠도 같이 자고, 뗏목과 물소 마차에 코끼리 트레킹까지 같이 하니 무척 친해진 느낌이었다. 등에 올라가 보니 밑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아주 높게 느껴졌다. 안전장치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단단히 잡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은데, 아직 한 명도 떨어진 사람이 없다고 하니 안심하고 타기로 했다. 그래도 계단을 내려갈 때는 앞으로 떨어질 것 같고, 언덕을 올라갈 때는 뒤로 넘어갈 것 같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림이 심했다. 강둑에서 출발하여 메뗑 강으로 내려와서 조금 이동한 후 다시 건너편 강둑으로 올라 산비탈 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다시 강으로 내려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앞서 가는 코끼리 등에 타신 조형자 선생님과 허복례 선생님의 나이를 우리 코끼리 조련사에게 말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나보고도 몇 살이냐고 물었다. 60살이 되었다고 하니 고맙게도 45살 정도로 보인다고 했다. 지금부터 45살로 살아야겠다.
가이드는 코끼리를 학대하는 것 같아 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 코끼리는 야생 코끼리를 잡아다가 길들이는 것이 아니고 사육하는 코끼리를 데려다 시키는 것이라서 괜찮다고 했지만 막상 타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은 안장도 없이 코끼리 귀 바로 뒤 목에 올라 앉아 있는데 하나같이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들고 있었다. 큰 코끼리가 작은 사람한테 복종하는 것이 이 꼬챙이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을 잘 듣기까지는 얼마나 많이 찍혔을까? 평평한 길은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데, 오르막과 내리막에서는 코끼리가 힘들어했다. 한 발 한 발 힘들게 내려가는 모습이 등 위에서도 느껴졌다. 코끼리를 생각하며 시 한 수를 썼다.
<시시포스(Sisyphos) 코끼리>
태국의 메땡 강 따라
관광객을 등에 태운
코끼리들이 나란히 걷는다
오늘은 몇 명 째일까
흐릿한 숫자들 허공에서 맴돌고
하루해는 더디게 간다
눈을 감았다 떴는데 어느새 아침
밤새 굴러 내린 바위를
다시 굴리러 나간다
길게 줄선 사람들
이어지는 비탈길
걸음이 무거워진다
석양에 붉게 물든
코끼리의 지친 눈동자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즐겁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2시간여의 체험이 끝나고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은 현지 뷔페식으로 쌀국수, 닭고기, 빵, 스프, 각종 채소 요리, 과일 등 다양했다. 코끼리 공원답게 뷔페 음식을 진열한 곳 가운데에 코끼리 상을 세워 놓았다. 커피는 맛이 조금 진했다. 이곳은 커피 기계 앞에 설탕과 스푼이 준비되어 있다. 태국 사람들은 설탕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하긴 우리도 오래 전에는 커피를 마실 때 쓰다고 설탕을 많이 넣어 먹었었다.
점심 식사 후에 바로 학술대회를 하러 치앙라이(Chiang Rai)로 출발 했다. 치앙라이로 가는 길은 산악지역으로 한국의 강원도를 가는 것 같았다. 태국 사람들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터널을 뚫지 않아서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데다가 우리 버스는 낡아서 고갯길을 올라갈 때마다 헐떡거리며 힘들어했다. 처음 탈 때부터 알아봤는데, 그나마 에어컨이 잘 나와서 다행이었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숲을 정글이라고 한다. 정글은 열대우림과 차이가 난다. 열대우림은 연중 고온다우한 아마존강이나 콩고강 유역 등 적도 주변에서 볼 수 있으며 크기가 다른 나무들이 다층(多層) 구조를 이룬다.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햇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하층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그에 비해 열대 계절풍이 부는 동남아시아는 건기가 있어서 열대우림처럼 나무가 밀집해서 자라지 않기 때문에 키 큰 나무들 사이사이로 잡목들이 많이 자라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복잡하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들이 고엽제를 많이 뿌린 이유가 산속에 들어가면 앞을 볼 수 없어서 정글을 고사(枯死)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치앙라이로 넘어가는 산속은 정글이 발달해 있어서 숲이 무척 복잡해 보였다. 열대지방의 나무는 잎이 지지 않는 상록 활엽수림이라서 정글은 1월에도 푸르렀다.
가는 도중에 마을의 집이나 농경지 둘레에 바나나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긴 습도가 높아서 뱀들이 아주 많은데, 독이 강한 코브라 같은 뱀에 물리면 사망하기 쉽다. 뱀들이 바나나 나무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집이나 농경지 주변에 심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4시간 정도 달려서 행사장인 피만인(Pimanninn) 호텔에 도착했다. 지붕이 붉은색을 띠는 아담한 2층짜리 호텔이었다. 행사를 미리 준비하신 이한기 교수님과 그 일행들이 행사장 입구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들은 시화전을 하려고 한국에서 준비해간 시 족자를 호텔 마당에 죽 걸었다. 4시 40분 경 야외 행사장에서 테이프 커팅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문복희 교수님께서 전시된 족자들을 따라 안내하시면서 설명을 하셨다. 시화전을 보고나서 실내 행사장으로 들어와 본 행사를 시작했다. 초우 문학회와 아정 문학 동호회 주최로 문학을 통한 태•한 친선의 밤이 시작되었다. 식장엔 8개의 큰 원탁테이블이 놓여 있고, 정면으로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유정숙 초우문학회 총무님의 사회로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이 됐다.
1부는 이한기 교수님의 환영사로 시작됐다.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일일이 호명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다음은 류영자 초우문학회 회장님이 이런 자리를 준비해준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 말씀을 했고, 이어 김정옥 교수님이 축사를 하셨는데, 공간과 시간 그리고 시의 만남이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으로 끝맺음을 하셨다. 이어 문복희 교수님의 문학 강좌가 시작됐다.
문 교수님은 초우문학회의 모토인 ‘생활 속의 문학, 문학의 생활화’의 모델이 되는 시와 시조를 준비하셨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던데, 거기에 맞는 ‘애국심’이란 주제를 가지고 ‘생활 속의 문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또박또박하게 말씀하셨다.
<애국자 가족>
서담(2017, 시민 공모작)
엄마하고 동생들하고
미용실에 갔다
옆자리 아줌마가 물었다
- 몇 남매 두셨어요?
- 삼남매요
- 애국자시네요
- 그럼요
으쓱해하는 엄마
나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엄마를 애국자로 만든 건
바로 우리들이니까
문 교수님께서는 “미용실에서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대화를 소재로 하여 일상어를 시어로 변형하면 시가 된다. 조지훈 시인은 좋은 시의 조건으로 감동, 공감 그리고 신선한 충격을 말했다. 애국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삼남매를 둔 것을 애국자라고 하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다. 물론 시대적인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족계획이 추진되던 시대에는 삼남매를 둔 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는데, 인구 절벽 시대에 으쓱해하는 엄마라는 표현을 통해 엄마의 품격이 올라가고 자부심이 느껴지는 시이다. 마지막 연이 이 시를 좋은 시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음은 고려, 조선조 전환기에 화답 시조를 통해 애국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려보세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이 시조는 “이방원(1367~1422)이 새나라 창업에 동참하자는 내용을 담은 하여가(何如歌)에 포은 정몽주(1337~1392)는 고려의 신하로 남겠다는 단심가(丹心歌)로 화답했다. 정몽주의 단심가는 그가 고려의 충신임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아한 한복을 입고 강의하시는 문 교수님의 모습은 군계일학으로 보였다. 멋진 강의에 모두 큰 박수로 화답했다. 강의를 마친 교수님께서 초우문학회 임원진들을 소개하셨다.
1부의 끝은 시낭송 시간이었다. 3명이 문 교수님의 시 3편을 차례로 낭송했다. 무대 화면에 전옥희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화상과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낭송하시는 분들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백목련’은 조형자 선생님께서, ‘숲으로 가리’는 방영희 선생님께서, ‘나비의 발’은 공한성 선생님께서 순차적으로 낭송을 하셨다.
2부는 백승언 선생님의 하모니까 연주로 시작되었다. 백 선생님은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무대에 오르셨다. 색소폰만 잘 부시는 줄 알았더니 하모니카 실력도 뛰어나셨다. 첫 곡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연주하셨는데 아는 노래라서 그런지 더 감동이 왔다. 큰 박수에 호응하셔서 ‘강 같은 평화’라는 앙코르곡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셨다.
이어 변비비안과 7명의 연주자들이 오카리나 합주를 했고, 변비비안님께서 독주로 마무리하셨다. 문복희 교수님께서 오카리나 연주자들에게 직접 쓰신 시집을 선물하셨다.
이어서 내 독창 순서가 왔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 무대로 올라서니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정지용 시인의 시에 채동선이 곡을 붙인 ‘고향’이란 가곡을 불렀다. 서너 마디를 하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져서 편안하게 부를 수 있었다. 관객들이 조용하게 응시하고 있어서 빨려 들어가는 느낌으로 불렀다. 한 곡을 하고 내려왔더니, 문 교수님께서 더 준비한 곡이 없느냐고 해서, ‘넬라 판타지아’를 불렀다. 큰 실수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기뻤다.
다음은 초우문학회원들이 준비한 ‘아리랑’을 합창으로 불렀다. 초록색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백승언 선생님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서 처음에는 느리게, 두 번째는 보다 빠르게 박수를 유도하면서 관객과 하나 되어 불렀다.
마지막 무대는 현지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들이 만든 저녁노을합창단의 합창이었다. 이한기 교수님께서 지휘를 하셨고, 기타 연주에 맞춰 15명의 합창단원들이 여러 곡을 불렀다. 연습을 아주 많이 한 것 같았다. 복장도 통일이 되어서 합창단다운 면모가 보였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려는데, 현지에 사는 태국 주민들이 합창을 하겠다고 무대로 올라왔다. 휴대폰 음악에 맞춰서 부르는데, 즉석에서 해서 그런지 음악과 소리가 잘 맞지는 않았지만 앙코르 곡까지 열심히 부르는 모습에 힘찬 응원을 보냈다. 식순이 끝나고 초우문학회에서 준비한 선물을 추첨을 하여 드렸다.
여행 일정 시간에 쫓겨 저녁 식사를 서둘러하고 다음 목적지인 한마루(HanMaLu) 마사지 집에 갔다. 이곳은 한국인이 운영한다고 했다. 옷을 갈아입고 앉으니 마사지하는 여자들이 커피 물이 담긴 통을 가져와서 발부터 닦아주었다. 이어 발끝부터 종아리, 허벅지, 팔, 목, 어깨, 등까지 손과 팔꿈치로 열성을 다해 마사지를 했다. 마사지를 받으면서 시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친구들이 앞으로 건강하게 잘 살기를 기도했다. 한국인 사장님이 일일이 다니면서 어떤지를 물었고, 특별히 아픈 부위가 있으면 말하라고 해서 달리기를 하면서 생긴 아픈 부위를 말했더니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더 마사지를 해 주었다.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었다. 호텔은 2층짜리인데 로비도 없고, 계단으로 바로 올라가서 방을 찾아야했다. 어제보다 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이곳 일대에서는 제일 좋은 곳이란다.
둘째 날 1월 24일(수, 맑음)
숙소를 옮겨야 했기 때문에 캐리어를 끌고 식당을 향했다. 여긴 호텔 안에 식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호텔 사람들이 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6시 조금 지나 식당에 도착하니 완전 도떼기시장이었다. 음식 준비도 안 돼 있는데 사람들은 바글바글했다.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아서 한쪽 귀퉁이에 겨우 자리를 잡으니 그제야 식당 직원들이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줄이 길게 늘어났고 한참이 지나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늘 오전은 메콩 강 주변 태국, 미얀마, 라오스 세 나라의 접경지대에 있는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를 다니는 코스이다. 먼저 가까운 미얀마부터 갔다. 미얀마는 남한 면적의 약 6.7배이며 인구는 약 6,000만 명 정도 되는데 매우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며 수도는 네피도이다. 버마족이 주를 이루지만 산족과 카렌족을 비롯한 135개의 소수민족이 있는 나라이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불교 국가로 90%가 불교 신자이고 많은 사원과 불탑이 있다.
미얀마는 태국의 국경 도시인 메싸이(Mae Sai)에서 걸어서 넘어 갔다. 다리 하나를 건너면 미얀마 땅이었다. 조금 걸어 나오니 로터리에 붉은 색으로 CITY OF THE GOLDEN TRIANGLE라고 쓰여 있었는데, 이 국경 도시 이름은 따치렉(Tachilek)이다. 가난한 나라라서 그런지 태국에 비해 거리에 활력이 적어 보였고, 건물도 초라해 보였다. 국경을 넘어가니 미얀마 현지 가이드가 맞으러 나왔다. 로터리에서 사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쏭떼우(Song Thaew, 쏭은 숫자 2, 테우는 줄이란 뜻) 택시(City Taxi)를 타야했는데, 이 택시는 열 명 정도가 두 줄로 앉을 수 있게 양 옆으로 긴 의자가 있고, 창문 없이 덮개만 있었다.
택시를 타고 황금사원에 도착했다. 사원 마당에 들어갈 때도 신발을 벗어야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사원이 공사 중이라 차단막으로 가려져 있어서 거대한 종모양이라는 탑의 모양을 볼 수가 없었다. 황금사원 둘레에는 20개 정도의 황금빛의 작은 종탑이 둘러싸고 있다. 사원에 들어서자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덥지도 않은데 여자애들이 우산(양산)을 펼쳐들고 다가왔다. 우산을 씌워주고 돈을 받으니 그럴 의사가 없으면 확실히 거절하라는 가이드의 말이 떠올라서 거절을 했다. 사원이 높은 곳에 위치해서 따치렉 시가지가 내려다보였다. 공사 중이라서 사원의 겉모습을 볼 수 없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사원 둘레를 따라 예쁜 시설물들이 많이 있어서 위로가 되었다.
황금 사원을 나와 다시 쏭테우를 타고 왓타이아이 사원에 갔다. 왓티이아이 사원은 미얀마 소수민족인 타이아이족의 전통 사원이다. 사원과 그 주변 경관이 예쁘고, 부처님이 모셔진 사원 안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예불을 하고 있고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한 시간의 짧은 미얀마 관광을 마치고 다시 태국으로 넘어왔다.
다시 관광버스를 타고 치앙센(Chiang Saen)에 도착하여 태국 쪽의 메콩 강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건너편 라오스 땅으로 넘어갔다. 이곳은 메콩 강 하구에서 상당히 많이 떨어진 중류쯤 되는 곳인데도 메콩 강이 워낙 길고 큰 강이다 보니 수량이 풍부하고 강폭도 매우 넓었다.
메콩(Mekong) 강은 세계에서 10번째로 유량이 많고, 12번째 긴 강으로 길이가 약 4,200km이다. 중국 칭하이 성에서 발원하여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데 계절에 따라 유량의 변화가 심하다. 메콩 강이란 모든 강의 어머니 즉 젖줄과 같은 강을 뜻한다.
태국 쪽 강안(江岸)에는 큰 건물들이 많이 있고, 한 쪽에는 거대한 배 모형의 사원 위에 높이 솟은 황금 불상이 강이 흘러가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처님이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의 이 사원은 ‘치앙센 사원’인데, 아마도 메콩 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사고가 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오스의 정식 명칭은 라오 인민민주공화국(Lao PDR, 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으로 국토 면적은 23.6만㎢로 남북한 합한 것과 비슷하고 인구는 약 700만 명이며 수도는 비엔티안이다. 경제수준이 매우 낮고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쌀이 주요 작물이다.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인 내륙 국가이고, 국토의 90% 이상이 해발 180m가 넘는 산악 국가이다. 태국과의 국경은 대부분 메콩 강을 경계로 한다.
20여분 정도 배를 타고, 라오스의 돈사오(Donsao-홍목련이 피어 목련도라고도 한다)에 도착했다. 이곳은 라오스 경제 특구(Golden Triangle Special Economic Zone)로 중국에서 90년 동안 임대하여 8조원을 투입하여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특구를 나타내는 큰 간판과 많은 깃발이 여기저기서 나부꼈다. 중국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태국에서 넘어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제법 넓은 시장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맥주와 코코넛, 용안이란 과일을 먹었다. 라오 맥주(Beerlao)는 맛이 좋았고, 용안(龍眼)은 용의 눈같이 생겨서 붙은 이름으로 얇은 껍질을 벗겨 먹는데 이것도 역시 맛이 좋았다. 시장에는 다양한 크기의 뱀술과 옷, 가방 등 공산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한쪽에는 음식점들이 있었다. 조경에도 신경을 써서 선착장에서 시장으로 들어서는 곳에는 꽃을 많이 심어 놓았다. 인상적인 것은 큰 나무에 빨갛게 핀 목련꽃이었다. 우리나라 목련 나무보다 훨씬 높은 나무의 가지 끝부분에 예쁘게 핀 빨간 목련꽃이 파란 하늘과 어울려 참 아름다웠다. 목련꽃을 보면서 시 한수를 지어보았다.
<하늘 연꽃>
라오스 황금의 삼각지대
메콩 강변 돈사오 목련(木蓮)섬에
빨간 연꽃이 피었다
높은 하늘
마른 나뭇가지 끝마다
꽃으로 달린 사연은 무엇일까
다 벗어버린 빈 가지에
내려놓지 못한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땅에서 맺지 못한 간절한 바람
하늘 높이 올라
붉게 붉게 타오른다
라오스 땅에 30여분 정도 머물다가 다시 배를 타고 태국으로 돌아왔다. 라오스 쪽 선착장은 뜬다리 부두로 되어 있었다. 뜬다리 부두는 우리나라에서는 군산항에서 볼 수 있다. 군산항의 뜬다리 부두는 황해안의 조차가 커서 강 하구의 수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시설인데 비해, 이곳은 유량의 큰 계절차로 인해 강물의 수위 변동이 크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 선착장이 오르내릴 수 있게 만든 것 같았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태국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Golden Iyara Resort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음식은 역시 뷔페인데, 가이드가 수타면 국수와 코코넛 밀크로 만든 풀빵, 과일을 썰어서 만든 생채 같은 것을 먹으라고 해서 세 가지는 꼭 챙겨 먹고, 다른 것까지 먹었다. 지붕이 높고 밖이 잘 보이게 트인 식탁에서 먹으니 맛이 더 좋았다.
점심 식사 후 1시간여를 달려 왓롱쿤(Wat Rong Khun)이라는 백색 사원(White Temple)에 도착했다. 찰럼차이(Chalermchai)라는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던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을 한 스님에게 보내게 되었는데, 그 스님 밑에서 교육을 잘 받아 이 불량소년은 스님이 되었고, 프랑스로 유학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찰럼차이 스님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니 사원을 지어 구해 달라는 꿈을 꾼 후 어머니를 위해 1998년부터 이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 이 스님은 자기 어렸을 때와 비슷하게 생활하는 청소년을 보고서는 그들을 데려다 교육 시켰고, 그들과 함께 지금까지 사원을 짓고 있는데, 훌륭한 청소년 교육자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후원을 한단다. 백색 사원의 흰색은 부처님의 지혜를 뜻한다.
중심 사원과 부속 사원들의 대부분은 지붕과 벽, 장식물 등이 온통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용과 봉황을 비롯한 각종 장식물이 지붕과 벽, 그 주변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데 흰색이 햇빛을 받으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어떻게 흰색 건물을 이렇게 깨끗하게 잘 유지하는지 참 신기했다. 황금색을 띠고 있는 건물도 주변에 일부 보였는데, 하나같이 건물이 예뻤다.
백색 사원의 중심 사원인 우보솟 사원은 지옥계를 지나 현상계를 거쳐 극락계로 나오게 설계되어 있었다. 입구에 있는 지옥계에는 수백 개의 절규하는 듯한 손이 밑에서 올라오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어떤 손은 단지를 들고 있어서 물을 달라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뭔가를 갈구하는 지옥계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현상계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사천왕처럼 보이는 역사들이 큰 칼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 우보솟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했다. 건물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어서 예불을 올릴 수 있었다.
백색 사원을 뒤로 하고 다시 치앙마이로 향했다. 가는 도중 가이드가 “태국에는 32,000여개의 사원이 있는데, 사원은 병원과 학교, 장례식장의 역할을 한다. 전국의 고아들은 사원으로 보내져서 그 곳에서 자라고 배운다. 그 중 여자아이들은 사춘기(13~14세)가 되어 2차 성징이 나타나면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절에서 나와야 한다. 이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안마 기술을 가르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절에서 나오면 1~2년 동안 전통 안마를 전수받고, 와포 사원에서 1년 과정을 더 받으면 안마 자격증이 나온다. 이렇게 태국 정부 기관이 인증한 자격증을 갖게 되면 안마 시설에 가서 마사지를 하며 살 수 있다. 이것이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태국 안마사의 95%가 여자인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어제 넘어온 길을 다시 거꾸로 넘어갔다. 중간에 도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나무를 베어 내고, 사면을 포클레인으로 긁어낸 곳은 토양의 단면이 드러났다. 노출된 단면을 보면 붉은색 토양이 나타나는데 이 토양이 열대지방의 적색토이다. 열대지방은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흙이 많이 씻겨 가는데, 입자가 가벼운 흙들은 씻겨나가고 철분이나 알루미늄 등 무거운 입자들은 남아있게 된다. 이 토양이 산화되면 적색으로 바뀐다. 이런 토양들은 별로 비옥하지 않다. 가끔 산비탈에 불을 질러서 화전을 하는 곳도 보였고, 소를 방목하는 곳도 나타났다.
저녁때가 되어 롱아룬 온천에 도착했다. 이곳 유황 온천은 유황 성분이 강해 계란 썩는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하더니 차에서 내리자 코끝에 유황 냄새가 확 밀려들어왔다. 온천 앞에는 뜨거운 물이 분수처럼 솟아나오기도 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했다. 수건 한 장을 받고 온천에 들어가니 우리처럼 대중탕이 아니고 욕실 같은 독립된 개인 독탕이 죽 이어져 있었다.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욕조를 찬물로 씻은 후 찬물과 더운물을 받아서 온도를 조절하여 탕에 들어갔다. 뜨끈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시원한 음료에 온천수로 삶은 달걀을 먹으니 맛 또한 일품이었다.
태국의 차량은 우측통행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좌측통행을 했다. 작년 1월 뉴질랜드를 여행 갔을 때 차량이 좌측통행을 해서 차를 빌려 운전을 하고 다니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 때 차량이 좌측통행을 하는 나라는 영국과 일본, 그리고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태국도 특이하게 좌측통행을 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중세 시대의 마차는 우측통행을 했다. 마부가 오른손으로 채찍을 휘두르기 때문에 좌측통행을 하면 마주 오는 사람이 채찍에 맞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독일이 처음 차를 만들었는데, 우측통행에 맞게 운전석은 왼쪽, 타고 내리는 것은 오른쪽으로 하게끔 만들었다. 자존심이 상한 영국은 독일과는 반대로 오른쪽에 운전석을 두어 좌측통행을 하게 만들었다. 태국 왕 중에 라마 3세와 라마 4세 때 영국과 수교를 하고, 영국과 친분이 깊어지면서 영국의 영향을 받아 차량이 좌측통행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7시경에 온천에서 출발하여 샤브샤브(Shabu Shabu) 식당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샤브샤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육수에 채소를 가득 넣고 끓이면서 얇은 고기와 새우, 어묵 등을 넣어 먹으면 되었다. 나중에 쌀국수를 넣어서 먹고, 최종적으로는 죽을 끓여서 먹는데, 어묵, 채소 등을 추가해서 먹을 수 있었다.
식사 후 야시장 관람을 위해 치앙마이의 나이트바자에 갔다. 우리는 그 중에 아누산 마켓(Anusarn Market) 쪽을 돌아봤는데, 3개 라인의 진열대가 세로로 길게 뻗어 있었다.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는데, 호객 행위를 하지 않아서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어떤 특정 상품이 전문화 되어 있지는 않았고, 옷과 장신구, 기념품 등 관광객을 상대로 여러 가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쪽으로는 음식 거리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고, 어떤 음식점에서는 한국인들이 많이 있는지 아리랑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나가다 보니 큰 거위 훈제가 매달려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야시장에서 출발하여 첫날 묵은 홀리데이 인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 들어오면 와이파이가 돼서 하루 종일 못 본 소식들을 보기 바쁘다. 오늘은 모처럼 조금 일찍 도착하여 여유가 있었다.
셋째 날 1월 25일(목, 맑음)
태국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우리 일행은 3일 내내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서 6시에 식사를 하고 7시에 출발하는 강행군을 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살지 않았는데, 여행 와서 참 부지런하게 다녔다.
오늘 첫 번째로 갈 곳은 왓 프라 탓 도이수텝(Wat Phra That Doi Suthep) 사원으로 해발 1,200m 높이에 있는데, 도이산(해발 약 1,600m)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프랏 탓은 왕실지정이란 뜻이고, 수텝은 신선이 노니는 곳이란 뜻이다. 1383년 사원 건축이 시작되어 처음에는 7m 높이로 탑을 만들었으나 1540년에 16m로 높이를 올리고 전체 사원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애기 주먹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고 한다.
사원으로 가는 도중에 치앙마이 시내에 일부 남아 있는 성곽과 잘 조성된 해자(垓字)를 볼 수 있었다. 치앙마이의 성곽은 벽돌로 쌓았는데, 길이가 8km이고, 성곽 주위에 적이 침입하기 어렵게 해자를 팠다. 남아 있는 성곽을 보니 성곽의 높이는 3~4m 정도로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고, 해자의 폭은 10m가 넘어 보이진 않았다. 성곽은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여러 나라에서 나쁜 일들을 많이 한 것 같다. 지금은 해자 주변엔 나무를 심고, 곳곳에 분수를 만들어서 시민들의 산책 및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도이수텝 사원은 부처님의 진실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처님의 진실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으로는 양산의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이다.
숙소에서 버스로 1시간을 달려 도이수텝 사원에 도착했다. 산 밑에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차에서 내려 사원까지는 대략 300개의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갈 수도 있어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갔다. 사원에는 개들이 많았다. 엘리베이터 입구에도 마치 제 세상인양 누워있는 개들을 볼 수 있고, 누군가 일부러 눈썹을 그려준 개도 보였다. 사원에는 개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스님들이 탁발해온 음식을 먹고 남으면 보관하지 않고 개에게 주기 때문이란다.
사원에 도착하여 우선 주변을 조망했다. 치앙마이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는데, 시계(視界)가 아주 멀지 않아서 조금 흐릿하게 보였다.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사원 주위 나무에는 보라색 계통의 예쁜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황금색 도금을 한 사원은 아침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났다. 사원 주변을 한 바퀴 돌아오니 사원 입구에 흰색 코끼리 상이 있었다. 옛날 란나 왕조 시절 흰 코끼리 등에 부처님의 진실사리를 싣고 절을 지을 터를 찾고 있었는데, 이 코끼리가 3일 동안 산속으로 이동하다가 현재의 자리에 도착한 후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 사원을 짓고, 부처님 사리를 안치하였으며 코끼리 상도 세웠다고 한다.
신발을 벗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온통 황금색으로 도금한 중심 탑과 부속 장식물들로 가득했다. 마르코 폴로가 찾던 황금의 나라에 온 것 같았다. 탑 안팎으로 여러 불상이 있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불상도 있었는데, 사람들은 불상 앞에 꽃을 바치고 향을 피우면서 예불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원에서는 스님들을 보지 못 했는데, 여기서는 몇 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9시30분 경 도이수텝 사원을 출발하여 싼캄팽(Sankamphaeng) 거리에 있는 여러 전시장과 공예품점을 다녔다. 건강식품을 파는 다온(Daon)과 라텍스를 파는 곳을 들렀다. 태국은 고무나무가 많아 라텍스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점심때가 되어 상호가 강남 식당인 한국 식당에 갔다. 식당에 들어서니 입구에 “소주 가지고 오시면 안돼요!!!! 저희도 소주 팔아요^^”라고 한글로 써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소주를 갖다 먹길래 이런 안내문이 있을까? 이곳에서 제육볶음을 먹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먹는 맛과 같았고, 김치, 된장국 등과 같이 먹으니 오랜만에 고향 맛이 났다.
식사 후에 가까이에 있는 망고(Mango) 카페에 가서 커피와 말린 과일을 먹었다. 말린 과일이 비싸지 않아서 선물용으로 말린 망고와 코코넛 몇 개를 샀다.
카페에서 나와 우산 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곳에 갔다. 간판에 Umbrella making Centre라 쓰여 있다. 가게 앞에는 코끼리 상이 있는데 귀 양쪽으로 장식이 되어 있고, 바나나를 비롯한 몇 가지 과일을 앞에다 놓았다. 매장 주변은 온통 색색의 우산으로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는데, 우산이 이렇게 예쁜 줄은 미처 몰랐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고, 색이나 그림 장식 등도 다양하고 화려했다. 매장 안에는 판매되는 우산이 전시되어 있었다. 매장 뒤쪽으로는 실제로 우산을 수공예로 만들고 있는데 그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분업화가 잘 되어 순차적으로 지나가면 우산이 완성되었다. 우산이 참 예쁘긴 한데 실용성보다는 장식용이고, 관광 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꿀을 파는 가게(The Honey House)였다. 여기는 프로폴리스와 화분, 로열젤리를 주로 팔며, 벌독 연고와 프로폴리스 연고도 팔았다.
쇼핑센터를 다 돌고 나서 한 번 더 마사지를 받으러 시암 란나 마사지(Siam Lanna Massage)에 갔다. 남자는 아래층 여자는 위층으로 안내되었다. 여기서도 여자 안마사가 마사지를 시작했다. 수건으로 발을 씻긴 후 전과 비슷한 순서대로 전신 마사지를 하는데, 이번 마사지사가 실력이 더 좋은 것 같았다. 마사지를 한 후에 약물에 담갔다 꺼낸 뜨거운 수건으로 온 몸을 문질러 주었다. 2시간여 동안 열성적으로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마사지를 마치고, 공연을 보며 식사를 하는 칸톡 식당(Khantoke Vieng kaew)에 갔다. 이곳은 닭고기 튀김이 주 요리였고, 찹쌀밥도 나왔다. 식사 중에 악기를 연주하고, 단체로 나와 노래와 무용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강변에 나오니 저녁노을이 아주 아름다웠고, 얼마나 많은 새가 우는지 몹시 시끄러웠다.
식사 후에 이번 일정의 마지막 코스인 치앙마이 야간동물원(Chiangmai Night Safari)에 갔다. 차에서 내려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 들어갔다. 큰 보리수나무들이 밑에서 쏘는 조명 빛을 받아 신비롭게 보였고, 조금 더 들어가니 흰 코끼리상과 그 주위에 몇몇 동물상이 조명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어서 이곳이 동물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먼저 간 곳은 사자와 호랑이 공연장인데,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사자 공연은 일찍 시작했는지 몇 가지 묘기를 하고 나서 사자는 들어가고 호랑이 5마리가 나왔다. 호랑이가 조련사 목을 감기도 하고, 통 굴리기도 하는 등 여러 묘기를 선보였다. 먹는 게 뭔지 묘기 하나를 끝낼 때마다 꼬챙이로 고기를 주면 그걸 받아먹고 그 다음 묘기를 하곤 했다. 이런 맹수를 길들여 쇼를 시킬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맹수의 정체성이 사라진 것 같아 동정심 일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본격적인 동물원 탐방을 했다. 이곳 동물원은 산 속에 만들었는데, 산 속 넓은 곳에 동물을 사육했다.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로 나누어 관람을 했다. 먼저 육식 동물 사육장 주변을 코끼리 열차 같은 것을 타고 한 바퀴 돌았다. 사자, 호랑이, 곰, 하이에나, 늑대 등의 맹수들이 있는데, 차로 지나가면서 플래시로 빛을 비춰 동물들을 보여주었다. 동물들은 매일 있는 일이라서 그런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육식 동물을 보고 나서 열차를 갈아타고 초식 동물을 보러 갔는데, 초식 동물은 우리에 갇혀 있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하마와 얼룩말, 캥거루, 사슴, 양, 기린 등을 볼 수 있고, 사슴이나 기린 등은 바로 앞에 와서 사람이 주는 당근 같은 것을 받아먹었다.
마지막 일정도 다 끝났고, 우린 치앙마이 공항으로 향했다. 9시 40분경에 공항에 도착하여 그동안 정들었던 강수안 가이드와 포옹으로 이별을 하고, 현지 여성 가이드에게도 남은 바트화를 팁으로 주고 작별 인사를 했다.
KE 668 대한항공 비행기는 예정시간 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여 한국시간 아침 6시 30분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백승언 선생님의 감사 기도를 끝으로 악수와 포옹을 하면서 여행을 마쳤다.
태국을 2번째 다녀왔는데, 처음엔 남부에 있는 방콕과 해안 지역을 돌았고, 이번에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북부 산악지역을 다녔다. 중복되지 않아서 같은 나라지만 다른 나라를 다녀온 느낌이었다. 이번엔 그냥 관광만 한 것이 아니라 문학 교류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갔고, 또 같은 초우 문학회원들이 함께 했기에 더욱 친근하면서 편안한 여행이었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문복희 교수님과 준비하느라 애쓰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다음 문학 기행은 어디로 갈 건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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