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차 문화탐방 수업을 위해 명월진성에 도착하니 발 빠른 동료들은 벌써 도착해서 모여 있었고, 날씨는 가을의 시원한 아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두 달 전 첫 야외 수업 날은 엄청 더웠는데 세월은 참 빠르기만 하다.
제주도는 지키고 막아야 하는 고난의 땅이라는 것을 배우는 날이다.
제주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조선시대 내내 외적에 시달려서 방어시설을 발달시키게 된다. 조선시대 제주의 방어시설은 3성(城) 9진(鎭) 25봉수(烽燧) 38연대(煙臺)로 요약될 수 있다. 3성(제주읍성, 정의현성, 대정현성), 9진(화북진, 조천진, 별방진, 애월진, 명월진, 차귀진, 수산진, 서귀진, 모슬진). 3성은 행정과 군사 목적을 동시에 갖춘 읍치의 성이다. 9진은 제주도 내 9개의 해안 요충지에 설치된 군사 행정 구역이다. 봉수와 연대는 횃불과 연기로 긴급상황을 알리는 통신 시설이다.
명월진(明月鎭)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9호로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위치해 있는 진성이다. 조선 중종(中宗) 5년(1510년)에 당시 제주 목사였던 장림(張琳)이 과거 고려시대 명월현이 설치했던 기존의 목책을 석성으로 개축했다고 한다. 해적들이 한림에 상륙하기 전에 비양도에 주둔했다가 뭍으로 올라오는 일이 계속되다 보니 명월진성을 만들어 적들을 방어했다. 삼별초, 여몽연합군, 목호의 난 진압군도 명월진으로 입도했다고 한다. 명월진성은 그 둘레가 1.3km로 가장 큰 성 중의 하나이다. 성을 지키는 책임자는 만호, 종4품으로 대정현감보다 높은 벼슬로 인정되었다. 이 성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명월진성은 일부 복원되었으나 여장(如墻)이 없어서 아쉬움이 많다. 여장은 적의 화살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위에 세운 담을 말한다. 그나마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은 볼 수 있다. 문화재 복원과 가치 인식은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시간이었다.
방어유적은 아니지만 옛 선비들이 모여 시회를 베풀고 한량들이 모여 주연을 베풀던 수려한 경승지로 알려진 명월대(明月臺)와 ‘찔레꽃’을 부른 백난아 기념비를 보면서 여유로운 삶이 뭔지 생각해 보았다.
다시 장소를 이동하여, 느지리오름을 올라 만조봉수(晩早烽燧)에서 교육이 진행되었다. 느지리의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 이 오름 꼭대기에 봉수를 설치하면서 만조봉(晩早烽)이라 했다. 만조봉수는 동북쪽의 도내봉수(직선 거리 7.5㎞)와 남서쪽의 당산봉수(직선 거리 10.7㎞)와 교신하였으며, 서쪽으로 배령연대와도 연락을 취하였다. 밤에는 횃불을 밝히고, 낮에는 연기를 피웠으며,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려 불이나 연기로 통신이 불가능할 때는 봉군이나 연군이 달려가서 연락을 취했다. 봉수와 연대의 주변 백보 내에는 봉화의 오인을 막기 위해 무당이나 통속적인 잡신제를 절대 금하였다. 1419년(세종 원년) 거화거수법(擧火炬數法)은 평시에는 1개, 정체를 알 수 없는 황당선(荒唐船)이 나타나면 2개, 지경에 가까이 오면 3개, 지경을 범하면 4개, 접전하게 되면 5개를 올리는 5거법을 채택했다. 각 봉수에는 6명의 별장과 12~36명의 봉군이, 연대에는 6명의 별장과 12명의 연군이 배치되었다. 별장 2명과 봉군(연군) 4명 내지 12명이 1조로 구성되어 3교대로 근무했다.
봉수는 일반적으로 더 높은 곳에서 먼 곳을 감시하던 시설이라 해안에서 조금 산 쪽으로 들어온 오름 위에 위치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오름 정상에서 위쪽으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 그 위에 불을 피웠고, 밑에는 불의 번짐을 방지하기 위해 물을 채워놓을 수 있는 이중 도랑이 있는 구조였다. 봉수터를 보면서 봉군의 막중한 임무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다시 배령연대(盃令煙臺)로 향했다. 명월진에 소속되었던 배령연대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 서쪽 해안으로 튀어나온 연대동산에 자리하고 있는 연대이다. 동쪽으로 만조봉수(4.3㎞), 서쪽으로 대포연대(직선 거리 4.4㎞)와 교신했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원래 동그란 모양이었는데 네모나게 복원했다. 이름은 일대의 바다가 벌레 모양이라서 베랭이깍이라 했다고 한다. 베랭이는 벌레고 깍은 멀리 있는 물의 끝을 의미하는 제주도 말이다. 지금은 마을 이름이 금능이다. 연대에 올라보니 비양도가 지척이다. 한라산도 시야에 잘 들어온다. 연대는 주로 다가오는 배가 적선인지 혹은 표류선인지를 현장에서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주로 해안 가까운 언덕에 만들어졌다. 이처럼 연대는 현장성이 강조되기 때문에 봉수보다 숫자 면에서도 많았다. 오늘은 제주도의 방어유적으로 진, 봉수, 연대를 연결해서 체험한 귀한 시간을 가진 하루였다.
점심은 선인장식당에서 먹고, 시내로 이동하여 올디카페에서 들꽃 사진전을 보고 tea time 후 오늘 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첫댓글 제주 방어유적을 간결하게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덕분에 복습을 잘 했습니다. 수고많았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제주의 방어유적인 진성 봉수 연대의 전형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후기 잘 읽읽었습니다.
서서 졸았나? 싶게 못 듣고 지나간 생소한 내용들도 여럿 있는데 샘 후기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미리 준비된것처럼 후기가 바로 올라오네요.ㅎ
수고하셨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어 유적 세 곳을 정리해서 쓰시느라 애쓰셨어요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과 마음이 살짝 움츠러들어
걱정되었는데 금새 탐방 분위기는
뜨거워졌습니다.
모두의 열정이 좋은 학습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수고하셨어요^^
금방 잊혀질 지언정
귀에 속속
눈안에 콱콱 박혀 들어오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