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둘레길
11코스+12코스: 연탄길과 성창포길
• 도원역→인천역
일시: 2020년3월25일 수요일 맑음
동행: 나홀로
개요
개항 이후 근대 문물이 드나들던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코스다. 근대 문화의 산실로서 인
천의 근대 역사는 제물포 개항과 그 맥을 같이 하며,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모습이 서리어 있
다. 일본식 건축물과 차이나타운 등이 이국적 풍경을 자아낸다.
동선
11코스:도원역→배다리→송림초등학교→송현근린공원→송현배수지→수도국 산박물관→
하늘생태정원→동인천역북부광장
12코스:동인천역북부광장→전통혼수거리→배다리→답동성당→신포국제시 장→홍예문→
자유공원→삼국지벽화거리→차이나타운→동화마을→인천역
∞ 11코스 연탄길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바둑을 한판 두고 나서 바둑을 둔 경과를 검토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그 순서대로 벌여 놓다 이것을 복기(復棋)라고 한다 나는 산행과 걷기 그리고 여행을 한
뒤에는 메모를 하거나 글을 쓰는 습관이 있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산행을 한 뒤에는 유산록
을 남겼고 다산선생도 춘천을 혀행 하면서 (1820년과 1823년4월15일) 汕行日記를 남겼고 목
은 이색, 퇴계 이황, 한강 정구는 산행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讀書如游山이
라는 시를 남겼다
오늘도 걷기를 끝내고 돌아와서 들머리로부터 날머리까지의 과정을 살펴 보면 들머리를 잘 못
잡은 것 같고 코스에서 볼 것을 놓친 것들이 많았다
인천둘레길 11코스는 도원역 2번 출구에서 동인천역까지로 송현근린공원 수도국산 배수지를
찾는 것이 일차 목표이기 때문에 도원역 앞에서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표식을 보고 진행하였
는데 선행자들 중에는 우각로를 들머리로 잡은 사람도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답 같은데 나
는 착각을 하였지만 어느 것이 맞는지는 시비하고 싶지 않고 되도록 이면 길을 연사람의 뜻을
따르고 싶지만 때로는 착각하기도 하는데 목적지로 가는 길은 한둘이 아니지
만 목표 지점은 하나다
배다리 사거리 인근에는 복합 문화공간이 있다 경인선 도원역에서 배다리 사거리로 이어지는
철로 옆길에 자리한 야외 전시 공간인 “쇠뿔고개 어울림 갤러리”에서 “꽃”을 주제로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배다리 역사문화마을로 접어들면 좌측은 동인천역으로 가는 선로이고 “창영어
울림갤러리” 알림이 있고 패널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가 있다 흘깃
흘깃 눈요기를 하면서 지나쳤다
인천둘레길 11코스는 도상거리가 4.99Km로 나와 있기 때문에 짧은 것 같아서 12코스까지 걷
기로 했지만 13코스 14코스도 마찬가지로 거리가 짧아서 선행자들 중에는 한꺼번에 또는 나
처럼 2구간을 합해서 걷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오늘 코스는 도심을 걷는 것이고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걷든 길이 대부분이다
배다리에 도착했고 한미서점이 보였다 헌 책방거리인데 처음 온 사람들은 생소할 것이다 알림판이 없으니까-
※ 배다리 헌책방 골목
인천의 역사와 함께해 온 서민들의 삶터로 인정받고 있다. 5개 서점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국문학과 古書 자료에서부터 미술, 음악, 한방, 어린이 전집류, 사전류 까지 모든 서적을 통틀어 취급하고 있다. 또한,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낡은 골목의 담에 배다리 사람들의 옛 모습과 생활 등을 그려 넣은 배다리 벽화거리를 만날 수 있으며 최근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인기를 끌면서 방문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12코스 때 또 올 것이지만 11코스는 배다리에서 한미서점 앞으로 건너지 말고 우측으로 꺾어서 직진히야 진행하면 송림초등학교가 나오고 조금 더 진행하여 횡단보도를 건너면 송현근린공원이다 다리를 중심으로 북쯕과 남측이 3거리로 매우 복잡하다
우각로를 들머리로 택하고 벽화마을을 걸었으면 여기서 만날 것이고 11코스를 연탄길이라고 한 것은 수도국산과 벽화마을 사람들은 달동네를 오르내리면서 연탄 한장 들고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코스 이름을 연탄길이라고 했을 것 같다
송현근린공원으로 들어가면 수도국산으로 오르는 데크가 있지만 처음으로 둘레길 표찰을 보게 되고 표찰에는 데크로 오르지 말고 길 따라 가라고 되었다(↰) 직진했다가 꺾으면 다시 데크가 있지만 오르지 말고 넓은 공간에 운동시설이 있는 곳을 따르다가 끝 지점에서 계단을 따라 올리가면 수도국산배수지로 여기서 동인천역으로 찾아가면 11코스가 끝게 되는데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수도국산박물관을 들려서 1960년대의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다 산수유꽃들이 시들어가고 있었다(송현근린공원 표석도 볼 수 있다)
나는 장 교장이 우리 팀을 이끌고 2015년4월24일과 2017년6월20일에 수도국산박물관을 보여주었기에 그 때 동행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동인천역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장 교장은 퇴직하고 늙어진 동문수학한 동기들의 건강을 챙기는 이끄미가 되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수도국산배수지는 하늘생태정원으로 나는 자작나무 사잇길로 야자매트 밟고 두리번거리면서 동인천역 방향을 가늠했는데 아파트 숲과 송림초등학교 인근 개발 사이로 2차선 포장도로가 있다 그길 따라 직진으로 진행하면 송현시장과 동인천역북부광장 나온 다 어려움 없이 쉽게 도착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돌아와서 검토를 하여보니 들머리를 우각로 벽화마을을 잡았어야 했고 학교 다닐 때 많이 걸어본 길이다 동인천역북부광장에는 황금색으로 된 조형물 세 개가 아기자기한 모습이고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북부광장은 없었다
∞ 12코스 성창포 가는 길
12코스의 행로는 반세기가 흘렀어도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고 인천광역시 중
구로 개발 모습 보담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전통혼수거리로 들어선다 시장은 썰
렁하니 통행인이 없다 나는 인천에 살면서 학교를 다닐 때는 화평동과 송월동에 살았기 때문
에 혼수거리를 통하여 배다리를 지나서 제물포역과 숭의동으로 등교와 하교를 하던 시장이다
그 때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서 사람과 사람끼리 부딪치기도 하였다
전통혼수거리를 빠져나와서 우측으로 배다리 밑을 통과하면 “ㅗ” 자형 삼거리로서 좌측은 도
원고개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동인천역 방향이며 둘레길은 직진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고
신포동 가는 길이다
※ 성창포
인천 내항과 개항장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제물포”는 갯골에 암반으로 이뤄졌던 포구로, 인
천·부평지역의 세곡을 모아두던 성창이 있어 성창포라고도 하였다. 조운선과 성창의 방어를
위해 설치한 제물진을 지난 1656년 강화도로 옮긴 이후에는 어선의 정박처와 나루터로 이용
했다.1883년1월1일 제물포는 조선의 3번째 개항장으로 문을 연 이후 관세행정을 위한 인천해
관 청사가 현재의 인천역 인근에 자리했다. 그러나 종전 제물포는 낮은 수심 등으로 근대식
기선의 정박이 불가능해 새로운 항만 시설이 필요했다. 이후 인천해관은 지난 1884년7월 항
만 건설에 들어가 1년 후인 1885년8월 준공했다.(출처: 경기일보)
• 성창포는 지금의 인천시 만수동이다
길은 언덕으로 조금 가파르고 언덕을 몰라서 좌측으로 인천답동성당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인천둘레길 표찰과 리본을 볼 수 있다 성당으로 들어가면 박문유치원과 성당표석 그리고 안내문을 볼 수 있다
※ 답동성당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개항기 인천교구 주교좌 성당. 천주교성당.
사적 제287호로 선정되었다. 1889년(고종26) 답동본당이 설립되자 빌렘(Wilhelm, J.)신부가 부임하여 지금의 성당자리에 부지 3212평을 마련하여 성당을 건축하기 위한 정초식을 가졌다.
이 성당은 1961년7월 인천교구가 서울대교구로부터 분리, 설정됨으로써 메리놀(Maryknoll)회 소속인 맥노턴(McNaughton)주교가 인천교구장으로 부임, 1962년 敎階制度의 설정과 함께 代牧區에서 주교구로 승격되어 주교좌성당이 되었다.(백과사전)
성당정문 앞에서 내리막길을 걸으면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둘레길 리본을 봉 수 있다 큰길과 접속하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고 좌틀하면 곧 신포동국제시장으로서 닭강정이 알려졌다
• 성당만종(聖堂晩鐘)은“성당에서 들려지는 저녁 종소리”로 옛 인천8경의 제1경이다
※ 新浦國際市場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 49번 길에 위치한 인천 신포국제시장은 상설시장으로 운영되며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신포시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신포국제시장” 현수막이다. 국제시장, 하면 부산 국제시장이 연상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 신포시장에서 가장 발길을 끄는 곳이 먹거리 골목이다.
골목 중에는 다국음식골목, 수선골목, 칼국수골목, 생선골목 등이 있지만 제일 먼저 눈에 들
어오는 것이 사람들이 주욱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닭강정“ 거리다. 강정이란 찹쌀가루 반
죽을 적당하게 썰어서 말린 뒤에, 기름에 튀기고 꿀이나 엿을 발라 깨, 콩가루, 잣가루 따위를
묻힌 과자로, 흔히 엿강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 지금은 닭강정이 전국에 골고루 퍼져서 나는 영월시장의 닭강정을 원조로 알고 있었는데 그
것이 아니었다
시장을 지나면 각종 먹거리 냄새가 유혹하고 할멈에게 뭘 사다 줄가 망설이면서 골목을 빠져
나와서 우틀하고 조금 오르면 도로와 접속되고 진행 방향은 좌측으로 언덕길이 보인 다 완만
한 오름길을 걷다가 사거리 도로를 만나면 우틀 하여야 하는데 자세히 살피면 우측으로 홍예
문이 보이고 이 길을 따라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다 홍예문 앞에는 인성여자중고등학교와 양쪽
에 홍예문을 오르는 계단이 있고 “마음으로 쉬어가는 옛길” 앞으로 가파르게 진행하면 응봉산
자유공원이 나온 다 우리나리에 자유공원은 안양 광주 평촌과 5.18자유공원도 있는데 인천자
유공원은 만국공원이라고도 한다
• 응봉산에 “밤에 내린 눈 모습”은 “응봉모설(鷹峰暮雪)”로 제옛 인천8경중 8경이고 낮 12시
가 되면 대포를 쏘아 시간을 알려주었던 탓에 正午砲山 또는 정포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 홍예문
인천유형문화재 제49호로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虹霓門은 인천 시내 남북간 교
통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
08년에 준공한 문으로서 처음에는 穴門이라고 불렀다(仁川地誌)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으로 벚꽃 길과 다양한 설치물이 있는데 우선 6.
25 전쟁 때 인천상륙작전(1950년9월15일)을 주도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고 인천학도의용
대호국기념탑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그리고 장미원, 인천시민헌장등 살펴야 할 것들이
많은데 무엇보다도 인천 앞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통일목이 있다
※ 統一木
인천시민헌장비 초석 왼쪽의 향나무가 통일목인데 “여기 통일을 갈망하는 마음 한그루 나
무를 심어 그 이름 통일목이라 불러 영원히 자라게 하리라 1972.4.3”으로 되어 있고 인천시민
의 날은 우여곡절 끝에 자금은 매년 10월15일이다 그리고 인천시민의 노래가사는 뒤로 옮긴
다
※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자유공원 정상 부근에 가면은 볼 수 있는 거대한 조형물이다.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으로 1882년 4월 우리나라와 미국사이에 조인된한미 수호통상 조약 체결을 기념하기 위하여 100주년이 된 1982년 100주년 기념탑인데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조형물들이 하늘 위로 솟아 한 군데로모이게 되는 의미로 한미 화합을 의미한다. 인간, 자연, 평화, 자유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한미 수호 협약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양국의 상호 신뢰와우호 협력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념하며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 인천학도의용대호국기념탑
1950년9월15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시행되자 인천학도병들은 의용대를 조직, 강화하여 치안유지에 힘쓰던 중 승전을 눈앞에 두었던 전선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나라가 또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어서 1950년12월18일 남녀대원 3000여명은 축현초등학교에 집결하여 출정식을 갖고 마산까지 남하하여 1951년1월5일 600여명은 해병대로 1300여명은 1월10일 부산에서 육군으로 자원입대하였다. 그 후 그들은 수많은 전투에서 200여명의 전사자와 많은 부상자가 조국에 젊음을 바치게 되었고 의용대들은 그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넋을 추모하고자 자유공원에 기념탑을 세우게 되었고 기념탑을 세우면서 한편의 시를 남기된다
獻 詩
“오호 50년 눈물 속에 흘렀어라,
하늘이 불을 토하고
땅이 놀라 울부짖던 그 여름도
이제는 풀잎 이슬처럼 덧없이 흘렀어라,”
전문은 뒤로 옮기고 길손은 연오정(然吾亭)을 찾아서 정자에 올라 보려 했으나 수리중으로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이웃에는 석정정이 있다
※ 연오정
자유공원 중간쯤 위치한 정자는 1960대에 인천 송현동 100번지에 살았던 조길 이라는 사람이 그의 부친이 살아생전 당부했던 뜻을 이어받아 설립했다고 하는데 그의 부친이 자유공원에 놀러갔다가 소나기가 쏟아졌는데 피할곳이 마땅히 있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비를 흠뻑 맞아 이를 위해 정자를 설립하도록 했다고 한다
※ 石汀樓
연오정 바로 옆에 위치한 정자는 1966년에 지어진 2층 누각으로 삼화조선을 경영했던 석정 이후선 사장이 30여 년간 자유공원을 산책하며 건강을 지켜온 보답으로 2층 누각을 인천시에 기증하였다고 하며 석정이란 말은 돌석 자에 물가 “汀” 자로서 황해라는 물가에 자유공원이라는 돌이 서 있다는이어령 비어령의 말이 있다. 이후선 사장의 호를 따 석정루 라고 하였다고 하며 석정루에 올라가면 멋진 풍경들이 장관을 이루어 인천 시가지와 앞바다, 월미산 등을 볼 수 있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연오정 정자 곁에 벚꽃길 유람9경이라는 패널이 있다 소개한 다
遊覽9경
1. 靑風(청풍): 맑은 바람과 소리가 빛과 어우러지다
2. 揮林(회림): 화사한 빛이 숲에 드리우다
3. 樹談(수담): 다양한 이야기가 벚나무에 얄리다
4. 小天(소천): 작은 하늘을 땅에 만들다
5. 彩影(채영): 그림자가 정원을 빛으로 채색하다
6. 多音(다음): 다향한 소리가 빛과 함께 드리우다
7. 彩色(채색): 다채로운 빛으로 공간을 채색하다
8. 運彩(운채): 사람과 빛이 교감하여 움직이다
9. 尖光(첨광): 미래의 빛이 모아져 하늘로 오르다
내리막길을 걸으면 삼국지 벽화거리가 있어 몇 번 스친 곳이고 초한지 벽화거리도 있다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후일로 미룬다 삼국지 벽화거리를 지나면 차이나타운이고 중간에서 우틀하면 동화마을로 갈 수 있는데 동화마를 표식은 도로안내 표찰에 있다
인산인해로 붐볐던 차이나타운 거리는 한산하니 썰렁했고 문을 닫은 점포들이 대부분 이었다 동화마을 들려서 인천역을 찾아가서 12코스를 마감하니 이제 인천둘레길도 13코스와 14코스를 함께 걷고 15코스인 강화도와 인어의 전설이 흐르는 16코스 정봉도는 인천둘레길이 생기기전에 걸어 봤으니까 17코스인 송도 미래길을 걸으면 인천둘레길 총 17개 코스를 완주하는 것이다
인천둘레길 12코스는 인천 중구의 “개항 누리길”로 인천 근대 개항기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길과 중복된 다
헌시
오호 50년 눈물 속에 흘렀어라,
하늘이 불을 토하고
땅이 놀라 울부짖던 그 여름도
이제는 풀잎 이슬처럼 덧없이 흘렀어라,
가슴 저미도록 오늘 삼천 꽃송이 그 앳된 젊음을 회억하매
그대들은 문득 열혈로 일어섰어라,
풀 한 포기 돌맹이 하나
그대들 조국 산하 어느 것인들 사랑치 않았으랴,
진정 그대들 자유처럼 분연히 일어섰어라,
포연 자욱한 골짜기
이울어 몽몽하던 조국 강토의 운명을
그대들 끓는 피 얼룩진 눈물이 지켰어라,
쓰러진 2백 산화여 낙화여
얼굴 보숭보숭한 풀꽃들이여
이제 이 찬란한 조국은 그대들 것이니
하늘 우러러 말하라,
조국은 그대들 심장 그 두근거리던 고동 속에 있음을,
오늘 그대들 마지막 남긴 친애의 입마춤
그 따스한 체온을 담아
황해 물 말없이 출렁이는 언덕에
자유의 이름으로 추모의 돌을 세우노니
오호 50년 찾아도 그대들은 지금 없어라,
다만 꽃처럼 붉은 넋으로만 있어라.
그대들 고운 호국 혼령이시여
고이고이 잠 드시라,
2000년 초가을 남주 김윤식
※ 仁川8경
1. 聖堂晩鐘; 답동성당의 저녁 종소리.
답동성당은 1889년 프랑스 빌렘 신부가 인천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 1895년
완공한 국가사적으로 당시에는 고딕식이었다. 종은 신축후인 1900년 3개를
설치, 매일 쳤다고 전해진다. 그 후 신도가 늘어나매 옛 성당을 그대로 둔 채
외곽에 벽돌을 쌓아 올려 1937년 로마네스크 양식의 새 성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朱安落雁; 주안 바닷가의 기러기 떼.
주안은 주안산에서 나온 이름으로 대동여지도와 동국여지승람 에도 나오는데
간석동에 있는 만월산의 원래 이름이다. 舊韓末 때까지만 해도 이곳은 인천교
다리밑(당시에 다리는 없었지만) 에서부터 이어지는 바다였었다.
3. 沙島夕雨; 옛날 沙洞이 매립되기 전 사도 앞바다에 있는 섬에 비 내리는 모습. 사동은
신포동 남쪽 해안쪽이죠.
4. 永宗歸帆; 영종도를 도는 돛단배.
조선조 때는 영종도에 중국사신이 마지막 쉬어가는 객관이 있 었다 한다.
5. 花島晴嵐; 花島에 피는 맑은 아지랑이.
화도는 이곳이 곶(串)처럼 생겼다 해서 곶섬으로 불리다가 꽃섬 이 됐다는 설
과 동네 모양이 멀리서 보면 꽃처럼 생겨 화도라 했다는 설이 있다.
6. 月尾秋月; 가을 달
조선조 숙종 때는 강화 피신 때 사용키 위한 행궁과 포대가 있 었다 한다.
7. 猫島夕照; 괭이부리의 저녁놀. 괭이부리는 지금의 만석동 한국유리 옛 영 종뱃터 부근이다.
8. 鷹峰暮雪; 자유공원이 있는 산 이름이 응봉산(매봉이라고도 함)인데 이 곳의 밤에 눈
내린 모습. 구한말 때 이곳에 각국조계가 있었던 탓에 한때는 만국공원이라고
불렸다. 일제 때는 낮 12시면 대 포를 쏘아 시간을 알려주었던 탓에 午正砲山
또는 午砲山으로 도 불렸다.(仁川地誌)
※ 인천시민의 노래
여명이 아시아에 비칠 때부터
한양 길 굽이굽이 백리를 뚫고
흰 물결 넘어넘어 사해를 펴서
자라온 인천항구 우리의 고장
한없이 뻗어나갈 길을 위하여
우리 손 모아보자 마음도 함께
여기서 겪은 치욕 몇 번이던가
또다시 찾은 환희 또한 얼만가
나라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다녀간 의인지사 헤일 수 없어
그임들 뜻을 받아 세워갈 항구
빛내자 우리인천 민국의 문호."
저 바다 뜬 배에도 뜻은 있어라
우렁찬 산울림의 기적 소리도
하늘을 휘어 덮는 공장 연기도
내 고장 인천항구 숨쉬는 모습
문학산 줄기마다 서기가 차고
월미도 넘는 희망 끝이 없구나
※ 인천아리랑
전통 아리랑 가락에 가사만 바꿔 일본인을 조롱하는 내용으로 불렀다
인천 제물포 모두 살기 좋아도/왜인 위세로 난 못 살겠네 흥/에구 대구 흥
단 둘이만 살자나/에구 대구 흥 셩하로다 흥/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오/아라랑 알션 아라리아(모두 슬픈 듯 부를 것)
산도 싫고 물도 싫고
누굴 바라고 여기 왔나
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오/ 아라랑 알션 아라리아(한 번 더 부를 것
11과12코스를 걷고
들머리
도원역 2번 출구에서
날머리
인천역까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에 홀로 걸었다
둘레길은
산야를 걷는 것
아니고
도심을 통과하는 것
반세기 전
통학길이지만
기억은
희미하고
변한 것이 별로 없이
옛 모습
그대로였지만
동화마을과
然吾亭 石汀亭이
생소할 뿐이고
초등학교 때
귀가길에
횽예문을
통과했는데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할멈과 차이나타운
찹쌀 탕수육 맛있었다
2020년3월25일 수요일 맑음
자유공원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에 있는 공원
올 때마다
새롭다
반세기전에
공원 자락에도 살아
홍예문
드나들며 초등학교를 다녔고
지인들과
인천나들이 때도 챙겨
봤던 것
여전 코
달라진 것은
인걸들일 터-
이번에도
맥아더 동상 앞에서
묵념코
바다를 본 다
산야에는
봄꽃이
활짝 피었는데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아
春來不似春이 됐다
석별의 정을 남기고
나는
도심으로 돌아갈 터
2020년3월25일 수요일 맑음
동화마을
원주. 고성. 반송.
아니고
인천 송월동에 있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 듣고
동화를 읽고 자란 다
동화마을에서
읽는 것 보다
보는 것
달동네 마을을
전래동화
세계명작 이야기를
벽화를 그렸고
주인공의
조형물로 시선을 끈다
인근에
차이나타운 있어
점심을 먹는 다
아이들에게
동심을 심어주고
어른들은
추억 여행을 떠나면
24시간 운영에
이용료금 없지만
밤에는
정숙해야 한다
2020년3월25일 수요일 맑음
인천역
한두번 온 것
아니지만
오늘은
도원역부터 걸으면서
도심의
삶을 보는
길손이 됐다
인근
차이나타운엔
발길 끊기고
역사 주변이
한산 한 것은
코로나19 탓이다
바이러스가
존귀한
인간들의
자유를 속박하며
외출자제 하고
집 안에
웅크리고 있으란 다
인천역
올 때마다
붐볐는데
정오에도
한산하고 쓸쓸함이지만
할멈이랑
바다열차 타러 또 와야지 2020년3월25일 수요일 맑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