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선생님 들어오세요." 도서관 안 쪽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 첫 번째 순서였다.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안내팀 민채가 내 손을 잡는다. 손을 잡고 도서관 안 쪽으로 안내한다. 다섯 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조용했다.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또렷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이름과 나이, 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를 말했다. 내 소개를 마치자 이제는 면접관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겠다고 한다. 아이들의 자기소개를 듣는 순간, ‘이 시간이 진정 면접이구나’ 싶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면접을 검색하면 두 가지 뜻이 나온다. 1. 서로 대면하여 만나 봄. 2. 직접 만나서 인품이나 언행 따위를 평가하는 시험. 면접자만 자기소개를 한다면 그 면접은 분명 시험일 터이다. 그러나 오늘 면접은 면접자와 면접관이 서로 자기소개를 하니 단순히 시험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졌다. 서로 대면하여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 떨림이 설렘으로 바뀐다. 우리는 면접을 하고 있구나.
뒤편에 있던 차대접팀 친구가 메뉴판을 들고 어떤 음료를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 알록달록한 메뉴판을 더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면접관들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기에 평소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눈에 들어오는 한 메뉴를 골랐다. 동백꽃 차였다. 좋은 선택이었다. 면접 후 점심을 먹을 때 규랑이가 자신은 오설록 차 중에서 늘 동백꽃 차만 먹는다고 했다. 어쩐지 눈에 들어온다 했다! 혹시 호숫가마을어린이도서관에 들릴 일이 있다면 동백꽃 차를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후로 기억에 남는 면접 질문들을 정리해 본다. 아이들이 물어본 질문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나의 답변도 면접 당시의 답변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다듬었다. 실제로는 더듬으면서 주저리 길게 답했을 것이다.
Q. 자기소개서를 읽으니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맞나요?
네
Q. 아이들을 왜 좋아하시죠?
저는 사람을 좋아해요. 사람은 모두 다르잖아요? 각자의 성격, 생각, 경험들이 다 다르잖아요. 그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특히나 아이들은 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아이들을 좋아해요. 아이들과 함께하면 저도 무한히 꿈꾸게 되거든요.
Q. 사랑받고 싶어 지원했다고 하셨는데,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을 잘 받을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괜찮아요”라는 말보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자연스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사랑은 주고받을 때 그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아서, 사랑받고 싶은 만큼 사랑도 많이 하고 싶어요.
Q. 두 가지 전공을 공부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전공이 더 좋나요?
벤처중소기업학과는 어떻게 하면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사회복지는 어떻게 하면 정답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전공이에요. 둘 다 재밌는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사회복지예요.
Q. 경청을 즐겨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경청을 즐겨하시나요?
제가 이야기 듣기를 좋아해서 자연스레 즐겨지는 것 같아요. 특별히 ‘경청을 즐겨해야지!’ 이렇게 다짐해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상황에 따라서 때로는 경청을 잘 못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대부분 경우 경청을 즐겨해요. 상대방의 이야기가 궁금하거든요.
Q.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요? 어떤 식의 활동을 좋아하시나요?
도서관 안에서 책을 읽고 앉아서 생각을 나누는 활동도 좋아하고, 밖에서 뛰어노는 활동도 무척 좋아해요.
아이들이 내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아직 글을 모르는 유치원 친구들은 부모님이 읽어주셨다고 한다. 면접 후 점심을 먹을 때 김유진 선생님이 슬쩍 알려줬다. 자기소개서를 읽을 때 아이들이 몹시 집중하며 들었다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고마웠다. 어젯밤 모닥불 앞에서 최선웅 선생님이 들려준 말이 생각났다. 호숫가마을도서관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배운다’라는 말이 그저 지나친 겸손의 말이 아님을 느낀다고 했다. 그랬다. 사람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이 귀했다. 아이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서, 어떤 조건의 사람이라서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기다리며 자기 삶 앞에 온 그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을 품어주었다. 나는 이런 기다림을 해본 적이 있던가. 잘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배운다. 사람을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모든 선생님의 면접이 마치자 도서관 안에 모두가 모였다. 서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면접 대기실의 분위기를 살피고 면접 장소까지 안내해 준 안내팀에게 박수를.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고 질문을 열심히 준비한 면접관에게 박수를. 따뜻한 차로 면접자들의 긴장을 풀어준 차대접팀에게 박수를. 면접을 총괄한 총괄팀, 떨렸을 테지만 열심히 면접을 준비한 선생님들에게 박수를. 앗, 놀이팀이 빠졌다. 이제 놀이를 진행할 놀이팀에게 박수를!
놀이팀의 서로, 선빈, 재원이가 오늘의 놀이 일정을 발표한다. 놀이 안내장도 나눠줬다.
신나게 놀았다.
점심도 야무지게 먹었다. 김유진 선생님이 준비한 김밥, 서로 아빠가 준비한 김치전, 은우가 준 빼빼로, 권민정 선생님이 구워준 가래떡. 뛰어놀고 먹어서일까, 다 함께 모여서 먹어서일까, 애초에 맛있는 음식이었던 걸까. 무척 맛났다.
집에 가기 아쉬웠다. 겨울에 다시 보자고 인사했다. 돌아가는 길 최선웅 선생님이 정류장까지 데려다줬다. 스쿠터를 처음 타봤다. 고개를 돌리면 호수가 보였다. 잔잔한 호수.
오늘 아침 산책이 떠올랐다. 거의 처음 본 사이나 다름없지만 벌써 정든 동료들 그리고 최선웅 선생님과 함께한 아침 산책. 해가 다 뜨기 전에 일어나 호수로 걸었다. 물안개도 처음 봤다. 선생님이 예전에 사람들이 전령을 믿은 이유를 알 것 같지 않냐고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한 블랙커피와 스위트 어쩌구 티를 먹으며 물안개 구경을 하염없이 했다. 지원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어젯밤 모닥불 앞에 앉아 동료들과 담소를 나눌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삶을 살고 싶은지를 나누었다. 독특하게,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 동료들과 함께 살고 싶어졌다.
다시 호수를 본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제는 지원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지 않는다. 그저 어서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마을에서 이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만드는 상상들로 가득 찬다.
환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첫댓글 지원하기 잘했다
어서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찬 바람이 부니 참 좋다
민서의 후기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번 겨울에 잘해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질문과 대답을 다 기억하시다니 대단하세요~
저는 면접관들 질문에 진심으로 대답하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어요~ 뒷모습과 말투에도 진지함과 따뜻함이 느껴졌어요~
“어서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마을에서 이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만드는 상상들로 가득 찬다.”
민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민서 설렘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