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 4] 삼위태백(三危(位)太白)과 천부인(天符印)
또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帝釋을말함)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란 이가 있었는데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두어 사람이 사는 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산(三危(位)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해 줄 만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환웅(桓雄)에게 주어 인간(人間)의 세계를 다스리게 했다.
환웅(桓雄)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마루턱(곧 태백산太白山은 지금의 묘향산妙香山)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이른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수명(壽命)·질병(疾病)·형벌(刑罰)·선악(善惡) 등을 주관하고, 모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敎化)했다.
***이곳에서 말하는 삼위태백(三危(位)太白)은 어디인가.삼위태백은 삼신산을 말한다.삼신산은 인류시원문명의 발상지요.신시와 왕검조선의 요람이었다. 우리는 삼신산의 정체부터 알아야 신화처럼 황당하게만 들리는 실화를 풀어낼 수 있다.《상서》《회남자》등에 의하면 중국 서쪽 변방 돈황 남쪽에 있는 산의 이름이라고 하고,《산해경》에는 삼위산에 파랑새 세마리가 있고, 산 둘레는 100리로 조서산 서쪽에 있다고 하고 있다.《상서》표주에서는 융인(戎人)이 봉우리가 셋이 있는 산을 '삼위'라고 부른다고 하고 있다.
《환단고기》<단군세기> 4세 단군 오사구 재위
38년
가을 8월에는 하나라 사람이 찾아와서 특산물을 바치고 신서를 구해갔으며 10월엔 조정과 백성의 구별을 돌에 새겨 써서 백성들에게 널리 알렸다. 경인 7년 배 만드는 곳을 살수의 상류에 설치했다. 임인 19년 하나라 왕 상이 백성들에게 덕을 잃어버리니 단제께서는 식달에게 명하여 람(藍)진(眞)변(弁) 3부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이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천하가 이를 듣고는 모두 복종하게 되었다. 신유 38년 6월 단제께서 붕어하시니 양가 구을이 즉위하였다.
《부도지(符都誌)》와 《삼국사기》의 놀라운 삼신산 기록
해상 삼선산은《사기》에 기재된 봉래 선산으로서 장도에 있는 삼신산이다.
▶삼위(三危)란 위태롭게 서있는 세개의 바위산의 상징을 말한다.만약 이 '위'를 '位'자로 쓴다면 삼신산을 신으로 승화시키는 표현이다.
***[주석]에 태백(太伯)은 우리나라 산.이 삼위(三危)와 관련되는 산이란 뜻에서 삼위태백 (三位太伯)이라 한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하였다.
고산도의 돗대바위, 이곳의 오른쪽의 낮은 바위들은 바다표범(해표)의 서식지로 알려진곳임
장도의 삼신산 일각. 고산도의 돗대바위 구멍이 뚤린체 수천년을 견디고 있다.
풍도(風濤)에 우뚝이 선
백장(百丈)의 바위
삼신산은 전설속의 산이 아니다.불로장생을 상징하던 고조선의 발상지었다.한때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렀고,군자국으로도 불렀다.때문에 공자도 땟목으로라도 건너기를 원하였고,진시황도 한 무제도 장생하기를 소원하여 건너기를 원하였으나 험한 물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이러한 삼신산의 상징을 궁중 조경에 모셔 재현하는 전통문화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동궐도> 창덕궁대조전후원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괴석
대청광여도는 삼신산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왜 삼신산을 건너기가 어려웠는지는 우측의 표주(漂注)가 설명한다.이러한 표주는《사기》<봉서서>의 근거를 인용한것이다."발해중에는 봉래.방장.영주등 삼신산이 있고,선인및 불사약이 있다. 그곳의 모든 새와 짐승들은 모두 흰색이고,궁궐은 황금과 백은으로 지어졌다.이르기 전에 바라보면 구름처럼 보이는데 도착하면 삼신산은 물아래 있고, 바람은 배를 끝없는 곳으로 끌어가버린다.
《삼신오제본기》는 말한다.삼신산을 천하의 뿌리산이라 한다. 삼신으로 이름 삼음은 대저 상세이래로 삼신이 이곳에 내려와 노닐으시고 삼계를 널리 감화하심을 믿기 때문이라.360만의 큰 둘레의 하늘은 그체가 불생불멸이시며 그 용이 무궁무근이나, 그의 법식과 이치는 때가 있으며 장소가 있으니 신의 지극히 자상하고 지극히 현명하여 여의자재하심은 끝내 이를 알 수가 없다.
그를 맞이함에는 흡사 눈에 보이는 듯이 하고, 그 바치는 일은 문득 들리는 바 있는 것 같이 하고, 그 한탄함에는 기꺼이 하사받음이 있는 듯이 하고, 그 서약함에는 숙연하여 얻는 것이 있는 듯이 하며, 물건을 바칠 때에도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바침이니, 이렇게 만세 인민이 인식추앙하여 모두가 다 기쁘게 믿는 것이다.
삼신산에 어떤 설에서 '삼(三)은 신(神)이 되고 신(神)은 또 백(白=빛)으로 되며, 고(高)가 되는 고로 고(高)는 바로 두(頭)가 된다. 때문에 또 백두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하고, 또 말하기를 '개마(蓋馬)는 해마리의 전음이다.'라고했다. 고어에는 흰것을 해라하고 두를 마리라고 하니 백두산의 이름도 역시 이예서 생긴 것이다. <삼신오제본기 중에서>
***따라서 개마대산이란 이름도 해머리산을 의미한것이니 백두산이란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고 하였다.이렇듯 햇빛을 중요한 광명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이유는 햇볓은 만물의 생멸을 관장하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렇게 절대적인 해가 맨먼저 뜨는곳이 지구상 극동지역인 발해의 삼신산(태백산)으로 보았다.중국은 이곳을 탕곡(湯谷)또는 양곡(暘谷)으로 부른다.그리고 신시를 건국하는 과정에 환인으로 부터 천손족임을 인정하는 천부인을 받게 된다.
이는 정통을 승계하는 의식이었다.세계 어느나라 창세사에 이처럼 지도자의 정통을 인정하는 옥쇄 얘기가 있었던가.만약 중국이 홍산문명의 주인공임을 주장하려면 기원전 4500~3000년 중에 사용되었던 옥도장에 대한 근거사료를 제시해야 한다.한국의《삼국유사》는 이를 증명하는 천부인(天符印) 기록이 있지 않은가.아래에 제시하는 홍산문명시기(기원전 4500~3000)에 만들어진 옥도장이 꼭 환인으로 부터 내려 받았다는 천부인이라는 확증은 없지만 그러한 기록이 더 중요한것이었다.더 상세한 설명은 아래 링크로
http://blog.daum.net/gusan0579/8015501
▶멕시코에는 아직도 산을 태백이라고 부르는 이동민족들의 언어가 남아있다.그들은 피라밋을 태백이라 부른다. 태백이란 신(神)이란 뜻이다.
홍산문명 옥도장 bc4500~3000 내몽고 오한기출토 (신시배달국시대에 속한다.)
상나라시대의 옥새
이상 옥도장에 대한 기록을 천부인에서 찾는다면 고조선의 본토라고 주장하는 삼신산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이 산을 찾기위해서는 많은 사료가 필요하므로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여 밝혀낼것이다.그전에 먼저 고조선의 건국은 어차피 신시배달국으로 부터 이어지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유물이 넘치는 홍산문명과의 연게를 밝히지 않을 수 없다.앞서 홍산문명과 고조선의 연게성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출전: 실증 《고조선본토기》에서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