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타다
10년 전에 아내와 봉정암을 찾았다. 힘들게 찾아 뵌 사리탑은 너무 아름다웠다. 용아장성의 웅장함과 사리탑의 우아함에 혼을 빼앗기고 있는데, 백담사 셔틀버스의 운행시간을 알고는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이대로 가면 도저히 막차를 탈 수 없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마지막 셔틀버스에 목숨을 걸었다. 깔딱고개는 거저 언덕일 뿐이고 바위는 돌무더기일 뿐이다. 걷는다는 건 사치다. 도둑의 절박함이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어떻게 그 일을 해냈는지 지금도 불가사의 하다.
체력이 언제 소진될지 모르는 나이가 되어버린 서글픈 현실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봉정암이다. 올 봄 가야산을 하산하고 호텔 사우나에서 피로를 푸는데 많은 생각이 일었다.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어,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올 가을엔 봉정암을 꼭 가야겠다고 공언했다. 혹시나 마음이 흔들릴까봐 친구들에게도 언약했다. 봉정암만 보기엔 미흡해 대청봉도 포함해서.
산악회에 신청을 했다. 9월 30일(금) 저녁에 출발하여 10월 1일(토) 밤에 도착하는 무박2일 산행이다. 오색에서 새벽 3시 출발하여 대청봉 일출(6시 15분)보고, 봉정암을 거쳐 백담사로 하산하는 코스다.
2주간의 짧은 계획을 짰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위해 한 달간의 스케줄을 짜듯이. 찬 공기 적응을 위해 새벽에 갈마산을 올랐으며, 목욕할 땐 냉탕에서 몸을 달궜다. 일주일 전 가야산을 탔는데, 일부러 험난한 만불상 코스를 택했다.
날다람쥐들로 가득 찬 버스는 어둠을 가르며 설악산으로 향한다. 캄캄한 창밖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무얼 위해, 뭘 얻고자 가는 것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인데. 많은 생각에 혼란스러워진다. 새로운 도전인가! 또 다른 전초전인가! 과연 삶에 어떤 변화가 오겠는가. 이런다고 젊어지는 것도 아니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뭘 찾아 이렇게 무모한 산행을 하는가. 동행자들 속에 비슷한 또래에 시선이 머문다. 저분은 왜 가실까?
깊은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새벽 2시가 지나고 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김밥을 탈나지 않게 꼭꼭 씹어 먹는다. 무릎과 종아리에 테이핑도 발랐다. 옆 좌석 젊은이가 궁금하다는 듯 쳐다본다.
산행대장이 마이크로 주의사항을 단단히 일러준다. 대청봉이 춥다고 하여 패딩 옷으로 준비했는데, 다들 간편한 복장에 놀랍다. 하물며 반바지 차림도 있다. 도대체 가늠이 안가 대장에게 물었다. ‘패딩을 입고 가도 되나요’ ‘안됩니다, 산행하면 바로 땀 흘리게 되는데 간편하게 입으세요.’ 땀을 많이 흘리게 되면 저체온 증에 걸릴 수 있으니,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기를 반복하라 한다. 좀 이해가 가지 않아 헷갈렸다.
드디어 출발지인 오색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진입로에 몰려있다. 일단 대장의 말을 믿고 청바지에 얇은 바람막이를 입었다. 3시에 문을 연다. 마치 마라톤대회 출발 총성과 함께 와~ 하고 뛰쳐나가는 듯 빠져나간다.
하늘은 숲에 가려 캄캄한데 머물 곳 없는 바람만 어둠속에 울부짖는다. 오직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고 간다. 오르다 밀리면 앞사람의 배낭을 들이받기 일 수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심한 까끌막을 계속 치고 올라야 한다. 추월하려고 잘 못 옆으로 가다간 다칠 수 있다. 추월의 의미도 없다. 그저 앞사람 궁둥이만 보고 따라갈 뿐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소리가 세어진다. 어디선가 물 폭탄 소리가 나는듯한데, 바람소리에 묻혀 알 수가 없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의 거센 바람은 자연의 분노인가! 싱싱한 나뭇잎의 이글거리는 소리는 쉬 잠들지 못하는 산의 몸부림인가! 발걸음이 경직되고 입이 타들어 간다. 병아리 물 먹듯 고개 치켜들고 생명수를 꿀꺽꿀꺽 마신다. 누군가 “와~ 별이다”하여 보니 북두칠성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발만 조심스레 떼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뭐 하러 이 고생을 하나, 아니 고행을 하고 있나. 찬란한 희망의 대청봉에 서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곳엔 꿈도 있고 삶도 있고 인생도 있을 것 같다. 대청봉이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있는 것이다.
흐르는 땀을 식히려 모자를 벗는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계속되는 강행군이지만 테이핑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지 않고 직접 뺨을 훌친다. 대청봉의 부름을 직감하고 고개를 돌리는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너무 아름답고 황홀하여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쳐다봤다.
여명의 붉은 노을이 동해의 수평선을 선명하게 채색한다. 캄캄한 바다위에 붉은 띠가 하늘을 갈라놓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워 모든 이들이 “와~~ 멋있다”를 연발한다. 곧 일출인가 보다. 야트막한 한 굽이도는데 대청봉이 와락 끌어안는다. 드디어 50년 만에 대청봉과의 재회다. 하지만 대청봉을 사랑하는 이가 너무 많아 앞으로 나가갈 수가 없다. 인증샷으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오색에서 2시간 50분 걸렸다. 감동적인 일출을 보게 되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 20여분 기다려 50년 만의 포옹을 했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재회만큼이나 감동적이다. 둘만의 오롯한 사랑의 푸념도 나누기 전에 붉은 노을 층이 두터워진다. 누군가의 함성에 놀란 해가 머리를 빼꼼히 내민다. 와~ 해다. 구름 한 점 없는 대명천지의 설악산에 감사하다. 검붉게 달아오르는 노을을 헤집고 솟는 모습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이글거리는 붉은 노을의 장대함에 모두 탄성을 터트린다.
금세 솟아버린 태양은 단풍으로 붉게 물든 설악의 아름다움을 만천하에 고한다. 이제는 해를 담는 것이 아니고, 돌아서서 설악을 담는다.
봉정암 연가
대청봉에서 내려다보는 설악은 너무 멋지다. 천불동 계곡의 하늘을 찌를 듯한 바위군웅을 줌으로 당겨보니, 마치 터키의 ‘카파토키아’를 보는 듯하다. 멀리 울산바위의 우람함은 황소뒷다리를 보는 듯 탱글탱글하다. 눈을 약간 좌측으로 돌렸다. 봉정암을 품고 있는 용아장성의 각선미는 ‘밀로의 비너스’만큼이나 완벽하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설악이 이렇게 멋진 줄 왜 몰랐던가. 너무나 아름다운 설악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봉정암에서 숙박을 하고 오시는 분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벼운 옷차림에 맨손으로 오른다. 가벼운 바람막이는 따뜻한 날씨에 허리춤 신세다. 가장 아름답다는 공룡능선 단풍 구경 갔나? 그 많던 배낭족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나 홀로 봉정암을 찾는다. 오색찬란한 단풍과 노니는 대청봉에서 친숙했던 제주 여인들의 모습이 형이상학적으로 보여 몰래 한컷 했다.
봉정암을 내려다보는 바위들의 당당한 위풍에 압도되어 조심스레 경내에 들어선다. 부처님의 뇌사리탑을 보고 기도하는 곰 바위는 아직도 사람이 되지 못했나 보다. 얼굴 맞대고 사랑하는 부부 바위에 더 애착이가는 것은 혼자라서 일까? 아침 공양이 안에 준비되어 있다기에 배낭을 내던지고 그 유명한 미역국밥에 단무지 올려 챙겨 나왔다. 아~ 단순한 밥이 아니다. 산해진미 진수성찬도 이보단 못하리다. 꿀맛이다. 한 그릇 공양엔 부처님의 자비와 가피로 가득하고, 그 은덕은 늘 우리 가까이에서 빛을 발한다.
배의 허기는 채웠으나 머리는 공허하다. 사리탑을 찾는다. 오랜 시간 갈구해온 만남인지라 가슴시릴 정도로 반가웁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 108배를 천천히 한다. 발가락이 온전치 못해 온몸으로 예를 다한다. 보면 볼수록 조형미도 자태도 우아함마저 마다할 정도로 아름답다. 불심이 강한 아주머니들의 독경소리에 힘이 난다. 아무리 거센 설악의 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 줄 것이다. 그 넓으신 도량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이시다.
용아장성을 내려다본다. 여인의 우아한 자태다. 팔등신 몸매로 오색 물감의 한복을 입고 휘어져 감기우고 하늘로 치켜세우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용의 송곳니처럼 솟아 있는 멋진 암봉들로 늘어선 커다랗고 긴 능선이 매혹적이다.
우아한 능선의 각선미와 울긋불긋한 천연물감의 조화는 설악만의 아름다움이리라. 저 멀리 산자락에 숨어 있는 운해는 선녀의 목욕탕 같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자아의 영혼마저 자연에 취해 전신이 마비된 듯 꼼짝을 못하고 있다. 바람은 누구에게 이 아름다움을 전하려고 저리도 빨리 달릴까?
풍악(楓樂)에 취한 흥겨움에 마냥 노닐 순 없어 발길을 돌린다. 다시 찾은 사리탑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무엇에 끌렸는지 다시 신발 벗고 풀 석 주저앉아 가부좌를 튼다. 양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지그시 눈을 감는데도 강한 햇살은 눈까풀을 뚫을 기세다. 떠오르는 많은 잔상들 중에 몇 가지를 간추린다. 가족의 평안과 건강한 삶이 제일 먼저 아니겠는가. 스치는 영상 속에 친구의 이름을 꼭 집어 아뢴다. “나의 우정이 영원히 피어날 수 있도록 건강하게 해달라고”
평생 세 번은 다녀가야 한다는 봉정암, 감로수로 목을 축이면서 또 오리라 약속한다. 또 만난 제주미인이 내민 커피맛은 스타벅스도 저리가라다. 백담사 가는 길목으로 접어든다. 오랜 기억 속 깔딱고개는 상당히 힘든 곳이다. 발가락이 쏠리는 체중을 감당하기 어려워 아픔을 호소한다. 약간 몸을 뒤틀어 체중을 분산시켜준다. 예전 같지 않은 고행에 발가락이 제일 안쓰럽다.
단풍은 서서히 아래로 물들기 시작한다. 해맑은 햇살에 생강나무의 잎이 샛노랗에 물들었다. 눈부실 정도로 강렬한 색채에 압도당한다. 이렇게 싱그러운 노란색이 어떻게 착생될 수 있을까? 정말 아름답다. 구곡담계곡의 풍악(楓樂)소리를 들으며 영시암으로 향하는데, 드러누운 아름드리 나무둥치에 새겨진 ‘조고각하(照顧脚下)’가 가로막는다. 발밑을 살펴라 하니 조심조심 할 밖에. 수렴동계곡에 들어서니 평평한 숲길이라 좋다. 피톤치드가 선선한 바람결에 마구 흔날린다. 깊은 심호흡으로 만신창이 된 심신을 달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발가락의 아픔을 참고 참아 겨우 도착한 백담사. 고생한 발을 개울에 담그고 안식케 한다. 이토록 험난한 길을 완주한 감회는 건재함이다. 새벽부터 밀어 붙인 멀고 먼 고행의 종점에서 한가롭게 가을 햇살을 쬔다. 이루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깊은 감동과 성취감이 밀려온다. 멀리 손 흔드는 설악산 자락에 감사의 인사를 나눈다. 고생한 발가락을 살살 주무르는데 언제 따라왔는지 봉정암의 생명수가 수고 했다며 손등을 어루만진다.
저녁 6시에 전원 탑승시킨 기사는 내일 새벽 일이 걱정스럽다며 투덜댄다. 모두들 오늘 하루가 얼마나 벅차고 감격스러웠을까? 휙 둘러보니 일상이었다는 듯 깊은 잠에 잠겨있다. 달리는 차창에 눈부셨던 설악과의 운 좋은 만남(세렌디피티)을 그려본다. 너무나 벅찬 감동들은 밀려오는 잠조차 떨쳐버린다.
예정보다 늦은 밤 10시 30분 대구에 도착했다. 아파트 주차장을 냉큼 빌려준 벗이 피로 회복에 좋다며 따뜻한 약물을 대령하는데, 눈물겹도록 고맙다. 이토록 소박한 소확행이 어디 있을까? 가슴이 터질듯 벅차오른다.
집에 도착하니 죈종일 마음 조렸던 아내의 첫 마디는 “참 말 로~”다. 살아 돌아온 개선장군에게 겨우 던진 말 한마디는 너무 진부하다. 반갑다는 말인가?, 밉다는 말인가?, 아니면 원망스럽단 말인가?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으면 마음 따로 말 따로 였을까? 볼 수는 없었지만 하루 내내 속 깨나 썩은 모양이다. 그러나 "참말로"는 이게 끝이 아닐 것 같다. '하얀 백설이 만건곤할 제' 한라산 눈꽃 사냥 갈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