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9. 04
올해도 어김없이 짙은 ‘녹조라테’가 말썽이다. 때 이르게 시작된 폭염의 기세가 7월의 오락가락 장마와 8월의 연이은 폭우로 한풀 꺾였는데도 그렇다. 특히 가뭄이 심했던 낙동강 유역의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 7월 말 낙동강 하류의 물금·매리에서는 mL당 14만개가 넘는 남조류가 검출됐다. 녹조에서 발생하는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의 농도도 환경부 기준치의 3배가 넘는 3.5㎍/L까지 치솟았다. 단연코 사상 최악의 상황이다. 식수와 농업용수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다.
뭇매 맞는 4대강 보
우리에게 ‘녹조’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남긴 가장 대표적인 후유증으로 여겨진다.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에 만들어놓은 어설픈 16개의 보(洑)가 강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아버려서 생기는 환경재앙이라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7~8월의 폭염으로 수온이 올라가고, 가뭄으로 유량이 줄어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22조원이 넘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은 명분이었던 홍수 통제 효과는 녹조라테 논란에 묻혀버렸다.
녹조의 피해가 단순한 수질 오염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진한 녹조라테가 발생하는 지역의 강바닥에는 어김없이 심한 악취를 풍기는 시커먼 뻘이 쌓이기 마련이다. 오염지표종인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 유충이 창궐하고, 큰빗이끼벌레라는 흉측한 괴생물체도 등장한다. 산소 고갈로 수중 생태계가 파괴되고, 은빛 모래톱을 낭만적으로 만들어주는 새들도 사라져 버린다. 녹조가 심각한 유역의 농작물에서는 마이크로시스틴과 같은 독소가 검출되기도 한다.
그런 녹조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보를 개방하거나 해체해버리면 녹조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된다는 일부 환경주의자들의 일방적 주장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탈(脫)4대강 사업’을 주요 국정목표로 내세우면서 보의 개방·해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던 문재인 정부가 엉거주춤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5개 보(세종보·죽산보·공주보·백제보·승촌보) 해체·개방 결정은 비정상적인 꼼수의 산물이었다. 대통령 훈령으로 보의 수질 평가 업무를 국토교통부에서 환경부로 이관시켜버렸다. 국회가 제정한 정부조직법을 통째로 무시해버린 것이다. 과학보다 이념을 더 강조하는 엉터리 전문가와 시민단체도 동원했다. 훗날 보 해체 결정에 대한 제도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칙이었다.
환경부의 꼼수도 화려했다. 2016년 1월부터 수질 평가 기준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되었던 COD(화학적 산소요구량)를 부활시켰다. COD는 물속에 녹아 있는 환원성 물질, 금속 이온, 아황산 이온 등의 영향에 따라 측정값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국립환경과학원이 2011년에 밝힌 과학적 진실이었다. 퇴적물 오염도, 저층 빈산소 발생 빈도, 녹조 발생일 등 검증되지 않은 낯선 검사항목도 추가시켰다. 그런 변칙으로도 보의 해체·개방에 필요한 실증적·객관적 근거를 확보할 수는 없었다.
결국 환경부는 명백하게 확인된 과학적 자료를 무차별적으로 무시하는 최악의 꼼수를 동원했다. 5개 보에서 지표가 개선된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TP(총인)·TN(총질소)은 통째로 외면해버렸다. SS(부유물질량)·DO(용존산소량)·클로로필a의 지표도 선택적으로 활용했다. 결국 5개 보의 해체·개방 결정은 ‘과학’이 아니라 ‘이념’에 의한 것이었다.
▲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 활동가들과 민간전문가들이 지난 8월 25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낙동강 국민 체감 녹조조사단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시스
‘보’가 아니라 ‘水質’을 관리해야
물론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었다.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려 16개 보의 설계·시공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면밀하게 살피지 않았고, 지천의 수질 관리는 송두리째 포기해버렸다. 지천의 수질 관리 실패로 최악의 오염을 일으켰던 시화호의 아픈 경험을 철저하게 무시해버렸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4대강에 설치해놓은 16개 보를 송두리째 해체·개방하는 것이 능사일 수는 없다. 보가 홍수 통제와 가뭄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심각한 물부족 국가인 우리의 수자원 활용에도 꼭 필요하다. 보의 건설로 만들어진 내수면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도 중요하다. 보의 수위가 올라가면 인접 지역의 지하수도 넉넉해지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진실이다. 지역 농민들이 보의 해채·개방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 녹조는 4대강 사업 때문에 불거지는 환경문제가 아니다. 4대강 살리기와는 상관없는 남한강 대청호의 녹조도 매우 심각하다. 사실 녹조는 물이 고여 있는 연못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자연현상이다. 남조류(藍藻類)라고 부르는 작은 식물성 플랑크톤이 지나치게 증식하면서 생기는 부영양화(富營養化·eutrophication) 현상의 결과가 바로 녹조다.
고여 있는 물이라고 반드시 녹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깨끗한 우물물이나 샘물에서는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 부영양화는 남조류의 성장·증식에 필요한 영양 염류(鹽類)가 충분히 녹아 있고, 수온이 충분히 높은 곳에서만 발생한다. 화학비료나 퇴비에 많이 들어있는 질산염이나 인산염이 그런 영양 염류다. 생활하수에도 영양 염류가 많이 들어 있다.
보와 댐 때문에 강물의 흐름이 느려지면 녹조가 악화될 수는 있다. 녹조라테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남조류의 입자들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지 못하고 한곳에 정체된 상태에서 빠르게 증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나 댐을 만들면 반드시 녹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소양강댐을 비롯해서 북한강 수역의 댐에서는 녹조가 흔히 발생하지 않는다.
녹조가 발생하는 보의 개방·해체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 수중에 서식하는 남조류의 양은 기본적으로 물속에 녹아 있는 영양 염류의 양과 수온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유속이 빨라지면 남조류가 하류로 떠내려가서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될 뿐이다. 남조류가 배출하는 마이크로시스틴과 같은 독소의 양도 줄어들지 않는다.
아무도 찾지 않는 썰렁한 모래톱이나 갈대숲을 되살리겠다는 하천의 재(再)자연화가 녹조 퇴치의 합리적 수단이 될 수는 없다. 홍수와 가뭄도 막아야 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활용도 포기할 수 없다. 어설프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보를 무작정 해체·개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녹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양 염류가 강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특히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천의 수질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농지에서 사용하는 퇴비와 화학비료의 양을 줄이고, 축산폐수와 생활하수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영양 염류의 양을 줄이지 못하면 녹조 퇴치는 불가능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농민들과 축산업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정부도 지천의 수질 관리를 위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필요한 예산을 투입해야만 한다. 환경·생태를 앞세운 이념적이고 소모적인 논란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