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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태안 당진 포콜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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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콜라레 행사사진 스크랩 마리아뽈리 당진,서산,태안 하루 마리아뽈리4월
마르타 추천 0 조회 125 11.01.08 21:4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하루 마리아폴리의 시작을 알리는 젠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두 달 전부터 맨 왼쪽 베이스기타를 치는 박아나끌레또의 지도로 노래 연습을 일주일에 두 세번 모여 했지만 젠 노래 자체가 어려운지라 실력향상에 한계가 있음을 느껴야 했습니다.

우리의 직업은 음악과는 상관없이 다양했으니 우렁농장, 돼지농장, 한우농장, 왕돼지집식당, 건강원, 은행원, 발전소직원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남성들과 직장인과 주부로 구성된 여성들

우리에겐 젠 또는 젠 출신도 한명 없었습니다. 왕돼지 집을 하는 조야고보는 식당을 하다 말고 달려와서 노래 연습을 하는 열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기도하셨던 것 처럼 저희 또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 분명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고 한 번의 불일치 없이 반목없이 오직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 주려는 사랑만을 했습니다.

멀리 당진 기지시에서 대산에서 서산에서 간식을 들고 일주일에 두 세번 달려과 연습을 해 주었고 감기 몸살에 시달리면서도 우리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아나끌레또의 사랑은 눈물겨웠습니다. 감기 몸살이 오죽 심하면 오늘은 선생님 먼저 들어 가시라고 등 떠 밀어 보내 드려야 할 정도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 분이 원주 마리아폴리 때 이 더운데 왜 데리고 왔냐고 저를 원망했던 분입니다.

저희들은 행사를 준비하며 미리 마리아 폴리를 경험 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모일 때 마다 그곳이 곧 천국인 듯한 느낌이었으니까요.

함께한 모든 분께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문사회자의 솜씨로 진행을 맡아 본 안드레아와 유스티나 

 

 

 

포콜라레 운동안에 정치인 일치 모임을 하는 당진 지역구의 김낙성 의원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맨 오른쪽에 토니와 조마리아께서 아침 일찍 서울에서 내려와 강력한 일치를 해주었습니다.

  

 

 

 

감동의 경험담을 발표했던 조안나와 이알리피오

 

 

안녕하세요?  대산본당의 조미현 안나입니다.

2004년 본당 신부님인 장영식 토마스 신부님의 소개로 포콜라레를 알게 되었고 그해 여름 마리아폴리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첫인상은 무척 밝았고, 사람들이 미소를 잃지 않고 항상 웃으면서 서로를 대하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고민거리도 없나? 고통도 없나? 뭐가 그리 좋아서 항상 웃고 다니나?“싶었습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어떤 형제님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분은 항상 밝고 기쁜 얼굴로 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형제님이 경험담을 했는데 암에 걸렸지만 버림 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모든 시련을 기쁘게 받아 참으며 예수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으나 그 당시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보름 정도 지났을 때 나에게 엄청난 고통이 찾아 왔습니다.  이 세상 어떤 단어로도, 어떤 글로도, 어떤 표현으로도 말 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어둠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인가가 나의 머리를 내려 누르는 것 같았고, 가슴은 답답하고, 머릿속은 갈갈이 찢어 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아파트 5층에서 살았는데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고 심한 내적 고통도 함께 느꼈습니다.


아파트 안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조건 밖으로 나와 미친 듯이 돌아 다녔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으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증상이 얼마간 계속되어 병원에 가서 몇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모두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그 고통이 계속되자 저는 하느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그러나 원망도 한순간뿐,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아이고 하느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제가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발 이 고통에서 저를 구원해주십시오’라고 하느님께 울부짖으며 매달렸습니다. 성당에서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계속 바쳤는데 그전에는 건성건성 바친 기도였지만 그때는 정말 눈물을 흘려가며 울부짖으며 기도를 바쳤습니다. 특히 12처에서는 십자가상에서 버림 받으신 예수님을 내 온몸으로 온 영혼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십자가상에서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절규하신 예수님! 인간으로부터도 하느님께로 부터도 버림받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이 고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받으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 빙산의 일각의 고통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나의 고통을 예수님의 고통에 일치를 시켜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그 엄청난 고통까지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순종하셨는가? 하며 예수님의 고통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나의 죄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으며 회개가 되기 시작하자 눈물이 앞을 가리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의 죄는 같이 살고 있는 친정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한 죄 사랑하지 못한 죄입니다.


10년전 1억 넘게 땅을 샀는데 엄마가 그 땅을 담보로 대출받아 주식을 하여 돈을 모두 날리고 또 외삼촌을 통하여 금융피라미드에게 사기를 당하고, 이리저리해서 땅을 팔게 되었는데 그것도 손해를 보고 팔게 되었던 것입니다. 팔고 나서 몇 년이 안되어 그 땅 값이 올라 10억원도 넘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를 원망하며, ‘주식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식말 안듣고 노인네가 고집부리고 마음대로 하다가 엄청난 복을 차버렸다’고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의 반대인 ‘참 나빴다’였나 봅니다. 나의 회개를 바라시는 하느님께서는 고통의 가장 밑바닥 고통을 맛보게 해 주셨습니다. 그 고통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고통을 통하여 ‘회개’라는 은총을 주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방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회개하기 시작하자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치유의 은총을 내려 주셨습니다. 한 한의사의 손을 통하여 저의 병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이 병의 병명은 ‘공항장애’라는 현재 양의학에서는 못 고치는 병인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답답해서 미쳐 날뛰게 되므로 결국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결국 거기서 죽고 마는, 자살률이 제일 높은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그런 끔찍한 병에서 저를 치유해 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직 감사와 찬미, 찬양을 드립니다!


저의 요즘 목표는 ‘가장 가까운 이웃부터 진심으로 사랑하자’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자’입니다. 가장 가까운 엄마, 남편, 내 자녀들.... 왜, 그전에는 이들의 소중함을 모르고 귀찮아하며 살아왔을까요? 이제 저는 이들은 내가 사랑해 주어야 하는 사랑의 대상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요즘 자주 성체조배실의 예수님을 찾아가서 “예수님,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그게 잘 안돼요.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 저도 당신을 닮아서 모든 사람을 항상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예수님께 청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사랑하며 나의 삶을 하느님께 바치기로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당진에서 사는 이명휘 알리피오 입니다.

우리 부부는 당진읍에서 건강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에 같은동네에 사시는 아주머니 두분과 할머니한분이 잉어만큼 커다란 붕어를 한 자루씩 가지고 다리기 위해 건강원에 오셨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먼저번에 오셨던 분이셨는데 우리 집이 정성껏 잘 다려 준다고 동네의 할머니 한분과 아주머니 한분을 모시고 함께 오셨던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 세분은 붕어를 다리는 가공비가 얼마인가를 물어 보셨고 저희는 붕어의 양이 많아 한약 한재가 부족하므로 한약 두재를 넣고 다리는 것이 알맞다고 말씀드리니 모두 좋다고 하여 솥마다 가져온 붕어와 함께 한약재를 꾹꾹 눌러 넣으니 솥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아주머니 세분은 솥마다 붕어와 함께 한약재를 듬뿍 넣는 것을 보시고는 마음이 흡족하여 돌아가셨으며 붕어는 잘 다려서 집으로 배달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튿날 잘 달인 붕어를 짜서 파우치에 정성껏 포장하여 아주머니들이 사는 마을을 방문 드렸는데 할머니 댁에는 할머니는 안계시고 할아버지가 집에 계셨습니다.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니 할아버지는 한 가지 물어볼게 있다고 하시며 붕어 가공비가 왜 비싸졌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붕어의 양이 많아서 한약을 두재 첨가 하였으므로 금액이 커졌으며 이것은 할머니께서 건강원을 방문 하셨을 때 이미 동의를 구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한재를 더 넣었는지, 잘 다렸는지, 무엇을 넣고 다렸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냐며 기본 가공비만 받으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저는 갑작스런 할아버지의 태도에 당황스럽고 짜증이 났으나 순간 할아버지 안에 계신 버림받은 예수님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공손히 자초지정 얘기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막무가내로 기본가공비만을 받을 것을 주장하셨습니다.

저는 한약재를 듬뿍 넣고 정성껏 잘 다렸으며 드셔 보시면 아실 것이라고 정중히 말씀 드린 후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으므로 할아버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할아버지 앞에 앉아서 아무 말 없이 할아버지의 처분을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 할아버지는 내가 먹는 약도 많으며 당신을 믿을 수 가 없으니 그 한약을 먹지 않겠다고 화를 내시면서 제가 말씀드린 가공비를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감사하며 붕어엑기스를 잘 드시고 건강해지시라고 공손히 인사를 드린 후 할아버지 집을 나왔습니다.  나머지 아주머니 두 분께도 잘 배달해 드리고 돌아오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할아버지를 사랑해 드리려 애썼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할머니와 함께 붕어를 달여간 아주머니 한분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붕어 즙과 함께 선물로 드린 칡즙의 맛이 변질된 것 같다는 내용 이었습니다. 고객 불만사항이 접수 된 것이지요... 저는 그 칡즙을 드시지 말 것을 당부 드리고 빠른 시간 내에 새것으로 교환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즉시 새로운 칡즙 3박스를 차에 싣고 아주머니의 댁으로 향했습니다. 아주머니의 집은 마을회관 옆에 있었는데 문이 잠겨 있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동네 분들에게 아주머니가 어디 계신지 물어보려고 마을회관에 갔을 때 할아버지 몇 분이 밖에 계셨는데 저번에 화를 내시던 할아버지도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슨 일로 아주머니를 찾느냐고 물으셔서 선물로 드린 칡즙이 변질된 것 같다고 하여 새것으로 바꿔 드릴려고 한다고 하니까 내 것도 새로 가져왔느냐고 물어 당연히 가져왔다고 말씀드리니 금세 표정이 밝아지시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키로 하고 할아버지 댁에 가니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할머니가 방에서 칡즙을 꺼내 오실 때 슬며시 ‘할아버지 붕어엑기스 잘 드시고 계시나요?’라고 물으니 잘 드시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직 안 드시고 계시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였는데 할아버지께서 마음을 바꾸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인사를 드리고 아주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집 뒤의 밭에 계셨으므로 아주머니와 함께 상한 것 같다는 칡즙을 확인하였을 때 그것은 상한 것이 아니고 칡의 입자로 인해 단순히 침전물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새 칡즙으로 바꾸어 드리니 멀리까지 일부러 방문하고 교환해주어서 감사하고 붕어엑기스도 맛있게 잘 먹고 있다고 하시며 초콜릿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고객의 불만사항을 즉시 접수하고 확인 후 새 제품으로 교환해 드렸을 때 아주머니께서 감사를 표하시고 버림받은 예수님을 사랑해 드렸을 때 할아버지와 화해를 하게 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어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가볍고 행복해 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스티나,세실리아,마리아의 예술의 시간(나의 정배)

 

 

드럼을 치는 글라라(저희 딸 입니다) 두 달 동안 공부도 뒤로 하고 우리와 일치해 노래 연습을 도왔

답니다. 

 

 

 

 

조 마리아께서 주제인 '친교와 일치'에 대해 담화를 해 주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듣고 있는 객석의 모습 들 

 

 

맨 뒤에서 비디오 촬영을 담당했던 태안 김라파엘의 모습이 난로뒤편에 조야고보와 함께 서있습니다.

 

 

당진 송바오로 딸 송민조의 플룻 연주(예술의 시간) 

 

 

 

3젠과 4젠들은 박수산나 샘의 지도로 풍선 아트를 하며 별도의 모임을 했답니다. 

한 집에 세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자매는 젠들의 별도 모임에 때문에 엄마는 편안히 모임에

임할 수 있었답니다. 수고해 주신 박수산나 샘께 감사드립니다.

 

 

 

 

 

 

 

 

 

서산 석림동성당 황도미니코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수 많은 영성이 그 시대 마다 태어난 동기와 역활에 대해 말씀해 주셨고

이 시대에 진정 우리에게 절실하게 다가 온 포콜라레 영성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카리스마의 역사 (황화인 신부님 강론 내용입니다.) 

1. 교회가 시작된 성령강림이후에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Act5장을 보면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 그리고 사두가이파사람들은 기적을 베풀고설교를 하는 사도들을 시기하여 박해를 합니다. 이후에 복음은 사도들과 또 다른 제자들에 의해서 소아시아에서 멀리 로마에까지 전파됩니다. 박해 중에 로마에서는 많은 이들이 죽어갔고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기초를 이룬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313년 박해가 끝난 뒤에 신자들의 삶은 긴장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또 한편 삶의 해이를 가져옵니다. 이때에 박해 시와 똑같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태어난 것이 은수자 ,독수자, 방랑수도자들이 생겨났었습니다. 우리는 최초의 은수자로 동방(이집트)의 안토니오를 언급합니다. 안토니오(251- 356년)는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바치기 위해서는 내적, 외적 고독을 추구해야한다고 했고, 자기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피조물도 허락할 수 없으며, 그 초탈함 속에서 애덕의 충분한 힘이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안토니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계곡에는 5000명의 은수자들이 몰려있기도 했습니다.

2. 역시 이집트의 파코미오(290? - 346/7)는 공주 수도생활의 창시자입니다. 그는 이 공주생활이 독수생활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도자들이 늘어났을 때 40명단위로하고 각 공동체에는 한 명의 원장대리가 있고, 그에게 순명하며 살았습니다. 이 수도회에도 많은 이들이 몰려왔고 잠시 후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로 넘치게 됩니다. 이들의 생활은 기도(시편기도), 하느님말씀을 읊거나 묵상, 전례, 장상의 영성강화, 여러 가지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소아시아에서는 바실리오( +379)가 있었는데, 그도 엄격한 독수생활이나 인간사회와 분리된 생활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수도공동체가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를 가장 잘 모방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은수자들의 생활과 공주 생활이 수도원의 모태가 되는데 교회 안에서 조용히 이루어져 가던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성령에 의해서 은총으로 교회에 주어지고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3. 서방에 수도생활의 형태를  알린 사람은 아타나시오입니다. 서방에서는 아우구스티노가 동방식이 아닌 서방식의 새로운 양식의 공동수도생활을 시작합니다. 공동생활, 사유재산포기를 통해서 관상의 목적을 버리고 사목적 봉사를 이상으로 삼게 됩니다. 이들이 함께 하려는 목적은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본관례가 동방에서나 서방에서 동일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은 다른 기풍이 있었는데 그것은 형제들 상호간의 관계가 강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이집트의 전통은 각 개인이 영적 아버지를 통해서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 더욱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 수도회는 광범위하게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유럽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베네딕도의 규칙에까지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이루어져 가고 있던 수도생활, 수덕생활의 역사는 성령께서 그 시대와 교회에 필요한 답으로써 주신 것들이었습니다.

성 베네딕토(480 -547)를 봅시다. 5세기 초 정확히 410년 서로마제국이 고트족에 의해서 멸망하고, 반달족은 북아프리카를 강탈하고 455년 로마시를 침입합니다. 535년에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황제가 서로마제국을 되찾으려고 이탈리아전역에서 전쟁을 치룹니다. 568년에는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입했고 단시일 안에 제국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갑니다. 코르도바를 572년 일단 재점령하지만 584년에는 영원히 상실한다. 40년 후에는 스페인의 남은 지역까지 모두 빼앗기고 만다. 바로 게르만 민족의 대 이동과 이단들의 난립, 새로운 정착의 필요성, 노동의 문제가 대두될 때에 베네딕토 성인은 그 시대를 살다 가셨습니다. 다행히도 교회는 게르만 민족과 화해하고 그들을 교화하게 됩니다. 이때 베네딕토회의 수도자들은 미개한 부족들이 응집될 수 있도록 구심점이 됩니다. 수도회 내에서 로마문화와 미개문화가 융합됨으로서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표현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베네딕토회의 회칙 안에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회칙을 요약해주는 두 말 “일과 기도”의 조화는 사람들을 지상적이며 초자연적인 차원의 생활로 인도했으며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결국 베네딕토회의 평화라는 문화가 태어났고 이는 전체사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후에 중세의 탁발 수도회는 재산을 소유하지 않으면서 동냥과 희사에 의해서 살아가던 수도회를 말합니다. 명상생활과 사목직무나 사도직수행을 임무로 삼았다. 프란치스코, 도미니코, 깔멜회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프란치스코회는 ‘가난’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영성입니다. 그리고 설교도 주 임무였습니다. 수도자들은 가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따랐습니다. 이를 통해 교회 안의 악습을 바로잡고 신앙의 성실성, 교회권위에 대한 순종, 청빈생활을 보급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당대에 교회를 일으키고, 많은 이들을 교회에 인도했습니다.

도미니코회는 거룩한 진리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관련이 있었는데 이들은 이단근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남프랑스의 알비젠이단에 대해서 교황사절이 아무런 진전을 가져오지 못하자 도미니코는 직접 순회설교자로 나섭니다. 학문적 연구는 교회 안에서 그들에게 적절한 봉사였습니다.

 루터(1483- 1546)에 의한 종교개혁(1527년에 대사명제를 발표하여 시작되었는데, 독일에서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강화조약으로 끝맺고, 영국은 1559년 엘리자베스정착으로 끝맺는다)이후에 나타난 영성, 성령이 주신 카리스마는 로욜라의 이냐시오(1491 -1556)에게 주어집니다.

성인은 자신의 사업이 프로테스탄트 개혁에 대한 대안이라는 것을 점진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처음 이냐시오는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투쟁을 목적으로 수도회를 창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근본입장이 루터와 종교 개혁가들과 완전히 대립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후대에 자료의 판단에 의해서 더 정확해진 것입니다. 예컨대 이냐시오는 제도적인 교회와 충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재판과 관련되어 투옥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카라파 추기경과 크게 충돌했었고, 그분이 교황이 되었을 때(바오로4세) 이냐시오에게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대한 신앙으로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참을 줄 알았습니다. 오늘날 이냐시오 영성을 한 마디로 ‘순명’이라고 요약합니다. 이것이 종교 개혁가들과의 큰 차이점입니다.

 줄이기 위해서 결론적으로, 성령께서 창시자들 안에 일으키시는 카리스마에는 시대를 읽고 거기에 응답하는 능력을 함께 주셨습니다. 창시자는 하느님의 도구이고, 그래서 교회의 일부가 되고, 스스로 복음을 살면서 교회적이고 복음적이 될 뿐 만 아니라 그 시대에 합당한 대안을 제시하고 교회 본래의 모습을 실현시키고, 교회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끼아라 루빅(1920 -)에게  2차 대전 전쟁의 포화 속에서 모든 것이 부서지고 사라져가는 가운데 주신 일치의 영성(포콜라레운동)도 이 시대에 교회와 인류를 위해서 주신 영성입니다. 이 시대는 교황님들도 말씀하시듯이 일치가 시대의 징표입니다. 마리아사업회의 이 영성은 이 시대교회에 새로운 봄을 가져다주고 있고, 교회를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 알아듣고 여기에 ‘새로운 그 무엇’이 있는지 깨닫지 못할지라도, 요한 바오로 2세는 ‘새 천년기’에서 교회는 “친교의 집이며 학교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친교의 영성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고 이 마리아사업회의 영성이 바로 친교의 영성이고,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바로 성삼위의 친교를 이 땅위에 세우는 영성입니다. 이 영성은 교회 영성전문가들이 이미 진단도 내렸듯이 단지 같이 사는 영성이 아니라, 다시 말해서 공주생활의 차원을 넘어서는, 교회 안에 처음으로 등장한 개인영성이 아닌 공동영성이고, 새계명을 살면서, 일치를 이루면서 모든 것에 앞서서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노력하는 영성입니다. 이것이 이 영성의 규범중의 규범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 둘이나 셋 이상 서로간의 사랑 안에 당신께서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고, 바로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이 영성에서 최고의 규범입니다.  여러분들 오늘 함께하는 이 시간들이 서로 사랑하기에 예수님 모시게 되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니 기쁨과 열정을 느끼는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신부님의 강론에 경청하는 모습  

 

 

 

미사 후에 공지사항을 안내하는 프란치스코와 베로니카 

 

식당으로 안내하는 조야고보

 

송바오로도 한 컷(행사를 마치고 링거주사를 맞았답니다)

거의 모두가 행사 준비를 하며 감기 몸살로 한 번씩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고단한 농장일을 마치자 마자 태안으로 달려와야 하는 어려움이 두배의 피로를 가져왔지만

오직 사랑 만이 우리 안에 가득했기에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맛 있고 즐거운 점심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 커피 한 잔의 여유와 담소를 하는 모습 

 

점심 식사 후에도 오후 프로그램을 살피는 총감독 송바오로와 파랑색을 담당한 마르티노 

 

 

서산 석림동 가족들 끼리만 일치... 찰칵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사랑과 일치를... 

 

 

 

도서홍보와 판매를 해준 안젤라와 마리아 

 

 

 

 

 

  

토니와 도미니코 신부님의 진지한 대화 

  

 

최바오로,박바오로,김프란치스코의 예술의 시간(하느님은 사랑이시니) 

 

 

네명의 경험담 발표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사진이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알리피오와 함께 사는 박병희 마리아입니다.

우리 가족은 당진읍에 살고 있는데 이웃에 가벼운 자폐증이 있는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아이가 있습니다.

학교에서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질까 걱정될 정도의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해 바지에 실례를 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제3자로부터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님에게는 얼마나 큰 십자가일까 생각하니 같은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안타까웠습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작은딸과는 잘 어울려 놀곤 했습니다.

나와 남편이 관심을 가지고 무엇인가 물어보아도 아이는 입을 굳게 다물고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가 자폐증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려 노력했습니다.


며칠 전에 이 아이가 또 우리 집에 왔습니다.

다른데서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을 우리에게선 느꼈는지 저희 집엔 자주 오더군요.


우리 작은딸과 놀고 있는데 저녁때쯤 그 아이의 엄마가 이제 데리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저녁식사 준비 중이라 저녁을 먹여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이의 엄마가 왔습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의 엄마는 잠깐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가지고 놀던 물풍선이 2개였나봅니다.

한 개가 없어졌는데 우리딸보고 못 봤냐고 하더군요.

아무리 식구들이 다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내가 찾으면 주겠다는 말에도 풍선을 사주겠다는 말에도 아랑곳없이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밥도 먹지 않은 채 말입니다.

난감해하는 아이 엄마의 달램도, 으름짱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온 식구가 매달려 그 아이를 달래도 소용없더군요.

결국 아이엄마는 아이를 끌어내듯 간신히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창피해서 죽겠다고 하면서...

나는 저 엄마가 앞으로 얼마나 고통을 당할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순간 버림받은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도 어쩌면 아이의 엄마도 모두 버림받은 예수님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다른 곳에서 사랑을 못 받았다면 나에게서 만큼은 꼭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끔 의도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원래 저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지만 이 아이는 그래도 저에게서 자기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느꼈나봅니다.

비록 난리를 피우고 갔지만 앞으로도 그 아이가, 저의 가게를 다시찾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우리 가족들은 진심으로 그 아이를 사랑해 줄 테니까요.

저는 지금부터 기다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언제 그 아이가 다시 올까 하고요.

소외받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이 저는 더 정이 갑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소외계층이 더 많아지는 요즘, 저는 그런 사람들 안에 계신 버림받은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로 다짐해봅니다.

 

안녕하세요? 당진의 김영옥 마르타입니다.

아침 8시경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옆집 형님이셨는데 오늘부터 3일간 쉬는데 남편들하고 찜질 방이라도 갔다가 외식이라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우렁이 양식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농한기인 그때도 겨울 날씨가 포근하여 쉬는 날 없이 하루 일을 계획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별로 내키지 않은 마음이 들어 망설이고 있던 중에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오늘 일은 다음에 해도 되니 같이 갈수 있다고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시 이웃을 사랑하려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형님 뜻대로 하시라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웃을 행복하게 해 드려야할지 남편과 의논했습니다.

우리한테 낙산에 있는 콘도 이용권이 있으니 그걸 사용하기로 하고 형님께 다시 전화를 드려 기왕이면 1박 코스로 강원도 쪽에 다녀오자고 했더니 너무 좋아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쪽이 편치 못하였습니다.  예전에는 세 집이서 형님 아우하며 지내는 또 다른 한 집이 있었는데 이번에 동네 이장으로 출마하였지만 우리가 반대표를 던졌거든요.  그 부인도 우리랑 같은 생각으로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자기 남편이 이장으로 나오는 것을 반대했었답니다.

하지만 그분이 당선이 되었고, 우리는 이장과 껄끄러운 입장이 되어 얼굴을 마주치거나 같이 할 수 있는 자리도 멀어져 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하였습니다.

이웃을 먼저 사랑하기 위해서 이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강원도 쪽에 1박 예정으로 점심때쯤 떠나려고 하는데 함께 가자고 하였더니 이장댁은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는 힘빠진 목소리에 가라앉은 집안 분위기가 전화상으로도 감지되었습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하는데 굉장히 힘들어 보이는 목소리 이었습니다. 


이장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대답과 함께 부인이 힘들어하면서 몇 일째 말도 안하고 밥도 안 먹고 시들시들하다고 합니다.

분명 지금 이 순간이 이웃을 사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웃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꼭 같이 가야겠다고 맘을 먹고 서둘렀습니다.

이렇게 세 집이서 갑자기 예약 없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들뜬 마음에 또 나이트엘 가자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이왕에 그분들과 함께 해주기로 마음먹었으니 같이 갔지요. 저녁 식사를 하면서 벌써 많은 술을 먹었는데 나이트에 가서는 아주 작은 맥주 한 병에 5천원씩이나 하는걸 우리 남편은 또 계속 마시는 것을 보는 순간 화가 났습니다.  오래됐지만 술 때문에 나쁜 추억도 있고 자주 술 냄새를 풍기는 남편이 싫었습니다.  그 순간 아주 작아지는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일치가 깨지는 순간이었고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분들이 알고는 분위기가 차갑게 바뀌었습니다.

아 이러면 안 되지.

얼른 맘을 고쳐먹고 분위기를 바꾸느라 또 노력해야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이웃과 하나 되고 불일치를 받아들이며 즉시 다시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젠 콘도에 들어왔는데 잠자리가 문제였습니다.

방이 두개 그리고 주방 겸 거실인데 한 형님은 한가롭게 자고 싶어 하고 이장님 댁은 침대 아니면 못 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방 겸 거실을 사용했는데 그분들은 우리 보다 더 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온도가 너무 높은데 낮출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밤새 찜질을 제대로 한 것입니다.

집에서의 귀찮은 밥하기 안 하려고 쌀을 가져가지 않기로 했지만 제가 밑반찬과

여섯 명이 먹을 만큼의 쌀을 가지고 가서 아침밥을 해드렸더니 역시 밥이 최고라며 잘 드셨고 남편은 설거지를 맡아서 깨끗이 해주고 정리까지 말끔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가족이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며 그것도 시원한 동해안 바닷가를 거닐어보며 부서지는 파도에 무거웠던 마음 훌훌 씻겨버리자 도망치려던 행복이 막 다시 오는 것이 느껴진다며 그분들은 행복해 했습니다.

주문진항에 들러 점심으로 오징어 회를 먹었는데 또 술이 문제입니다. 누가 운전을 할 것인가? “내가 바라는 대로 그들에게 해주어라” 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제가 할 테니 맘껏 드시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먼 거리를 운전 해보기도 처음이고  남의 차이고 속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주님만을 믿었습니다. “주님 안전운전 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하고 화살기도를 바치고 몇 키로를 달리다보니 익숙해졌습니다.

7만원짜리 3만원짜리 과속위반 벌금도 물어본 저였는데 포콜라레를 영성을 알고부터는 규정 속도를 지키는 것도 사랑이라는 걸 깨닫고 속도위반 하지 않고 잘 왔습니다.


3일간 휴가를 맞은 형님은 어떻게 유익하게 보낼지 자기 맘을 맞춰주지 못하는 남편만을 탓하지 않고 우리에게 얘기한 것이 정말 잘했다며 너무 좋아했고 이장님은 우리가 이장 출마를 반대 했던 터라 좀 기분이 언짢았었는데 우리의 진정한 마음을 알고 가까이 하고 싶었지만 왠지 서먹했었는데 이렇게 함께해주니 고마워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날 큰맘 먹고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보려던 이장댁은 따로 사시던 시어머님과 마음을 맞추느라 애쓰면서 서서히 우울증이 왔었는데 그 여행이 병원 치료보다 더한 효과를 보았다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항상 즉시 기쁘게 이웃을 사랑하려는 마음가짐으로의 여행은 참으로 값진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태안의 최덕열 바오로입니다.

개학을 이틀 앞둔 2월3일(토)부터 4일(일)까지 마리아폴리센타에서 있은 남자 4젠 대회에 태안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저희 아들 알렉산델과 이웃에 사는 부모님께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초등학교 2학년인 요셉이를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당 사무장 일을 하기에 토요일엔 항상 바쁘지만 다행히 그날은 3시 어린이 미사가 없게 되어 그 곳까지 아이들을 데려다 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다음 날 발생하였습니다. 아내 안젤라가 모임이 끝난 아이들을 데리러 센타로 가야하는데 못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젤라는 요 며칠 퇴근 하자마자 성당으로 달려가 중고등부 학생들 아뉴스제 행사를 준비하는데 저녁밥과 간식을 해주고 설거지는 물론 다음 날 저녁거리 장 보는 것까지 안젤라의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요즘의 일정이 감당하기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들과 남의 아들을 안전하게 데려와야 하는 것이기에 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못 가겠다니  이런 낭패가 없었습니다.


아내 안젤라는 승용차로 10분 거리의 동네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주일 날 쉬니까 당연이 데리러 갈 줄 알고 다른 집 아이 까지 보낸 것이었는데 진작 못 갈 거였으면 보내질 않던가 아니면 알렉만 대회에 참가시키고 작년처럼 버스를 태워 보내달라고 선생님께 부탁드리면 되는 일이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며 은근히 화가 나며 안젤라에 대한 판단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안젤라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왜 아이들을 대회에 보낼 때 데리러 못 간다고 미리 얘기하지 그랬냐고 물었더니? 바오로 성격에 그렇다고 안 보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미사 후에 곧바로 상임위원회가 있기에 내가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셉이 엄마한테서 안젤라 언제 출발 하냐고? 전화는 오고 큰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 부부 사이에 일치가 이미 깨져있음을 알 수 있었고 더 이상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말다툼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즉시 다른 방도를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순간 당진 송 바오로면 다녀 올 수 있겠다는 지혜를 하느님께서 주셨으며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습니다. 늘 바쁜 분이지만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부탁을 드렸고 즉시 갔다 오겠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렇듯 지옥과 천당 사이를 오가는 동안 송 바오로가 아이들을 데리고 태안에 도착했고 알렉과 포옹을 하고 집에 먼저 들여보내고 요셉을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배웅 나온 요셉의 엄마 얼굴이 밝아 보이지 않아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셉이 아빠가 언짢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젤라가 데리러 간다고 해 놓고 다른 사람을 보냈다고 끝 까지 책임을 지지 않은 우리부부에게 섭섭하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으며 끝까지 해결하지 못한 내 잘못을 크게 느꼈습니다.

안젤라의 무책임함과 야속함 때문에 순간 포콜라레 영성을 포기하고 전화통에다 대고 소리라도 한 번 지르고 싶었지만 그것이 최선과 최상의 선택인 사랑이 아님을 알기에 즉시 안젤라를 더욱 사랑 할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안젤라가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승용차를 세차해 주고 이미 때가 지난 엔진오일을 갈아 놓고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상임위원회의가 끝나고 차를 가지고 카센타와 세차장에 갔지만 안타깝게도 주일이라 문이 잠겨있었고 그래서 사랑의 행위를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 미사에 다녀와 눈을 좀 부치려니 전화가 걸려 왔는데 본당 교우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 연도를 다녀와야 하니 카센타 갈 시간을 오후로 미뤄 점심을 먹고 안젤라가 근무하는 병원에 가서 차를 가져다 엔진오일을 교환하고 세차를 해서 갔다 노려는 순간 안젤라로 부터 전화가 왔는데 차가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이미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차량 절도범이! 되어 있었습니다. 안젤라가 퇴근 하려고 차 문을 열었을 때 깨끗하게 세차가 된 차와 사랑의 글이 쓰여진 예쁜 엽서와 초코렛 선물을 보고 깜짝 놀라게 해 주려는 것이었는데 일이 수습하기 어려우리만큼 커져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왕 벌어진 일 경찰에 차량도난 신고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는 선물과 함께 몰래 수협 앞에 차를 세워 놓고 가려고 하는데 수협 직원이 병원에 전화를 해서 알린 것이고 남자 직원은 나를 잡으러 나오는 순간 안젤라가 달려와 딱 걸린 것 이었습니다. 어떻게 차를 찾아 왔냐고 묻는 안젤라의 질문에 얼렁뚱땅 얼버무리고 수줍은 차량 절도 행각(?)을 마무리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요셉이네 아파트 우체통에도 무책임한 행동 용서해 달라고 사과의 엽서 한 통을 써서 넣어 놓고 왔습니다.


하루 동안 온통 사랑만을 살고 나니 마치 이곳이 천국 인 듯 가슴이 뛰고 행복합니다. 차 안에 있던 엽서와 선물을 발견한 안젤라에게서 “내가 잘못했어요.”라는 제목의 아내로부터 처음 받아 보는 장문의 멀티메일 문자가 왔습니다. “내가 잘못 했어요 눈물 나잖아요. 물리치료실 한 실장이 나 결혼 잘했데요. 나윤이는 자기 같은 남자 있으면 당장 결혼한데요. 사랑해요♡”라는 감동의 문자 편지로 아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즉시 사랑으로 답장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모신 활짝 웃는 예수님의 모습이 오래 도록 저희와 함께 사시길 수 있도록 사랑의 일치 여행을 통해 성덕의 길로 향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학수 프란치스코입니다.

저는 한 회사에서 23년 동안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포콜라레 영성  안에서 승진과 관련해서 겪었던 경험담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저는 당진 사업소에 과장으로 발령을 받아 10년 이상을 근무하고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부장 진급을 위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번번이 승진에서 누락되었습니다. 재작년에는 저의 상사께서 부장진급을 위해서는 본사에서 근무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기에 가족을 당진에 남겨둔 채 서울 본사에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본사 근무 첫해에도, 두 번째 해에도 부장 진급에서 탈락되어 그로 인한 실망감이 무척 컸습니다. 주변에서는 일만 잘해서 승진하기는 어렵고 로비를 잘해야 한다는 말들을 하여 저를 무척 힘들게 하였습니다. 이번에 떨어지면 또다시 가족과 떨어져 1년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과 승진의 기회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꼭 진급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며 일뿐만 아니라 대인관계나 로비에도 열심히 하리라 마음을 굳게 다졌습니다만 로비는 제 성격이나 포콜라레 영성과 잘 맞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진급 심사일이 다가오면서 회사 내에서 진급에 대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저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적은 후배가 저의 유력한 경쟁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배는 회사 사장의 대학 후배이며 적극적인 로비를 통하여 인사권을 가진 최고경영진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그 소문을 접한 후 그 후배는 저의 경쟁자가 되지 않는다고 애써 태연한척 하였지만 그 동안의 인사 관례를 볼 때 그 후배가 저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저를 고민에 빠트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승진에서 밀린다면 부장 승진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승진 경쟁률이 높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과 포콜라레의 영성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야겠다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민 중에 하느님과의 대화를 깊게 가질 수 있는 기도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으며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저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후배를 볼 때 마다 경쟁어린 질투의 시선이 사랑이 깃든 시선으로 바뀌게 되어 자주 대화를 하게 되었고 그 후배도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저를 볼 때마다 웃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기도를 잘 드리지 않았는데 이번 승진에 대한 청원기도를 통하여 기도를 드리면 드릴수록 마음의 평화가 찾아 왔으며 기도의 맛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편 포콜라레의 공동영성을 생각하면서 모임에서 제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 하고 도움을 청했을 때 모두들 자기의 일처럼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조언과 기도 중에 기억할 테니 힘을 내어 나아가자고 용기를 붇도아 주었을 때 저는 회사 사장빽 보다 더 큰 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아내 베로니카는 우리 가운데 첫 자리에 하느님을 두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자고 하면서 저를 편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승진 심사일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편에선 기도만 해서 될까 하는 불안감이 저를 누르고 있었으며 주위에서는 인사 청탁을 하지 않으면 승진이 불가능 하다고 저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었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느님을 믿자” “아니야 로비를 해야 돼”하는 두 가지 방법을 두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 채 하느님과 일치하기로 마음을 가졌으며 후배가 승진하였을 때 환하게 웃는 얼굴로 진심으로 축복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느님께 청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발표 당일 제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마음이 평화로웠으며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에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퇴근 무렵에 후배를 제치고 제가 승진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순간 하느님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체험할 수 있었으며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우리 형제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번에 저를 통해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올바른 삶이 어떤 것인지 인식하게 해주셨고 과거의 나쁜 관행이 개선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주셨다고 생각하며 저는 신앙인으로 떳떳하게 직원들 앞에 설 수 있게 되어서 아주 기뻤습니다.


이번에 진급심사를 담당하였던 경영진 한분이 저를 불러서는 그분께서 저를 잘 몰라서 처음에는 후배를 진급시키려고 생각하였는데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 저에 대한 평을 들어 보았는데 저에 대한 평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고심 끝에 저를 진급시키기로 결정하였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포콜라레 영성을 살면서 하느님의 뜻인 항상 즉시 기쁘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변사람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승진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라는 2월달 생활말씀처럼 하느님과의 강한 신뢰를 통하여 제가 승진이라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주님과의 신뢰는 물론 가족과 형제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빛과 소금이 되어 열심히 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전에 학교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오후 부터는 아나끌레또와 교대하고

 베이스기타를 맡은(아지아), 리드기타(강야고보), 키보드(소피아), 드럼(글라라)

모두가 저녁 학원을 마치고 달려와 젠 노래 연습을 도왔던 사랑 가득한 멤버들입니다.  

 

 

 

지역별 그룹모임

 

(태안과 서산, 당진지역에서 생활말씀 모임을 하는 그룹끼리 모임을 가졌으면 하룻 동안 함께한 소감과 인사 소개등이 있었습니다.)  

태안지역 모임

 

 

 

 

당진 기타 지역  

서산지역 모임 

 

 

 

 

열심히 소감문을 작성하는 모습 

 

 

 

 

 

 

알렉산델과 강아지 마음이도 함께 참석했답니다  

 

 

 

 

하루마리아폴리에 참석한 3분을 무대로 초대해 소감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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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01.08 21:50

    첫댓글 최 덕열 바오로께서 찍어주시고 글까지 편집해 놓으신거 얻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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