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마을 아이들⟫임길택 글/ 정문주 그림/ 실천문학사
2023.7.21 박현이
임길택 (1952~1997)
나는 누가 울 때, 왜 우는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울 땐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를 울게 하는 것처럼 나쁜 일이 이 세상엔 없을 거라 여깁니다. 짐승이나 나무, 풀 같은 것들이 우는 까닭도 알고 싶은데, 만일 그 날이 나에게 온다면,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덩실덩실 춤을 출 것입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아직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 우는 것들의 동무가 되어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 어른 누구나 알아들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 합니다. _⟪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탄광마을 아이들⟫은 ‘우리 아버지’, ‘우리 선생님’, ‘우리 마을’, ‘외상수첩’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화려하고 현란한 시어 하나 없이도 긴 여운을 남기는 시들이다. 탄광마을 사람들의 삶은 가난하고 슬프고 때론 모질기까지 했지만 따뜻하고 그립다로 읽었다. 너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읽었다. ‘우리’ 라는 단어는 한국인이 유달리 많이 쓰는 단어라고 한다. 잘 알고 널리 쓰는 단어지만 정확한 의미를 찾아 본 적이 없어 이참에 어학사전을 찾아 봤다.
우리
1.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2.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자기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3.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쓰는 말.
(네이버 어학사전 참조)
‘우리’라는 단어 속에는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1인칭 마음, 평등, 친밀함이 담겨 있고, 이해와 인정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단어였다. ‘우리’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가 ⟪탄광마을 아이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세울 것 없는 가난한 광부인 아버지가 부끄럽기도 했지만 결국 아버지를 닮고 싶은 아이를 보면서 나는 내세울 것 없던 부모를 닮고 싶었던가 물었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야/ 나는 큰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십니다/ 일한 만큼 돈을 타고/ 남 속이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광부이십니다 _ <겨울 앞에 서서>
‘아버지/ 우린 이사 가지 말아요/ 여기 이곳에서/ 그냥 살아요 // 나도 커서는 광부가 되겠어요/ 거짓말 않고 사는 / 아버지처럼/ 일하는 사람 되겠어요//...아버지/ 우린 이사 가지 말아요/ 아무에게도 지지 않는 멋진 광부가/ 나는 꼭 되고 싶어요 _ <여기 이곳에서>
한동안 아이들과 계절마다 영주역에서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하는 백두대간 협곡 열차를 타고 태백 철암까지 다녔다. 철암역을 나서면 보이는 ‘철암탄광역사촌’는 철암에 갈 때마다 둘려 보는 곳이다. 임길택 선생님의 시들과 이야기들을 읽어서일까. 새로울 것 하나 없고 낡았지만 탄광마을의 삶들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철암탄광역사촌’ 입구에 다리가 하나 있다. 다리를 건너면 쪼그라진 검은 강 너머로 도시락통 들고 손을 흔드는 광부 모습의 동상이 있다. 광부가 흔드는 쪽을 따라가면, 아이들 등에 업고 역시 손을 흔드는 아낙의 모습이 보인다. 서로를 향해 흔드는 손들 사이에 ⟪탄광마을 아이들⟫속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 있었다. 오늘도 안녕히 돌아오라는 기원과 잘 살아보자는 의지가 오고 가는 무언의 말들이 보인다.
광부 사진가 전제훈씨를 만난 적이 있다. ‘철암탄광역사촌’에서 막장을 기록한 전제훈 작가의 작품을 철암에 갔다가 우연히 봤다. 무채색의 사진들이 강렬했다. 전 작가는 실제로 막장에 화약을 설치하시는 일을 하는 현역 광부이다. 운 좋게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막장 속은 정말 덥고, 어둡고, 숨이 막히고 무너질 위험이 언제나 있는 곳이라 막장에서 들어 선 광부는 여느 때보다 예민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함부로 막장 속 자기들의 모습을 담게 허락하지 않는단다. 다행히 전제훈 작가는 본인이 광부이기에 막장 속 생생한 삶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고 했다. 멋진 곱슬머리 은발에 여유로운 웃음을 지닌 전 작가에게서 ⟪탄광마을 아이들⟫속 가난하던 아버지들의 모습은 읽을 순 없었지만 흰 눈동자와 마스크를 썼던 입주변을 빼고 온통 검은 석탄가루를 뒤집어 쓴 사진 속 광부의 모습, 꾹 다문 입술과 빛나는 눈빛에서 보이는 강한 삶에 대한 의지는 닮아 있었다. ⟪탄광마을 아이들⟫속 아버지들의 모습도 그랬겠지. 지난해 겨울 간 철암에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나부끼고 있었다. 철암에 있는 탄광 폐업을 반대하는 현수막들이었다. 여전히 탄광에 기대어 사는 탄광마을 철암 사람들의 ‘오 년만 살고 가자' 는 약속이 십 년을 훌쩍 넘었을 이곳 사람들은 또 어디로 갈지.
이곳에 이사 올 때/ 아버지는/ 오 년만 살자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훈이네도/ 금옥이네도/성욱이네도/ 우리와 같은 약속으로 살러 왔는데// 성욱이네 넉 달도 못 채우고 더나갔고/ 정훈이네 금옥이네/ 벌써 십 년째랍니다// 거짓말 모르던 우리 아버지/ 약속을 지키실지 궁금합니다 _ <약속>
⟪탄광마을 아이들⟫속 아이들과 마을 이야기에서 임길택 선생님의 세심한 눈길을 느낀다. 엄마가 없어도 이제는 혼자 학교에 찾아오는 정민이, 아버지 손가락 두 개나 잘라내야 하던 날 누나도 엄마도 다 우는데 남자라서 울음 꾹 참고 있다가 끝내 눈물 흘린 중호, 시험공부 하면서 어둔 밤길 더듬어 오실 을반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고, 편지 한 장 없이 간다 말도 없이 떠나버린 친구들의 빈자리를 보며 낯선 곳에 있을 친구를 떠올리고, 병석에 계신 아버지께 학교에서 받은 우유를 갖다 드렸던 동진이가 슬프지만은 않다. 이 아이들 뒤에서 따듯한 마음과 시선으로 지긋이 바라보는 선생님이 보인다. ‘이곳 집들엔 벽이 없다며 울먹이던 예쁜 이 선생님’이 탄광마을 아이들과 지내면서 글씨도 모르는 불쌍한 아이들이 되어선 안 된다며 오후마다 우리를 이끌고 교실 찾기를 하시고, 나머지 공부 가르치다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는 선생님이 되고 , 달려가며 선생님을 부르면 뒤돌아서 있다가 우리를 꼬욱 안아 주는 우리 엄마 같은 김춘옥 선생님이 되었다.
남들은 ‘이런 곳에 우에 사노’ 하는 탄광마을에도 봄이 되면 광업소길 언덕마다 어린 싹이 올라온다. 무심코 똥을 누다가 변소 모서리에 쳐진 거미줄을 보며 거미도 규폐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따닥따닥 붙어 있는 영이네 집, 우리 집도 이마를 서로 맞대고서 오는 겨울도 견디어내자고 서로 다짐하는 것처럼 보이고, 별처럼 이어진 불빛 속 우리와 똑같은 집에 내 얼굴 같은 친구들이 살고 있을, 우리 아버지의 기둥이 되어 산 같은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고, 물통이 터져 일곱 아저씨 죽탄에 묻힌 날, 우리 마을에 하얗게 눈이 내리면 이 세상 슬픈 일들 눈에 묻히고 봄소식 씨앗이 된다. 팔도 사람 모여 가난한 이들끼리 정 나눈 마을, 정류장 아니더라도 손들며 멈추어 서는 버스가 서는 우리 마을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나누는 방법을 배운다.
아버지가 손을 들어도/ 내가 손을 들어도 / 가던 길 스르르 멈추어 선다// 언덕길 힘들게 오르다가도 손 드는 우리들 보고는/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우리 마을 지붕들처럼/ 흙먼지 뒤집어쓰고 다니지만/ 이 다음에 나도/ 그런 완행버스 같은 사람이/ 되고만 싶다// 길 가기 힘든 이들 모두 태우고/ 언덕길 함께/ 오르고 싶다_ <완행버스>
우리 식구 손때만큼이나 깨알 같은 글씨들이 가득 찬 외상수첩 채우려 가는 길, 밤이 되면 깊어지는 외로움을 가만가만 빨래를 하며, 도회지 나간 아이들 성적표 들여다보며 마음 달래던 키다리 우리 뒷집 곱슬머리 키다리 아저씨, 가난해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재중이네, 부모님 싸우는 소리에 훌쩍이는 순이, 굴 속 아버지와 돌아올 겨울 생각하며 연탄 머리에 이고 오던 길, 물 줄어드는 게 피 보타지는 것 같던 겨울처럼 야속한 시간과 떠나는 사람들(선생님도 정이 들자 전근 가시고/ 친구들도 문득 떠나가지만, 이사할 때 십만 원에도 안 팔려 그냥 두고 간 집//...낡은 비닐장판 위에 구슬 두 개 남아 있었다/ 먼지 듬뿍 뒤집어쓴 채/ 나란히 놓여 있었다 )과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수녀님만은 이 까만 마을에서 오래오래 아이들 곁에 남아 계신다) 속에서 아이들은 자란다.(유리창을 닦으며/ 내가 많이 컸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몸만 아니라 마음도 누구보다 따듯한 큰 자리를 가진 사람으로 자랐을 게다. 시들을 읽고 오랜 장마로 눅눅해진 내 마음이 한결 뽀송뽀송해진 것을 보면 말이다.
<함께 나누기>
시 속에서 아이들은 길 가기 힘든 이들 모두 태우고 언덕길 함께 오르고 완행버스가 때론 제 몸 태워 방을 덥히는 연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