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고기, 순댓국, 부속 일체. 악기점 옆 빈대떡집 간판은 언제 봐도 애매했다. 두희가 읽어내지 못하는 악보 같았다. 부속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빈대떡집에서 하는 것이 더 묘했다. 두의는 저도 모르게 보도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누가 지켜보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져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대여섯 사람이 건널목 앞에 서 있을 뿐, 딱히 수상쩍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미세 먼지 때문에 원근감이 사라져 낡은 스크린 속의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이백만 달러짜리 플루트는 어떤 소리를 내는 걸까. 두희는 잰걸음으로 걸으면서 아까 악기점에서 들은 갖가지 플루트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가격에 놀라 웃음만 지었는데 율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겸연쩍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천만 원은커녕 이백만 원도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나저나 율은 왜 한 번도 자신의 악기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을까. 두희는 율이 하는 말을 허투루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음악에는 문외한이고 몸까지 피곤하니 아이가 떠드는 소리가 때론 소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가끔은 아이조차 귀찮아질 때가 있었다.
노래연습장의 바깥 출입문을 열어젖히자 옅은 곰팡내가 지하에서 올라왔다. 계단참에 구정물 같은 어둠이 고여 있었다.
두희는 벽을 짚으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렸다. 순식간에 어둠이 달아나고 기역 자로 꺾인 복도가 눈앞에 나타났다. 두희는 공기청정기의 전원을 켰다. 공기청정기가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외투를 벗고 카운터 서랍에서 부증 방지용 토시를 꺼내 손에 끼운 후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수술한 지 오 년이 다 되어가지만 몸은 여전히 균형 감각을 놓치곤 했다. 방사선 치료를 포함한 모든 치료 과정을 마치자 두희를 기다리는 건 기억력 쇠퇴와 팔에 생기는 부증이었다. 나빠진 기억력은 누가 짚어주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가기도 했지만 부증은 당장에 드러나는 통증이었다. 치료 초기에, 두희는 아이를 안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달려오기라도 하면 두 팔로 가슴부터 가리게 되었다. 바느질을 할 때도 찌릿찌릿 쏘는 통증이 손끝에서 시작해 어깻죽지로 빠르게 뻗어 나갔다. 주먹을 움켜쥘 수 없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룸의 문을 전부 열어두고 환기를 시켰다. 창고에서 자루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앙ㅆ다. 기계처럼 손을 움직이면서 머리로는 악기점에서 본 플루트를 생각했다. 두희는 한 달 전부터 악기점 밖에서 가게 안에 진열된 악기들을 들여다보고는 했다. 율이 영재원에서 만난 한 아이의 이름을 재차 말하고 난 후였다. 율은 로즈골드색 플루트를 가진 아이를 '그 악기로 그 정도밖에 연주를 못 한다'고 비난했다. 대체 어떤 소리를 내는 악기일까. 두희는 처음으로 악기가 궁금해졌다. 이름처럼 둥글고 환한 소리가 악기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 끝에 아이의 플루트가 고장 났다는 사실이 불쑥 떠올랐다. 두희는 그길로 아이의 플루트를 챙겨 악기점으로 갔다. 악기들이 진열된 가게 안쪽에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 거리의 가게들 사정이 거의 그런 것처럼 악기점도 한가해 보였다. 대신 배달을 서두르는 오토바이들이 거리에 늘어났다. 한번은 가게 안쪽을 살피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하더니 두희가 여전히 망설이고 있자 벌떡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다가왔다. 두희는 당황한 나머지 도망치듯 자리를 뜨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두희를 알아보고 남자가 장갑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 좀 보라는 듯 그가 몸을 틀어 작업대 위에 널린 것들을 보여주었다. 두희가 무슨 악기냐고 물어보았다. 남자가 색소폰이라고 알려주었다.
"색소폰은 덩치와 소리에 비해 예민한 악기죠. 덜렁대느라 케이스 지퍼가 열린 것도 모르고 들었다가 그냥 바닥에 떨어뜨린 거죠. 우리 색소폰 동호회 총무님 겁니다. 마우스피스며 키 레버며, 다 휘어지고 우그러졌어요."
두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들고 온 소프트 케이스를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가 케이스를 열어 세 부분으로 분리해놓은 플루트를 꺼냈다.
"소리가 나질 않는대요." 두희가 말했다.
남자가 플루트 중간 마디에 새겨진 메이커와 숫자를 엄지로 쓱 문질렀다.
"야마하 221, 진짜 오랜만에 보는 모델이네요."
남자가 능숙하게 관을 조립한 후 마스크를 턱으로 내리고서 플루트를 불었다.
"보세요, 키 하나를 눌렀는데 여러 개가 동시에 움직이죠? 키 아래 패드가 찢어졌거나 키 덮개 조절 나사에 문제가 있어요."
두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는지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사야 조절하면 되고 패드는 교체하거나 교정하면 되니까, 한 이틀 걸릴 것 같은데요."
두희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율에게 전화를 걸었다. 율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영재원 수업이 다음 주부터 시작되니까 아직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아이가 영재원 수업에 가야 해서요."
"영재원요?"
남자가 미간을 모으며 두희를 쳐다보았다.
"연주를 잘하나 보네요?"
"글쎄요, 전 음악은 잘 몰라서요. 그래서 애가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도 모르겠고요."
웃느라 두희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윗니들이 드러났다. 그녀는 정색하듯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을 다물고 나서야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요사이 이런 일이 잦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있고 잠깐 마스크를 벗고 있다는 걸 잊을 때도 있었다. 송곳니가 부러진 자리는 검게 변해 두희가 봐도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율의 동영상이 생각났다.
"사장님은 보면 아시겠죠? 전문가시니까."
두희는 지금껏 수십 번도 더 되돌려 본 영상을 찾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허리가 잘록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커트 머리를 한 율이 등장했다. 율은 무대 의상을 직접 골랐고, 수료식의 고도 알아서 선택했다. 율은 테두리가 번진 둥근 조명을 받으며 연주를 시작했다. 사분의사 박자로 이어지는 도입부부터 곡을 장악했다고 심사의원이 평을 했는데, 두희로서는 그 말의 의미를 대충 이해할 듯하다가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무대 위의 율이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중에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잊은 것처럼 연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만큼 율이 낯설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도대체 저 아이는 누구인가 싶었다.
"염소의 춤." 남자가 말했다.
두희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염소가 춤을 추는 내용이라고 율이 말한 뒤로 곡을 들을 때마다 그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리듬이 빨라지면서 불안정하게 튀는 부분에서 폴짝대는 염소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삼 분 사십오 초 동안의 연주가 끝났다. 남자가 고개를 주억였다.
"이 곡엔 샤프와 플랫 따위의 임시표가 붙어 쉴 새 없이 호흡을 붙들고 내달려야 하는데, 이런 입문자용 플루트로 이 정도까지 표현한다는 건 분명 특별한 재능인 거죠."
두희는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처럼 으쓱해졌다.
"물론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요."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다시 아이의 동여상을 재생했다. 실수? 그것에 관해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외우다시피 한 선율이 다시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로즈골드 정도만 되어도 소리는 더 화려하고 풍부했을 겁니다."
남자는 무슨 뜻인지 아느냐는 듯 마스크 위로 드러난 두희의 눈을 쳐다보았다. 두희는 남자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며 단지 플루트 하나로 얼마나 화려하고 풍부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남자가 유리 진열장 쪽으로 가서 플루트 하나를 집어 왔다. 몸체가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악기 재질이 음색을 낳지요. 니켈 재질에 은도금한 플루트부터 실버 플루트, 로즈골드, 도금한 것, 골드 플루트, 플래티넘 플루트까지 다 다르죠. 가격도 천차만별이고요. 좋은 건 이백만 달러가 넘습니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두희는 전부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