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송선주
‘제비가 왔어.’ 남편의 들뜬 음성에 뜰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말 고향에서 보던 제비였다. 날개가 검고 배와 꼬리 부분이 하얀 제비가 낮게, 높게, 날렵하게 비행하고 있다. 남가주 유월의 아침이 맑고 상쾌하다. 짙푸른 숲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하다.
칠년 전,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변두리로 이사를 했다. 2.5에이커, 네모진 평지에 땅이 넓었다. 바람막이 겸 담장을 따라 아보카도 나무, 레몬 나무를 빙둘러 심었다. 단감, 대추, 무화과, 뽕나무도 추가했다. 기존에 있던 호두, 오렌지, 금귤, 구아바와도 잘 어울렸다. 화분에 있던 벤자민 나무를 뜰에 옮겨 심었다. 어느덧 사시사철 푸른잎을 반짝이며 큰 그림자를 드리운 정자나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아보카도 묘목들이 제법 숲을 이룬다. 줄지은 백여 그루의 아보카도 나무 밑을 걸으면 깊숙이 내린 뿌리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래전 이곳이 강줄기였다는 소리를 들은 까닭일까. 물은 언제나 아래로 흐른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그러하다. 이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다. 진리를 거스르면 쓰나미처럼 재앙이 된다.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이 길. 아름다운 천연계를 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숨결을 느낀다. 나무를 심고 가꾸느라 부쩍 늙어버린 남편의 땀과 노고도 생각한다.
며칠 전, 잠깐 딸네집에 가 있을 때 남편이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아보카도 나무에 둥지를 튼 참새가 알을 부화시켜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이다. 순간 포착을 잘했다. 손녀가 좋아할 것 같아 보냈단다. 평소에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과묵한 경상도 남자라 생각지도 못했다. 손자녀가 태어나니 의외로 잘 놀아 주어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좋아한다.
뒷마당에 서니 저 멀리 마운틴 발디가 선명히 다가온다. 한 폭의 수채화다. 3068미터 고산이어서 비가 내린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산. 야외 테이블 의자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며 따듯한 차를 마신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도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채마밭에는 각종 채소가 자란다. 가지, 오이, 고추, 들깻잎, 상추들이 식탁을 풍성하게 해준다. 잘 익은 아보카도와 각종 채소를 썰어 넣어 밥을 비벼 먹는다. 열무김치를 곁드리면 환상의 궁합이 된다.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미나리꽝도 만들었다. 온갖 새들이 모여들어 물을 먹고 미나리도 먹는다. 토끼, 다람쥐도 덩달아 찾아온다.
지하수가 풍부해 가뭄이 심해도 물 걱정이 없다. 미네랄이 많아 그 물을 먹고 자란 우리 과일은 맛이 좋다. 물론 넓은 전원이라 할 일도 많다. 수시로 나무를 가지쳐주고 풀도 잘라주고 자주 고장나는 스프링쿨러도 고쳐야 한다. 농사일을 모르던 남편이 이제 많은 일에 익숙하다. 자연 속에서 나무를 가꾸다 보니 더 건강해졌다.
올해 느닷없이 찾아온 COVID19로 인해서 세상이 바뀌었다. 마스크를 써야 하고 듣기에도 생소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6피트 떨어져 얘기도 나눈다. 손 세정제도 열심히 사용한다. 학교도 교회도 인터넷 영상으로 수업을 하고 예배도 드린다. 사람과의 만남이 차단되고 부득불 만날 일이 있으면 마스크, 안경, 장갑을 껴야 한다. 친구랑 문밖에서 전달해 줄 물건만 급히 주고 받으며 “우리 간첩 접선하는 거 같아” 하며 웃는다. 생필품 사러 가는 일 외에는 Stay home이다. 부모님이 양로병원에서 돌아가셔도 자녀들이 갈 수 없고 장례조차도 치를 수 없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여행을 할 수 없으니 하늘에 비행기도 날지 않는다. 전쟁도 없다. 언제나 막히던 프리웨이도 한산하다. 공기가 맑아지고 하늘이 청명하다. 수많은 실업자에게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부양한다.
최첨단을 자랑하던 거대한 나라 미국이 아닌가. 그런데 마스크가 모자라고, 휴지, 물, 생필품을 사기 위해 몇 시간 줄을 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의료장비도 모자라 의사들에게 지급하지 못하고, 넘치는 환자들로 병실이 부족해 순서에 밀린 사람은 속절없이 죽어간다. 아무도 당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려운 마음으로 정부 시책을 따르고 있다.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예방백신을 연구 개발하고 있지만, 좀체 힘들다고 한다. 인간의 지식으로 감당하기 힘든 세상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관여하셔야 할 때이다. 인간은 위를 바라보고 겸손히 순종하라고 성경은 수없이 예언한다. 온역과 기근과 지진과 전쟁이 잦으면 세상에 주는 마지막 경고라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 살 길이라고.
지난 주말 모처럼 온 식구가 모였다. 손자녀들이 넓은 잔디밭을 뛰어 다닌다. 흙에서 예쁜 돌들도 줍고 자전거도 탄다. 잘 익은 산딸기와 오디를 따 맛있게 먹는다. 그들이 깔깔대며 웃는 모습을 보노라면 에덴 동산이 따로 없구나 싶다. 맞다. 여기가 작은 낙원이다. 세퍼트 똘이도 많은 식구를 만나니 이리저리 뛰며 신이 난다. 하나님께서는 각종 나무와 유실수와 아름다운 꽃을 창조하셨다. 각종 새와 동물과 바다 물고기도 창조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 다스리라 하셨다. 인간은 욕심 때문에 불순종하여 낙원에서 쫓겨났다.
오늘도 해가 뜨고 지고 새들이 노래한다. 드디어 제비가 우리 집 처마 밑에 진흙을 부지런히 물어다 제법 튼튼하게 집을 지었다. 지금은 새끼를 부화시켜 어미아비가 열심히 먹이를 찾아 나르고 있다. 혹여 녀석들이 놀랄세라 똘이랑 우리 부부는 제비집을 피해 빙 둘러 다닌 지가 한참이다. “새끼가 자라 날아갈 때 온역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도 데리고 떠나려므나.” 아직 신앙이 깊지 않은 그가 길조라고 애지중지하는 제비에게 거는 바람이다. 더 늦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함께 교회에 가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이를 위해 날마다 기도한다.
하늘 아버지께는 자비와 인내가 무궁하시다.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간절히 부르는 음성이 가슴을 울린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